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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여자 병실의 남자 보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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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3,007회 작성일 20-04-07 08:30

본문

여자 병실의 남자 보호자

 

여자들 병실에 간병을 담당하는 보호자는 어딘지 어색하고 하얀 백미(白米)에 섞인 누런 뉘처럼 한데 어우러질 수 없는 존재가 아닐까. 얼마 전 아내가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과 치료를 받던 날의 회상이다. 갑자기 병증이 심해져 진동한동 찾은 병원에서 이것저것 꼼꼼히 따질 계제가 아니라서 무심코 2인용 병실에 입원을 했었다. 아내가 입원을 했지만 간병할 사람은 나밖에 없어 붙박이로 아내 옆을 지켜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불거졌다. 병실을 공유하는 룸메이트 치료를 하거나 통증으로 신음이 심한 경우를 비롯해 배설물을 받아 내야할 경우엔 눈치를 봐가며 슬그머니 병실을 빠져 나와 어깻죽지를 축 늘어뜨린 채 할 일 없이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죽여야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좁은 병실에 마주하고 누워있는 옆 환자 역시 편편치 않아 자세를 바로잡으려 애를 쓰는가 하면 환자복을 끌어당겨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려 들기도 했다.

 

이번 아내의 쓸개 절제 수술을 위한 입원치료 과정은 3단계로 나뉠 수 있다. 첫 단계는 병증이 심해 16일 서둘러 입원해 각종 검사로 담석증으로 판명되었다. 그런데 당장 쓸개절제를 할 수 없이 간()의 수치가 높아져 수술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7일 쓸개즙을 빼내기 위한 복강경 시술로 주머니를 차고 지내다가 일단 15일 임시적인 퇴원을 했던 열흘이었다. 두 번째 단계는 퇴원하여 집에서 머무르며 간의 수치가 정상으로 내려가도록 가료(加療)를 하며 27일까지 느긋하게 기다렸던 열나흘이었다. 세 번째 단계는 28일 재입원해서 29일에 쓸개 절제 복강경 시술을 받은 후 치료를 받고나서 25일에 퇴원했던 아흐레 동안의 일이었다.

 

 

첫 번째 단계의 과정에서 일이다. 병증이 심각해 응급실로 향했다. 담당의사가 문진을 마치고 곧바로 소화기 내과에 배정했다. 그렇게 벼락 치듯 입원 다음날 CT촬영 결과에 따라 외과로 옮겨지면서 외과 병동의 병실로 바뀌었다. 그렇게 새로 옮겼음에도 배정에 문제가 있어 또 다시 옮김으로써 결국은 10일 동안 입원에서 병실을 세 번이나 바꾸면서 아내가 같은 방을 공유했던 환우는 4명이나 되었다. 첫 번째는 소화기 내과에서 입원 첫날과 둘째 날을 함께 지냈던 80대 할머니이고, 두 번째는 외과로 옮겨져 배정 받았던 병실을 사흘 동안 공유했던 30대의 미혼녀로 전직 간호사였다. 그런데 외과에서 처음 배정했던 병실 구조가 아내에게 맞지 않아 다른 곳으로 바꿔 주었다. 빈 병실에 이틀인가 혼자 지내다가 아내와 같은 담석 제거 수술을 위해 하루 입원했던 40대 주부가 세 번째 환우였다. 그 주부가 하루 만에 퇴원하고 또 다시 하룬가 지나고 40대 처녀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입원해 사흘 동안 네 번째 병실 환우였다.

 

누가 유람이나 휴가차 병원을 찾았겠는가. 모두가 한결같이 나름 불가항력적인 병마를 맞닥뜨려 드잡이 하다가 종국에는 백기를 들고 찾아온 패잔병이나 다를 바 없으리라. 따라서 견디기 어려운 통증을 토해내는 신음은 피할 수 없으며 평소 야무지고 단아했던 매무새 또한 흐트러짐은 당연할 게다. 그런 환자가 아내의 병상 옆에서 앓거나 일그러진 모습 등을 흘끔흘끔 엿보는 게 영 탐탁하지 않았다. 게다가 환부를 소독하고 치료하거나 생리적 배설이 급한 상황에 처한 낌새를 감지하는 순간 그들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내가 꼴불견 같아 난감했다. 그렇다고 끙끙 앓는 아내의 수족 노릇을 감당해 내야하는 얄궂은 내 처지를 내칠 수 없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이런 관계로 여자들의 병실에 남자 보호자는 아무리 선의로 받아들인다 해도 개밥에 섞여 있는 도토리격으로 달갑지 않은 국외자 취급을 받을 수밖에 도리가 없지 싶다.

 

아주 오래전 30여 년 전 어느 잔인했던 봄날의 이야기다. 아내가 서울의 친정에 갔다가 발병하여 52일간 K대학교 혜화동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4번인가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가족 중에는 병실을 지키며 아내를 돌볼 사람이 없어 간병인을 채용했던 적이 있다. 당시 나는 두 아이를 데리고 마산에서 학교에 나가 강의를 했다. 그런 까닭에 휴직을 하고 붙박이로 병실을 지키며 간병을 할 처지가 못 되었다. 그 생각이 나서 이번 아내의 입원에서도 간병인을 채용하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집도의가 1차 시술 후 며칠 지나면 잠정적으로 퇴원하여 집에서 가료하라는 언질을 주어 그런 생각을 접었다. 집도의의 예견대로 1차 시술 뒤 일시적으로 퇴원해서 재택 가료를 했다.

 

쓸개 절제 수술을 위한 2차로 재입원하던 날부터는 무조건 병실을 혼자서 쓰는 1인용 병실을 택했다. 왜냐하면 수술 후에 통증으로 인한 신음, 어느 정도 회복 될 때까지 병상에 누워 수술부위를 드러내놓고 치료할지도 모르는 곤혹스러운 상황을 감안한 결정이었다. 또한 1인 단독 병실엔 보호자인 내가 24시간 마음 놓고 머물러도 책을 잡히거나 흉이 될 개연성이 전혀 없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결국 아내 혼자서 병실을 사용했던 까닭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많아졌다. 쓸개 절제를 하고 이틀 정도 지나면서부터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본다거나 신경 써야한다는 부담 없다보니 거리낌 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도란도란 나눌 수 있었다. 아내가 말했다. “이런 자리가 둘이서 떠난 여행지의 조용한 호텔방에서 즐기는 망한 중이라면 엄청 행복했을 것이라고.

 

여자 여럿이 함께 입원한 다인용 병실에서 남자 보호자는 아무리 잘해도 오그랑장사하지 않고 본전 건지기 쉽지 않지 싶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련만 좁은 병실에 갇힌 새처럼 잔뜩 긴장한 채 눈길 둘 곳을 찾지 못하고 허둥대며 안절부절 댈 개연성이 다분하다. 게다가 함께 병실을 공유하는 환우들의 따가운 눈총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기에 웬만하면 차선책을 택하려 들게 마련이리라. 그런 맥락에서 아내의 입원이 장기화 되고 단독으로 사용할 1인 병실 선택이 불가능했다면 아마도 망설임 없이 간병인 카드를 빼들지 않을 재간이 있었을까.

 

2020216일 일요일

 

 


댓글목록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교수님도 사모님도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문병도 못 드리고 우선 죄송한 마음이 앞섭니다.
언제 시간 내서 사모님이랑 두 분 여행 한 번 다녀오시지요.
유진이가 밟히긴 하겠지만요.

사모님 입장에서는 간병인보다 교수님이 곁을 지켜주셔서
편찮은 와중에도 마음은 더 가벼웠을 거 같습니다.
이제는 교수님도 사모님도 병원 가는 일 없이
오래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올해는 교수님께 문운이 더욱 활짝 열리기를 바라겠습니다.

캠퍼스에는 벚꽃이 벌써 다 졌겠지요?
내년에는 교수님과 켐퍼스에서 벚꽃 산책 한 번 하고 싶습니다.

김재형님의 댓글

김재형 작성일

장기간 입 퇴원을 하시며 사모님 간병에 고생이 많았습니다.
병상생활을 오래한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읍니다.
간병인보다 선생님께서 직접 돌보아 주신 편이 훨씬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고
마음이 편했을 것입니다.
선생님 전국을 강타하고 밌는 코로나에도 내외분의 무사함을 기원 드립니다.
앞으로 봄 기운을 듬뿍 받아 내외분 햄복한 나날이길 빕니다.
건안 건필하시길.........
간병기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김 재 형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