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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함양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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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1건 조회 302회 작성일 23-09-0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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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길이 열렸다

윤복순

 

함양은 멀게 느껴졌다. 익산은 교통도시다. 호남선 전라선 장항선 등 철도 이용이 좋은데 함양은 기차를 이용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버스도 바로 가는 게 없다. 일요일 대중교통을 이용해 안 가본 곳의 여행을 즐기는 나도 쉽게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함양은 남편의 본이다. 거창하게 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번은 가봐야 할 것 같았다. 정작 남편은 아무 관심도 없다. 어느 해 추석 아들딸이 다 있을 때 함양 한 번 가보자.” “유명한 것 뭐 있어요?” 무관심이다.

올 봄 상운암에서 부터 운암댐 둘레길을 걸었다. 댐을 만들면서 주변의 마을들이 이주를 해 여기저기에 어디 무슨 씨 생거비가 많다. 함양 박씨 시제모시는 곳이란 표지석도 있다. 남편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더니 올라가 보자고 한다. 관심 없는 척 할 때는 언제고.

함양은 정자와 누대가 많이 있고 그 누대는 저마다 사대부의 풍류와 은일(隱逸)의 뜻이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좌 안동 우 함양이라 하여 학문과 문벌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큰 선비가 많이 나왔고 양반이 많았으므로 서원도 많다. 남계서원 도천서원 송호서원 등.

작년 남원 실상사에 갔다가 백장사 까지 걸었다. 내려오는 길에 버스가 오는 게 보여 마구 뛰어와 탔다. 남원 버스가 아니고 함양 버스다. 인월까지 간다고 했다. 함양이란 이름만으로 반가웠다. 인월에서 함양에 갈 수 있음을 그때 알았다. 더구나 터미널에서 남원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 사이 함양 버스는 여러 대가 드나들었다.

이번 여름 함양 행을 저질러 보자. 얼마나 먼~지는 모르겠지만 가다보면 나오겠지, 혹 못 가더라도 시도는 해 봐야할 것 같았다. 미리부터 주눅 들어 포기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꼭두새벽에 여수행 기차를 탔다. 돌아오는 것은 7시 차를 예매했다. 남원 역 앞에서 인월 가는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10여분 뒤 바로 온다. 시내를 다 도는지 마음만 바쁘다. 시내를 벗어나니 일사천리다. 인월 장날이라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시간이 되면 시골 장구경도 해 볼 참이다.

인월 터미널에서 15분 쯤 기다려 함양 버스를 탈 수 있었다. 30분마다 있다. 출발 해 5분도 지나지 않아 여기서부터 경상남도입니다.” 도로 표지판이 있다. 함양이 이렇게 가까울 줄 몰랐다. 어리벙벙하다.

특별히 어디를 가야겠다는 목적지도 없이 왔는데 머리를 빨리 회전시켜보았다. 어느 책에서 봤는지 상림(上林)이 떠올랐다. 기사가 지름길에서 내려줬다. 위천 둑방길로 걸었다. 함양은 물이 좋구나, 첫인상이다.

상림은 신라 진성여왕 때 최치원이 함양 태수로 와서 조림한 곳이다. 지리산 북쪽 계류가 흘러든 위천이 마을을 관류하기 때문에 홍수의 위험이 있음을 알고 둑을 쌓아 물길을 돌리며 대대적으로 인공조림을 했다. 천연기념물이다.

천 년 숲답게 한 아름도 더 되는 나무들로 꽉 차 있고 모두 흙길이다. 그 좋은 물이 노래를 부르며 숲 안을 흐른다. 평온한 녹색 숲은 더욱 상쾌하다. 잘 자라 우거진 빽빽한 나뭇잎이 하늘을 가려 햇빛걱정도 없다. 사람들이 흙길을 맨발로 걷는다. 나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온 발바닥이 이 숲을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천천히 걸었다. 몸도 마음도 머릿속도 차분해진다. 참 잘 왔다는 생각이 들고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물레방앗간 옆에서 잠깐 쉬었다. 구미에서 왔다는 부부가 과수원 하는 지인이 주었다며 복숭아를 준다. 고맙게 받아 입에 넣었다. 물레방앗간을 지나니 연 밭이다. 백련과 홍련이 피고지고 또 피고 끝없이 이어진다. 수련 어라연 안젤로니아 베고니아 등등 다양한 종류의 꽃들이 재롱잔치를 하고 있었지만 다시 숲으로 들어왔다. 길 따라 걷다보니 발 씻는 곳이 나온다. 지리산에서 내려오는 물인지 기분 좋을 만큼 발이 시리다. 발 씻으면서 보니 숲 안에선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금한다고 쓰여 있다.

식사 후 읍내 구경할 마음이 싹없어졌다. 더위에 손을 들고 말았다. 다시 상림에 들어와 가보지 않은 다른 길을 걸었다. 팔이 없는 부처님이 있다. 큰 홍수가 났을 때 위천에 까지 떠 내려왔다고 한다.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고 가까운 곳에 미래사가 있었다고 한다. 절집이 무너지고 무거운 석불이 떠내려갈 정도면 이곳의 물난리가 어떠했을지 짐작이 된다. 함양은 지리산과 덕유산 사이에 있으니 장마나 홍수엔 물이 무서울 것 같다.

화수정이란 정자가 있다. 옆에 비석이 두개나 있어 대단한 역사가 있는가, 가 보니 파평 윤씨 문중에서 지어주었고 돈을 낸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함양 박씨 근거를 조금이라도 찾을까 했는데 난데없이 파평 윤씨가 나온다. 남편이 나보고 비석 앞에 서란다. 사진을 찍어주겠고. 웃고 말았다. 우리는 의미 없는 것에 의미를 두며 상림을 기억할지 모른다.

버스 시간이 어찌 될지 몰라 서둘러 상림에서 나왔다. 오전 버스에서 내렸던 곳 맞은편에 서서 주민에게 인월 가는 버스 타는 곳이 맞느냐고 묻는데 버스가 왔다. 승객은 우리 둘뿐이다.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없어 인월 까지 직통으로 왔다. 기사를 둔 큰 가가용을 탄 기분이다. 시골 장날은 사람이 없어 오전에 파한다는 것도 기사한테 들었다.

인월에서 남원 가는 버스는 10분 쯤 기다리니 왔다. 5시 기차를 탈 수 있어 차표를 교환하려니 좌석이 하나뿐이다. 5시 차를 탔다. 남원에선 내 옆자리가 비었고 오수에서 젊은이가 탔다. 전주에서 내린다며 아저씨 앉으시라고 도망을 간다. 익산까지 앉아서 왔다. 차 시간도 착착 맞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함양 나들이 이만하면 만점이다.

함양은 멀지 않다.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라고 했던가. 다음에 서원도 화림동의 정자도 가봐야겠다.

 

2023.8.19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산 좋고 물 좋으며 공기 맑은 산청에 오셨었네요? 상림도 좋지만, 연암 박지원에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물레방아를 보고 와서 산청 현감으로 재직할 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물레방아를 만들었다는 고을이지요. 좋은 여행하셨네요. 사실 저도 같은 경남인데도 불구하고, 한 두 번 다녀온 적이 있어 아련할 따름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