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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중] 생황 정악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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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785회 작성일 21-01-06 10:09

진행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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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황은 팔음에 의한 악기 분류법에 따르면 포(匏)부에 속하는 유일한 악기로써 과거에는 박으로 만든 공명통에 죽관(竹管)을 부착해서 사용하였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관리가 어려운 박 대신 금속으로 공명통을 만들고 그 위에 대나무로 된 관을 부착하여 제작 되는 악기로써 각 죽관(竹管)의 아랫부분에 리드(reed)의 일종인 황편을 부착하여 이 황편의 울림을 통하여 들숨과 날숨 시동일한 음정을 만들어내는 악기이다.
생황은 삼국유사에 따르면 고구려악에서 사용된 악기로 생(苼)이 나오고, 백제악에 사용된 악기로 생황의 한 종류인 우(竽)가 나온다. 중국의 문헌인 수서와 구당서에서도 고려악에 생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며, 봉암사(鳳巖寺) 지증대사적조탑(智證大師寂照塔),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 상원사 동종에서 생황이 연주된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널리 쓰인 악기로 짐작해 볼 수 있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예종 9년(1114년)과 예종 11년(1116년)에 북송으로부터 대성아악이 들어올 때 연향악에 쓰일 포생(匏笙)과 제례악에 쓰일 소생(巢笙)·화생(和笙)·우생(竽笙)이 고려에 전해졌다고 나온다. 1406년(태종 6) 명나라 영락(永樂)이 생황을 조선에 보낸 바 있으며, 그 뒤 생황은 세종 때 악기도감에서 제조되었으며, 악학궤범에 따르면 죽관(竹管)의 수에 따라서 화(13관)·생(17관)·우(36관)로 구분되었으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 17관의 생황이 주로 쓰이면서 현재까지 이르고 있으며 조선 후기의 생황연주 모습은 김홍도와 신윤복 등의 주요 민간 화가들의 화첩에서 풍류 악기로써 널리 사용된 모습을 확인하여 볼 수 있다.
근래에 들어서는 24관과 36관, 37관 등 다양한 악기가 창작음악에서 사용되지만 이 악보에서는 일제 강점기 김계선(金桂善)·박창균(朴昌均)에 의해서 전승되었고, 현재 김태섭(金泰燮)을 거쳐 정재국(鄭在國)에게 전승된 생황 연주법을 토대로 다루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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