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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마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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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4건 조회 1,003회 작성일 20-04-1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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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윤복순

 

온 국민이 마스크 찾아 삼만리다. 그야말로 마스크와의 전쟁이다. 5부제로 1인당 2매씩 공적마스크를 살 수 있다고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다. 귀하디 귀한 마스크를 살 수 있는 현장이 약국이다. 프로그램이 새로 깔리고 컴퓨터 울렁증이 있는 나는 미리 겁을 먹는다.

공급에 비해 수요가 훨씬 많으니 이 약국 저 약국 근동을 다 돌아다닌다. 다 팔렸다고 하고 아직 안 왔다고 하고 결국 빈손이니 사람들은 화가 많이 난다. 우리 약국도 마스크 들어오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오전 11, 오후 3시 어느 날은 저녁 6시에도 왔다.

우연히 약국 앞을 지나다 운 좋게 살 수도 있다. 대여섯 명만 사가면 바로 줄을 선다. 산 사람들이 지인들에게 윤약국에서 지금 마스크 샀다고 문자를 날리는 것 같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동이 난다.

직장 때문에, 혼자 근무하는 자영업자들은 마스크 천신을 할 수가 없다. 젊은 여성이 몇 번째 약국에 들렀다. 그 시간에는 도저히 마스크를 살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너무 딱해서 전화번호를 적어 놓고 가라고 했다. 애가 셋이고 직장이 있어 그 시간밖에 돌아다닐 수가 없단다. 애가 다섯인 딸 생각이 나서 꼭 남겨 놓을 테니 근무 잘 하고 오라고 했다.

마스크 때문에 험한 말도 많이 듣는다. 몇 군데를 들렀어도 못 샀으니 열이 뻗쳐 폭발하는 것이다. “약사님 그럴 줄 몰랐어요.” “ 약사 그렇게 안 봤는데.” 심지어는 공무원도 아니고 정책 입안자도 아닌 나에게 정부를 비난하는 불평불만을 한없이 늘어놓기도 한다. OO 가서 코로나19 걸려 와서 확 퍼뜨리고 싶다는 성질 고약한 사람도 있다.

마스크 몇 시에 오냐. 오늘은 확실히 오냐. 몇 장 살 수 있냐. 어제는 언제 왔냐. 하루에 몇 장 오냐. 몇 시에 오면 살 수 있냐. 수많은 사람들에게 똑같은 대답을 해 주는 게 여간 힘 빠지는 일이 아니다. 좋은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모르겠다. 없어요. 등 부정적인 말만 계속해야하니 금방 지쳐버린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내가 지쳐 보였는지 할머니가 과자를 사다준다. 당신도 집에만 있고 TV에선 그놈의 이야기만 하니 소화도 안 되고 울적하니 그렇단다. 기분이 가라앉을 때는 단 것을 먹으면 기분전환이 되니 틈틈이 먹으며 기운 차리란다.

대통령이 코로나19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나는 전쟁을 겪어보지 않았다. 전쟁이 나면 어느 누군들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진짜 전쟁보다는 그래도 지금이 낫지 않을까. 전쟁이라고 생각하고 잘 견디자 다짐한다.

출근해 컴퓨터를 켜고 상황을 읽어 가는데 갑자기 꺼졌다. 다시 켰다. 또 꺼졌다. 서너 번 그랬다. 전문가를 불렀다. 깨진 것 같단다. 100% 복원된다는 보장이 없다. 공적 마스크 판매에 관한 업그레이드도 해야 하는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2년여 전 컴퓨터를 교체했다. 본체를 환자들 정보가 들어있어 버리지 못하고 좁은 약국에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것으로 복원하기로 했다. 16개월 치 기록이 없어졌다. 인증서를 다시 받기 위해 건강보험공단에 가기도 했다. 보통 복잡한 게 아니다.

프로그램마다 바뀐 인증서 번호를 등록했다. 신규환자 수진자조회가 되지 않아 원격을 몇 번이나 했나 모른다. 담당자가 나 때문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한다고 짜증 섞인 목소리다. 내가 빨리빨리 하지도 못 할 뿐 아니라 곳곳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지 못하니 면허번호, 요양기관기호, 사업자번호로 하나하나 입력하며 찾아보기를 해야 했다.

내가 한심하고 무능해서 약국도 그만두고 싶다. 공적마스크 취급도 하기 싫다. 컴퓨터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어깨에 돌덩이를 얹어 놓은 것 같다. 다리의 힘이 풀리고 목소리도 기어 들어간다. 또래 아주머니가 내일도 마스크 오냐고 물어보러 왔다가 이런 내 꼴을 보았다. 저녁 때 뜨끈뜨끈한 그릇을 내밀며 어서 먹고 기운 차리란다. 잡채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약국 문을 늦게까지 연다. 낮에는 동네 사랑방이라 내 시간이 없다. 저녁시간에 책도 읽고 글도 쓴다. “우리 아파트 사람들은 복이 많아요. 늦게까지 문을 열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약사님 연세에 돈이 없어서 이 시간에 근무하시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과분한 인사를 받기도 한다.

힘들고 가시 돋친 말을 듣기도 하지만 공적 마스크 취급을 하자. 나이가 있고 혼자 근무하고 컴퓨터 실력이 형편없어 주민번호 입력하는데 시간 많이 걸리겠지만, 정문 앞에 약국을 두고 아파트 주민들이 한 참을 걸어가야 하는 것 보다는 낫지 않을까.

마스크 오는 시간에 운 좋게 산 아주머니가 딸이 코트라에 취직을 해서 스페인에 가야한단다. 유럽에선 마스크 한 장이 우리 돈 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좀 많이 사야하는데 걱정이 태산이라며 부탁을 한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다 동네 사람인데 난감하다.

공적 마스크 5부제 첫날이다. 어떻게 하는 게 손님에게도 나에게도 가장 좋은 방법일까. 평소보다 일찍 나왔다. 문을 열자마자 마스크를 찾는다. 마스크는 1시 넘어야 오는데 그 때까지 기다리라고 할 수도 없고, 2시부터 판매한다고 하면 입력하고 마스크 주고 돈 받고 정신이 없을 것 같다.

예약을 받았다. 노트에 이름과 주민번호를 적으라고 하고 나는 입력을 했다. 오후 2시 넘어 편리한 시간에 찾으러 오라고 했다. 몇 번 해보니 어려운 것은 아니다. 시청에서 봉사자가 나왔다. 남편도 도와주었다. 오전에 예약을 받고 오후엔 노트에 적은 이름을 확인하며 나눠 주었다. 손님들도 나도 혼잡하지 않고 편하다.

젊은 엄마가 애기들 것 까지 6장을 받았다. 이때 할머니 한 분이 마스크를 사러 왔다. 이미 다 팔린 시간이다. 그녀가 얼른 어른께 2장을 드린다. 나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 긴장했는데. 하루 종일 팽팽했던 약국에 금새 봄바람이 분다. “강자의 겸허함은 미덕이 아니라 책무라는 글을 읽었다. 그녀에게 딱 어울린다. 피로와 스트레스가 확 날라 간다.

동네 사람들이 나보고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어떻게 하냐고 걱정을 해 준다. 과일을 사다주고, 빵을 주고 시댁에서 가져온 거라고 봄동 배추를 주기도 한다. 번호표도 만들어다 주었다. 당신들이 오전에 줄서서 예약하고 오후에 찾으러 와야 하니 번거로울 텐데 나보고 고맙다고 한다. 이런 마음으로 마스크와의 전쟁을 치른 다면 맨 얼굴로 다닐 수 있을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2020.3.9

 


댓글목록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오랫만 입니다.  컴퓨터도 교체하고 글 올리는 방법도 몰라 늦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고생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최고라는 믿음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모두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하세요.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우리 동네 약국에는 60세 정도의 남자 약사가 혼자서 약국을 지켰는데, 공적 마스크를 판매하는 시간에는 그의 부인과 아들이 나와서 돕더군요. 아내는 마스크 두개를 건네고 돈을 받고, 손이 빠른 아들은 컴퓨터에 마스크 구입자 주민등록번호 컴퓨터에 입력하고, 약사님은 전체 통제하고.... 처음엔 1-2시간 기다렸는데, 요즈음은 정해진 시간에 가면 즉시 살 수 있더군요. 구입하는 사람이 적어졌는지...어쨋던 코로나-19 때문에 애먼 약사님들 고생 된통 하셔서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들더이다. 공무원들이 해야 할 일을 덤터기 쓰시고.....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안 오셔서 궁금했습니다.^*^
저도 약국에서 마스크 구매를 하며
이번 코로나 사태로 우리나라 약사님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를 알았습니다.
바람도 쌀쌀하게 문을 다 열어놓고
길게 늘어선 사람들에게 마스크를 분배하는데
참 감사하더라고요.
마스크를 건네 받으면 너무 고생하신다고 인사를 건냈더니
환한 표정을 짓더군요.
선생님도 참 고생 많았습니다.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감사합니다.
봄바람 치고는 너무 세네요. 잘 지내고 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