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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꽃인 듯 꽃이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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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310회 작성일 23-09-0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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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인 듯 꽃이 아니요

 

속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뜻이다. 이는 동일한 대상에 대해 보는 사람의 시각이나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할 수 있으며 그들은 모두 타당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다양한 분야에서 그런 경우가 허다할 터이다. 하지만 특히 문학 작품에서 쉽게 눈에 띈다. 민족시인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의 의미는 경우에 따라 조국 민족 부처 연인 진리따위로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게 비근(卑近)한 예이리라. 또 다른 예 중에 하나가 중국 당나라 시인이었던 백거이(白居易)*의 시 화비화(花非花)’ 꽃인 듯 꽃이 아니요가 아닐까.

 

백거이라고 할 때 퍼뜩 떠오르는 시는 당의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 사이에 비련을 묘사한 장한가(長恨歌)이다. 대체적으로 그의 시는 까다롭지 않고 쉬워 특별히 뜻풀이를 붙여할 필요가 없다는 게 대다수가 동조하는 중론이지 싶다. 정확한 증빙 자료가 뒷받침되는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전해지는 소문에 따르면 그는 시를 지을 때마다 주위 지인이나 노파들에게 보여주며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부분은 고치고 또 고쳤단다. 그리하여 누구나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퇴고하는 버릇이 있었다는 그가 멱구(覓句)*를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렸을 리도 없지 싶다. 언제나 독자를 우선으로 꼽는 그의 작품 중에 무엇을 뜻하고 지칭하는지 아리송한 사례가 꽃인 듯 꽃이 아니요화비화이다.

 

꽃인 듯 꽃이 아니요(花非花)

안개인 듯 안개도 아니어라(霧非霧)

한밤중에 왔다가(夜半來)

밝으면 떠나가네(天明去)

봄꿈처럼 와서 잠시 머물다가(來如春夢幾多時)

아침 구름처럼 흔적 없이 사라지네(去似朝雲無覓處)*

 

꽃인 듯 꽃이 아니요를 숙독에 숙독을 거듭해도 직접적으로 겨눈 대상이 무엇인지 확증할 실마리를 찾을 틈새가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독자가 어떤 상황에서 감상했느냐에 따라 다양한 대상이 특정되지 싶다. 제아무리 생각을 거듭해 봐도 수학문제 풀이에서 얻어지는 것 같이 정해진 하나의 정답을 늘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분명하다.

 

사람에 따라 꽃인 듯 꽃이 아니요가 뜻하는 의미가 사뭇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황혼에 이르러 번개처럼 지나간 삶을 반추하며 회한에 잠길 경우는 덧없는 인생무상의 허망함, 맺지 못할 인연에 애를 태웠지만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의 아픔을 겪었던 경우라면 첫사랑의 알싸한 추억을 연상했을 게다. 한편 돈의 노예로 전락해 일생을 돈에 걸신들린 듯 매달려 애걸복걸했지만 세월만 허비했다면 재물에 대한 여한, 지배욕에 빠져 모두걸기를 했다가 빈손으로 노년을 맞았다면 부질없는 권력의 허무함을 떠올렸으리라. 아울러 터무니없는 탐욕에 허둥대다가 빈손인 채 후회를 하는 경우라면 탐욕에 대한 원망과 회한,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일로매진했던 경우는 달콤한 꿈이나 아롱거리던 희망등을 생각할 수 있으리라. 그러므로 시를 감상했을 때 연상되는 대상은 독자 저마다의 처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시를 이해하기 쉬워 누구나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다고 알려진 시인의 작품치고는 엉뚱하다면 허튼소리로서 망발일까. 누구보다도 이웃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쏟았던 시인이 독자들에게 시를 감상하면서 생각을 해보라는 뜻에서 화두처럼 넌지시 던져준 선물이 아닐까. 끝끝내 이 시에서 의미하는 바를 특정하지 않음으로써 그에 대한 답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 모양새이다. 하기야 그리해도 누군가에게 정신적 피해나 물질적 손해를 끼칠 해악의 요소가 도통 없기 때문에 탓하거나 꼬투리를 잡고 왈가왈부할 시빗거리도 아니다. 한편 이러쿵저러쿵 여러 가능성을 주고받는 게 온당치 못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전당시(全唐詩)*에 실린 이 시는 시인 송옥(宋玉)의 무산신녀(巫山神女) 고사를 인용해서 그리운 사람이 밤의 꿈에 나타났다가 아침이면 사라지는 때문에 그리움을 채울 수 없다고 표현한 것이라고 귀띔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가능타면 시인에게 묻고 싶다. 과연 꽃인 듯 꽃이 아니요라는 시를 독자의 관점이나 처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할 구석을 남겨두고 떠난 참뜻을 진솔하게 알려달라고 말이다. 그 자체가 시인이 겨냥했던 숨겨진 이유라면 삶의 맛과 멋에 달통해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던 게 아닐까 싶다. 난마처럼 마구 뒤엉킨 인생살이가 고달프고 팍팍해 포기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 때 시를 흥얼거리며 어려움이나 난제의 원인에 대해서 성찰할 여지를 마련해 준 게 어쩌면 보시(布施)를 베푼 시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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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거이(白居易 : 772~846) : ()나라 시인으로서 자()는 낙천(樂天), ()는 취음선생(醉吟先生) 항산거사(香山居士)이다. 그는 다작(多作)을 했던 시인이며, 현존하는 문집은 71, 작품은 3,800여 수()로 당대(唐代) 시인 중에 최고 분량을 자랑할 뿐 아니라 시의 내용도 다양하다.

 

* 멱구(覓句) : 훌륭한 시를 지으려고 애써 좋은 글귀를 참음.

 

* 무멱처(無覓處) : 간 곳을 찾을 수 없다.

 

* 전당시(全唐詩) : 중국의 청()나라 강희제(康熙帝)의 칙명에 따라 팽정구(彭定求) 등이 당시(唐詩)를 모아 엮어 펴낸 한시집이다. 900권으로 목록 12권에 보유(補遺) 6권과 사() 12권이다. 한편 화비화(花非花)435에 수록되었다.

 

202384일 금요일

 

 

 

 

댓글목록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선생님, 여름나기 잘 하셨는지요?
이런 저런 힘든 나날이 이어져 여기 나들이도 뜸했어요.
이젠 슬슬 안부 전할 생각이 듭니다.
건강하세요. 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