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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후각과 미각의 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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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170회 작성일 23-11-14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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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과 미각의 마비


코로나19의 후유증(롱코비드(Long COVID))*을 호되게 앓고 있다. 예상 밖의 후각과 미각이 마비되어 맹랑하기 짝이 없는 우울증이 스멀스멀 대며 혀를 날름거리려 한다. 지난 달(6월) 초아흐레 날 내외가 나란히 감염 확진을 받았다. 확정 날짜는 그날이지만 나는 닷새 전(5일), 아내는 사흘 전(7일)부터 가벼운 감기증상이 나타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적당히 대응하고 넘기려 했었다. 이런 생각에서 평소처럼 약방에서 감기약을 구입해 복용하다가 되레 병을 악화시킨 꼴이 되었다.


우리 내외는 코로나19에 관한 한 어느 누구보다 당국의 지침에 철저하게 따랐던 관계로 이제까지 각각 5차례씩 백신을 접종했었다. 그런 이유에서 아무리 변이 바이러스가 연이어 출현해도 너끈하게 피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쓸데없는 희망적인 오판은 한낱 꿈에 불과했다. 돌이켜 생각하니 강제 격리나 마스크 착용을 강요하던 기간 동안 용케도 감염되지 않았다. 그런 사실이 되레 독이 되어 경계를 느슨하게 하는 단초가 되었던 게 아닐까. 지난 6월 1일 ‘위기경보’ 단계에서 ‘경계’ 단계로 하향 조정하고 강제적인 조치를 해제하기 무섭게 감염됨으로써 할 말을 잃게 했다.


확정 판결을 받고 일주일 동안 자청하여 자가 격리를 했다. 목이 아픈 것을 제외하면 평소 건강할 때와 유사한 상황에서 창살 없는 감옥(?)에 스스로 갇힌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 멍한 상태에 처해 하염없이 밖을 응시하는 한심한 작태가 왠지 안쓰러운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다람쥐 쳇 바퀴 돌 듯이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잠자기를 되풀이 하는 단조로운 생활이 지겨워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우연히 옛 동료 J 박사와 통화하다가 감염 사실을 실토했다. 그랬더니 J 박사가 제자 Y 박사를 대동하고 격리생활에 소용이 닿는 생필품과 먹거리를 비롯해 목의 통증 치료제인 ‘모가프텐’ 등을 한 꾸러미 구매해 현관 앞에 두고 갔다. 따스한 마음 씀씀이가 무척 고맙고 송구했다.


무슨 조화인지 보통의 감기보다도 훨씬 가볍게 지나갔다. 아내의 경우는 심한 고열이 나거나 통증이 전혀 없어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병원에서 처방해준 일반 치료제와 전문 치료제인 팍스로비드(Paxlovid)는 철저하게 복용했다. 아내에 비해 나는 사정이 조금 달랐다. 다른 정황은 아내와 판박이 이었으나 병증이 발현한 이튿날부터 목이 불에 덴 것처럼 화끈거리고 통증이 심했다. 때문에 음식이나 침을 넘기기도 어려웠으며 심지어 숨도 쉬기 힘들었다. 자가 격리에 들어가면서 J 박사가 시중 약국에 품절 상태인 ‘모가프텐’을 구해 줘 목의 통증은 한결 부드러웠다. 어찌 되었던 이번에 감염되고 나서 견디기 어려운 목의 통증은 특이한 증상으로서 혹독한 곤혹을 피할 수 없었다.


일주일간의 자가 격리 동안 고등학생인 손주 유진이가 문제였다. 할 수 없어 우리 내외와 유진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지냈다. 그리고 서로의 접촉을 피하고 필요한 경우 필담(筆談)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잠자는 방도 피차 들여다보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식사까지도 혼자서 따로 하면서 심지어 별개의 화장실을 사용하도록 엄격히 격리했었다. 그렇게 각별히 신경을 썼던 정성이 통했는지 유진이는 감염되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스스로 갇히기를 자청해 집에 머물며 목이 타는 듯이 아파 쩔쩔 매기도 했다. 그럴지라도 대체적으로 무탈하게 지나가는 게 그저 고마워 음식 맛이나 냄새 따위를 한가롭게 운운할 계제가 아니었다. 결국 와병 중에는 후유증이 생겼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었다. 하기야 그런 증상을 인지했어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게다. 지금 생각하니 지독한 괴질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함으로써 그 후유증을 전혀 예상하지 못해 더 큰 충격을 받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때 증상을 제대로 인지했더라도 결과적으로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었지 싶다.


감염 치료 완료 후 후유증을 앓는 롱코비드(long covid)에 대한 얘기다. 다양한 형태가 보고되고 있는데 애통하게도 나는 그 중에서 후각과 미각이 마비되었는데 후각의 경우는 꽤나 심각하다. 주방에서 생선 졸임을 하고 있어도 눈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냄새를 맡지 못해 아예 눈치 채지 못한다. 이에 비해서 미각의 경우는 4원미(四元味)인 쓴맛(苦味), 단맛(甘味), 짠맛(鹹味), 신맛(酸味) 등이나 통각(痛覺)인 매운맛(辛味) 따위는 대충 분별이 된다. 그런데 고기류나 채소류를 먹으면 천편일률적으로 여름철 변질된 음식을 씹는 맛이다. 아울러 지난날 느꼈던 맛이 그대로 인 음식은 하나도 없다. 원래 음식은 저마다의 풍미를 느끼면서 고유의 맛을 음미하며 먹어야 한다. 그럼에도 모두가 똑같은 맛이라서 짜증이 나는가 하면 우울증이 나타나려 해 더럭 겁이 난다. 때문에 감염 이후에 먹는 모든 음식은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입으로 퍼 넣어 배를 채우려는 본능적인 행동을 반복할 따름이다. 만일 당장 이들 감각이 정상으로 돌아올 묘방이 있다면 내가 가진 무엇과라도 맞바꿀 게 틀림없다. 한편, 죽지 않고 살기위한 방편으로 먹어야 하는 고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몹시 야속하고 섧으며 떫을지라도 속수무책으로 미욱한 내 자신이 밉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기본적인 감각들이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며 사람을 초라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악몽 같았던 감염의 굴레를 벗어난 지 한 달이 훌쩍 지났다. 그럼에도 아직 마비된 채 제자리로 돌아올 기미가 도통 없어 근심이 한 보따리이다. 무엇인가 냄새를 맡으며 음식 맛을 음미하고 싶은 조바심을 외면할 수 없다. 끼니때마다 생각나는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거나 지난날 맛있었던 밖의 음식을 찾아 나서 봐도 번번이 실망을 거듭하며 허탈해 무척 마음만 무거워진다. 그럴 때마다 모두가 귀찮고 답답해 고개를 떨어뜨린 채 서성대는 내가 왠지 무척 낯설고 초라하기만 하다. 언제쯤이면 봇짐을 싸들고 매정하게 줄 행낭을 친 그들이 살며시 되돌아올지 모르겠다. 아무런 확신이 없음에도 외사랑의 끈을 놓지 못한 채 끙끙 앓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을 영영 잃을까봐 두려움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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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후유증(Long COVID) : 코로나19를 앓고 난 후유증으로 극심한 피로, 호흡 곤란, 흉통, 기침, 가래 같은 호흡기 증상을 비롯해서 기억력이나 집중력 저하, 브레인 포그(Brain Fog), 후각과 미각 변화나 마비, 관절통, 수면 장애, 불안, 우울, 빈맥 따위가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을 말한다.


한맥문학, 2023년 10월호, 통권 397호, 2023년 9월 25일

(2023년 7월 14일 금요





댓글목록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저는 아직도 냄새를 잘 못 맡아요. 기저질환자니 그런가 보다 해요. 코로나 걸렸어도 많이 아프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냄새를 잘 못 맡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