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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고향의 굴을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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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128회 작성일 23-12-3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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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던 굴을 향 한다

윤복순

 

얼굴이나 알아볼 수 있을까. 서로 통화를 하며 책 들고 있는 사람?” 이렇게 알아봤지만 가까이에선 바로 알아보고 끌어안았다. 그녀가 서울에서 용담으로 내려왔다. 댐이 만들어지고 조상대대로 내려오던 토지며 임야가 있어, 내려올 땐 곧 다시 올라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영부영 12년이 넘었단다.

지난 주 서울에서 여고 친구 두 명을 만났다. 졸업 후 취업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살림과 직장생활로 연락이 끊겼다. 내가 신혼 초 경제적으로 어렵고 주말부부를 하고 여유가 없어 연락을 안 했을지도 모른다.

고교 졸업 30주년 때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때는 시아버지가 대학병원에 입원중이어서 중간에서 나와 긴 이야기도 연락처도 받지 못했다. 특히 친하게 지내던 네 명은 참석도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 50주년이라고 연락이 왔고 카톡방이 만들어졌는데 나는 휴대폰이 없어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초등학교 동창이며 여중 여고 동창인 자가 있다. 자 남편과 내 남편이 친구여서 소식을 알고 지낸다.

자가 전화를 했다. 마침 손님이 있어 내가 전화하겠다고 끊었다. 전화번호를 찾을 수가 없어 약속을 지키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다. 나도 스마트폰을 장만했고 초등학교 카톡방에 초대받았다. 초등학교 시절 얘기를 어제인 듯 올려주는 동창이 있다. 마침 자가 답글을 올려 지난번에 전화 못해 미안하다고 번호 알려달라고 하고 내 번호도 알려줬다.

바로 뒤 내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라 받지 않았다. 약국전화가 울려 받으니 숙이다. 여고 졸업 30주년 행사 때 잠깐 얼굴 보고 찾지 못하고 있었다. 자가 숙이와 내가 친하다는 걸 알고 내 번호를 알려준 것이다. 올해 운수대통이다. 숙이와 통화할 수 있다니! 숙이도 옥이 전화번호를 모른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한 번도 못 봤단다. 어쨌든 팔방으로 찾아 셋이 만나자고 했다. 동창회도 나가지 않으니 연락처를 찾아내지 못해 끙끙대고 있었다.

약국 전화가 울렸다. “내 목소리 알겠냐?” “너 옥이지.”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까. 옥이는 자기 딸이 약사라고 나보고 중매하라고 한다. 숙이가 바로 카톡방을 만들어 날마다 지지고재지고 신났다.

익산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둘이 내려오는 것보다 혼자 올라가는 게 빨라 내가 올라가기로 했다. 난 촌뜨기라, 수서역이 복잡해 잘 만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수서 가는 SRT는 자주 없어 한 달 전에 예매해야 한다고 해 아들까지 동원해 차표를 구했다.

그리고 지난주 일요일,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가 수서역으로 마중을 나왔고 옥이와 숙이를 만나게 해 주고 갔다. 숙이는 너무 멋쟁이여서 금방 못 알아봤고 옥이는 학창시절 모습이 남아있다. 옥이와 숙이도 손들어가며 확인하고 알아봤다고 한다.

여고시절 특히 여섯 명이 친했다. 뭉쳐 놀고 도서관도 같이 다녔고 생물 선생님이 예뻐해서 과학실에서 같이 공부하곤 했다. 3명이 서울로 대학을 갔고 3명이 지방에 남았다. 두 명은 약사가 되고 한명은 의사가 되었다. 서울로 간 3명은 교사가 되었다.

그 중 한 명이 교수가 되겠다고 남편과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 뒤 소식을 모른다. 하나의 약사는 예쁘고 키도 크고 시집도 잘 갔고 약국도 잘한다고 했다. 찾고 싶어 지역 약사회에 전화해 약국명과 전화번호를 받았다. 마침 딸이 그 지역으로 발령을 받아 집을 구해주러 다니다 약국 앞을 지나게 되어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다음날 전화했더니 약국을 그만 둔다고 했다. 나는 생각도 못 할 때였다. 그리고 그해 여름 그 친구가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오십에도 죽는다는 게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쇼크였다. 아버지는 90을 바라보는 나이였고 식구들도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의사인 친구는 남편이 내 초등학교 동창으로 부부의사다. 내 약국에도 가끔 들렸었다. 그 친구가 남편과 같이 개원을 했고 그 애가 바빠서 만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내가 남편 아들딸이랑 시장을 보는데 그 애 남편을 만났다. “왜 혼자 다녀, 같이 다녀야지.” “, ㅇㅇ 미국 갔어.” “나한테 말도 없이.” “애들 공부시키러 갔어.” 그때 애들이 초등학교 1-2학년이었다.

, , 나 이렇게 3명만 남았다. 전화번호도 모르고 지내다가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이다. 숙이가 수서역에서 보듬고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몇 번을 말했다. 옥이가 의사 ㅇㅇ 얘기를 한다. 옥이 남편이 교환교수로 미국에 있을 때 옥이가 ㅇㅇ를 만났다고 했다. 시댁식구들이 부부의사니까 돈 잘 번다고 날마다 돈을 요구했고, 시동생이 병원 사무장을 하면서 수많은 돈을 빼돌려 부도가 났고, 친구가 제 남편 몫까지 다 떠안고 야반도주 하듯 미국으로 떠났다고 했다. 난 지금까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ㅇㅇ 는 초지일관 의사가 되고자 했다. 나는 전기대학 떨어져 후기인 약대에 갔다. 의사생활 몇 년이나 했을까, 말 수가 적었던 ㅇㅇ생각에 만남의 기쁨도 잊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친구가 미국에서 죽었다. 코로나19 , ㅇㅇ가 한국에 아들을 데리고 왔다. 3일만 있다 간다고 무슨 호텔이라고 연락이 와 옥이가 만났단다. ㅇㅇ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해맑은 얼굴로 나 난소암이야.” 라며 웃드란다. 죽기 전에 고국이 그리워 왔다간 것일까.

숙이 옥이 나, 살아 있어서 고맙고 만날 수 있어 고마웠다. 사는 것, 만나는 것, 밥 한 끼 같이 먹는 것,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 이렇게 값진 것인지 몰랐다. 친구라는 사람들이 몇 십 년 만에 만나서야 될까. 다음 달에 익산으로 내려오라고 하니 따뜻한 3월에 오겠단다. 건강할 때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자주 만나자 했다.

옥이가 1학년 때 짝꿍이었던 J 번호를 줘서 일요일 득달같이 용담으로 달려갔다. 그녀 집에서 용담호를 내려다보며 눈 호사, 서로를 알아주는 맘 호사 실컷 하고 왔다. 톨스토이는 한 해의 마지막에 가서 그해의 처음보다 더 나아진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라 했다. 친구를 찾은 것은 올해 최고의 소득이다. 17세의 소녀가 71세 할머니가 되었다. 엊그제 같은데 우리들이 고향의 굴을 바라보고 있다.

2023.12.11

 

댓글목록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2023년 잘 마무리 하시고 2024년 더 건강하고 더 즐겁고 더 행복합시다.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계묘년 좋은 글 많이 감상할 기회를 주셔서 대단히 감사했습니다. 다가오는 갑진년에도  좋은 글 많이 쓰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