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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11-29 10:49
  • 인문학의 성격과 인문교
  • 나일수
  • 해드림출판사
  • 2023년 12월 12일
  • 신국
  • 979-11-5634-566-8
  • 20,000원

본문

오늘날 우리는 인문학이라는 말만 갖다 대면 어떤 내용이든 인문학이 될 수 있는 인문학 홍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직 이 인문학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불분명한 채로 명확히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인문학에 속하는 학문(學問)이나 교과(敎科)의 성격도 모호하며, 인문학을 가르치는 목적에 대한 사람들 간의 의견 또한 여전히 분분한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은, 인문학의 의미와 성격이 불분명한 위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문학의 쇠락과 퇴조를 이구동성으로 염려하면서도 정작 쇠퇴 일로에 있는 인문학의 소생과 부흥을 위한 제대로 된 타개책을 제시하기 어려운 안타까운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인문학에 관한 정의와 그 본연의 성격을 규명하려는 과제 자체가 미궁에 빠져있고 이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조차 미진한 상황에서, 인문학에 관한 논의가 학술적 토론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언제나 인문학의 위기라는 맥락 안에서다. 그렇다면, 오늘날 인문학이 당면하고 있는 이러한 위기는 어디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인문학의 위기는, 공동체의 삶에서 사람다움의 이념이 흐려지고 다양화됨으로써, 결국 사람다움에 관하여 사회적으로 합의가 불가능한 상태, 즉 인문정신(人文精神)의 약화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인문정신의 실체는 무엇일까? 필자는 인문정신을 구성하는 두 가지 요인을, ‘도덕의식역사의식으로 규정하고자 한다. ‘도덕의식지적, 도덕적으로 탁월한 사람이 되자라는 생각이다. 인문학은 출현할 때부터 그 기본 목표를 인간다움(humanitas)’의 추구, 탁월한 인간성의 함양에 두었다. 인문학의 공부와 인문교육 안에는, () 사회적으로 덕성과 교양을 함양하자는 도덕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역사의식현재적 삶의 기준을 과거에서 찾으려는경향이다. 인문학의 전통 안에는, 현세적 삶의 지침과 기준을 과거와 과거의 문화에서 찾으려는 역사의식이 붙박여 있다.

인문정신의 약화는, 도덕의식과 역사의식이 인문학과 인문교육 안에서 퇴장한 사실에서 비롯한다. ‘지적·도덕적 탁월성을 뜻하는 (virtue)’을 잃어버린 것, 그리고 현재적 삶의 표준으로서의 과거(past)’가 사라진 것, 이것을 바로 인문학의 쇠락과 인문정신의 퇴조를 불러온 중대 요인으로 규정할 수 있다. 보편적인 도덕성을 거부하는 도덕적 상대주의와 잘난 사람은 없다는 도덕적 개방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요즈음의 인문학은, 보편적인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인문정신의 망각을 촉진하며, 나아가 인문학의 쇠락과 인문교육의 퇴장을 재촉하고 있다.

이 책의 구도에서 볼 때, 세계 속에 삶을 사는 인간의 자아와 세계의 관련이 바로 인문학의 성격에 담긴 이론적 의미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인문학을, 자아와 세계의 관련성에 대한 모종의 가정(假定) 아래, 인간이 자신의 삶을 어떤 것으로 이해하고 그 이해에 맞추어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모종의 학문적·이론적 탐구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다루게 될 인문학의 세 가지 유형(고전적 인문학, 르네상스 인문학, 현대적 인문학), 인간이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영위하는 관점의 차이로부터, 곧 자아와 세계를 관련짓는 방식의 차이로부터 생성되고 구분된다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이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르네상스 시기의 르네상스 인문학이다. 최초의 인문주의자 페트라르카에 의해 탄생한 르네상스 인문학은, 그 이전과는 상이한 자아세계의 발견과 맞물려 있다.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하여, 서양인의 자아는 개인의 밖으로 뻗어나가는 외향적 자아에서 개인의 안으로 파고드는 내향적 자아로 변화하였고, ‘세계또한 형이상학적인 초월세계에서 경험적인 현상세계로 바뀌고 만다. 페트라르카가 발견한 내향적 자아에 상응하는 세계는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였고, 그 현상세계의 구체적인 형태는 고대인의 문화(이른바 문화세계’)였다. 그렇지만 페트라르카가 고대 고전 연구를 통해 복원한 것은 초월세계가 아니라 고대적 삶의 외양인 문화세계였다. 르네상스 인문학은 중세 이전 사람들의 초월세계는 놓쳐버리고 초월세계가 사상(捨象)된 고대 문화만을 복원한 것이다.

고대 고전의 학습과 고대 문화의 복원을 주창했던 르네상스 인문학의 교육목표는 <도덕의식의 추구><수사학적 문필력의 함양>이다. 또한 외향적 자아의 초월세계로의 합일을 교육적 이상으로 삼았던 고전적 인문학 안에는 <총체로서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제시된다. 반면에, 문화세계와 대비되는 일상세계개별화된 내향적 자아를 반영하는 현대적 인문학에서의 중요한 특징은, 무엇보다 고전과 전통 교과를 배척하고 전통문화를 새로운 문화 곧 현대 문화로 대치하려는 점이다.

르네상스 인문학의 교육적 이상은 인문학의 성격이 불분명한 오늘날의 관념으로는 쉽게 공유할 수 없는지라 점차 망각되고 외면받고 있다. 통상적으로 인문학에 관해 말할 때, 이제까지는 그 기원을 르네상스 학자들의 인문주의운동에서 찾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학문과 교육과 문화의 토대였던 형이상학적인 초월세계를 배제한 르네상스 인문학의 출현은, 바로 학문과 문화와 교육의 근원적인 원천과 토대에 대한 망각이고 절연(絶緣)이라 할 수 있다. 르네상스 인문학은, 한편으로는 고전과 문화의 학습을 표방함으로써 인문학과 인문교육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냈지만, 반면에 고전과 문화의 형이상학적 토대였던 초월세계를 배제함으로써 오히려 오늘날 인문학과 인문교육의 형해화를 예비하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르네상스 인문학이 쇠퇴한 이후 19세기 초반 인문주의(Humanismus)’의 복원을 그토록 역설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문학과 인문교육을 수호해 내는 데 실패했던 역사적 사실은, 르네상스 인문학의 부흥을 내세우는 것만으로는 쇠락한 인문학과 인문교육을 소생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러므로 인문학과 인문교육을 수호하고 복원해 낼 방안은, 르네상스 인문학의 부활 아닌 다른 차원에서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오늘날 쇠락한 인문학과 인문교육을 소생시키고 복원하는 정도(正道). <총체로서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학문의 탐구>가 결합된 고전적 인문학과 그 교육적 이상의 복원에 있다고 본다.

인문학 본래의 성격을 현상세계 너머의 초월세계와의 관련성 아래서 모색할 때, 인문학과 인문교육은 본래의 형이상학적 토대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인문학은 경험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실재(實在)와 인격신(人格神)경험 수준에서보여줌으로써, 현상과 외양만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을 실재와 인격신에 안내하는 일에 그 본연의 성격과 교육적 이상이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중대한 도움을 주신 김진규 장로님, 이홍우 선생님, 김안중 선생님께 큰 감사를 드린다. 국어교육과 교수이셨던 김진규 장로님은 필자의 대학 시절, 매주 화요일 청년부 예배 시간에 생명의 말씀을 증언하셨는데, 모인 청년들에게 학문과 신앙을 겸비한 삶의 최고 전형을 보여주셨다. 대학 시절부터 인생의 푯대가 되신 장로님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신앙과 교양과 문필력을 갖춘진정한 인문학자이시다. 이홍우 선생님은 필자의 대학원 박사과정 시절, ‘교육과정사강좌에서 이 책의 기본 아이디어가 된 프록터(R.Proctor)Education’s Great Amnesia(교육의 대망각증)를 공부하게 하여 인문학 연구에 입문토록 하셨고, 과정을 수료한 후에도 인문학 연구에 진척이 없는 저를 염려하셨는지, ‘교육과정철학강좌의 교재로 부르크하르트(J.Burckhardt)The Civilization of the Renaissance in Italy(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를 채택하시고는 강의에 참여하도록 각별히 배려해 주셨다. 학위 논문 지도교수이셨던 김안중 선생님은 서양 고대와 중세 철학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셨고, 댁의 다락방에 교육철학연구회원들을 불러 피이퍼(J. Pieper)철학과 여가와 아카데미아에 관한 저술을 함께 읽고 번역하게 하심으로써, 고대 철학과 인문학에 관한 기본 구도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셨다. 이 책의 기본 바탕은 이홍우 선생님과 김안중 선생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머리말 4

 

 

 

. 인문학 : 자아와 세계의 관련

스투디아 후마니타스 2

자아와 세계의 관련 속에서 영위(營爲)되는 인간의 삶 6

르네상스 인문학의 출현 8

개별화된 다양한 자아 17

현대사회의 인문교양교육 21

인문학사(人文學史) 연구의 의의 24

 

 

 

. 인문학의 유형

 

1. 르네상스 인문학 29

최초 인문주의자 페트라르카 30

고대 사장(詞章)의 복원 35

개인과 내향적 자아의 발견 42

개별적이고 자율적인 자아 48

인격신을 대체한 고대 위인 53

강하고 탁월한 자아의 조성(造成) 57

자연과학과 형이상학의 배제 64

교육목표 : 도덕성과 문필력의 함양 69

교양적 삶의 영위 74

 

2. 고전적 인문학 83

키케로의 후마니타스(humanitas) 83

고대 고전과 초월세계 87

초월세계에 대한 관조와 모방 90

고대인 키케로가 슬픔을 극복하는 방식 94

개인과 전체의 관계 101

고대 고전과 문화의 바탕, 초월세계 106

고대적 인식론 : 직접성과 궁극성 108

덕성은 신의 선물 116

초월세계에 대응하는 외향적 자아 121

사회의 규범과 미덕에 참여 126

 

3. 현대적 인문학 130

르네상스 인문학이 쇠퇴한 내적 이유 131

르네상스 인문학 쇠퇴의 외적 원인 135

신인문주의자의 문화와 교양적 자아 142

고전 문학과 보편적 문화에 대한 부정 146

일상세계와 개별적 자아의 등장 152

자아의 개발과 표현 157

 

 

 

. 인문학의 성격

 

1. 도덕의식의 추구 163

인간으로서의 탁월함 추구 165

교양의 추구 167

역사의식과 선도의식 172

 

2. 수사학적 문필력의 함양 179

말의 곡조와 울림이 지닌 치유 효과 182

도덕적 자극과 감명을 주는 문장 186

정서에 호소하는 설득으로서의 수사학 191

수사학의 힘 196

 

3. 총체로서의 세계 지향 200

총체(總體)로서의 세계 201

일상세계를 초월하는 인문학 206

스콜레로서의 여가 211

신적 경배와 결합된 학문 탐구 215

학문과 대학의 고전적 의미 219

 

4. 인문학 : 고전적 인문학과 르네상스 인문학의 결합 226

총체와 교과의 관련 227

총체와 문화의 관련 235

철학적 전통과 수사학적 전통 241

철학과 수사학의 관련 246

 

 

 

. 현대사회와 인문교육

 

1. 현대적 인문학의 성격과 한계 257

보편적 문화와 보편적 자아에 대한 부정 257

현대적 인문학을 인문학으로 볼 수 있는가 262

자유교육과 자아실현의 의미 변화 265

 

2. 인문학과 인문교육의 위기 269

현대사회의 노동지상주의 270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론 274

 

3. 인문학과 인문교양교육의 실상 280

인문교양교육의 실태 281

인문학의 학문적 위기 283

인문학 안에서 고전과 전통의 상실 287

 

4. 인문교육의 성격과 학교 본래의 위상 291

인문 정신을 상실한 중등학교의 실상 293

심성의 도야와 자아의 형성 296

본래의 학교 : 심성 도야의 장() 299

인문교육의 필요성 305

 

5. 인문학의 복원 : 고전적 인문학 309

인문주의만으로는 인문학과 인문교육을 수호할 수 없다 310

인문학과 인문교육 복원의 가능성 : 총체로서의 세계 지향 313

 

 

참고문헌 321

공주사범대학 교육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 졸업(교육학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교육사철학 전공 졸업(교육학 박사)

 

인천에서 36년간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로 근무

) 인천 초은고등학교, 안남고등학교 수석교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강사

) 한국외국어대학교 사범대학 겸임교수

강하고 탁월한 자아의 조성(造成)

 

페트라르카는 자신의 생각을 온통 고대 로마 위인들의 삶과 전기(傳記)들로 꽉 채우고 있었다. 이는 페트라르카가 고대 위인과 자신의 용기(勇氣)를 비교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정신(내향적 자아)의 힘을 강화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대 위인의 강한 정신과 위대한 행위를 모방(模倣)하고 필적(匹敵)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자아를 강하고 탁월하게 조성함으로써, 중세 말에 닥친 가혹한 운명의 칼날을 정면에서 맞서력 했다. 결국, 페트라르카와 그 추종자들에 의하여 추진된 스투디아 후마니타스에 관한 공부는, 고대 로마인의 행위와 삶을 공부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내적 자아를 강하고 탁월하게 형성하려는 목적의식 아래서 이뤄졌던 것이다.

천상적 지복과 현세적 행복 사이에서 갈등하던 1342년의 갈등에서와는 달리, 1348년 페스트가 횡행한 이후의 페트라르카는 탁월하고 강한 자아의 조성을 통해 가혹한 운명(fortune)에 당당히 맞서고자 한다. 이때 페르라르카의 저술에는, 인격신에 대한 신앙과 천상의 은혜를 희구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권면은 사라지고, 대신 키케로와 스키피오 등 로마의 위인·작가의 탁월한 행위와 호소력 있는 권고가 등장한다. 페트라르카가 내적 자아를 강하게 단련하고 조성하고자 시도한 방법은, 고대 영웅과 위인들이 보여준 모범적 행위를 통해 도덕적 영감(moral inspration)’을 받고 그들의 행위를 모방하고 따르려는 방식이다.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안 점점 더 고대의 위대한 작가와 밀접하게 만날 수 있었고, 어떤 식으로든지 나의 불운한 별에 운명지어진 상황을 잊어버리고 그것들에서 벗어나 대신 고대 위인들을 따르는 데 나의 힘을 집중할 수 있었다.” (Fam., , 4., pp.314-315)

페트라르카는 당시 로마교회 주교이자 친구인 지오반니 콜로나에게 보낸 편지의 서두부터 걸출한 고대인들의 본보기(examples)로 가득 채운다. 고대인이 보여준 여러 범례(範例)를 기술하고 있는데, 그가 제시한 첫 번째 경우는 수술을 받을 때 몸이 밧줄에 묶이기를 거부했던 로마의 장군 마리우스(Carius Marius, B.C.156-86)의 예화이다.

마리우스 이전에는, 외과 수술을 받을 때 몸을 밧줄로 묶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였네. 그때까지 정신의 강인함신체의 고통을 이길 수 없다고신체의 고통은 정신의 강인함만으로는 극복될 수 없다고믿어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수술을 받을 때 밧줄의 도움을 빌려야만 했네. 그렇지만 마리우스는 묶이지 않고 수술받은 최초 인물이었고, 마리우스 이후로는 많은 사람이 묶이지 않고 수술을 받을 수 있었네. 나는 감히 말하겠네. 이처럼 용감하고 강인한 한 인간의 범례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이를 모방하고 따르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의 권위가 힘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네.” (Fam., , 4., p.315)

페트라르카는 어떤 의도를 갖고서 마리우스의 모범적 행위를 거론하는 것일까? 그는 로마 위인의 정신이 지닌 강인함을 탐색한 후, 자신의 정신과 비교하고 견줌으로써 자신 내면의 강인함을 검증하고 강화하려고 한다. 여기서는 행위와 행위 사이의 비교가 아니라 마음의 내적 상태 사이의 비교가 일어난다. 페트라르카는, 마리우스의 정신이 지닌 강인함을 탐색하는 방식을 통해 자기 정신의 강인함을 시험한 후, 나아가서 내적 자아의 강인함을 키우려고 한다. 페트라르카는 로마 위인의 정신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적 자아를 강인하게 단련하려는 도덕적 탐색을 시도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대 위인의 정신적 탁월함과 그 성격의 강인함을 배우고 닮으려는 의도 아래 고대인의 생애를 폭넓게 공부한다. 그는 고대 위인의 생애를 공부하는 동안 그들이 보여준 본보기와 범례에 주목하는데, 이를 통해 자신의 성격(character)을 강화하고 자신의 정신을 강하고 단련하고자 한다. 내향적이고 자율적인 자아를 의식하고 있던 페트라르카가 고대 위인전을 활용하는 태도는, 로마 위인들이 처한 실제 장면을 상상(想像)’하고, 그들의 내면 상태를 파악한 후에, 자신의 내면 상태와 비교하는 것이다. 고대 위인의 내향적·자율적 자아와 자신의 내향적·자율적 자아를 비교하고 견주어보는 방식이다. 그렇지만 페트라르카가 닮고자 했던 고대 위인들은 페트라르카가 생각하는 그런 내면의 세계와 내향적·자율적 자아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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