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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2-18 10:51
  • 아내는 밥이다
  • 조성원
  • 수필집
  • 2013년 10월 14일
  • 신국판
  • 978-89-93506-98-
  • 12,000원

본문

긴장과 호기

글쓰기가 갈수록 힘겹다. 글도 운동마냥 구력이 붙으면 술술 풀어질 줄 알았는데 그러하지가 않다. 글 썼다는 햇수만 괜스레 늘리다 작파하지 않을까 두렵기까지 하다. 늦은 밤 머리를 가득 메우던 글구멍들은 모두 어디로 흩어져 버린 것일까. 나는 한때 밤의 유희를 즐겼다. 고독하였음에도 천착하여 좋았다.
일상의 고독은 생각해보면 마음이지 머릿속은 아니다. 쓸쓸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지 모르겠다. 어둠이 혼돈한 세상을 감추고 제 세상을 찾는 때 기억의 저편 까마득하였던 유무형의 형상들이 비로소 부스스 찾아오곤 했다. 쓸쓸하지만 감미롭다는 이중성은 글로서는 무척 적합한 유희이다. 나는 그때마다 글을 썼다.
상상하고 착각하고 미화하고 꾸미는 궁리는 그 이중성에 기인한다. 때론 이중의 대비가 지나쳐 감성을 겁 없이 요구하지만, 밤은 밤이니 가능하였다. 밤은 원래가 탐욕을 품고 산다. 아니 낮의 소행으로 붉은 눈빛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탐욕을 거부하지 않는 밤은 그래서 좋았다.
하지만 나는 그만 탐식에 젖어 한 편의 정제 물도 제대로 얻지 못하였다. 안타까운 노릇이지만 무방비의 결과로 정갈하지 않은 자취만 되풀이했다. 끼의 발산이란 미명하에 집착을 병폐로 낳았을 뿐이다. 나는 의식적으로 밤에서 도피했다. 그런데 요즘은 굳이 도피할 필요도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글이 밤에는 더 이상 기대서지 않으며 글 또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좌표에 옮겨지는 느낌마저 든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 어쩔 수 없는 시간의 종속임을 여실히 느낀다. 시간은 도대체 그 사이 내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나는 시간을 주범으로 주목한다.
그런 데는 몇 가지 정황이 있다. 누구든 처음 찾는 길은 긴장하고 때론 호기에 차고 가는 곳곳의 형상이나 느낌을 기억하고 의식하고 살핀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은 이미 익숙하여 쉬이 지나쳐 돌아온다. 그로 돌아오는 시간이 무척 짧게 여기게 된다. 글 좀 써봤다고 우쭐하는 폼이 실태에 꼭 들어맞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건성으로 훑었던 대상에 대해 이제는 됨됨이를 따져 본다는 것이다. 누군가 나이가 들면 잘 안 보이는 것은 큰 것만 보고 멀리만 보고 살라는 것이고 귀가 잘 안 들리는 것은 필요한 큰 소리만 들으라는 것이고 정신이 깜빡하는 것은 살아온 세월을 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라는 데 이 말은 육신의 노쇠를 말하지만, 또한 감각이 아닌 관념을 염두에 둔 말이다.
내가 나도 모르는 새 달라지는 모양이다. 한때 밤이 짧아 새벽과 맞닿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감성 풍부한 글이 나오리란 생각에서다. 하지만 나는 예전같이 집착하지는 이제 않으려 한다. 아니 포로의 시간을 놓아주고 싶다. 박완서 선생의 ‘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을 조금은 나도 알 것 같아서다.
노을은 햇살이 어둠에 잠길 때 빨간색만이 숨지 않고 남아 보이는 현상이다. 노을은 내게도 시간을 쫓아 어김없이 찾아온다. 또 다른 세상과 맞닿으며 이질적 포옹으로 아름다움을 천지에 선사하는 노을. 나는 내 글이 노을이었으면 싶다. 땅거미 아래로 나뭇잎 똑 떨어지듯 일시에 사라진다 하여도.

주어진 대로 숨지 말고 붉은빛처럼 한시라도 곱게 남고 싶다. 그쯤엔 젊을 적 발랄하였던 끼도 어느 낡은 관념도 어디론가 수렴하여 저 너머 붉은 노을에 아름답게 투영되지 않을까. 발산하듯 중천에 떴던 태양이 시간을 놓으며 그렇게 말하였듯이. 나도 노을처럼 그렇게 또 지고 싶을 뿐이다.
이번 글 집을 내면서 갈팡질팡 실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직장생활 또한 온전치 않아 펜을 한동안 내려놓은 적도 있다. 다행스럽게도 허덕이는 그쯤 창작지원 수혜가 나를 북돋아 주었다. 지금 나는 이 글 집을 펼치며 나지막이 읊조린다. 나는 생각하므로 존재하고 내 생각이 내 생각을 일깨우니 나는 무릇 나를 알아주는 작가이다. 이 글 집으로 내 안의 향이 천리만리 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머리-긴장과 호기


1. 사람과 사람 사이

빨래터 이야기

수도꼭지
몬테카를로
읍내 오일장
수박 한 덩이
월급은 현찰로 주세요
이 세상의 진화
오늘의 까치
그녀들의 흉 잔치
담뱃값이나 조금 부치우


2. 사회의 그늘 막 시선 끝에서

걸레
이별의 정거장이 그립다
흑산 홍어의 돌직구
환기팬을 뜯으며
건천 공사현장에서
중앙선에 선 사람들

1톤 중고 트럭
자연 생태 연못
신나는 자전거 타기
소리의 기원



3. 내 안에 나를 찾아

송사리 떼의 존재
연필
가을 모기와 나
나와 전봇대
빈 방
삶속에 그냥은
구멍 난 러닝셔츠
빛에 대한 소고
나의 은밀함
오후 다섯 시 반
아내는 밥이다



4. 숲 향기에 기대어

사랑 나무
안톤 시나크의 슬픔에 대하여
된장찌개의 진 맛
안개꽃
걷노라면
밤하늘 별을 헤며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참숯이 전하는 의미
풍나무 아래에서
참기름 듬뿍 바른 김


5. 돌이켜 보는 시간들

기적소리
영등포의 밤
괘종시계
옥수수 빵
귀뚜라미 소리
신탄진 자리에서
송강 동네 통닭집
남양의 아이들
순대 국밥집
그리운 당신을 모시는 날에



6. 살다보면


간이역 오무로에서
정읍사
효도 약 글루코사민
싱가포르의 낯과 밤
플라밍고
유월의 어느 날
시골버스 안에서
죄와 벌
박지원과의 북경 여행
미움의 향
감기 끝 무렵

문단
.1957년 경기 안양 출생
.대학원 졸(기계공학 열유체 전공)
.문학저널 시부문 신인문학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수필 등단
.한국수필작가회 회원

수필집
.2005 『작게 사는 희망이지만』(엠아이지)
.2006 『2천년 로마 이야기』(에세이)
.2007 『송사리 떼의 다른 느낌』(선우미디어)
.2007 『2천년 스페인 이야기』(선우미디어)
.2008 『빈가슴에 머무는 바람』(교음사)
.2009 『오후 다섯 시 반』(해드림)
.2010 『나 어릴적』(선우미디어)

수상
.제2회 천상병 문학제 시사문단 작가상 수상
.제2회 문학저널 창작문학상 수상
.제1회 소운문학상 수상

.현) 한국원자력연구원 근무

*수도꼭지

수도꼭지는 사용 목적이 콸콸 쏟아지는 물이지만 입 꼭 다문 상태로 묵묵히 버티는 시간이 더 많다. 겉으로는 모르지만, 수도꼭지가 입을 꼭 다문 때는 거센 물결을 억지로 막아선 형국이라 안간힘을 다하는 그야말로 힘든 상황이다. 그 무엇이든 가둔다는 것은 큰 고통이 수반된다. 스트레스는 비단 수도꼭지에 국한하지 않는다. 억제는 자유를 징벌하지만 끝내 자유와 탈출을 의도하였음을 과거 역사는 늘 말하였다. 수압이란 근거의 물리는 추상뿐 아니라 역사와도 일맥상통하다. 수도꼭지는 불풍나게 써먹다가도 찔끔찔끔 새게 되면 대번 쓸모없는 존재가 되었고 원천이 메말라 바특이는 처사에도 곧잘 누명을 쓰는 형벌을 당하였다. 이는 억제와 탈출에 엮인 세상의 비련은 단순하지 않으며 이것이 단지 수도꼭지에 국한되지 않음을 여실히 알려준다. 바냐위다가 단숨에 박신거려야 하는 수도꼭지의 고된 임무는 그러니까 실로 가중한 것이고 그냥 자연스레 보이는 것이지만 콸콸 쏟아지는 물줄기는 단순히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다. 온갖 서러움을 다 물리친 일시의 쾌거이고 드디어 찾은 광명인 셈이다.
동토의 왕국에서의 속박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란 추상을 나는 수도꼭지의 행방에서 자연 한다. 한 겨울철 견디고 견디다 못 참으면 끝내 얼어붙는 수도관은 당분간은 꼼짝을 못하는 처지이지만 그리 끝나지만은 않는다. 어느 순간엔 쇠붙이를 파단하고 전체는 공멸을 한다. 파단은 바깥과 안이 똑같은 조건이라면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추위가 풀리면 바깥공기는 따뜻하고 이는 수도관 안을 요동치게 한다. 아무리 철 조각으로 단단히 차단을 하였어도 소식을 모를 리 없고 여파가 없을 리 없다. 알다시피 물은 달구어지면 끓는다. 갑자기 일시에 팽창을 할 때 강단 좋은 쇳조각도 견디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나동그라지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여 물이 얼 때 쇳조각을 빈틈없이 꽉 붙잡았기 때문 가능한 현상이다. 물이 무르다고 우습게 여긴 강한 쇠가 당하는 이치는 많은 교훈을 준다. 이 또한 많은 역사의 기록에 유사하게 남아 있다. 중동의 민주화가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강추위가 엄습하는 때 수도꼭지를 살짝 열어 물을 졸졸 흐르게 하면 수도관이 얼어 터지는 일은 없다. 물이란 한없이 위축할 것 같지만 증발하지 않으면 어느 경우에도 소멸하지 않는다. 존재를 인정하여 융통을 부리면 그나마 수도관은 겉보기에 최소한 멀쩡하다. 똑똑똑 쉴 새 없이 떨어지는 가냘픈 물소리는 때론 희망이 되고 새 세상의 원천이 된다. 동토의 왕국 북한, 얼마 전 새 수도꼭지로 교체한 양 변화가 있었다. 얼어붙어 도시 알 수 없는 그들의 존체는 파단일지 그나마 작은 물줄기라도 길은 열어둘지 내심 걱정이 앞선다. 막중한 임무를 당해내는 수도꼭지로서도 의당 할 말이 많겠지만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자연 논리를 벗어날 수 없으며 흐를 때 자연 수압도 발생함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특히 강제로 pumping을 하여 콸콸 쏟는 물줄기는 자연 논리를 위배한 처사이기에 알아 둘 것도 많고 더욱 처신을 바르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 누명을 쓰고 폐품으로 내몰릴 것이다. 이 또한 어느 시대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됨을 나는 역사책에서 누누이 배웠다. 흐르는 물이 곧 천심이다.






*감기 끝 무렵

감기가 찾아오면 자연 일을 최소로 줄이고 전염도 무시할 수는 없어 외따로 버틸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번번이 느끼는 것이 나 없이도 잘 돼 가는 세상이고 생활이란 것이다. 활동도 줄고 부대끼는 생각도 줄고 나서지도 않는데 생활은 유지되고 오히려 차분하기까지 하다. 그간 돌출된 헛된 것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움츠리고 수그러든 처지에 그것이 또 서럽게 한다. 그러고 보면 그간의 나는 내안의 나를 잘 살피지 못하였다.
허욕에 찌들고 세파에 물들고 보이는 나에 급급한 나머지 진정 나는 내 안에 살지 못하였다. 아프면 이렇듯 많은 것들이 달리 느껴진다. 세상사는 일이 귀찮고 고달프다는 생각이 드는 그 어느 때, 한 사흘 감기나 앓았으면 싶을 때가 있었다. 감기를 앓고 난 뒤에 조금쯤 퀭하니 커진 눈으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면, 말로는 설명이 안 되지만 귀찮고 고달프다는 그 생각이 얼마나 가소로운 것인지 자연 알게 된다.
이번에도 다름이 없다. 아픔으로써 나를 알 것 같다. 고립은 왜소함을 낳고 아득함을 마저 느끼게 하여 삶을 절실하게 만든다. 대꾼하지만 아픔 속에 생각이 깊고 많아지는 것은 왜일까. 그 누구에게도 자리 할 아픔이란 것을 느낄 것도 같고 진정한 은둔을 알 것도 같다. 그래서일까, 속세를 접은 깊은 골에 비추어지는 양광이 맑고 따스할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 그곳에 감기가 있을까 싶다. 뜻 깊은 사색의 것이 감기란 생각을 하곤 한다.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하고 또 생각을 접는다. 생각을 접는다는 것은 어쩌면 욕망을 잠재운다는 말인지 모른다. 아프면서 나는 숱하게 세상의 것을 접었다. 지금도 허튼 세상의 그 무엇을 접고 있다. 그렇게 또 나를 접으며 접혀야 할 이유를 부단히 생각한다. 접다 보니 왠지 목에 걸린 감기의 역물이 허물어지는 것만 같다. 그렇게 2주에 걸쳐 빼곡히 담은 그 아픈 느낌을 접고 접어 마음에 넣는다.
진정함과 소중함의 어느 사이 그쯤 내 안에 내가 나에게 말한다. ‘침잠의 눈빛으로 조금 더 참고 견뎌 내 볼 것이 이 세상이다.’ 오늘 그런 새로움과 아득함을 믿고 조심스레 거리로 나왔다. 왜소한 몸짓에 미미함을 마음에 새기며 조심스레 가슴팍 단추 하나를 끌렀다. 느껴지는 것이 미풍의 달콤함이다. 거리에 남은 훈풍이 살갑고 그저 고맙다. 어차피 찾아온 감기라면 감기는 역시 제대로 앓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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