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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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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52회 작성일 19-11-2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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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자대학교 교양국어 '국어와 작문'에서 퍼온 글>

묘사 

1. 묘사하는 글쓰기의 특성

묘사란 사물이나 상황, 대상으로부터 받은 인상이나 느낌 등을 감각적으로 재현하는 글쓰기 방식을 말한다. 설명이 대상에 대한 객관적 이해나 지식의 전달을 목적으로 하여 쓰여진 글인 데 반해, 묘사는 대상으로부터 받은 인상과 느낌을 읽는 이에게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가능한 한 자신과 동일한 체험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쓰여진다. 또한 묘사는 서사에서처럼 사건이나 상황의 변화과정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감각적 인상에 초점을 맞춰 그리는 것으로써, 이를 직접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그려 보여 주어야 한다. 따라서 묘사에 있어서는 읽는 이로 하여금 대상에 대한 어떤 인상이나 체험을 구체적이고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상에서 환기된 심리적 정서나 정신적 심상은 추상적인 관념으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그림처럼 감각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재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상의 형태, 색채, 촉감, 향기, 소리, 맛 등 제반 감각작용의 활용, 구체적인 상황의 제시, 참신하고 생동감 있는 언어 등은 효과적인 묘사를 위해 유념해야 할 중요한 요소들이다.

묘사는 마치 그림 그리기와 같은 글쓰기 양식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은 대상을 사실 그대로 정확하게, 그리고 대상의 전체를 모두 담아내는 사진과는 다르다. 그림은 대상 자체를 담아 낸다기 보다 대상에 대한 화가의 느낌이나 해석을 담아낸다. 그림의 전후좌우, 크기나 명암의 정도, 배치방식 등은 모두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묘사문을 쓰는 것도 이와 흡사하다. 지배적인 하나의 인상을 중심으로 대상의 전체와 부분, 부분과 부분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됨으로써 전체적인 통일감을 줄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훌륭한 묘사문 쓰기란 단순히 언어적 표현능력이나 기술(記述)기법상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것은 대상에 대한 관심과 탐구적 자세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며, 또한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나 인식의 폭에 의해서도 묘사의 정도나 방식은 달라진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대상을 묘사하더라도 묘사의 동기나 목적에 따라서, 혹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서 묘사문은 다양하게 드러날 수 있다.

(1) 아삭아삭 빛이 부서지는 소리 송충이가 솔잎을 갉아먹는다 나뭇가지인 줄 알고 송진이 송충이 혈관을 지나간다 부서진 빛이 송충이 내장 속에서 퍼진다 꿈틀거리며 간다 (김기택, <송충이>)
이 시는 송충이가 솔잎을 갉아 먹으면서 송진을 빨아 먹게 되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송충이가 솔잎을 갉아 먹고 있다기보다 마치 송진이 나뭇가지인 줄 알고 송충이의 혈관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어 특이하다. 이때 송진은 소나무의 생명의 '빛'으로 비유되고 있고, 따라서 송충이가 솔잎을 갉아 먹고 있는 행위는 단순한 자연현상의 하나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기운을 몸 속 깊숙이 받아들이는 황홀한 생명 현장으로 묘사된다. 사실 이와 같은 의미작용은 아름다운 언어사용이나 표현기법에 의해서라기보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에 의해 이루어진다. 송충이가 솔잎을 갉아 먹는 광경에서 강한 생명성을 읽어 낼 수 있는 것은 결국 대상에 대한 시인의 깊은 성찰과 탐색에 의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묘사는 사실 표현상의 문제라기보다는 인식상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효과적인 묘사문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물이나 세계를 바라보는 진지하고 열의 있는 자세와 사색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묘사는 글 쓰는 동기와 목적에 따라 설명적 묘사와 암시적 묘사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는 대상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경우이고 후자는 대상에서 받은 인상이나 느낌을 가능한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에 초점이 있는 경우이다. 전자의 경우가 전달동기에 의해 씌여진 것이라면 후자는 표현동기에 의해 씌여진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따라서 전자의 경우에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글쓰기가, 후자의 경우에는 읽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심미적 즐거움과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쓰기 방식이 요구된다.
이같은 글쓰기 방식의 대조적 태도는 과학자와 예술가 사이의 그것이라 할 수 있다. 과학자의 글이 객관적 사실에 대한 정보나 사물에 대한 이해에 초점을 맞춘 것인데 반해, 예술가의 글쓰기는 대상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을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그것을 읽는 이와 나누고자 하는 욕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과학적 묘사는 엄밀한 의미에서 설명의 한 방법이라 할 수 있으며,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묘사란 대개가 후자의 경우를 가리킨다.

설명적 묘사는 주로 정보전달에 목적이 있는 글에서, 그리고 암시적 묘사는 주로 예술적 심상을 중시하는 문예문에서 흔히 사용되기는 하지만 이것이 엄밀하게 구분되어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글쓰는 목적과 동기에 따라 혹은 동일한 글 속에서도 문장의 흐름이나 대목의 성격에 따라 이러한 서로 다른 묘사의 방법들이 적절하게 섞이어 사용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대상을 소재로 묘사문을 쓰고자 할 때는 그것이 객관적인 외부 사실의 묘사에 초점이 맞춰져야 효과적인지 혹은 암시적으로 전체적인 분위기나 느낌을 전달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지를 우선 고려해야 한 다.

다음 예문들은 모두 소설 작품 속에 나타나는 묘사문이다. (2)의 경우는 세간살이가 얼마나 빈틈없이 갖추어져 있는가를 보여 주기 위한 묘사문으로, 세간살이의 풍경들이 속속들이 나열되듯이 기술되고 있다. 여기에는 글을 쓰는 이의 주관적 감정이나 생각이 드러나지 않는다. (3)은 휴전 직후의 어수선한 세월을 여러 가구들이 얼키설키 살았던 '마당깊은 집'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글로써, 집의 모습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반면에 (4)는 사실적인 광경의 묘사라기보다는 그 광경에서 받은 인상과 감정적 울림이 암시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무언가 딱히 이름 붙일 수 없는 주인공의 막연한 불안함과 불길함 그리고 답답함의 전달에 묘사의 초점이 있는 것이다.

(2) 이승지가 거처하는 큰 사랑에 대병풍 소병풍이 둘러 치이고 방 웃목에 이른 매화분까지 놓일 뿐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서 아직 주인도 없는 세간살이가 미비한 것이 없이 갖추었다. 부엌에 큰 솥 작은 솥이 늘비하게 걸리고 장독간에 대독, 중들이, 항아리가 보기 좋게 놓이고 대청에 뒤주와 찬장이 쌍으로 놓였는데 뒤주 위에 용중 항아리까지 쌍을 지어 놓이고 안방에는 문채 좋은 괴목장과 장식 튼튼한 반닫이가 겉자리 잡아 놓였는데 장 위와 반닫이 위에는 피죽상자, 목상자가 주섬주섬 얹혀 있고 이불상 위에는 이부자리가 보에 쌓여 있고 재판 위에는 요강, 타구, 화로뿐이 아니라 놋촛대, 유기동경까지도 놓여 있다. (홍명희, 『林巨正』)

(3) 고색창연한 솟을대문에 비해 격에 맞지 않는 그 중문으로 들어서면 다섯 층계의 동계단 아래 땅이 우묵하게 꺼져 있는 쉰 평 정도의 너른 안마당이 나섰다. 선례 누나 뒤를 따라 잔뜩 주눅이 든 채 내가 그 집안 마당으로 옷보퉁이를 끼고 처음 들어섰을 때, 옆집과 경 계를 이룬 흙담 가생이의 수채를 겸한 개골창으로 벌써 잡초가 제못대로 수북이 자라고 있었다. 그 개골창은 중문 층계 아래 판자때기로 지은 변소에서부터 시작되어 있어 언제나 퀴퀴한 냄새가 풍겼다. 마당 가운데는 작은 연못이 있었고 연못 주위로 청석을 얹혀 운치를 낸 정원이 꾸며져 있었다. 그 봉긋하게 솟은 정원의 갖가지 나무와 화초가 위채와 아래채를 웬만큼 가려 주었다. (김원일, 『마당깊은 집』)

(4) 코울타르를 입힌, 거의 평면으로 보이는 지붕 위로 검정고양이가 스멀스멀 걸어다니고 있다. 때때로 이른 아침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지붕 위로, 또는 오후 비듬처럼 떨어져 내 리는 햇빛을 받으며 움직이는 고양이의 모습이 마치 환각인 양 보이곤 했다. 그때마다 나 는 문득 가슴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에 아하 하고 한숨을 쉬곤 했다. (오정희, <불의 강>)

다음 예문은 모두 기행문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글이다. 그러나 (5)가 비교적 객관적으로 마을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면, (6)은 외부풍경에 대한 객관적인 묘사라기보다는 그것에서 떠오른 느낌과 사색의 내용들의 전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같은 기행문이라 하더라도 그 글의 목적이나 성격에 따라 묘사의 방식도 달라짐을 알 수 있다.

(5) 전라남도 구례군 마사면 사도리 하사 마을은 지리산 자락에 주렁주렁 매달린 마을 중에 서도 아주 잘 익은 감꼭지처럼 풍요로워 보이는 자락이다. 구례읍에서 지리산으로 다가드 는 도로가 화엄사로 올라가는 버스길을 전송 보내면서 섬진강과 수평을 이루어 화개 하동 으로 뻗는데, 구례읍이 주먹덩이만하게 보이는 시오리쯤 상거한 곳에 옥지교라는 다리가 있다. 이곳으로부터 이 마을은 시작이 되고 있다. 지리산 주봉의 손주 손녀딸쯤 될 듯싶은 형제봉 월령봉이 보이고 천행재, 천황재, 삼배재라는 산길이 용의 등천 자국처럼 마을 뒷산에 딱지를 남기며 기어 올라가 있다. 그 오른쪽으로 하늘을 향해 손바닥을 펴서 추켜 올린 것 같은 왕시리봉이 솟아 있는데 노고단과 피아골로 오르는 중요 등산로 중의 하나이다. 마을 아래쪽에 섬진강이 흐르고 있어 지리산에서 흘러내린 개울과 만나 조그만 삼각주를 이루는데 10년쯤 전에 제방 공사를 하여 새로 논이 생겼고 방죽에는 수십 마리의 소들이 떼를 이루어 풀을 뜯고 있다. 소 먹이는 어린애들도 고샅길에 자전거 따위를 팽개쳐 둔 채 떼를 이루고 있다. (박태순, "산을 알고 있는 하사 마을에서")

(6) 구례에서 섬진강을 따라 하동 포구로 내려가는 19번국도 연변의 가을은 크고 투명하 다. 강을 따라 흘러내리는 지리산의 산자락들은 첩첩연봉을 이루며 출렁거리고 하류로 내 려 갈수록 강폭은 넓어지고 대안의 산들은 멀어진다. 그 굽이치는 산하에서 가을의 빛들은 바스러진다. 산들은 잘 말라 있다. 여름의 습기와 비린내가 빠져 나간 산 속에서 나무와 나무 사이의 공간은 헐겁고 서늘하다. 가을산의 나무들은 서로의 잎과 가지를 합쳐서 푸르고 강성한 산맥의 힘을 이루던 여름날의 밀생(密生)을 버린다. 가을에 나무들은 제 운명의 자리로 돌아가 뚝뚝 떨어져 서서 혼자서 겨울을 날 채비를 한다. 먹이와 땔감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존재의 앙상한 뼈만으로 겨울을 나는 나무는 얼마나 부러운 족속들이랴. 가을산, 나무와 나무 사이의 냄새는 존재의 핵샘부를 버티는 뼈의 향기이고, 떨어져 있는 것들의 간격의 냄새다. 그 냄새는 가늘고 희미한 냄새지만 찌를 듯이 날카로운 냄새이고 다른 어떤 냄새와도 섞이지 않는 배타적인 냄새여서, 가을산 나무냄새 속에서 인간은 포유류로 태어난 제 살의 누린내를 가장 확실히 맡을 수 있다. 뼈로 돌아가는 먼 산맥들이 헐겁고, 가을에는 강물조차 습기를 버린다. 가을의 섬진강은 여름날의 그 사나운 탁류를 모두 흘려보내고, 숙일 수 있는 머리를 끝까지 숙여, 흐르는 것의 뼈만을 챙겨서 흐르고 있다. (김훈, "가을의 빛")


2. 묘사하는 글쓰기의 방법

어떤 대상을 효과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점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우선 묘사하고자 하는 목적이나 동기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이에 맞는 묘사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대로 정보를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느낌이나 인상을 전달하는데 있는 것인가에 따라 글쓰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가령 자신의 고향이나 유년시절을 묘사하는 글일 때에도 그것이 사실적 정보를 주기 위한 것인가 혹은 느낌을 전달하기 위한 것인가에 따라 글쓰기의 방식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7) 나는 전남 장흥군 대덕면 진목리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광주에서 2백리 장흥읍을 지나서 대덕읍까지 90리를 더 간 뒤 다시 택시로 6km 정도 더 들어 가야 하는 곳이다. 마을 길목까지 다니는 버스가 있긴 하지만 하루에 7, 8회밖에 다니질 않기 때문에, 그 시간을 놓치 면 몇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6시간 이상이 걸린다.

(8) 저의 고향은 가야산 기슭에 있는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라는 마을입니다. 우리말로 옮기 자면 '꽃바위 마을'이 되겠습니다만 무슨 까닭인지 '꽃질 마을'을 '꽃'이라는 여성적 이미지에 '질'이라는 극히 은밀한 여성적 이미지가 더해진 안온하고 부드러운 어떤 것으로 돌아 보곤 했지요. 6살이 되자 저는 가야산의 신록과 햇빛 풍요로운 들판, 그리고 민들레 꽃씨가 떠다니는 하늘을 떠나 전쟁 직후의 도시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식구들은 대구 대명동의 난민촌에 살았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의 반은 군대 막사로 쓰이고 있었고 아이들은 피 묻은 철모를 뒤집어쓰고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저물녘이면 바로크 건물과 쥐가 썩어 가는 시궁창, 찢겨진 비닐이 뒹구는 거리의 폐허를 지나 집 근처의 두류산 꼭대기에 올라가곤 했습니다. 거기엔 멀리 가야산의 산자락이 보였습니다. 거기 아스라한 황혼 저편에는 파란 불빛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면 유난히 바람이 스산하게 느껴졌고 저는 끊임없이 그 고향의 파란 불빛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습니다.

위 (7)은 자신의 고향에 대한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정보 제공에 그 목적이 있는 글이다. 따라서 글 쓰는 이의 느낌이나 감정이 끼어들지 않으며 객관적으로 고향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8)의 경우에는 고향과 그곳에서의 일들에 대한 사실적 설명이 아니라 그곳이 화자에게 남긴 인상과 분위기, 느낌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쟁 직후의 가난하고 쓸쓸했던 풍경과 이 때문에 더욱 그리워지던 산과 햇빛, 들판에의 그리움 등이 읽는 이의 가슴 속에도 아스라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객관적인 묘사가 요구되는 경우에는 대상의 세부적 사항들에 대한 정확하고 자세한 정보의 제시가, 그리고 감정이나 느낌의 전달을 목적으로 할 때에는 화자의 의식 속에 용해되어 있는 심상들을 상징적으로 그려 냄으로써 읽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묘사는 사실상 대상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의 정도, 그것과 관계된 경험내용, 시각 등에 깊이 좌우된다. 따라서 글쓰기에 앞서 대상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나 태도를 점검하고 그것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묘사에 있어서의 시점의 중요성인데, 여기에는 우선 글쓰는 이가 어떤 상황 즉 어떤 시간과 공간에 서 있는가 하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동일한 대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앞이나 뒤, 혹은 옆에서 바라볼 때 그 모습은 달라지며, 또 새벽안개 속에서 바라볼 때와 석양이 물들어 가는 저녁에 바라볼 때 묘사의 양상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시, 공간적 시점은 관찰자가 자신의 위치를 동일한 위치에 고정시킨 채 이루어지는 경우와 위치를 바꾸어가면서 묘사하는 이동시점으로 나뉘어진다. 다음의 글은 글쓰는 이가 한 공간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위치를 이동시켜 가면서 그때그때 눈에 들어오는 것을 묘사 하고 있는 경우이다.

(9) 조반을 마치고 구보씨는 집을 나섰다. 늦가을의 아침이었다. 이 언저리는 한식 가옥들만 들어차 있다. 집장수가 한꺼번에 지어 놓은 모양이었다. 꼭같은 모양의 대문이 양쪽으로 늘어선 사이를 구보씨는 걸어갔다. 집들은 물론 전쟁 후에 지은 것이겠지만 알맞게 낡아 있어서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땅과 공기와의 사이에 어떤 원근법을 다듬어 가고 있었다. (중략) 지금 구보씨가 걸어가는 몇 발짝 앞으로 흰 칼라에 곤색 아래 위를 입은 어느 여우의 딸일 성싶은 얼굴을 한 상냥한 암여우가, 가방을 들고 새초롬히 걸어가고 있었다. 오른쪽 대문 앞에서는 곰 한 마리가 굴을 나서면서 새끼곰을 얼러 보고 있었다. 구보씨는 가장 싱싱한 낯빛을 지닌 채 이러한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걸어갔다. ( 최인훈,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한편 시·공간적 위치 뿐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태도에 의해서도 묘사의 방식은 달라진다. 가령 어머니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할 때에도 그것이 현재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에 의해 쓰여진 경우와 멀리 떨어져 있거나 돌아가신 경우의 글, 혹은 어머니로부터 버려진 아이의 글은 사뭇 달라질 것이며, 또 비 내리는 봄날의 풍경을 묘사하더라도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이의 심정에 따라 생명이 움트는 밝은 기운으로 혹은 우울하고 쓸쓸한 풍경으로 그려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글의 동기와 시점이 정해지면 묘사하고자 하는 대상의 전체적인 인상이나 초점이 될 특성을 잡아내는 것이 필요하다. 묘사문은 사진처럼 대상을 그대로 복사해 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부분들이 어우러져서 만들어 내는 독특한 인상이나 특징을 그려 내는 것이다. 즉 대상의 지배 적인 인상을 중심으로 해서 세부적인 사항들의 내적 관계를 일관성 있게 드러내야 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세밀하게 강조해서 묘사해야 할 것과 생략될 수 있는 것들의 선택, 판단이 전제되어야 한다. 묘사하는 세부적 사항들은 전체와의 긴밀한 연관성을 가질 때 비로소 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10) 나의 아버지는 키가 크고 다소 마른 편이다. 크게 쌍꺼풀진 눈에 도수 높은 안경을 쓰 고 있다. 아버지의 입술은 약간 도톰하며 손발이 유난히 크다. 그의 앞니는 약간 벌어져 있는데 웃을 때면 벌어난 이가 보여서 좋지 않다고 어머니의 핀잔을 듣곤 한다. 그는 갈색 곱슬머리를 가졌는데 요즈음엔 흰 머리가 많아 염색을 할까 생각 중이시다. 나의 아버지는 재미있는 분이다.

(11) 나의 아버지처럼 겉과 속이 다른 사람도 드물 것이다. 아버지의 얼굴은 거칠거칠하며 덥수룩하게 털이 나 있다. 그의 살결은 가죽 같고 주름살이 많다. 코와 뺨 주위에는 커다 란 땀구멍이 있다. 그는 코를 젊은 시절에 두 번이나 다친 적이 있어서 그의 얼굴은 많은 게임에서 진 권투선수처럼 보인다. 턱은 단단하고 모가 나 있다. 면도를 하거나 말거나 아버지의 얼굴은 험상궂기 그지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너무나 여리고 부드러운 마음을 지니 신분이다. 그의 매력은 험상궂게 보이는 거친 살 밑에 숨어 있는 이 여린 마음에 있다.

두 예문은 모두 아버지에 대한 묘사문이다. 그러나 (10)의 경우 묘사를 위해 동원된 세부 목록들이 전혀 일관성이 없이 나열되고 있어, 전체적으로 통일된 인상을 잡아내기가 힘들다. 반면에 (11)의 경우 거친 살결이며 수염, 단단하고 모난 턱 등의 세부 묘사들은 험상궂게 보이는 아버지의 외양과 그와는 다른 아버지의 여린 마음을 대비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동원되고 있어 통일감을 준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초점이나 전체적인 인상을 고려하여 묘사의 세부 목록들을 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문예문의 경우 묘사를 위해 동원된 세부 목록들은 단순히 구체적인 그림이나 풍경을 제시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성격이나 사건의 흐름, 작품의 주제를 직접, 간접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구체적인 묘사의 내용에 주시하고 그것이 갖는 의미를 검토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이다.

(12)은실네의 느려터지고 게으른 성품을 가장 잘 반영하는 건 그 여자의 손발과 머리숱이 다. 생전 머리도 안 감는지 머리숱은 언제 보아도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까치둥지다. 그 여자의 머리칼이 언제나 누르퉁퉁할 정도로 낙엽 빛깔인 것은 염색을 해서도 아니고 워낙 타고난 빛깔이 그래서도 물론 아니다. 요는 켜켜이 앉아 어께가 진 먼지 때문인데 여름이 면 거기서 쉰내가 난다고 해도 엄살이랄 순 없다. 그러나 정작 그 여인의 발목이라든지 복숭아뼈 부근을 내려다본 사람이라면 술맛 버렸다고 투덜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박영한, 『왕룽일가』)

(13) 뻐스는 무진 읍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기와지붕들도 양철지붕들도 초가지붕들도 유월 하순의 강렬한 햇볕을 받고 모두 은빛으로 번쩍이고 있었다. 철공소에서 들리는 쇠망치 두 드리는 소리가 잠깐 뻐스로 달려들었다가 물러났다. 어디선지 분뇨 냄새가 새어들어 왔고 병원 앞을 지날 때는 크레졸 냄새가 났고, 어느 상점의 스피커에서는 느려 빠진 유행가가 흘러 나왔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고 사람들은 처마 밑의 그늘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빨가벗고 기웃둥거리며 그늘 속을 걸어 다니고 있었다. 읍의 포장된 광장도 거의 텅 비어 있었다. 햇볕만이 눈부시게 그 광장 위에서 끓고 있었고 그 눈부신 햇볕 속 에서, 정적 속에서 개 두 마리가 혀를 빼물고 교미를 하고 있었다. (김승옥, <무진기행>)

(12)에서 은실네를 묘사하고 있는 세부사항들은 결국 '그녀는 매우 지저분하고 게으르다'라는 지배적인 인상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주인공이 도시를 떠나 무진이라는 곳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마주치는 광경들을 그리고 있는 (13)에서는 지붕에 내리 쬐고 있는 강한 햇볕이나 쇠망치 소리, 분뇨 냄새, 크레졸 냄새, 유행가 소리, 텅 빈 거리와 광장, 그리고 햇볕만 내리 쬐는 그 정적 속에서 교미를 하고 있는 개 등의 세부사항들이 권태적이고 정체된, 그러면서도 햇볕 속에 원초적인 생명의 모습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곳으로서의 '무진'의 전체적인 인상을 만들고 있다. 각각의 세부적 사항들이 무의미하게 나열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무진'이라는 공간의 독특한 인상과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선택되고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각각의 세부적 묘사가 전체와의 연관성 위에서 조화있게 서술될 때 묘사된 상황이나 인물의 심적 상태가 읽는 이에게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묘사에서 유념해야 할 것으로 표현의 구체성, 참신성을 들 수 있다. 묘사는 마치 그림처럼 대상을 읽는 이의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감각작용을 동원한 표현이나 적절한 비유, 상징 등의 사용이 효과적이다.

(14) 마른 뱅어같이 딱딱하고 가느다란 콩넝쿨은 길 잃은 자라처럼 땅바닥을 기고 있다. (이상, <첫번째 방랑>)
(15) 선조가 지정하지 아니한 조세트 치마에 웨스트민스터 궐련을 감아 놓은 것 같은 도회의 기생의 아름다움을 연상하여 봅니다. 박하보다도 훈훈한 리그레추윙껌 내음새 두꺼운 장부를 넘기는 듯한 그 입맛 다시는 소리, 그러나 아마 여기 필 기생꽃은 분명히 혜원 그림에 서 보는 것 같은, 혹은 우리가 소년시대에 보던 떨떨이 인력거에 홍일산 받은 지금은 지난 날의 삽화인 기생일 것 같습니다. (이상, <산촌여정>)
(14)에서는 콩넝쿨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마른 뱅어라든지 길 잃은 자라 같은 쉽게 연상되지 않는 참신한 비유가 사용되고 있고, (15)에서는 '기생꽃'이라는 화초를 통해 연상된 도회지의 기생과 시골 기생의 모습이 시각과 청각, 후각 등의 감각 작용을 통해 구체적으 로 그려지고 있다. 도시적인 것과 시골적인 것의 관념적 대조가 구체적이고 시각적인 모습을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의 참신성은 사실 시각의 자유로움, 참신함에서 비롯된다.

(16) 유난히도 봄이 일찍 찾아 온 금년 3월 28일, 강진땅의 모든 봄꽃이 피어 있었다. 산그늘 마다 연분홍 진달래가 햇살을 받으며 밝은 광채를 발하고 있었고, 길가엔 개나리가 아직도 노란 꽃을 머금은 채 연둣빛 새순을 피우고 있었다. 무위사 극락보전 뒤 언덕에는 해묵은 동백나무에 선홍빛 동백꽃이 윤기나는 진초록 잎 사이로 점점이 붉은 홍채를 내뿜고, 목이 부러지듯 잔인하게 떨어진 꽃송이들은 풀밭에 누워 피를 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진읍 묵은 동네 토담 위로는 키 큰 살구나무에서 하얀 꽃잎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곳이 바로 남도의 봄빛이었다. 피고 지는 저 꽃잎의 화사한 빛깔은 어쩌다 때가 되면 한번쯤 입어 보는 남도의 화려한 연회복이라면, 남도땅의 평상복은 시뻘건 황토에 일렁이는 보리밭의 초록 물결 그리고 간간이 악센트를 가하듯 심겨 있는 노오란 유채꽃, 장다리꽃이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남도의 봄날을 묘사하고 있는 이 대목은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을 통해 남도 지방의 봄날의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시각적으로 펼쳐지는 느낌을 주고 있다. 더구나 연둣빛 새순과 목이 부러지듯, 피를 토한 듯 땅위에 떨어져 있는 붉은 동백꽃잎, 하얀 꽃잎 등의 묘사에는 단순히 아름답고 생생한 풍경의 재현뿐 아니라 남도 지방에 맺혀 있는 설움과 한과 생명력까지도 환기시키는 역사적 무게가 담겨져 있다. 전체적으로는 답사기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글이지만 단순한 사실적 보고로서가 아니라 답사한 지역의 정취와 풍경을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이와 같은 묘사를 통해 문화유산의 소중함에 대한 자연스런 인식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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