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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상] 첫사랑의 한 - 강호선 > 수상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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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공모전 [금상] 첫사랑의 한 - 강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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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731회 작성일 19-11-20 13:02

본문

첫사랑의 한(恨).


강호선.


아직도 한(恨)이 남아 있던 모양이다. 1집인 <3도 화상>을 통하여 내면의 한을 토해내고, 2집 <비손>으로 천추의 한을 토하더니, 이제는 뉘에게 보일세라 가슴속 깊이 똬리로 묻어둔 마지막 남은 한마저 꺼내 놓으란다. 참으로 무정하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을 맞대고 사는 지아비 지어미에게도, 심지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에게도 편린(片鱗)의 조각조차 펼쳐보이지 못한 채 묻어둔 가슴앓이를 어찌 그리 쉽게 털어놓을 수 있으리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나브로 지워지는 뭇 상처와는 달리 첫사랑의 아픔은 언제 돌아봐도 어제인 듯 생생하다. 애써 잊고 외면하려 한 줌 그리움조차 지워내고 또 지워냈건만, 눈물과 회한으로 얼룩진 자취들은 <첫사랑>이란 단어 한마디에 어느새 사부작사부작 내려앉는다.



대부분의 첫사랑은 순수(純粹)에서 시작된다. 하얀 도화지 위에 그려진 원색의 그림들은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고, 온갖 상념의 덧칠 속에서도 그 찬연(燦然)함을 더해간다. 30년 세월이 흘렀어도 책 한 권 돌려주고자 친구의 과수원집 찾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는가 하면, 가슴속 자리한 여학생의 호감을 얻고자 선생님께 항명하면서도 시험점수 올려주려 애를 쓰던 까까머리 중학생으로 반 백년 시간을 되돌리기도 한다.



여물지 않은 풋사랑은 남에게 드러나는 것조차 싫었던 모양이다. 누군가 속내를 은밀하게 들여다볼까 전전긍긍하면서도 그녀 앞에 서면 공연히 허둥거리며 말을 더듬던 아이는, 백두 옹(白頭翁)이 되어서야 그 옛날 하얀 피부의 곱슬머리 소녀가 첫사랑이었음을 수줍게 털어놓는다. 동짓달 푸른 달빛 아래서 첫 키스의 아릿한 추억을 남겨준 소년과 사소한 오해로 절교 선언을 했던 소녀 또한, 자신의 친구에게로 떠난 그 소년이 첫사랑이었음을 지천명이 넘어서야 고백한다.



순수에서 시작된 첫사랑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움으로 승화된다. 베란다에서 발견된 편지는 ‘냉골 방’ 추억과 함께 잎사귀 진 가을 산언저리에서 ‘형, 혀엉’ 애타게 부르는 때늦은 안부를 전하게 하고, 아내의 반주속에 첫사랑의 결혼식을 훔쳐보던 한 저자(著者)는 가슴속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을 참지 못해 황급히 식장을 빠져나오고야 만다. 그리움을 한가득 품에 안고도 사랑하는 선생님께 다가서지 못하던 자신의 모습을 해바라기로 표현한 또 다른 저자의 첫사랑 회고 속엔, 진한 처연함이 배어 나온다.



그리움이 지나치면 한(恨)이 되나 보다. 어머니 무덤 앞에 나란히 서서 결혼을 맹세하던 정인(情人)의 갑작스런 실종과 켜켜이 쌓인 그리움은, 두 달 만에 나타나 사랑 고백하는 첫 연인을 매몰차게 저버리는 한(恨)으로 분출되었다. 영문도 모를 갑작스런 이별통보에 갓스물의 꿈같은 시기를 상실의 고통과 혼란으로 보내야 했던 한 여인은, 이십년 세월 후에 나타난 첫사랑의 이해할 수 없는 이별이유와 통속적 모습에 가슴속 한이 터져 나와, 마지막까지 간직해온 추억 한 장마저 미련 없이 부숴버렸다.



기름 냄새 땀 냄새 밴 작업복을 비에 흠뻑 젖은 소녀에게 둘러주며 따끈한 팥죽을 나눠 먹던 아이가 “다시는 고향에 가지 않을 거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는 장면과, 20년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까지 고향을 찾지 않았고 어디론가 가버려 연락조차 안 된다는 회상에서는, 그 아이의 사무친 한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전율이 엄습해왔다.



영원히 가슴에 묻어두고 혼자만의 비밀로 새겨두려 해도 첫사랑에 대한 회고(回顧)는 의지로 막을 수 없는 모양이다. 동창생 모임에서도, 피아노 허밍에서도 첫사랑의 회상이 아련히 떠오른다. 절름발이 흉내 내며 어렵사리 찾아가 공부에 지친 모습을 위로해주던 청년은, ‘더 넓은 세상으로 가겠다.’는 연인의 배신감으로 입은 상처를 새로운 인연과의 신뢰로 치유했으나, 제과점 찹쌀도넛위로 떠오르는 옛 사랑의 추억을 지울 수 없었다. 어긋난 운명 탓에 까닭 없이 헤어진 채, ‘때 묻을까 두려워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마음속에서조차 안아보지 못하고’ 애오라지 간직해온 그리움은, 손수건 챙길 때마다 불현듯 떠올라 심사를 어지럽혔다.



첫사랑의 상처가 아무리 깊다 해도 추억은 추억으로만 간직할 일이다. 사무치게 그립진 안을지언정 때로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라도 한 번쯤 옛사랑과 마주하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세태(世態)에 시달려 변해버린 모습들은, 숱한 세월을 살포시 간직해온 아스라한 잔영마저 잔인하게 깨버린다. 동성동본 법과 윤리에 막혀 매몰차게 떠나보내야 했던 정인(情人)의 변모(變貌)가 보고 싶어 고대(苦待)하다, 너무나도 변해버린 낯선 모습에 고개를 젓던 여인. 처음으로 가슴 두근거리게 했던 소년이 신산함 묻어나는 작달막한 장년으로 돌아온 모습을 보며 피천득의 ‘인연’을 떠올렸던 또 다른 여인의 회상은, 추억 속 풋사랑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비록 첫사랑과의 예기치 않은 재회(再會)가 상념의 시간을 되돌려 짜릿한 묘미를 준다 할지라도, 이미 각자의 운명이 정해진 상태에서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만남은 필연적인 ‘멈춤’을 가져올 수밖에 없고, 이는 서로에게 또 다른 한을 잉태시킨다.



이제 내면의 한도, 천추의 한도, 남에게 보일세라 깊숙이 묻어 두었던 가슴앓이마저도 모두 털어놓았다. 꽉 막혔던 응어리가 빠져나간 자리가 휑하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했던가. 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라도 테마수필의 4집은 활기차고 생동감 있는 테마를 표제어(標題語)로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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