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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0-02-18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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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튼소리
  • 정지암
  • 해학수필집
  • 2014년 1월 25일
  • 변형신국판
  • 979-11-5634-010-2
  • 12,000원

본문

마음에 씨앗을 심고

TV를 켜니 낯선 가수가“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니 일모도원日暮途遠(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한데 고려장 당할 나이가 되었다. 올바르게 산 기억은 별로 없고 좌충우돌 허튼짓으로 산 기억만 새록새록 솟아나서 정신이 아뜩하다.
죽기 전에 좋은 일 하면서 귀감이 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점잖고 품위 있는 수필집 한 권 남기고 죽으리라 마음속에 씨앗 하나 틔우며 살았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타인에게 봉사하고 품위 있게 살려고 한 것은 교만에서 나온 객기였다.
남을 의식한 위선적인 삶은 싫었다. 분단장한다고 근본이 바뀌는 것도 아니기에 살아온 방식대로 살기로 마음을 정했다. 무엇보다 독자를 속이는 글은 쓰기 싫었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꾸며 쓴다고 향기가 날 것 같지도 않고, 글은 만들면 시들고 진실 되면 피어난다고 했다. 계획보다 수필집 상재를 앞당긴 것은 하루가 다르게 기억력이 쇠퇴하기 때문이다. 고백하건대, 정보와 지혜가 있는 글, 감동이 있고 품격이 있는 글은 자신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멋 부리지 않고, 민얼굴 그대로 독자 앞에 나서는 무례를 범하려고 하니 날아올 돌팔매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불면의 밤을 여러 날 지새웠다. 의붓아버지 제사상 차리듯 넋두리와 신변잡기 한 권을 불쑥 독자 앞에 내던지는 얼굴 두꺼운 사람이 되었다.
서정범 교수는 평소 글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나는 그 말을 신줏단지 모시듯 끌어안고 산다. 수필은 품위가 있어야 한다는 틀에서 반항하고 싶었다. 수필에서 요구하는 감동, 정보, 지혜, 품위는 없지만, 서민이 살아가면서 이웃과 정담을 나누듯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쓰려고 수많은 밤 붓방아질에 굿 끝낸 무당처럼 기진맥진 한 날이 많았다.
남 보기엔 보잘것없는 잡문이지만, 내 딴에는 생피를 짜낸 글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시간 낭비하지 않았다는 독자가 있다면, 글을 쓰기 위해 바친 보상은 충분하리라. 책 내용 중에 아물어 가는 생채기를 덧나게 한 가족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14년 1월
정지암

저자의 말 - 마음에 씨앗을 심고·04


1. 허튼소리

포경수술·10
거꾸로와 우렁각시·15
거머리·21
총각 딱지·27
종마種馬와 시정마始情馬·33
군대 이야기·38
방귀 때문에·44
뻐 더·49
수 컷·55
아이스케이크·63


2. 가시버시

어찌 잊을까·71
손녀와 대화·78
누이의 세월·80
눈 물·86
아내의 웃음·89
대장 검사·95
동태 전골·101
손목시계·107
돼지꿈·113
우리 가시버시의 일상·118
어머니의 단상·124


3. 나이 값

어디라고 따라 왔니·138
온천장·144
수 표·149
사람 사는 냄새·155
재수 옴 붙은 날·161
술주정·166
경로 교통 카드·172
꽁 초·178


4. 반추

망 신·186
푼 수·192
아버지의 여자·196
군화軍靴·203
차 별·209
사투리·215
운동회·220
장애를 가진 사위·224
약수터에서 만난 사람·228
장족藏族여자들·235

정지암(본명:정춘남)
1945년 경남 진주 출생
롯데그룹 근무
주식회사 서광 사장 역임

테마수필 필진
한국문인협회 회원
『비손』 외 공저 다수

*손녀와 대화

손녀가 유치원에 다닐 때는 무지갯빛 꿈을 가졌었다.
“너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니?”
“김태희, 전지현 같은 스타가 되고 싶어요.”
“왜 그런 생각을 했어?”
“예쁘기도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서요.”
“돈 많이 벌어서 어디다 쓰려고?”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에게 멋진 자동차 사드리려고요.”
손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책은 멀리하고 친구들과 노는데 정신이 팔린 듯했다. 손녀에게 공부는 하지 않고 놀기만 하면 김태희 같은 스타가 될 수 없다고 했더니 손녀의 대답이 의외였다.
“저 스타가 싫어졌어요. 그냥 평범하게 살래요.”
“왜 마음을 바꿨어?”
“제 얼굴이 스타가 될 만큼 예쁘지 않아서요.”
손녀가 3학년이 되었다.
손녀는 짜장면을 아주 좋아한다. 점심때 짜장면을 먹은 뒤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너 대학 졸업하면 짜장면 만드는 사람에게 시집가야겠다.”
“할아버지 저 결혼 안 하고 혼자 살 건데요.”
“결혼을 안 하다니, 왜?”
“지금도 직장 구하기가 어렵다는데 그때는 더 어려울 것 같아서요.”
“혼자 살면 아빠와 엄마는 네가 모시고 살면 되겠다.”
“혼자 살기도 어려울 텐데 어떻게 두 분을 제가 모시고 살아요. 아빠는 오빠가 모시고 엄마만 제가 모실 거예요.”
열 살짜리 손녀의 대답이 때가 묻지 않아 모두 웃었다. 손녀가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매우 풍요로워 졌으면 좋겠다. 현실을 정확하게 꿰고 있는 손녀의 말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지하인지라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천길 땅속 같았다. “어떻게 된 거야?” 의사는 긴장되고 다급한 목소리로 간호사에게 묻곤 더듬더듬 밖으로 나가고 간호사도 뒤따라 나가는지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린다. 밖에 대기실에는 아이 우는 소리와 여자의 비명이 간간이 들리고 다급한 발걸음 소리에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건물에 불이 났을까.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가까이서 들리는 듯했다. 불이 났다면 몸에 꽂힌 기계를 뽑아내고 신속하게 대피해야 한다. 병원 관계자들은 고객을 남겨 놓고 안내 말도 없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몸을 움직여 보니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손을 뒤로하여 항문에 꽂힌 기구를 만져보니 단단한 쇠파이프가 박혀있었다. 작살에 꽂힌 도다리 신세가 된 것 같고, 십자가에 못이 박힌 예수님이 아른거린다. 예수님은 그래도 부활했지만, 나는 곱다시 산 채로 꼬치구이가 되는구나 싶으니 기가 막혔다. “여기 사람 있어요, 밖에 누구 없어 요?” 하고 악을 써보지만, 모두가 밖으로 대피하고 없는 듯했다. 숨이 막힐 공포에 떨다 보니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방정맞은 생각이 자꾸만 났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전기 통닭구이와 장작불 위에 통돼지 바비큐가 스쳐 지나간다. 내가 인간 바비큐가 되어 끔찍하게 죽는 모습을 상상하니 불현듯이 등신불等身佛생각이 난다. 만적은 멀쩡한 채로 등신불이 되기 위해 가부좌를 틀고 합장을 한 채, 명주를 여러 겹으로 전신에 감고 한 달간 들기름에 절여 불이 담긴 향로를 머리에 얹어 서서히 몸을 태워 부처님께 공양하여 등신불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가부좌를 할 수 없으니 무엄하게도 누운 채로 몸을 태워 공양해야 하니 와불臥佛이라고 흉내 내야겠다. 파이프가 박힌 와불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희귀한 부처다. 내가 소신공양하여 와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두려움이 한결 가벼워졌다.
_‘대장 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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