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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스물 둘 - 천현주 > 수상작 및 심사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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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공모전 [동상] 스물 둘 - 천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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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619회 작성일 19-11-2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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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둘

-수필집「연리지」를 읽고-

천 현 주



한 사람이 살면서 만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가 끔 천문학적 숫자를 헤아려 볼 때가 있다. 스쳐지나가는 무수한 사람들을 헤아리다가, 그 중 반수(半數)정도 되는 이성의 숫자를 헤아리다가, 비슷한 연령의 사람들을 헤아리다가, 또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하는 주변 사람들을 헤아리다가, 혹은 연애를 했거나 짝사랑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헤아리다가, 결국 스스로 '결혼이야말로 천문학적 경쟁률을 뚫고 만나게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묵직한 결론을 내리고서야 그런 생각을 접을 때가 있었다. 분명 지금껏 만나온 사람보다 앞으로 만날 사람들이 수 십 배는 더 많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인연이라는 것도 결국 깜깜한 밤하늘에 총총히 떠있는 별처럼 아득해서 뚜렷하게 예측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는 네 인연이야'하고 저 홀로 반짝 빛나는 것도 아니라서 그저 결혼은 무겁고 어려운 것이라서 훗날 딴딴따다 축하와 박수 속에 그저 멋지게 끝낼 숙제로 남겨두고자 했다. 불과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가 벼운 마음으로 수필집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애초에 스스로 환상 같은 건 갖고 있지 않다고 굳게 믿었었다. 한 편, 한 편 읽어갔다. 사람이 만나고 또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10년, 20년 그 이상의 이력이 기록된 것 같아 흥미로웠다. 반절 이상 읽고 나니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영화나 TV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운명적인 장소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되는 두 남녀가 달콤한 연애를 하고 만인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 올리고 커피가 진하게 끓고 있는 아침을 맞이하고 저녁엔 근사하게 차린 저녁을 먹는 것. 이것이 내가 상상했던 결혼생활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야 적잖이 놀라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 모든 환상이 깨진 것이다. 영화 <바람피기 좋은 날>의 유부녀의 일상이거나, <아내가 결혼했다>의 발칙한 결혼 생활, 혹은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의 불륜의 여인이 내 절친한 친구라는 등의 파격적인 소재가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파격적인 소재가 내 환상을 깼으면, 하는 바람마저 들었다. 스물 한 편의 수필들은 제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결국엔 그 소리들이 모두 하나같이 결혼은 현실이야 라고 외치는 것 같아, 문득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 산길에 접어들며>에서 어느 겨울 날 밤, 설악산을 등반하던 중 신발 끈을 묶어주던 투박한 손의 친구 오빠에게 청혼을 받은 이야기는 퍽 인상적이었다. 내가 옆에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오슬오슬 추워지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그 날의 산행이 삶의 산행으로 이어져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고 있다는 마지막 문장까지 읽으면서 과연 산행의 앞잡이이자 동행자와 같이 함께 걷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지는 사람이 각자의 인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굳이 내 무거운 짐을 상대가 들어준다거나 내 아픈 다리대신 걸어준다거나 하는 부담을 주지 않더라도, 동행하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내 어깨의 모든 무게가 가볍게 느껴지고 어떤 험한 길이라도 헤쳐 나가고 싶은 의욕이 생길 때, 그런 날이 오면 나도 누군가와 산길에 접어들어 간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 인연>에서 고교시절 오랜 펜팔친구를 만나고, 실망을 하고, 다시 편지를 하고, 결혼하기까지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1989년생인 나는 사실 펜팔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다. 펜팔을 하면서 우정을 쌓고 만나고 하는 과정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채팅문화와 비슷한 맥락이겠거니 생각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온라인에 매일 접속하여 오프라인에 뒤지지 않을 만큼 무궁히 펼쳐져 있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 글을 읽으면서 펜팔을 하는 동안 환상과 같은 것이 생기고, 만나서 실망하는 것에 공감하고 웃을 수 있었다. 또한 육필로 정성스레 썼을 편지를 상상하니 그 애틋함만큼은 비교할 것이 못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때의 펜팔을 떠올려 보면, 이만큼 왔다가 저만치 돌아가는 것이 편지 뿐은 아니었나보다. 인연(因緣)이라는 것도 결국 사람 사이가 잇닿아 맺어지는 관계일 터, <인연>을 읽으면서 거창하게 말하자면 소통하는 방식의 변화이자, 그 시대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만나는 방법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얕게 흘러가는 물처럼 조금씩 바뀌는 거군, 새삼 깨닫게 되었다.



< 돈가스가 사라졌다>에서 맞선 자리에서 보름달만 한 돈가스를 깨끗이 비운 맞선녀와 결혼하게 된 이야기는 신선한 제목과 제목에 뒤지지 않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오래도록 머릿속에 아련하게 남아있어 입 꼬리를 올라가게 했다. 맞선자리에서 잔뜩 긴장하여 입안이 깔깔해져 음식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손에 땀을 쥐고 있던 맞선남에 눈에 띤 맞선녀의 접시. 너무 생생해서 읽는 내내 웃음이 나왔다. 아무런 조건도 따지지 않고 말끔하게 빈 접시를 본 순간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너무 신선했다. 그 맞선녀에 대한 맞선남의 감상도 이만큼 신선했으리라. ‘인륜대사라는 결혼을 이렇게 쉽게 마음먹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물론 맞선남이 정말 빈 접시 하나로 마음 먹었으리랴 마는, 그 빈 접시의 신선함보다 엄청난 것이 보이지 않는 속에서 오고 갔겠거니, 그래도 과연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도 사람의 마음을 끌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억지로 자기를 감추고 꾸미고 치장하고 연기하는 많은 미혼 남녀에게 이 글이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숨기고 있는 진짜 자기의 모습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고 말이다.



더 읽을수록 이들의 결혼생활이 만날 때처럼 늘 낭만적이고 신선하고 아름다울 수 없다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떨리는 편지를 주고받던 남고생과 여고생에서 단 세 마디로 통화를 끝내는 부부사이가 그렇고, 빈 접시를 비우던 신선했던 맞선녀는 어느새 흘러간 시간 속에서 맞선남 보다 더 살이 찐 모습의 아내로 살고 있는 것이 그렇겠다. 이만큼 결혼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던 나는, 진작 가까이에 있는 부모님을 떠올렸어도 이보다 아쉽지 않은 짐작은 했겠거니 싶기도 했다.



결 국 결혼은 평범한 두 일상의 연속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스물 한 편의 수필을 읽으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즘은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풍토가 연애에서 뿐만 아니라 결혼생활에서도 깊숙이 자리 잡은 것 같다. 오래 남았지만, 그러한 시대 속에서 나도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것이 씁쓸하다. 게다가 <우리 결혼 했어요>와 같이 TV 프로그램에 연예인들이 짝지어 나와 가상결혼을 하고 결혼생활을 체험하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먼 옛날로 돌아가서 거슬러 올라오다 보면 결혼이라는 개념 자체가 굉장히 가벼워지고 있지 않나 싶다. 늘 무겁고 어려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파경(破鏡)에 이르거나 아이가 줄줄이 딸린 가정의 이혼이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결혼에 대한 개념이 조금 달라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창하고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 이성과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늘 꽃피는 결혼생활은 사실 누구나 꿈꾸는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상황에서 열외 될 수 있다. 나 또한 몇 십 년 후면 누군가와 그 꿈같은 결혼 생활 밖 어느 곳에서 노트 위에 소소한 결혼생활을 적어내려 갈 지 모르겠다. 이 수필집 맨 마지막에 나도 훗날 결혼생활을, 수필 한 편을 써 고이 접어 끼워 넣을 계획이다.



「연리지」, 아직 펼쳐보지 않은 스물 두 번 째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해드림 이승훈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수필집[가족별곡](2012) [외삼촌의 편지] [국어사전에 있는 예쁜 낱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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