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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1-10-07 11:06
  • 이차전지 성장 이야기와 대기업 오래 다니기
  • 김석주
  • 해드림출판사
  • 2021년 09월 24일
  • 신국판
  • 979-11-5634-475-9
  • 15,000원

본문

직장의 현실을 인지하여

현명하게 처세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이 책을 쓰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연말 인사에서 승진이 누락하게 된 것을 보고 분노가 치밀어서 내가 인정을 받도록 어떤 기록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으며, 그리고 그 누락이 몇 번 반복됨에 따라서 그 분노가 울분으로 바뀌게 되었다. 물론 나를 인정하는 인사담당이 나의 경험을 책으로 써서 후배들에게 읽혀도 좋을 것 같다는 격려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울분의 표현이나 후배들의 코칭 보다는,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이와 더불어 남아 있는 내 인생을 계획하는 시간으로 삼고 싶다.

대기업은 매년 연말 조직을 재편성하고 인사를 단행한다. 지난번 연말 임원인사 발표를 보고 실망을 넘어서 분노가 일어났는데, 이번에 연말 인사를 보고 울분이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왔다.

죽 쒀서 개 준다더니 또 그렇게 되었구나. 열심히 일하고 성과를 만들어 내면 승진한다고 했는데, 잘못 알고 있었구나. 코칭의 기본 단계 중 하나가 당신의 상사를 승진시켜라라고 했는데, 다른 사람만 승진하고 말았구나. 내가 차려준 밥상을 다른 사람이 잘 받아먹고 말았구나. 내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면 내가 먹었을 밥상인데, 회사나 조직이 밥상을 잘 차린 사람을 찾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지만, 위 사람들도 자기 밥그릇 찾아 먹느라 바쁘

기만 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두 번째로 느낀 심각한 분노였고 첫 번째 울분이었다. 첫 번째 분노는 20여 년 전 하늘에 대한 분노였고, 그 이후에 내 인생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내 자식에게 생긴 일로 인하여 마음가짐이 달라졌고, 그 분노를 삼키면서 인생을 달라지게 만들기 위해 피를 토하듯이 살아왔고, 이제야 그에 대한 답으로 반은 해결이 되었고, 남은 반은 10여 년 후에 해결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이번에는 회사와 조직 그리고 직장 상사에 대한 분노이다. 흔히들 밥상 차리는 사람 따로 있고, 밥 먹는 사람 따로 있다고 한다. 리더십 코칭에서 상사를 승진시키라는 속뜻은, 상사가 잘되면 본인을 이끌어 줄 것이니 상사가 잘되면 본인도 잘되지 않겠느냐 하는 말이다. 말이야 그럴듯하지만, 실제는 대부분 윗사람은 본인 살기에 바쁘다. 그리고 본인이 잘되고 나서야 본인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챙긴다. 나의 경우를 보니 나의 성과로 상사가 승진하여도 그것이 나의 승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기업 직장생활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야 내가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회사에서 승진하려면 윗사람을 잘 만나야 하며, 은퇴하여 사업에 성공하려면 후배를 잘 두어야 한다고 들었다. 최근에 들었던 이야기인데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잘 맞는 것 같다. 업무로 인해서 윗사람의 인정은 받았지만, 나의 학연이나 나의 처세가 윗사람의 마음에 들지 못하였다. 실무에서는 업무 역량이 중요하지만, 임원에게는 적당히 포장하는 기술과 그리고 나름대로 역량이 중요하다. 그리고 될만한 곳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데, 무슨 해결사처럼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는 데 희열을 느꼈으니, 몸은 바쁘고 경험은 풍부하고 야전에서 실전 경험은 무척 많으나, 최고 의사 결정을 하는 top들을 모시는 참모 성향

이 없어서 결국은 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내가 역사적으로 존경하는 두 분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과 중국의 제갈공명이다. 나는 두 사람이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두 분 다 매우 출중한 능력이 있었으며, 그리고 그 능력을 최대한으로 사용하였다. 둘째는, 두 분의 능력이나 역량으로 그 자리를 넘어서 왕이나 황제의 직위를 바라볼 수도 있었으나, 도를 넘지 않고 본인의 직분에 충실하였다. 셋째는, 두 분 다 죽을 자리를 알고 가장 적정한 시점에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정신이 나의 한계를 만들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나를 스스로 평생직장 생활인으로 한계를 지었고, 이러한 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성장에 대해서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

 

인사 발표 후 몇 주가 지나서 예전에 같이 일하던 개발 동료가 생각이 나서 위로 겸 전화를 하였다. 그 친구도 전지에 상당 기간 종사하였고 다른 사업부 개발 담당으로 이동하여서 일해온 지 2년 되었으므로 임원이 될 것으로 많은 기대를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이번에 본인이 연구소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임원이 되지 못한 것을 달래느니라 CEO가 전화하고 CPO가 전화하고 했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일로 어디서 전화 한 통 받아본 적이 없다. 우리는 거리에서도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회사 생활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내는 전지의 엔지니어는 대접을 해주는 것 같고, 일반적으로 영업은 쉽게 대체가 되는 사람으로 인식을 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를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이에 이 책을 쓰기 시작하였다. 나는 평생 영업직군에서 일을 해오고 있으나 영업이 아닌 사업을 해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엔지니어보다는 사업가가 사업에 끼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는 것을 증명해보고 싶다. 내가 가진 역량과 이룩한 성과는 회사를 오래 다니기에 충분하였지만, 적정한 평가를 받지 못하였던지, 아니면 나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작거나 제대로 정치를 못 해서인지 승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나의 경험과 교훈을 지금부터 적어가면서 나 자신을 돌아다보며, 혹시나 이 책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직장의 현실을 인지하여 현명하게 처세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들어가는 말 | 4

글을 맺으며 | 276

어떤 leader가 되려고 하는가? | 281

다 내려놓기 | 283

맺는말 | 291

 

 

1부 대기업 생활의 시작

대기업 생활의 시작 | 16

1) 유전과 선택 | 18

2) 대학교 전공의 선택 | 21

3) 첫 번째 전환기 - 카투사 생활 | 27

운동의 습관 | 32

4) 대기업 D전자 취업 | 37

D전자에서 얻은 것들 | 41

5) 두 번째 전환기 - Michigan MBA | 46

젊은 직장인의 고뇌 | 50

다른 직장으로 이직에 성공하기 위해서 | 57

 

 

2부 전지의 입문과 사업 개척의 길

전지의 입문과 사업 개척의 길 | 63

1) notebook OEM H사 진입과 휴대전화기 M사 사업 | 68

2) N사의 진입과 pack 역량 습득 | 75

3) Notebook 전지사업의 확대 | 79

성공 체험과 reference | 86

4) 파우치 사업의 발판 | 88

5) 휴대전화기 전지의 부활 | 97

6) 2D로 파우치 사업 선도 및 투자협상 | 103

7) 신규 application의 개척과 T사 진입 | 113

8) ESS Giga project 수주 | 124

9) 사활을 거는 협상 | 127

 

 

3부 품질과의 인연

품질과의 인연 | 142

1) N사의 recall | 147

2) H사의 recall | 152

3) ESS field issue | 157

4) 전지 사업과 품질의 관계 | 166

5) 전지 사업은 왜 힘들까? | 169

 

 

4Global 사업가와 ESS 신사업 초석 다지기

Global 사업가와 ESS 신사업 초석 다지기 | 175

1) 인적 networkingteamwork | 177

2) Global 영업과 Business manner | 182

외국인과 내국인의 대응 차이점 | 184

고객의 한국 방문 대응 | 189

식사 시의 에티켓 | 190

3) 경쟁력 있는 회사 체계의 구축 | 192

Wine Together & WebEx 회식 | 198

4) ESS 사업의 미래와 과제 | 203

 

 

5부 대기업에서 성공의 길

대기업에서 성공의 길 | 210

1) 현명한 선택 | 212

미래의 준비 | 214

2) 대기업 회사원과 채용 | 221

첫 직장과 직업의 선택 | 227

3) 나만의 강점 | 230

실력 배양 | 245

체력의 기본기 | 248

나만의 이야기 | 250

4) 성과 있는 조직 | 254

5) 자기 PRbackground | 259

6) 소신과의 갈등 | 266

직장 상사와의 원만한 갈등 해결 | 268

7) 자존심과 감사 | 272

 

 

 

김석주(金錫炷)

 

지방 대학에서 전자 공학을 전공하고, 국내 Global 대기업 D전자에서 10여 년 해외 영업을한 후에, 회사가 big deal로 업무 태업에 들어가자 젊어서는 일을 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새로운 직장을 찾게 되었다.

 

대학 시절의 전공과 처음 직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sales engineer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이차전지 사업 초기에 우리 회사의 영업 경력직 첫 번째 member로 참여를 하고, 현직에서 20여 년 이차전지 사업의 초기부터 시장 개척을 맡아서 사업을 일구고 성장을 만들어오고 있다.

 

1999년 우리 회사로 이직 시 이차전지의 매출은 전무하다시피 하였는데, 지금은 OO조로 매

출이 성장하고 또한, global 회사들을 고객으로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이 하였지만, 산업 초기 불모지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난관과 고통을 극복하여 지금은 세계 시장에서 주도를 하고 있다.

 

사업 초기부터 소형 이차 전지의 발판을 만든 이후에, 지금은 EV 전지가 본격적인 성장을 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ESS 전지가 성장을 주도할 것으로 판단하여 여기에서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의 기반을 만들어 가고 있으며, 앞으로 개인적인 희망은 10년은 대기업에서 더 일하고 그 이후에도 적어도 20년은 추가로 일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4) 파우치 사업의 발판

N사 사업에서 2차의 recall로 인하여 수익성에서는 애초에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적자를 남기고 원통형 사업에서 탈락을 하였지만, 당사 이차전지 사업의 기반 구축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는 유산을 남겼다. N사 원통형 사업으로 처음으로 당사가 multi-cell pack 기술을 습득하고, 단시간에는 Npack 사업의 referenceH사에 notebook pack 사업을 진입하여 일등 vendor가 되었으며, 추가로 Dpack 사업뿐만 아니라 대만notebook packer에도 진입하게 되었으므로, N사 사업은 당사의 multi-cell pack 사업의 시초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발전시켜서 전력 구동과 결국은 자동차 pack 사업까지 확장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당사가 파우치 사업으로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주게 된 것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N사는 원통형의 거듭된 recall로 인하여 품질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게 되었고, 당사는 고객을 유지하기 위하여 파우치의 안전성을 강조하면서 향후 기술의 대세는 파우치이므로 전지를 전환한다고 설득을 하기 시작하였다. 원통형의 폭발이 가져다주는 위험성에 비하여 파우치는 cell에 문제가 생겨도 파우치가 찢어지면서 적어도 폭발은 생기지 않는다고 홍보를 하였는데, 이것이 불안감에 젖어있는 N사에 먹혀들었는지 그 이후로 이 고객은 전지를 notebook 용을 포함하여 전부 파우치로 변환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는 당사 파우치 사업에 바로 기회로 다가오지는 않았고 오히려 중국 makerN사 교두보를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다.

초기에 N사 원통형 notebook pack을 공급하면서 Engineer John의 요청으로 각형 단 cellpack을 공급하였는데, 당사가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N사에서 신제품 개발하여 출시하는 Pod에 자연스럽게 진입을 한 것이다. 초기 Pod는 전지가 각형이었는데, 원통형 recall 이후에 N사가 metal can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와 파우치의 얇은 특성으로 인하여 Pod의 차세대 제품에 파우치 전지를 채용하여, 당사도 소형 파우치로 공급하면서 사업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Pod 1세대 제품을 출시할 때에는 단순한 MP3 player로 인지를 하였으며 디자인이 예쁘다는 수준의 평가였으나, 나중에 인지한 바에 의하면 software Tune의 출시가 시장에 파격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결국은 이로 인하여 N사는 hardware 회사에서 software 회사로 전환을 이룰 수가 있었다. 초기 곡당 99 centdownload를 받을 수 있게 Tune과 연계를 하였으며, 시간이 갈수록 Tune이 더 발전하더니, 결국에는 OS를 개발하여 Phone을 출시하게 되었으며, 이어서 Pad를 출시하였다. 나중에 듣는 바에 의하면 hardware 면에서는 Pad를 먼저 개발을 하였으나, 시장에서의 acceptance를 고려하여 Phone을 먼저 출시하였다고 들었다. Phone을 처음 출시하였을 때만 하여도 volume의 성장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들었으며, 핸드폰 시장에서 1%share만 차지하여도 된다고 하였는데, easy to usesmart phone의 대세와 맞물리면서 제품의 완성도에서 절대 타협을 하지 않는 완벽성으로 시장을 제패하게 된 것이다. 또한, 2008년경 app을 시장에 공개한 것이 매우 파격적이었으며, 이로 인하여 시장에서 급성장 한 것이다. 다른 회사들은 자사의 이름으로 app을 승인하고 출시를 할 때, N사는 모든 사람에게 app의 판매로 발생하는 profitshare 하면서 open 함으로써 gamerule을 바꿔버린 것이다. N사의 Tune 출시와 app open market을 보면서 나중에 체계적인 혁신의 중요함을 나 자신도 깨닫게 되었고, 시장과 고객을 읽고 그러한 것을 예견하여 출시한 Steve의 선견지명에 탄복하게 되었다. 더불어 Pod, Phone, Pad의 순차적인 출시도 매우 전략적인 결정으로, 순서가 바뀌었다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와서 지금과 같은 성공을 가져왔을 것으로 생각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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