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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07-22 12:58
  • B형 도시
  • 양순복
  • 해드림출판사
  • 2021년 07월 17일
  • 신국판
  • 979-11-5634-465-0
  • 12,000원

본문

꽃이 진 후를 주목하는 시안(詩眼)

이혜선(시인, 문학평론가)

 

1. 들어가며

 

시는 사물의 내면과의 대화이다. 사물(세계)에다 자기의 내면을 투사(projection)하고 그 세계他者로 하여금 시적 화자 대신 말하게 하거나, 세계를 자신의 내부로 끌어들여 동화同化시켜서 세계와 자아가 동일화를 이루게 하는 표현 장치가 시이다.

양순복 시인은 주로 자연을 객관적 상관물로 하여 자연에 자신을 투사하거나 반대로 자연에서 삶을 읽어내고 삶의 지향점을 밝히는 혜안을 지닌 시인이다.

양순복의 시는 따뜻하고 밝고 긍정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남들이 간과하기 쉬운 사물의 이면을 그 사후事後, 死後의 의미까지 천착하는 깊이 있는 시안을 지니고 있다.

 

 

 

2. 꽃이 진 후를 주목하다

 

꽃잎이 이슬에 젖는 건

젖은 발로 달려오는

별빛 때문일 거야

 

꽃 진 그 자리에

서둘러 새잎 돋우는 건

푸른 그늘이 되고 싶은

열망 때문일 거야

 

꽃잎 하나둘 떨구는 건

지워야 할 기억보다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더 간절해서

묻는 늦은 안부일 거야

- 꽃이 진 후부분

 

3월부터 피는 꽃들이 4월이 되자 한꺼번에 다 피어나 온통 황홀한 꽃동산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아름다운 꽃 앞에서 우리는 꽃이 피어 있는 상태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고 노래하기는 쉽다. 그러나 양순복 시인은 꽃이 피었을 때의 황홀함과 아름다움에 취하기보다는 꽃잎 하나둘 떨구며 꽃이 진 후에, 늦은 안부를 묻는 시인이다. 젖은 발로 달려오는 별빛을 받아 이슬에 젖는 꽃잎을 바라보며 눈을 맞추는 시인이다. 피어 있는 꽃만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꽃 진 자리에 새잎이 돋아 타자들에게 푸른 그늘을 드리워 주고 싶은 잎의 열망에 눈을 맞추는 시안을 지니고 있다. 꽃이 진다는 것은 꽃의 죽음이지만, 꽃이 진 자리에 새 잎이 돋아나고, 더욱이 새 생명 잉태의 열매가 맺히는 것은 꽃잎의 단순한 죽음을 넘어서서 생명을 지속시키는 우주적인 역사이다. 양 시인은 이러한 새로 돋는 잎과 새 생명이 보고 싶어서 꽃 진 자리에 늦은 안부를 묻고 있다.

 

단칼에 목 잘려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어찌 알았겠노

푸른 눈물 흘리며 저항 한 번 못하고

제 살 꿰매면서

오로지 좋은 시래기가 되기 위해서는

이 앙다물고 참아야 한다고

목줄기와 목줄기 줄에 엮인 채

설한풍雪寒風 기나긴 밤 서로 토닥여가며

가려운 줄기 벽에다 비비고 문지를 때

바스락바스락, 버럭버럭, 소리쳐 봐도

누렇게 야위어만 가던 빛

삭풍에 얼었다 녹았다

그 누구 따스한 눈길 한번 주지 않아도

수십 번 비우고 또 비우고 나서야

또 하나의 꿈을 이루었나니

- 무시래기 꿈부분

 

무시래기 꿈도 꽃이 진 후의 삶에 주목하는 작품이다. 오직 뿌리만을 살찌워야 한다는 일념 아래 푸른 줄기를 세우면서 비와 바람, 천둥과 먹구름을 받아내던 날들은, 출산과 육아는 물론이고 자녀교육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자신을 돌아볼 여유라곤 없던 젊은 날의 삶이다. 그런데 단칼에 목 잘려 나가듯이 젊은 날은 가고 푸른 눈물 흘리면서 노년의 자신을 받아들여야 하는 날이 오고 말았다. 젊은 날처럼 푸른 삶은 아닐지라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직면한 현실 속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시래기가 되기 위해 제 살을 스스로 꿰매기도 하고, 세상의 찬바람에 얼었다 녹았다, 눈바람 부는 긴긴 겨울밤에도 서로 토닥여 가며 자신을 비워내야 한다. 젊은 날의 서슬 푸르던 결기와 오기를 수십 번 비우고 또 비우고 나서 이루어 낸 또 하나의 꿈, 그 이름은 조선의 무시래기이다.

푸르던 꽃의 시간을 지나서 천신만고 끝에 이루어낸 누런 무시래기 무엇이든 품어 안을 수 있는 따스한 색깔, 된장이건 나물이건 생선조림이건 그 어느 것에도 몸 섞어 깊은 맛을 우려내는 무시래기, 꽃이 졌다고 낙망하지 않고, 목 잘린 상황을 탓하지 않고 꿈을 이룬 무시래기의 삶은 그대로 우리들의 삶, 고난과 질곡의 역사를 견뎌내어 오늘의 발전과 풍요를 이루어낸 우리 조선인의 삶에 대입된다.

 

바람은

바람의 이름을 불러주고

나무는

나무의 이름을 불러주고

등과 등을

어깨와 어깨를 서로 기대

알몸으로 호호 입김 불어가며

극한 추위를 견뎌내는 것

- 겨울 숲학교부분

 

꽃 피고

꽃 진다

몸살 앓아눕거나

아쉬운 마음 저미지 말자

- 어느 4월의 득음부분

 

겨울 숲 학교도 꽃이 진 후의 겨울나무를 노래하고 있다. 봄이 오면 또 꽃을 피우고, 꽃 진 자리에 새순 돋우고 가지를 뻗어 가겠지만, 그 꽃이 진 후의 가을, 잎이 모두 떨어진 후의 겨울에도 나무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어깨와 어깨, 등과 등을 서로 기대어 알몸으로 극한 추위를 견뎌 나간다. 그것은 어느 4월의 득음처럼 꽃 피고, 꽃 진다고 몸살 앓아눕거나 아쉬운 마음 저미지 않고, 자연과 우주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이다. 꽃이 피는 황홀함 뒤에는 오랜 기다림과 인고의 삶으로 피워내는 또 다른 꽃, 또 다른 꿈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3. 인간소외 소통 부재와 그 극복

 

1807년에 헤겔은 정신의 활동으로 창조된 사물이 자립하여 창조자에게 대립함으로써 인간 정신이 부정되는 개념으로 소외疏外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그 후로 마르크스와 에리히 프롬에 이르러 소외의 개념이 더욱 확대되었다. ‘현대인들이 사회적으로 겪고 있는 온갖 병적인 것들’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인간성이 상실되어 인간다운 삶을 잃어버리는 현상이라는 뜻으로 인간소외는 현대사회를 비판하는 개념이 되었다. 인간이 자기들의 생활을 풍부하려고 만들어 낸 물질이 인간으로부터 독립하여 거꾸로 인간을 지배하고 마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인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얼른 보기에는 물질적 풍요 속에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발달된 기계화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여 자유로운 창조의 길을 포기한 무기력한 존재이며, 외부의 권위에 무조건 순응하는 자동인형이 되어 가고 있다. 더욱이 첨단과학기술의 발달로 새롭고 편리한 기계를 사용하면서, 그 기계나 기술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기계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노예가 되어 가고 있다. 사회의 기존 가치로부터 자신이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 사회적 관계에서 느끼는 고독감이나 고립감 무력감 등으로 소통 부재를 느끼면서 더욱 기계에만 의존하게 되어간다.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섬을 갖고 산다

그 섬에서 발신인 없는 편지를 읽는다

 

전동차 문이 열리고

우르르 안으로 뛰어드는 성미 급한 사람들,

자리에 앉거나 서거나

각자의 섬에 불 밝혀 놓고

혼자서 웃고 울고 너스레를 떤다

 

이 섬에서 저 섬을 잇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터리 충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수많은 섬을 부려놓고 다시 싣는 전동차는

습관처럼 낯익은 멘트를 흘려보내고

타인의 우체통에 담긴 발신인 없는 편지를

이 섬, 저 섬에다 수없이 부려놓는다

 

도시의 바다는

발신인 없는 편지를 실어 나르며

언제나 소란스럽고 분주하지만

나는 그 섬을 떠나지 못한다

 

B형 도시 : 기존의 도시에 대비되는 새로운 개념의 도시. 각자의 섬에 갇혀 이웃과 단절되고 기계에만 의존하는 현대인의 도시.

- B형 도시부분

 

 

‘B형 도시는 양 시인이 명명한 새로운 도시이다. 자기 안에 갇혀서,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스스로 소외시키며 기계에만 의존하는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계 맺음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잃어버린 새로운 형태의 도시로 명명하고 꼬집어 고발한다. 현대인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기도 하고, 기계나 기술에 의해 소외되기도 하고, 스스로 자기를 곁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소외시키기도 한다. 그리하여 모두가 고립되어 현대라는 소통 부재의 바다에서 각기 따로따로 떠도는 외딴섬으로 살아가고 있다. 필자도 호모 모빌리쿠스라는 시에서, 손에 전화기가 없으면 불안하고 허전하여 잠시도 견디지 못하는 모바일 인간에 관해 쓴 적이 있다. 이 시도 외딴섬에서 오로지 배터리 충전된 스마트폰에만 의지한 채 진정성 없이 떠다니는 발신인 모르는 편지를 읽는 익명의 사람들, 그것에 의해 울고 웃고 찡그리며 노예가 되어 가는 사람들, 나아가서 그 사람들 자체가 발신인 없는 편지가 되어 떠다니는 부유물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메스를 가하고 있다. 손안의 거인 전화기로 사이버 공간에서 낯모르는 익명의 사람들을 찾아 헤매다가 벌어지는 사회문제들, 충동적인 범죄들, 점점 더 외딴섬이 되어 가는 사람들로 인해 사회 전체가 외딴 바다가 되어 가서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고, 비인간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새삼 짚어 보게 하는 울림이 큰 작품이다.

 

별끼리 소리 없이 만나는 밤에

우리도 반짝이는 별꽃이 된다

 

별 안에서 별을 찾는 사람들

눈먼 도시는 밤마다 별꽃 축제를 열고

나도 그중 하나 별 헤는 여인이 되어

이름 없이 지는 별 하나 품고 산다

 

별은 별끼리 모여 별자리가 되고

별자리와 별자리가 모여 별나라 되고

별나라에 그대의 황궁이 있다면

환궁의 심장에 큐피드 화살 쏘아 올려

그대 가슴에 새겨진 사랑 하나 품고 사는

사랑의 별자리를 하나 새겨 놓고 싶다

 

행여,

그대 차가운 눈빛에

긴 꼬리 달고 투신하는

긴 꼬리 별똥별이 되어도 좋다

- 별 안에 별을 안고부분

 

양 시인은 외딴섬이 되어 가는 인간소외와 소통 부재를 고발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극복을 기원한다. 양 시인의 시의 오브제(objet)가 별, 식물 등이고

시인의 말-작은 꽃잎 한 장 한 장 열리는 소리 ㆍ 4

서평-꽃이 진 후를 주목하는 시안詩眼 107

- 양순복 시집 B형 도시_ 이혜선(시인, 문학평론가)

 

1 별이 지지 않는 바다

별 ㆍ 14

꽃이 진 후 ㆍ 15

오월의 기도 ㆍ 16

몸짓 ㆍ 17

의 향기 ㆍ 18

풀잎이 하는 말 ㆍ 19

겨울 숲학교 ㆍ 20

물새 우는 가을 저녁 ㆍ 21

어느 4월의 득음 ㆍ 22

무시래기 꿈 ㆍ 24

빈자리 ㆍ 26

새벽달 ㆍ 27

B형 도시 ㆍ 28

가을밤 ㆍ 29

별이 지지 않는 바다 ㆍ 30

사막의 밤 ㆍ 31

돋을볕 떠오르면 ㆍ 32

보름달 ㆍ 33

 

 

2 산골 동화

산골 동화 ㆍ 36

나뭇잎 길 ㆍ 37

그늘의 달인 ㆍ 38

나비에 잡히다 ㆍ 39

반전反轉 40

잡념 ㆍ 41

비가悲歌 42

여명黎明 43

춘설春雪 44

그대 별이 내 가슴에 뜬 이유를 알겠다 ㆍ 45

염장鹽藏 46

그런 사람 하나 있다 ㆍ 47

정오의 미소 ㆍ 48

곡우穀雨의 기도 ㆍ 49

산과 해ㆍ 50

무의도無衣島 51

환청幻聽 52

그래 너도 꽃이다 ㆍ 53

 

 

3 구름의 문장

구름의 문장 ㆍ 56

강동선사문화 축제 ㆍ 58

율곡촌에서 시를 짓다 ㆍ 59

천호역 ㆍ 60

한강 찬가讚歌 61

십자성 마을 ㆍ 62

천년의 기억 ㆍ 63

연안 포구의 밤 ㆍ 64

아우라지 ㆍ 65

백 년의 약속 ㆍ 66

등불축제 ㆍ 67

한강의 오월 ㆍ 68

입동 무렵 ㆍ 70

별 안에 별을 안고 ㆍ 72

 

 

4 작약이 피는 계절

작약이 피는 계절 ㆍ 75

나무 학교 ㆍ 76

나팔꽃 ㆍ 77

꽃밭의 오후 ㆍ 78

소금꽃 ㆍ 79

달맞이꽃 ㆍ 80

깻망아지 ㆍ 81

봉선화 ㆍ 82

박꽃 ㆍ 83

산유화 ㆍ 84

담쟁이 연가 ㆍ 85

별은 꽃이다 ㆍ 86

코스모스 길 ㆍ 87

뿌리는 고집이 세다 ㆍ 88

 

 

5 엄마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ㆍ 91

노을이 질 때면 ㆍ 92

자화상 ㆍ 93

무당벌레를 닮은 여자 ㆍ 94

복어의 꿈 ㆍ 95

흑백사진 ㆍ 96

낙타는 오늘도 ㆍ 97

가늠하다 ㆍ 98

어린 날, 나는 ㆍ 99

섬진강 산그림자 ㆍ 100

달항아리 ㆍ 101

무심한 계절이여 ㆍ 102

오수午睡 103

접시꽃이 피었습니다 ㆍ 104

산다는 건 ㆍ 105

내 안에는 언제나 바다가 산다 ㆍ 106

 

현재 시인은 한국문인협회 복지위원과 한국시인협회, 종로문인협회, 강동문인협회, 송파문인협회 이사뿐만 아니라, 문학의봄작가회, 풀무문학 그리고 서울시 글사랑 회원으로서 꾸준히 문학 활동을 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움집 위에 핀 이슬꽃과 다수 동인지가 있으며, 201758일 서울신문에 그래 너도 꽃이다를 발표하였고, 지하철 응모 시에 노을이 질 때면이 당선되어 게재되었다.

몸짓

 

봄이 되면

앞다퉈 터지는 꽃망울도

꽃 진 자리 새잎 돋우는 나뭇가지도

허공에다 드리울 새로운 꿈을 찾는다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연초록 이파리와

속살속살 나른해진 뿌리로

기지개 켜며 쭈욱 뻗어간다

 

봄은,

땅 위에서도

땅속에서도

매우 분주하다

 

 

 

 

 

 

 

 

 

천호역

 

빗살무늬 출렁거리는

천호역

 

흙처럼 순하디순한

천호千戶의 마음들이

하늘을 닮아

몸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네

 

사랑과 인생이 한데 어우러져

녹아내린 천호역은 언제나

나그네도 반기는

강동의 중심

 

가슴을 열고

정겨움과 환한 미소로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모두

강동의 한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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