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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만년필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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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274회 작성일 23-10-03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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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과 원고지


어린 시절 책상 앞에 앉아서 만년필로 원고지에 글을 쓰는 사람이 무척 부러웠다. 어쩌면 해탈한 도인처럼 비춰지기도 하고 달관한 구도자 같은 경건한 모습으로 투영되며 닮고 싶어 동경하게 되었을 게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아무짝에도 쓸 데 없는 백일몽이었을 뿐 그럴 기회가 영영 주어지지 않았다. 행일까 아니면 불행일까.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전산학(電算學)을 전공으로 택하면서 모든 문서나 원고 작성은 컴퓨터에 의존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갈무리도 마찬가지였다. 이로 인해 필기구(만년필)를 이용해 원고지에 글을 쓰는 수작업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여태까지 책을 꽤나 여러 권 집필했다. 대학에 똬리를 틀었던 시절 전문서적 서른 권 정도를 위시해서 현재 진행형으로 쓰고 있는 수필집 열여덟 권까지 합하면 얼추 쉰 권 안팎의 원고를 썼다. 그럼에도 이들 중에서 어느 하나도 원고지에 만년필로 쓸 기회가 없었다. 그 옛날 문필가들의 경우 원고는 ‘200자 원고지’에 만년필로 쓰는 게 정석처럼 여기던 시대가 있었음에도 그렇다.


그 옛날 책을 출판하거나 신문을 발간할 때는 문선공(文選工) 즉 채자공(採字工)들이 원고지를 한 손에 들고 모든 자모(字母)를 하나씩 찾아 조판하여 인쇄했다. 그 시절 첫째로 원고의 양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둘째로 문선공들이 한 손에 원고를 든 채 다른 한 손으로 자모를 찾아 조판하기 쉽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원고지에 쓰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아무런 규제 없이 크기가 들쭉날쭉한 종이에 되는대로 쓴 원고는 문선공들의 작업 능률을 떨어뜨릴 개연성이 다분하다. 이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표준화된 원고지를 사용했지 싶다.


정확하지 않지만 내가 책을 펴내기 시작할 무렵엔 지난날 사용하던 조판인쇄 방식이 아니라 오늘날의 활판인쇄로 바뀌었지 싶다. 그런 때문에 원고를 쓰는데 구태여 원고지를 고집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하기야 지금도 신문사나 잡지사에서는 지면 관계로 외부 인사들에게 원고를 청탁할 때 ‘200자 원고지 몇 매’라고 명시하는 게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그렇다고 원고지에 직접 글을 써서 투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으로 유추된다.


내게도 한동안 대표적인 필기구가 만년필이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지니게 되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대학 재학 시절 대중적이면서도 기품 있는 파커(Packer) 만년필을 애용했었다. 강의 내용 필기를 비롯해 노트 정리나 리포트 작성에 필수품이었다. 하지만 값이 저렴하고 휴대가 편한 볼펜이 등장하면서 뒷전으로 밀리기 시작해 책상 서랍 속에 나뒹굴다가 끝내 분실을 하고 다시 구입하지 않았다.


저렴하고 부담이 없는 볼펜에 길들여졌다가 개인용 컴퓨터 즉 PC(personal computer)가 등장 하면서 손으로 쓰는 글씨가 소용없어졌다. 강의안을 작성하거나 논문을 비롯해 다양한 원고 작성은 컴퓨터에 의존하게 되었다. 결국 손으로 쓰는 수기문화(手記文化)에서 컴퓨터에 의존하는 전산화(電算化) 문화로 전환되면서 원고지에 만년필로 글을 쓸 이유가 없어졌다. 한발 앞서 세상을 살며 글을 썼던 선배 문인을 기리는 문학관의 전시품 중에는 대부분의 경우 누렇고 칙칙하게 변색된 육필 원고가 전시되어 눈길을 끌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세대 이후 글 쓰는 이들은 모두가 컴퓨터를 사용했기에 육필원고 대신에 유에스비 메모리(USB Memory)나 영상자료가 비치되어 있지 않을까.


거의 20여 년 전의 일이다. 부담스러운 몽블랑 마이스티스튁(Meisterstuck) 볼펜을 선물로 받았다. 수필에 호기롭게 도전할 무렵이었지 싶다. 아마도 기왕에 글을 쓰려면 열성을 다해 우뚝한 문인으로 거듭 태어나라는 높은 뜻을 담은 고마운 선물이었다. 하지만 여태껏 그 볼펜은 책상 서랍 깊숙이 모셔둔 상태로서 허접한 잡동사니 취급을 할 수가 없다. 분명 필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외출 시 지니고 다니거나 글을 쓸 때 함부로 내돌리기 부담스러워 아끼고 있다. 어제 저녁 문득 그 존재가 떠 올나서 깊숙이 넣어둔 것을 꺼내 몇 자 끼적여 봤더니 멀쩡했다. 하지만 마음 쓰지 않고 스스럼없이 취급하려들지만 끝내 썩 내키지 않아 제자리에 도로 넣어둠으로써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있는 꼬락서니다.


그 옛날에는 고고한 학처럼 곧은 자태로 책상 앞에 앉아 만년필로 원고지에 또박또박 글을 써내려가는 기품은 선비의 전형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활짝 열리면서 그런 기능의 전부를 컴퓨터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갈무리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격랑의 소용돌이 영향이리라. 태어나 여태껏 해왔던 일이라고 해야 학업을 마친 뒤에 곧바로 대학에 뿌리를 내리고 강의와 집필을 계속해왔을 따름이다. 여기에 더하여 지천명의 중반 무렵에 요식 행위에 해당하는 등단 절차를 거쳐 지금까지 써온 수필을 책으로 펼쳐낸 게 전부이다. 그 흔적의 결과물이 어쭙잖게도 양적으로 수월찮게 많다. 하지만 그중에 어느 하나도 만년필로 원고지에 썼던 적이 없다. 구태여 원고지에 썼던 경우는 신문사에 칼럼을 쓸 때 정해진 ‘원고지 매수’를 지키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응했던 게 전부였다.


어딘가에 쓸 요량으로 사 두었던 ‘200자 원고 한 묶음(100매)’ 이 미운오리새끼 취급을 받으며 서재에 굴러다니는 데 하도 오래되어 누렇게 변색되어 볼썽 사나운 모양새이다. 또한 지난날 선물로 받은 고급 몽블랑 마이스티스튁 볼펜이 책상서랍 깊은 곳에 고이 모셔두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지만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 단 한 번이라도 책상 앞에 단아한 자태로 앉아서 만년필(몽블랑 마이스티스튁 볼펜)로 원고지에 글을 쓸 기회가 있을까? 왜냐하면 이보다 낯익고 길들여진 쪽이 컴퓨터이기에 내뱉는 독백이다.


현대작가, 제17호, 2023년 9월 4일

(2023년 5월 27일 토요일)





댓글목록

김춘봉님의 댓글

김춘봉 작성일

컴퓨터가 없었으면 저는 글 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이상하게도 펜을 잡으면 손목이 굳어지면서 한 자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부담감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타자기로 글을 쓰다가 최초로 교육용 컴퓨터가 나왔을 때 아낌없이 투자했습니다.
그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들이 관심을 보이더니 만 장성 해서도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