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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고민이다 - 윤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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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814회 작성일 19-11-1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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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다

윤복순

 

날짜는 바짝바짝 다가오는데 아직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나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생각이 많을까. 어떻게 말을 해야 잘 다녀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

작년 가을 일본 가나자와시의 가나다라 클럽 회원들이 전주에 왔다. 한옥에서 자고 한복도 입어보고 고추장을 담그고 강천산 단풍구경을 하며 23일을 같이 보냈다. 정이 많이 들었다. 헤어질 때 내년에 꼭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틈틈이 일본어 공부를 하고 그들에게 줄 선물도 준비하며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가나자와는 전주와 자매결연한 도시고, 가나다라 클럽은 한일여성 친선협회 전북지부와 민간교류를 하는 모임이다. 우리는 문화교류를 통한 친선도모로 한 해는 우리가 일본에 가고, 다음 해는 그들이 우리나라에 온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웃 같은 생각이 든다.

생각지도 못한 일본의 수출규제조치가 있고 양국의 관계는 급 냉 되었다. 이런 때는 나도 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솔솔 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들이 밉거나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주변의 눈치가 보이고 나도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올 자신이 없어졌다. 은근히 이 행사가 연기되기를 바랐다. 아니 양국의 관계가 그 사이 개선되기를 기도했다.

국민들은 일본의 행동에 분노했고 “NO Japan” 운동이 일어났고 나도 동참했다. OOO을 찾으면 일본회사 제품이라고 설명하고 대체할 수 있는 우리제약회사의 약을 내놓았다. 일본제품을 약장에서 다 빼지는 않았다. 그 약이 자기한테는 제일 잘 맞는다는데 야속하게 팔지 않을 수는 없다.

의류, 자동차, 맥주, 여행 등 많은 국민이 동참하고 숫자로도 나타난다. 특히 일본 여행은 많은 사람들이 예약을 취소한다. 어지간한 도시의 직항노선이 없어졌다. 이런 때 일본을 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도 우리를 초청하는 것을 쉽게 결정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많은 갑론을박이 있었겠지만 그들이 정식으로 초대했다. 도청 자매결연 팀에서도 민간교류마저 끊어지면 안 된다고 행사를 진행한다. 나는 작년부터 간다고 큰소리 뻥뻥쳤다. 이제 와서 대단한 애국자인양 안 간다고 뒤로 살짝 빠지기도 마음이 편치 않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참가자의 명단에 올랐고 비행기표도 다 준비된 상태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남편에게 말을 못하고 있다. 이제 20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남편도 이런 때 무슨 일본이냐고 한마디 할 게 분명하다.

우리 팀은 이런 와중에도 많은 것을 준비한다. 전주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음식창의 도시다. 이 점을 살려 일본에서 겉절이, 잡채, 황차 등을 같이 할 계획이다. 나만 익산에 살아 실습에 동참하지 못한다. 우리는 음식을 만들 때 많은 경험에서 눈짐작으로 대충대충 넣어도 간이 딱 맞고 맛이 있다. 일본 사람들 앞에선 적당이가 통하지 않아 레시피를 만들고 그램까지 계산하려니 고생이 많다. 서너 차례 예행연습을 했다.

예년 같으면 나도 꽤나 달떠 있을 텐데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그야말로 제주도 간다고 거짓말 할 것 같다. 나름 민간외교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도둑여행을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이런 마음이니 남편에게 자신 있게 말을 못하고 기회만 엿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나에게 묻는다. 일본에 놀러가니? 개인적으로 가니? 가서 못된 짓하고 나라 망신시킬 거니? 나라에 피해주니?

작정하고 저녁에 얘기를 하려했는데 남편이 밝은 얼굴이 아니다. 잡아둔 날은 금방 닥친다고 정말 며칠 안 남았는데 어찌할까. 바짝 긴장을 해 나 일본 가야하는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괜히 오늘 말했나보다. 분위기 좋을 때 할 것을.

이래가지고 갈 수나 있을까. 좋은 관계일 때는 누구나 쉽게 그리고 잘 할 수 있다. 어려울 때는 잘 해도 결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들이나 우리 팀이나 요즘 같은 조건에선 괴로워하며 속을 태우기는 마찬가지이다. 마음고생 하는 만큼 더 우정을 돈독하게하고 양국 관계가 좋아지는데 조금이라도 일조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아직까지 남편에게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는 말을 받아내지 못했다. 양국의 관계도 눈곱만큼도 좋아지지 않았다. 나도 가는 것이 잘 하는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가는 날까지 속을 태우게 생겼다. 살아가면서 내 잘못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많다.

201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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