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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2-1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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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학순례 대표36
  • 이기순
  • 한국대표문인36인 발자취
  • 2014년 01월 20일
  • 변형신국판
  • 979-11-5634-006-5
  • 20,000원

본문

길 따라 떠나는 문학 여행

이 땅에 태어난 숙명 하나로 국토의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녀야 했다. 발길에 스치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돌멩이 하나까지도 우리 것이고 보면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물며 반만 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내 나라 내 땅인데, 닿는 곳 모두가 유서 깊은 땅이요, 우리네 숨결이 깃들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
허물어진 성터 깨진 기왓장에서 지난했던 역사를 회고하고, 대간 줄기의 기험한 봉우리에서는 성스러운 국토에 감읍하기도 한다. 뿐이랴, 세월의 이끼가 덮인 비석들을 쓰다듬으며 선인들의 지혜를 배우며 온고지정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동안 찾아다녔던 흔적들을 모아 역사 유적은「 문화유산 탐방기」로 묶어내고, 우리 문학의 현장들을 뒤졌던 기록들은 이번에「 한국문학 순례 대표36」로 간추려 놓았다.
여행은 아는 것만큼 보이는 법이다. 작가와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장을 찾아 직접 확인하는 방법이 최선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경향 각지에 흩어져 있는 문인들의 흔적을 일일이 살피고 뒤진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책상 앞에서의 자료 정리 정도 수준인 기존 문학기행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작가와 연고가 될 만한 곳은 최대한 직접 답사하는 방법을 택했다.
작가의 생가와 고택, 시비와 문학비, 문학관, 작품의 무대가 되는 곳은 물론 그들의 묘소까지 오랜 시일을 두고 찾아다녀야 했다. 특히나 묘소를 찾아가는 일은 꽤 힘든 고행이다. 인근 마을에 들러서 물어보기 일쑤인데, 촌로들에겐 문인들의 이름이 남의 이야기일뿐더러, 굳이 타인의 산소를 무어 기억할 필요가 있겠는가. 인적조차 끊인 겨울 산비탈을 몇 시간이고 헤매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방방곡곡에 산재한 우리 문학의 향기를 몸으로 호흡하느라 고단한 여정이기는 했으나, 타고난 산팔자 물팔자로 길 떠남을 즐기는 필자의 역마살이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동안『 문학저널』을 비롯해『 새교육』『 독서평설』 등의 월간지에 연재했던 원고들을 거두어, 현대문학 편은 제1부로, 고전문학 편은 제2부로 나누어 묶었다. 작가의 생애와 활동, 그리고 우리 귀에 익숙한 대표작들을 간단히 다루어 일반인의 이해를 돕도록 했다.
이 한 권의 책이 일선 교육 현장의 교사, 학생들에게 작가와 작품을 가까이 느끼고 현장감 있는 문학 수업을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또한, 주말 여가 생활이 늘어나면서 여행을 나서는 많은 일반인에겐 찾아가는 목적 여행을 위한 안내서로, 문학 답사를 계획하는 문인들에게는 문학적 영감을 얻는 지침서가 되기를 바란다.
2004년 정초에
낭산 이기순

|목차|

머리 말·길 따라 떠나는 문학 여행
Ⅰ·현대문학

01 ● 불운한 선구자 이광수·11
02 ● 벽초 홍명희와‘ 임꺽정’·25
03 ● 침묵의‘ 님’ 만해 한용운·41
04 ● 전통 정서의 민족 시인 김소월·59
05 ● 빼앗긴 들을 맴도는 저항 시인 이상화·75
06 ● ‘향수’의 서정 시인 정지용·89
07 ● 남도의 서정 모란꽃과 김영랑·103
08 ● 동양 정신의 정통 시인 서정주·116
09 ● 구원의 생명파 시인 유치환·132


148·농민문학의 개척자 이무영 ● 10
162·강원도 산골 나그네 김유정 ● 11
176·메밀꽃의 봉평 이효석 ● 12
191·상록수의 고향 필경사와 샘골 ● 13
206·전통과 지조의 시인 조지훈 ● 14
224·청노루의‘ 나그네’ 시인 박목월 ● 15
238·목마 타고 떠난 요절 시인 박인환 ● 16
250·요람기’의 언양과 오영수 ● 17
268·겨레 정신의 민중 시인 신동엽 ● 18

19 ● 토속적 가락과 한의 정서 박재삼·285
20 ● 부끄럼 없는 순결 시인 윤동주·302
21 ● 토속어와 고향 의식의 천재 시인 백석·318
22 ● 천형의 시인 한하운과 소록도·336
23 ● 순진무구의 영혼으로 살다간 천상병·352
24 ● 떠남과 이별의 장 화개장터 김동리·366
25 ● 떠돌이의 향수 목계장터 신경림·374
26 ● ‘토지’의 고향 하동 평사리 박경리 (1)(2)·382/389
27 ● ‘홍도야 우지 마라’ 노래비·398
28 ● 백민 한정동의 동요‘ 따오기’ 노래비·405


Ⅱ·고전문학

413·‘어부사시사’의 고향 보길도 윤선도 ● 29
427/443·시와 술의 방랑 시인 김삿갓 (1) (2) ● 30
448·한의 여류 시인 허난설헌 ● 31
462·이화우에 흩날리는 연정 매창 ● 32
477·시와 정절의 여인 김부용 ● 33
491·묏버들의 여심 홍랑 ●34
500·흥부마을 ● 35
508·지리산 변강쇠 공원 ● 36
516·문화유적열람

지은이 소개
이기순
아호 낭산(浪山). 충북 괴산 출생으로 청주고와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 오산고(五山高)에서 35년 간 근무했다. <현대시학>으로 등단하여. 한국작가회의 회원과, 풀무문학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내 나라 내 땅의 진솔한 ‘우리 것’을 찾아다니고 있다.
지은이의 책들로는「강물처럼」(시집),「한국인의 문화유산 탐방기」,「문학의 고향을 찾아서, 「한국문학 대표 순례36」,「독서평가록」등이 있다.

*만해는 평소 세 가지의 소원이 있다고 했는데, 부처의 정신으로 살고자 부처님의 땅을 가보는 것이 첫째고, 둘째는 중생제도를 위해 신문이나 잡지 등 언론 매체를 경영하는 것이요, 셋째는 조선인으로서 백두산 천지에 올라보는 것이라 했다.
또한 3·1운동으로 옥중에서 3년을 있으면서 스스로 투쟁 3원칙을 세워 철저히 실행했다. 내 나라를 찾는 떳떳한 일을 했으니 변호사를 대지 말 것이며, 자신만이 호의호식할 수 없다 하여 사식을 금했으며,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으니 보석을 요구하지 말라는 것이 그것
이었다.
함께 독립 만세를 불렀던 많은 이들이 각서를 쓰거나 병보석을 빌미로 출옥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일로, 만해의 강인한 신념을 가히 헤아릴 만한 일화가 아닐 수 없다.
민족 지도자, 불교 사상가, 민족 시인으로 호칭되는 만해는 독립된 조국에서 민족의 극락 정토 실현을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44년 6월 29일, 세수 66세를 일기로 심우장에서 입적했다.
일제의 학병 징용에 반대하여 일체의 배급을 거부하고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적 양심을 지키다가 영양실조가 되어 그로 인해 건강이 극도로 쇠약해졌다. 그는 겨울날 어느 하루 마당의 눈을 쓸다가 졸도한 후, 이내 반신불수로 혼수상태를 거듭하다가 결국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시신은 미아리 화장장에서 다비한 후,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_‘침묵의 님 만해 한용운’ 중에서




*두류공원의 인물 동산에서 이 고장 출신의 문인 고월 이장희, 빙허 현진건의 문학비와 상화의 동상을 살펴보고는 다시 상화의 또 다른 시비가 있는 대구 시내 동쪽의 수성못으로 발길을 옮긴다. 수성 지역 일대는 지금이야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통 논밭뿐인 들판으로, 상화가‘ 빼앗긴 들’을 탄식하며 거닐던 작품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다. 그 너른 들에 물을 대주던 저수지가 수성못이다..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저수지는 행락객이 붐비는 유원지로 변해 버리고, 호반 동편의 큼직한 자연석 시비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 가’ 전문이 새겨져 있으니, 잠시 옛적 상화가 되어 작품 속의 현장에서 회고지정에 젖어본다.
1927년 고향으로 내려온 상화는 의열단 사건에 연루되어 피검되고, 다시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으로 구속되어 모진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일제의 감시 속에 행동이 제한되는 생활 중에도 자기집 사랑방을‘ 담교장(談交莊)’으로 이름짓고 대구의 우국지사들과 문우들을 불러들여 나라 잃은 울분을 달래었다.
1935년엔 북경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맏형 이상정 장군을 만나 석 달간 머무르다 귀국해 일경에 검거되어 또 다시 고초를 겪기도 했다. 이후 교남학교에서 영어와 작문 교사로 3년간을 근무하며‘ 나라 잃은 식민지 백성이 주먹이라도 강해야 한다’면서 권투부를 창설한 것은 유명한 일화 전해 온다.
_‘빼앗긴 들’을 맴도는 저항 시인 이상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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