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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2-06-03 10:01
  • 보릿고개를 넘어온 사람들
  • 염동립
  • 해드림출판사
  • 2022년 05월 20일
  • 신국판
  • 979-11-5634-504-6
  • 15,000원

본문

가난 속에서도 충만하였던 아름다운 정서를

버려둘 수는 없었다

 

보릿고개는 배고픔의 대명사이다. 물론 젊은 세대에게 보릿고개라는 말은 낯설고 생경하겠지만 에세이집 [보릿고개를 넘어온 사람들] 저자 세대인 7~80대 이상에게는 결코 잊힐 수 없는 가난과 배고픔의 대명사이다. 사실 5~60대도 수제비, 무밥, 김치죽, 고구마밥 등을 먹으며 보릿고개 여진을 겪은 셈이다. 라면이나 자장면은 귀한 존재였다.

당시의 가난은 지금의 가난과는 환경이 전혀 달랐다. 자신만 가난한 게 아니라 그 시대 자체가 가난하였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이 가져오는 처절한 슬픔은 피할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당시는 슬픔과 고난과 배고픔을 서로 나누려는 정이 깊었고, 비록 가난하였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풍요로운 정서가 있는 시대였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어두운 과거는 굳이 꺼내려 하지 않는다. 아픈 과거는 기억에서 버릴지라도 그 과거 속에서 공존하였던 아름다운 미학이 있다면 그 미학조차 기억에서 지울 이유는 없다. [보릿고개를 넘어온 사람들] 저자 염동립이 보릿고개 이야기를 들고나온 이유도 어두운 과거보다는 가난 속에서도 충만하였던 아름다운 정서를 버려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 정서 흐름도 하나의 역사이며, 거기에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교훈과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정서는 얼마나 삭막한가. 물질적으로는 넘치도록 풍요하지만, 하루걸러 잔혹한 범죄가 일어나는 세상이라면 사회 구성원들의 정서가 피폐해진 것은 아닌지, 그 정서를 치유해야 할 것은 아닌지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인간의 정서가 파괴되면 끝내 지구의 파멸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배는 고팠으나 자연과 가까운 삶이었고, 그 자연 생태에서 비롯된 원초적인 인간의 정과 정서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에세이집 [보릿고개를 넘어온 사람들]이다.

또한, 이 책이 품고 있는 메시지가 하나 더 있다.

 

당시는 질곡의 터널이었을지언정 지금은 일정 부분 그리움조차 베인 과거의 미학을 추억하는 일은 단순히 회상하며 미소 짓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뇌세포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과거를 이 책을 통해 기억해 냄으로써 나이 들어 소강상태로 들어선 뇌세포를 자극하여, 백세시대로 들어선 이즈음 가장 무서운 치매 예방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점이다. 기억이란 하나를 꺼내면 연관된 기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것이니, 독서를 통해 지나간 일을 자꾸 돌이키다 보면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게 된다. 따라서 이 책을 부모님에게 선물하는 것은 적잖은 공감과 감동을 선물하는 것이다. 부모님의 치매 예방은 덤이다.

이번 책을 펴내게 된 저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대다수 국민이 겪었던 삶의 모습을

그냥 묻어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이야기들

 

우스갯소리이겠지만 노년기 세대들이 625 전쟁 무렵에 밥을 먹지 못하고 살았다.’라고 하는 말에 젊은 세대들이 , 밥이 없으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으면 되지 왜 굶어요?’라고 대답하더라는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는 과거의 삶을 너무도 모르는 세대들에게 우리의 과거를 알려 앞으로는 그런 어려움을 겪지 않아야겠다는 의지를 심어주고 갖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잘사는 나라를 물려준 조상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러한 생각에서 단편적이나마 필자가 어려웠던 시절에 겪었던 일들, 이를 이겨내기 위하여 몸부림치던 모습들,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정답게 살았던 모습들, 저마다 소박한 꿈을 지니고 열심히 노력하였던 모습들, 그리고 625 전쟁 당시의 잊히지 않는 추억들을 모아 오늘날의 모습과 비추어 보면서 소개하고 싶었다.

 

필자가 나고 자란 곳이 농촌이고 너무나 가난한 삶 속에서 체험한 내용이기에 도시지역이라든지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에게는 얼른 와 닿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을 줄로 안다.

그러나 당시의 열악한 시대적 여건 속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다수 국민이 겪었던 삶의 모습을 그냥 묻어두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이야기들이기에, 그리고 누군가는 어려웠던 시절의 삶의 모습과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애쓰던 모습을 후세에 전해 주어 그 고난의 극복과 성장의 에너지를 역사적 자산으로 삼아 나아가야 할 필요성이 절실하다고 여겨지기에 글재주가 없는 처지이지만 감히 책으로 엮어 보았다.

아무쪼록 이 책이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애환 깊었던 추억을 되돌아볼 기회가 되고 전후 세대와 젊은이들에게는 우리의 과거를 알고 오늘을 살며 미래를 계획하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역사를 잊지 않고 소중히 여기는 민족으로 든든히 서서 가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머리글 4

 

1부 춥고 배고팠던 시절

보리밥을 먹으며 14

한 조각의 떡 19

구워 먹던 도시락 23

돼지 잡던 날 27

자장면 냄새 33

겨울철에 웬 수박이…… 36

소병을 앓던 사람들 39

, 그리고 김밥 43

보릿고개를 넘어서 47

홑이불을 둘러쓰고 53

나일론 양말 59

추억의 고무신 63

온돌방 명암 69

 

2부 가난을 이겨내고

좀도리 배미 76

나뭇짐을 팔아서 80

우물 안의 개구리 세상을 보다 84

진정한 농사꾼 89

꼴찌의 변신 93

제 먹을 복은 다 타고나는 법인데 97

모깃불을 피워 놓고 104

황토 지우개 109

60리 통학 길 113

메아리가 사는 산 118

며느리의 솜씨, 그 여한 123

알뜰한 절전 128

 

3부 그리움을 남긴 삶

동네 백이, 그 나눔의 미학 134

우물가의 서정 138

친구야 같이 놀자 143

열 살 차이도 벗이었는데 147

어머니, 무슨 국을 끓일까요? 151

새벽닭 울음소리 154

품앗이, 그 아름다운 풍속이여 158

자주 강()을 받아 주세요 164

상여 나가던 날 169

윷 한판 신나게 놀아 보았으면 174

부라코네 정미소 178

조금 먼 것이 흠인데 182

다음 장날 또 만나세 188

 

4부 더 나은 삶을 그리며

묻지 마 갑자생(甲子生) 196

헛간에 있던 변소 203

이 잡기 작전 208

어떻게 가꾼 것들인데 214

밥상머리 가르침 218

땅값이 뭐기에 224

묏등에서 재주를 넘다 229

반장의 왕국 234

자랑스러운 표창장 244

고려사도 우리의 소중한 역사인데 249

머릿속의 세계 여행 255

 

5부 어린 눈에 비친 625 전쟁

지겨웠던 노래 연습 263

평생 흉터를 지니고 266

아버지의 절규 270

책상 없는 천막 교실 273

어렵게 살던 피난민들 276

19421215일생

광주사범, 한국방송통신대 졸업

초등학교 교사, 교감, 교장 역임

송정제일교회 장로

성경요절 365(한영판) 발간 보급

지겨웠던 노래 연습

 

625 전쟁이 일어났던 해 여름 우리 고장이 공산화되자 마을 단위로 어른들과 아이들을 따로 모아 밤마다 북한의 노래를 가르쳤다.

우리 마을은 학교가 있는 마을이므로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 구령대 앞에 모여 노래 연습을 하였다.

평촌이나 바람지기, 장등, 석계 등 학교에서 가까운 다른 마을 아이들도 평소에는 자기 마을 시정이나 마당이 넓은 집에서 연습하지만, 사흘 걸음으로 학교로 나와 연습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때에는 꼭 낯모른 어른 한두 사람이 따라와 마을별로 노래 부르기 시합을 시키고 끝나면 잘한 순서대로 등수를 매기고 강평 같은 것을 하였다.

한 주일에 두어 번씩 이런 일을 하기 때문에 다른 마을보다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하여 더 열심히 연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에 자기 마을의 성적이 좋지 않아 질책이라도 받는 날이면 평소에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 책임을 묻기 때문에 모두가 연습에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래는 마을 청년 몇 사람이 미리 배워 가지고 와서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출석을 불러 만일 빠진 사람이 있으면 다른 아이를 시켜 데리러 오기 때문에 한 사람도 빠질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 노래를 부르기 싫은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참여할 수밖에 없었으며 밤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들이었다. 어쩌다가 한 번이라도 아프다고 핑계 대고 나가지 않으면 다음 날 다른 사람과 진도를 맞추기 위하여 몇 배나 더 고생해야 하기에 쉽게 빠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마을 아이들이 청년의 선창에 따라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불렀다.

아침은 빛나라 이 강산……」 북한의 애국가를 비롯하여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국……」, 더운 피 흘리며 말하던 동무……」「비겁한 놈아 갈려면 가거라……」 등 많은 노래를 밤마다 모여 불렀다.

나는 2학년의 어린이였기 때문에 가사가 무슨 뜻인 줄도 모르고 따라 불렀다.

그렇게 부르기를 사나흘하고 나면 연습 상황을 확인하기 위하여 개인별로 곡을 지정해주고 부르도록 하여 잘못 부른 아이에게는 심한 질책과 함께 다음 날까지 잘 부를 수 있도록 하라고 과제를 주어 기어이 부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렇게 해도 잘못 부르면 마을별로 잘못 부르는 아이들을 모아 조회시간에 전교생 앞에서 선생님의 지도를 받아 잘할 때까지 불렀던 일이 지금도 머릿속에 부끄러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나도 몇 번 그 대열에 끼었었기 때문이리라.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 즐겨 부를 만한 동요가 별로 없어 노래를 거의 부르지 않고 지내는 터에 이런 북한 노래를 적극적으로 부르도록 하니 자연히 아이들 사이에 북한 노래가 마치 유행가처럼 불렸으며 잘 부르는 아이들은 많은 칭찬을 받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불렀던 것 같다.

어른들도 마을에서 모여 이런 노래를 배워 불러야 했으며 잘 못 부르는 사람들은 잘 부르는 사람들로부터 핀잔을 받는 경우가 많아 노래를 배우는데 열심히 하였다. 밤이면 온 마을에 어른이나 아이 구별 없이 군가풍의 노랫소리가 널리 울려 퍼지곤 하였다.

이렇게 밤마다 모여 노래를 부르고 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하여 시도 때도 없이 부르다 보니 김일성이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공산주의가 살기 좋은 세상인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사람들을 교화하고 사상교육을 하는 데에는 노래가 큰 몫을 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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