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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뒷모습 - 도선미 > 수상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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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공모전 대상] 뒷모습 - 도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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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781회 작성일 19-11-2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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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첫사랑이라고 할 때 처음이라는 말 속에는 때로 사랑보다 더 웅숭깊은 감정의 진폭이 있다. 설렘과 순수함, 무구함과 어리숙함, 풋풋함과 싱그러움, 그리고 얼마간의 불안과 치기까지, 온갖 젊음이 다 거기, 처음이라는 말 속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하나 많은 것들의 처음을 겪고, 넘칠 듯이 출렁이던 젊음의 시기가 지나갈 때 쯤 불현듯 우리는 이미 기성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이제 영영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 자신의 모습과 사는 동안 예외 없이 처음의 벅찬 순간들로부터 멀어져간다는 시간의 순리 역시 체감한다.

어째서일까. 그렇게 시간이 젊음과 첫사랑의 열정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할수록 아득한 간격이 주는 그리움의 힘은 더욱 강렬해진다. 수필드림팀의 테마수필 『첫사랑』에는 바로 그렇게 중년 혹은 초로에 들어선 작가들이 그리움의 부름에 응해 써내려간 첫사랑의 추억이 녹아있다.

첫사랑의 과거는 불쑥 현재에 틈입한다. 상갓집에서 내온 팥죽에, 창고 뒤켠으로 밀려나 있던 빛바랜 편지함 속에, 우연히 빌려온 영화 제목이나 여행이라는 단어에 첫사랑은 숨어있다. 그리고 때론 너무나 심상하게도 따사로운 햇살 아래 우두커니 있다가도 가로수 밑을 걷다가도 우리는 첫사랑을 만난다. 그것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던 욕구이기도 하고, 지키지 못한 혹은 잊혀진 약속이기에 더 아련한 추억이기도 하며, 간절한 기도와 애오라지 순정, 첫키스의 아릿한 감촉이기도 하다. 처음 세상에 눈을 뜬 갓난애의 천진함이 우리를 매료시키는 것처럼 처음 사랑에 눈 뜬 미숙했던 우리를 회상하는 것은 감미롭다. 동시에 이 이야기들은 대체로 완전하지 못하기에 더 아름답고, 그런 채로 세월에 휩쓸려간 지난 일이라 더 서글프다. 여기에 또한 아이러니가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빛나는 것은 과거에 대한 감상어린 넋두리 보다는 첫사랑을 반추하는 것으로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는 ‘현재의 발화’이다. 사람마다 첫사랑은 다르게 회억된다. 어떤 이에게 첫사랑은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가슴에 품은 ‘몽환’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환부’이거나, 재회의 실망감으로 물크러진 ‘환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에돌아 현재로 되돌아온 작가들은 다시금 ‘사랑’을 말한다. 혼자만의 사랑일지라도 숭고하게 지켜내는 해바라기의 사랑은 얼마나 귀한 것이냐고(「해바라기 사랑」). 무반주처럼 적적한 인생을 나직한 허밍으로 위무하는 사랑이 그 어떤 격정적인 사랑에 못지않다고(「허밍」). 첫사랑을 통해 몸과 마음은 어른으로 향하는 방향을 잡을 수 있었으며, 사랑하고 있는 지금 최선을 다하는 사랑이 참사랑이 아니겠느냐고(「겨울 나그네」). 그리고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단단한 고체가 아니라 세월따라 담긴 모양따라 변하는 액체와 차라리 더 비슷하다고 말이다(「아름다운 착시」). 이렇게 첫사랑은 지금 여기 우리의 삶과 사랑을 더 성숙한 눈으로 보게 한다.

나는 이 열아홉 편의 이야기들이 첫사랑의 추억을 어떻게 내화하는가를 두고 주의 깊게 읽었다. 뭔가 큰 교훈을 바라거나 그 여부를 판단하려던 게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아직은 첫사랑의 여파에서, 청춘의 내압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정이는 젊은 독자에게는 아마도 그것이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주변에 첫사랑 한번 못해본 선배나 연장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웬만한 기회가 아니면 그 깊숙한 마음자리를 감히 들출 수가 없다. 거나하게 취해서 운운하는 첫사랑얘기야 얻어듣기 쉽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대개 객기어린 슬픔으로 도색되어 금세 말길을 잃기 일쑤니까 말이다. 이 책에는 중씰한 나이에 들어선 작가들의 쓸쓸하지만 진솔하고 성숙한 눈빛이 있다. 어떤 잠언시의 한 구절처럼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고 조용히 읊어주는 삶에 대한 관조가 있다.

요즘은 뭐든 구색에 맞게 편집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세상이라 어디서든지 날 것 그대로의 맛을 느끼기가 어렵다. 음식에서도 그렇고 하물며 글과, 글로 윤색한 뭇사람의 인생도 그렇다. 이렇듯 수상한 시절에 수필이 주는 묘미가 바로 날것의 맛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많은 이들이 첫사랑을 다시 만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망스런 재회의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유혹은 이기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첫사랑을 여전히 미완에 붙임으로써 미완이 주는 여지에 안주하는 태도가 아닌가. 테마수필 『첫사랑』은 수필 특유의 솔직담백함을 잘 살려 자체 검열(?)의 유혹을 이겨내고, 현재의 시점에서 첫사랑의 추억과 의미를 되짚었다. 이 진심어린 작업이 읽는 이에게 감동과 신뢰를 주는 게 아닐런지. 그러고 보면 표지의 첫사랑이란 큰 제목과 함께 배치된 사진은 얼마나 절묘한가. 첫사랑의 ‘뒷모습’ 말이다. 뒷모습 위로 내려앉은, 퇴색한 듯 쓸쓸한 그 빛이 그 어떤 햇살보다 아름답지 않은지….

「20세기에 남은 사람」의 마지막 문단이 잔잔한 너울로 전해져온다. 나 역시 시간을 잘 살고 싶다. 지나는 매 순간을 포착하여 더 청춘답게 살아내리라. 그리고 언젠가는 내게도 변해버린 첫사랑의 뒷모습을 보게 될 날이 찾아올 것임을 조용히 기다려야겠다. 그 뒷모습에 내려앉을 빛이 지금의 잔영보다 더 성숙하고 따뜻한 것임을 믿기 때문에.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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