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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08-24 15:51
  • 편 애
  • 복진세
  • 해드림출판사
  • 2023년 08월 15일
  • 신국
  • 979-11-5634-550-3
  • 15,000원

본문

이제는 아픈 기억은 모두 지워 버리고,

무녀(巫女)의 예리한 춤사위처럼,

붓끝이 지면(紙面) 위를 자유롭게 노닐게 할 것이다

 

나는 종교인이 아니다. 다만, 불교 철학의 매력에 빠져 살았다.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우연히 시작한 인문학 공부가 동양철학이었다. 노장철학과 성리학을 공부하던 중 우연히 불교의 반야심경을 읽고서, 불교 철학에 빠져들었다. 과학자인 아인슈타인도 세계 인류의 미래의 종교는 불교라고 일갈하였다. 불교 철학은 현대과학인 양자역학으로 증명되는 것이 진리임이 틀림없다.

자전적 수필을 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상당한 고통을 수반한다. 어릴 적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서 활자로 옮길 때는 더욱더 그렇다. 초고를 쓸 때는 마음으로 울었고, 퇴고하면서는 많은 눈물을 쏟아내야 했다. 너무 고통스러워 쓰는 일을 그만두려고 할 때도 여러 번 있었다.

글을 쓰면서 이미 나의 이 되어 버린 업식(業識)’을 비워 내려고 노력하였다. 그 일은 엄청난 고통을 견뎌내야만 가능했다. 한편 한 편을 써 가면서 비로소 나는 자유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고통스러운 작업은 계속되었고, 울분을 모두 쏟아 놓고서야 집착하는 마음을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나는 대 자유인이 되고 싶었다.

집착도 욕심도 증오하는 마음도 모두 비우고 살아가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 이 책을 읽고 나와 유사한 삶을 사는 이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

 

내가 걸음마를 시작할 즈음, 우리 가족은 낮은 언덕 위에 있던 집에서 살았다. 우리 집에서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멀리 너른 들판과 달리 건너 중학교, 나지막한 앞산, 그리고 복순이네 집이 보였다. 동네 사람들이 다니는 모습을 우리 집에서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마당 끝에는 정갈한 화단이 가꾸어져 있었다. 나는 아장걸음으로 꽃잎에 앉아 있는 나비며 잠자리를 쫓으며 뛰어놀았다. 빨랫줄을 받치는 높은 바지랑대 위에는 고추잠자리가 날아다녔다. 엄마의 행주치마에서는 풀 먹인 냄새가 좋았다.

아버지는 목말을 태워서 더 높은 세상을 바라보게 해주었다.

내가 병이 나기 전까지는, 모두 행복했던 기억만 남아 있다.

 

 

사춘기 방황의 시작

 

사춘기가 막 시작할 때쯤, 우리 집이 파산(破産)했다. 우리 집의 파산은 내 꿈을 모두 포기하는 일과 맞물려 있었다. 심한 사춘기 통을 겪으면서 심한 방황을 하였다.

고등학교 진학을 못 하고, 지게를 지고 농사일을 하면서 수없이 울었던 기억이 나를 우울하게 한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어렵게 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나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나의 성격은 점점 더 거칠어 가고 있었다. 사고뭉치로 둔갑한 고교생활은 질풍 노드의 시절이었다. 너무 힘들어 모두 포기하고 싶었지만, 적당히 이겨 낼 수 있었다.

한동안 음악에 빠져 살았다. 전기기타의 거친 록(Rock) 선율에 인생을 맡겨 살았다. 때로는 반항도 하고 스스로 사회에 저항하면서 자유를 향한 여정은 계속되었다.

거친 내 인생은 그렇게 덧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가족 간의 갈등이 시작되다

 

우주는 소립자도 가득하다고 한다. 소립자는 진동하는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같은 주파수로 진동하는 소립자는 초 끈으로 연결되어 서로를 끌어당긴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은 진동하는 주파수가 같다. 따라서 서로 끌어당겨 우리는 같이 살았다. 비슷한 아픔을 앉고 살며, 서로 내가 더 아프다고 아귀다툼하며 살아왔다.

어머니도 형도 나의 배우자와 나는 모두 비슷한 아픔을 겪으면서 서로를 끌어당겼다. 서로 아픈 상처를 내보이며, 아귀처럼 울부짖으며, 서로에게 상처를 안기며 살아왔다.

하늘은 오늘도 우리를 비웃고 있다.

 

 

아제아제 바라 아제

 

어느 날 나는 뜻한 바가 있어, 구도(求道)를 위한 수행을 하기로 하였다. 집에서 생활하면서 하는 요중선(鬧中禪) 수행을 하였다. 우선 좌선을 하고 숨을 고른 다음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고, 내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고통으로 울부짖고 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시경(詩經)에서 이르기를 솔개가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가 연못에 뛰노는 모습은, 위아래가 자연 그대로 드러남이다.” 하였다.

세상은 본시(本是) 아름다웠다.

 

이제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삶을 무애(無碍)의 삶을 살 수 있어 좋다.

때로는 시류(時流)와 타협하지 않는 옹골진 모습으로’, 때론 이웃의 아픔을 달래주는 정겨움으로’, 지면을 채워 나갈 것이다. 세상살이에 지쳐 힘들면 펜(PEN)과 함께 웃고 울고 하면서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

비록 졸필이나마 풍류(風流)를 즐기는 멋있는 글쟁이로 기억되기를 바랄 뿐이다.

 

 

작품 편애중에서

 

[태어난 순서가 형보다 늦다는 이유로 심한 편애를 당하며 서러움을 감내하며 살아왔다. 나는 성격이 모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내아이였다. 몸이 좀 허약하기는 하였으나 형제 중에 공부도 제일 잘하였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도 인정받지도 못하고 그저 상갓집 개처럼 화풀이 대상일 뿐 그 무엇도 아니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중학교 때는 자살소동으로 나의 뜻을 세상에 알렸다. 하지만 세상은 변한 것 하나 없이 그대로였다.

어릴 적부터 부모한테 차별을 당하며 자라온 기억은 평생 나를 힘들게 한다. 이순이 넘은 나이지만 지금도 문득 그때 생각이 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앞이 흐려진다.

노자생이불유 위이불시(生而不有 爲而不恃)’라 하여,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소유하거나 지배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부모는 자식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멀리서 지켜보며 환경을 조성하여 주고 힘들어하면 도와주면 그만이다. ()은 꽃을 자라게 할 뿐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부모들은 마치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긴다. 나는 두 아들을 키우면서 골고루 사랑을 나누어 주었다. 지금은 기대한 만큼 본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해한다. 형제 둘이서 서로 도와가며 잘살고 있어 대견스럽다.

이제는 잘 자라 준 아이들을 보면 위안이 되어 아픈 기억이 치유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작품은 필자의 아픈 과거와 그것을 극복하려는 현재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어린 시절에 형제 사이에서 편애를 당한 경험, 그로 인한 아픔과 고독, 자살소동까지의 심각한 순간을 언급함으로써 독자에게 강렬한 감정적 충격을 던진다.

또한 노자의 말을 인용하여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필자가 과거의 상처를 이해하고, 부모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갖는 데 도움을 준 철학적 사유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아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소유와 지배가 아니라 상호 존중과 이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필자는 아픔을 겪은 과거와는 대조적으로 현재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공평한 사랑을 나눠주며 그들의 성장과 행복을 지켜보는 모습도 흐뭇하다. 아픈 기억을 치유하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갖는 필자의 마음을 드러내며 긍정적인 변화와 성장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필자는, 작품 편애에서 자신의 과거 경험을 통해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한 깊은 사유를 공유하며, 독자에게 감정적인 울림과 함께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작품에서는 필자의 아픔, 철학적 사유, 그리고 현재의 변화와 성장이 조화롭게 표현되어 있어 매우 감동적이며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1

고추 먹고 맴맴 11

저승길을 걷다 17

독불장군 없는 법이여 25

편 애 32

막사발의 철학 39

 

2

우리 집이 파산(破産)되던 날 48

날아가 버린 꿈 55

개싸움 62

질풍노도의 시절 67

독사가 된 율매기 75

 

3

자연을 닮은 생이 아름답다 85

인생과 축생(畜生) 92

가족회의 99

여러분 행복하신가요? 106

내 인생의 블루스 113

걱정하지 말아요(Don’t worry) 119

차라리 고통이어라124

 

4

() 자유인이 되다 131

무애(無礙)의 삶을 살다 137

일체유심소조(一切唯心所造) 142

아제아제바라아제(揭諦揭諦波羅揭諦) 148

방하착(放下着) 하라 154

작은 깨달음 이후, 제대로 된 세상을 보다 158

 

 

5

수필 막사발의 철학’ 168

계화도 사람들 171

홀로 걷는 여행 177

불교 철학은 과학이다 182

상선약수(上善若水) 187

우화(羽化) 192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199

마치며……. 204

세종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학과재학 중

안산 상록수 백일장 입선(수필) - 2019

에세이스트 등단 - 2021

매일 신춘문예 당선(수필)’ - 2022

칼럼니스트 활동 중(매일신문, 경기일보, 안산신문 등 다수)

한국문인협회 회원

방하착(放下着) 하라

 

조주(趙州) 스님은 선문답(禪問答)으로 유명하다. 어느 날 스님을 찾아와서 고통을 호소하는 제자에게 방하착(放下着) 하라.’ 내려놓아라.’라고 하셨다.

제자는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무엇을 내려놓으라십니까?’라고 하자 스님은 그러면 착득거(着得去) 하시게.’라고 하셨다. 마음속의 욕심과 집착, 분별심을 버릴 수 없다면, 지고 가라고 하신 것이다.

스님은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짓눌린 삶의 무게에서 벗어나라.’라고 하였다.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누구나 자유인이 된다.

미워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갖고 싶은 마음, 모두 내려놓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집착에 빠져 힘들게 살아간다. 그럼 살면서 주로 무엇에 집착하는지 유형을 살펴보자.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生者必滅). 생과 사는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니다. 둘은 항상 상호작용한다. 태어나서 죽지 않으면 지구는 유지할 수가 없다.

진시황은 영생을 원했지만 결국 죽었다. 부처님도 죽었고, 알렉산더 대왕도 죽었다. 그 누구도 영원한 삶을 살 수 없다.

서산대사는 태어나는 것은 구름 한편 일어남이요, 죽는다는 것은 구름 한 점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會者定離).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따라서 영원한 사랑도 없다.

욕심내고, 미워하고, 사랑을 독점하고, 이별을 잊지 못하는 것 모두 집착이다. 집착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집착을 모두 내려놓고 자연의 섭리대로 사는 것이 행복이다.

사랑을 이유로 상대를 구속하는 것은 집착이다. 사랑과 이별은 다른 게 아니고 같은 존재이다. 어찌 이별 없는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사랑할 때 이별을 대비한다면, 헤어짐을 쉽게 받아들인다.

단언컨대 영원한 사랑은 없다.

노자는 그의 저서 도덕경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가르친다. 자연 속에서 인생을 배우라고 하였다. 자연을 거슬러 살아가면 큰 재앙이 뒤에 따른다.

인위적(人爲的)인 삶은 반듯이 대가를 치르게 되어있다. 무위적(無爲的)으로 자연에서 배워 살아가는 것이 방하착 하는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또한, 노자는 물처럼 살라고 하였다. 물은 깊으면 채워서 흐르고, 막히면 돌아서 흐른다. 물은 스스로 얼 때를 알고, 녹아서 흐를 때를 안다.

또 한 물은 거슬러 오르는 법이 없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대양을 이룬다. 대양은 더러운 물, 깨끗한 물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들인다. 대단한 포용력이다.

대양 받은 물을 정화 시켜, 태양빛으로 하루에도 수백만 톤씩 증발시켜 구름을 만든다. 구름은 바람을 타고 지구 곳곳에 비를 뿌려 준다. 자연은 그렇게 인류를 위하여 대서사시(大敍事詩)를 쓰고 있다. 자연의 섭리에서 인생을 배우는 지혜가 필요할 때다.

불교의 핵심은, 고해(苦海)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면, 삼독(三毒) , 탐진치(貪瞋癡)를 버리는 것이다.

삼독을 버리고 세상사의 이치를 깨달아 열반(涅槃)에 드는 법을 배우는 것이 불교이다. 욕심내고, 화내고,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모두 집착에서 오는 것이다.

민들레 씨앗은 바람이 실어다 주는 곳에서 싹을 틔운다. 민들레는 싹을 틔울 자리의 높낮이를 따지지 않는다. 심지어 척박하기 그지없는 콘크리트 틈 사이에서도 꽃을 피운다.

사람처럼 흙수저 금수저를 따지지 않는다. 자연을 배우면, 삶이 행복하고 풍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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