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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4-01-19 17:42
  • 공무원, 꽃이 되는 시간이었다
  • 박경화
  • 해드림출판사
  • 2024년 01월 25일
  • 신국
  • 979-11-5634-575-6
  • 15,000원

본문

힘든 길을 선택한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치열하게 공직생활을 해온 저자는, 강직의 등대로써 불의에 반항하며 공직사회의 풍랑을 헤쳐나왔다. 저자의 공직생활의 핵심은 흔들릴 수 없는 신념, 즉 공직이라는 미로 속에서 자신의 역할뿐 아니라, 공직자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신념이 뿌리내려 있다.

 

남성 우월적 공직 기풍에서 저자는 여성 공무원으로서 힘겨운 싸움과 직면하기도 한다. 저자의 공직자 여정은, 단지 자신의 임무만 수동적으로 이행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환영받지 못하거나 불공정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하는 삶이기도 하였다. 저자의 쓰라린 체험은 미묘한 편견부터 지방 권력의 장애물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 모든 단계에서 그녀의 신념을 시험하였다. 하지만 저자의 신념이 가장 빛을 발한 데는, 바로 이러한 도전 속이었다. 때로는 감당키 어려운 역경과 맞닥트린 저자의 반응은 굴복이 아니라 회복력과 기본을 지키려는 힘이었다.

 

저자가 자신의 신념대로 공무를 처리할 때 오는 고통과 상처는 자신을 지치게 하고 병들게 하였다. 불의와 맞서는 모든 행동, 유혹이나 압력에도 맞서기 위해서는 모든 순간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비록 하위직 지방 공무원일지라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기회비용은 직업적인 비용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비용이기도 하였다. 어떤 부서로 이동하든 시시로 찾아오는 시련이 종종 자신의 개인 생활에까지 퍼져 정신적, 정서적 피폐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저자가 공무원으로서의 삶을 '꽃이 되는 시기'로 정리하는 것은 몹시 상징적이다. 이 은유적 표현은, 도전과 차별의 무게로 짓눌린 씨앗에서 끝내 꽃으로 귀결된 저자의 여정을 함축한 것이다. 이 꽃은 자신의 고단하였던 공직을 승화한 회복력의 증거일 뿐만 아니라, 다른 공무원들을 위한 희망과 영감의 등대이기도 하다. 이는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도 고난과 성장 및 변화의 잠재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힘을 상징한다.

 

공무원 내겐 천직이었다

-펴내는 글 중에서

 

왜 내 글을 쓰고 싶었을까? 생각해보면 그냥 마음이 답답했던 것 같다. 아직도 뭔지 모를 가슴속의 응어리와 고통의 감정이 내 가슴속 깊은 곳에 콕 박혀 남아 있구나 싶었다. 나도 모르는 무의식 속 얽매임을 풀어주고 싶었다. 이제는 자유롭고 싶다. 답답하기만 한 내게 이제는 자유를 주고 싶다. 나의 글쓰기로 고통 탈출의 출구로 삼고 싶었다.

.

2023년 이제 글을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서 이제는 나와 그들을 위해 서로 상처를 치유하고 싶고, 치유해 주고 싶다.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진리를 찾아 나는 오늘도 길을 나선다.

.

나의 40대 초반은 혼신을 다하여 일하였고 지난 8년여 기간은 내내 병든 삶으로 살았다. 2023년 초쯤 되었을 때 내 정신으로 눈앞의 사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8월경에는 어지럼증이 점점 나아지면서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은 건강한 모습으로 사는구나 싶었다. 50이 된 지금 건강이 호전되니 새로운 세상을 만난 것처럼 좋은데, 지난 40대 젊은 시절을 병들어 살았던 내가 한없이 가엽고 안쓰럽게 생각되었다.

40대 얼마나 꽃다운 시절을 나는 병들어 있었던가?

.

2023년 여름 2달여를 아침, 저녁으로 강진 다산초당을 오르며 다산 선생님께서 나를 반겨주시고 안아주고 위로해 주시는 것을 느꼈다.

포르투갈 파티마대성당, 스페인 세비아대성당, 똘레도대성당으로 나를 이끄시고 치유해 주시는 주님의 은총에 감사드린다. 죽을뻔했던 내게 고통의 시간이 지나 기적을 보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이 책을 삶이 힘든 이들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 나의 이야기를 나누며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고 싶다.

.

현재 고통의 시간을 지나 삶의 풍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를 사랑한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처럼 나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하게 된다. 내 삶이 사랑으로 채워지고 있다.

지난 시간 돌아보니 공무원으로서 삶은 내가 꽃으로 살 수 있었던 시간이었으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 있는 길이었다.’

공무원 내겐 천직이었다.

4 글을 적으며

 

1부 그땐 그랬지

10 공무원 시험공부

15 그땐 그랬지

20 열정은 넘치던 시절

23 씁쓸한 기억

29 어떤 후회

34 일하는 방식

38 일하는 재미를 알다

 

2부 불꽃을 태우다

53 선배님들

65 불꽃을 태우다

85 누가 내 고객인가

91 성장

94 은인

105 화룡점정

110 두 번의 대성통곡

 

3부 세상에 공짜 없다

118 씁쓸한 6급 승진

126 인생 별 것 없더라

128 백여시 같은 년!

137 세상에 공짜 없다

141 나이 들면 귀엽다

144 중간만 해라

149 나의 도피처 대학원

151 기증

157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냐

168 공무상 요양 승인

174 착각

 

4부 화해의 길

184 5살 아버지와 만나다

189 가족

198 화해

203 세월호

207 청와대 국민청원

228 장기교육

 

231 이 글을 마치며

1992년 전남 보성군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서 2004년 순천시로 전입하였다. ‘벼슬을 해도 꽃같이 아름답게 하라는 이름의 뜻처럼 공직생활을 하고자 하였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공무원이 평생 천직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10여 년 전 몸이 아프면서 인생의 위기를 겪었다. 평생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고, 그 힘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살아온 가정사 이야기, 직장 내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다.‘좋은 게 좋은 거다를 거부하고, 불편함이 있더라도 옳은 것을 선택하려고 했다.

힘든 길을 선택한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씁쓸한 6급 승진중에서

 

……선배 공무원들은 신규 직원들이 들어오면 공무원은 무조건 승진을 빨리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일할 것인가?’를 말하는 직원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만큼 승진은 공무원에게는 가장 큰 관심 사항인 것이다. 어떻게 일을 해서 승진을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진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순천시에서는 그동안 어느 정도 지켜지던 인사 원칙이 민선 어느 기부터는 원칙이 무너졌다. 6년 차가 15년 차 선배를 제치고 승진을 하게 된 것을 본 직원들은 너도나도 승진 최저 소요 연수만 되면 승진을 하겠다고 혈안이 되었다. 실제로 그렇게 나서는 사람들은 다들 승진이 빨랐다. 이전에도 몇 명 정도는 빠른 승진을 하기도 했으나 공무원 조직에서는 그 정도는 관행적으로 묵인하고 넘어가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한번 무너진 승진 인사는 해가 갈수록 매번 더욱 파격적인 승진 인사로 이어졌다. 승진 인사는 한번 발령을 내버리면 그만이다. 승진할 때 그 시점에서 혹 논란이 되더라도 이내 조용해지고 인사권자의 고유 권한이니 수긍할 수밖에는 없다.

그것을 직원들은 알기에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승진하려고 갖은 애를 쓰게 되었다. 더 웃픈 일은 승진 시기가 되었거나 승진이 늦어졌더라도 승진하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빨리 승진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사람은 그런다지만, 늦게 승진한 사람조차도 발 벗고 나서야만 겨우 승진이 된다는 것이다. 승진하고 난 후의 직원들은 이럴 거면 차라리 남들보다 빨리 나서서 할 걸 하는 후회를 한다는 것이다. 순천시의 인사는 이렇게 어이없는 인사들이 행해지고 있었다.

 

승진을 선배들보다 더 빨리하려면 근무 성과가 있어야 하나, 승진을 빨리한 직원 중 근무 성과가 뛰어난 직원은 거의 없어 보였다. 혈연, 학연, 지연, 빽이 동원되어야 하는 것이다. 오히려 일하지 않는 직원이 일을 열심히 하는 직원보다 더 빨리 승진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직원들 사이에서는 일하는 사람이 바보라는 말이 돌 정도였고 일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뭐하러 일을 하냐는 거다.’ 베짱이처럼 놀다가 모든 것을 동원해서 승진하면 되는데 미련하게 개미처럼 일만 하다가 승진도 못 한다는 것이다. 승진하기 위해서는 상사의 근무성적 평가가 좋아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 위에 권력을 남용하는 상사들이 많았다. 일부 상사들은 일하는 것을 봐서 근무성적을 준다고 하면서 직원들 길들이기를 하였으나 이렇게 말하는 상사 치고 근무 성과로 근무성적을 평가하는 상사는 거의 없다.

 

나는 근무성적에서 매번 하위 점수를 받았다. 근무 성과가 확연히 떨어지는 직원이 있어도 나는 그 직원보다 더 점수를 받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그때는 생각했다. 상사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대가라고 나 자신조차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런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인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것은 오만이었고, 잘못한 일이었고, 어리석은 일이었다. 부당한 지시에 맞섰던 것처럼 일한 만큼의 근무성적에 대해 나는 항의했어야 했다고 이제야 후회를 해본다.

 

내가 지금까지 치유가 되지 않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편으로 보상을 받지 못하고 권력에 의해 희생당했다는 피해의식이 늘 잠재해 있기 때문에 결국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쓰는 이유도 그냥 내 마음대로 재잘거리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라도 해서 어떻게든 나를 치유시키고 싶다.

몇 년 전 1, 6급으로 승진을 했다. 9급 공채로 시작하여 27년 만에 6급이 되었다. 승진도 하고 싶을 때 해야 기쁘지 나의 승진은 떨떠름하고 씁쓸했다.

 

가만히 있어도 우울한데 나의 6급 승진을 보고 공무원노조에서는 휴직하고 온 사람을 승진시켰다고 잘못된 인사라면서 성명서를 발표했다. 27년 차 공무원이 15여 년 차 후배들과 함께 승진하였는데 휴직을 하고 와서 바로 승진했다고 인사가 잘못되었다고 했다. 공무원들을 대표하는 공무원노조의 공식성명서였다. 공무원노조에 찾아가서 항의를 했다. 노조위원장과 간부는 나의 승진 인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서 노조성명서를 발표했다고 그들에게 직접 들었다.

 

나는 공무상요양승인을 952일을 받은 사람이다. 나의 질병은 일하다가 생겼다는 것을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해 준 것이다. 공무를 수행하다가 아파서 치료하고 직장에 나오자마자 승진을 시켜주었다고 다른 곳도 아닌 노조원을 대표하는 공무원노조가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설사 일반 질병 휴직을 하였다 하더라도 휴직을 하고 왔다는 이유로 승진을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럼 아프면 승진을 목전에 둔 사람은 기어코 승진한 후에 휴직해야 한단 말인가? 이런 미친 짓이 어디에 있는가? 6급 공무원 승진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정신이 없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동안 선배들을 제치고 까마득한 후배들이 승진해도 쥐죽은 듯 조용했던 공무원노조는 나의 이러한 씁쓸한 승진에 비수를 꽂으며 처량함을 더했다.

공무원의 승진이 뭐 간데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인지? 자신의 건강보다 더 승진이 중요하다는 것인지?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다들 승진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것이 공무원노조의 수준이니 그동안의 순천시 인사가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수많은 잘못된 인사를 하여도 입 틀어막고 있던 공무원노조가 유독 이번 나의 인사에 대해 성명서까지도 발표할 정도였으니 나는 그날부로 공무원노조에 탈퇴서를 제출하였다. 그동안 노조로 인해 받아왔던 숱한 핍박과 고통의 세월이 정말 무색하기만 했다.

 

인사발령장을 받으러 가는 길에 총무과장님을 복도에서 만났다. 나를 보시자마자 대뜸 이번에 승진 안시켜줄라다가 시켜줬어.” 큰 선심을 썼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본인은 이번 인사에 4급 승진을 한 사람이다. 27년 만에 승진하는 내게는 승진이 반갑지도 않고, 승진을 시켜달라고 부탁을 한 일도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가 왜 이런 말들을 들어야 하는지, 나의 6급 승진은 내게는 치욕스럽기까지 했다. 차라리 7급인 채로 남아있는 것이 나 스스로 명예롭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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