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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청출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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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0건 조회 85회 작성일 24-04-15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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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


뭔가 혹은 누군가를 능가하는 경우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제자가 스승, 후배가 선배, 자식이 부모를 뛰어 넘는 즉 능가하는 것은 어느 모로 봐도 응원과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왜냐하면 스승이나 선배 혹은 부모가 갈고 닦으며 쌓았던 지식과 경험을 고스란히 전수받은 상태에서 더 높은 수준이나 경지로 도약을 했다는 긍정적인 결과라는 이유에서이다. 또한 이는 배움이나 교육의 본질적인 철학의 구현이며 날이 갈수록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징표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를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말이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본디 청출어람은 ‘제자가 스승을 능가하게 됨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던 말’로서 중국 순자(荀子)의 권학편(勸學篇)에서 유래 되었다. 처음엔 ‘청출어람이청어람(靑出於藍而靑於藍)으로 쓰이다가 세월이 자나면서 오늘날처럼 줄임말로 청출어람(靑出於藍)으로 표기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말과 동의어로 청출어람이청어람(靑出於藍而靑於藍)과 출람(出藍)이 쓰이고 있다. 한편 유의어로 출람지예(出藍之譽), 출람지재(出藍之才), 후생각고(後生角高) 등을 열거 할 수 있겠다.청출어람에 관련된 내용은 순자의 권학편 첫 머리에서 이렇게 시작된다. 


“군자가 이르기를(君子曰 : 군자왈) / 학문은 중단하면 안된다(學不可以已 : 학불가이이) / 푸른 빛(색)은 쪽(藍)*에서 취했을지라도(얻었지만)(靑取之於藍 : 청취지어람) /  그 쪽보다 더 푸르고(而靑於藍) / 얼음은 물이 변한 것이지만(冰水爲之) / 물보다 더더욱 차다(而寒於水)...../”고.


위의 내용에서 청출어람이 탄생했으며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자가 스승을 훌쩍 뛰어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원래의 뜻인 ‘푸른 빛(색)은 쪽으로부터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보다 더 푸르다’라는 의미를 의역(意譯)하면 이렇지 싶다. ‘학문을 끊임없이 갈고 닦으면 능히 스승을 능가하는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너무도 유명해 뭇 사람들의 입에 자주 회자(膾炙)되는 청출어람의 대표적인 예이다. 중국 북조(北朝) 북위(北魏) 사람인 이밀(李謐)이 처음 학문을 시작할 때 공번(孔磻)*을 스승으로 뫼시고 공부를 했다. 불철주야 학문에 정진하며 몇 년이 지나면서 이밀의 학문은 일취월장을 거듭해 스승을 능가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에 저명한 학자로 명성이 자자했던 공번이 더 이상 가르칠게 없다면서 되레 그(이밀)를 스승으로 삼겠다는 파격적인 청을 해 놀라게 했다. 전대미문의 상황을 지켜보던 주위의 지인들은 스승의 대단한 용기가 부러울 뿐 아니라 훌륭한 제자를 두었다는 맥락에서 청출어람이라고 칭송했다는 전언이다.


어쩌다가 대학에서 학문을 한답시고 31년을 머물다가 내려왔다. 지금은 그동안 연이 닿아 마주했던 수많은 학부생들의 얼굴이나 이름도 까마득하게 잊은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기백(幾百)에 이르는 석사과정을 지도했던 경우는 거의 또렷하게 기억하며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풍문으로라도 들어 얼추 꿰차고 있다. 오랫동안 얼굴을 맞대고 살아온 날들의 추억 때문일까. 박사과정을 함께 했던 경우는 여타의 경우보다 서로의 속내를 소상히 꿴 채 지낸다. 결국 대학에서 연을 맺었던 학부졸업생의 극히 일부와 석 • 박사 과정을 함께했던 제자들과 변함없이 교류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올해 여든의 대열에 합류했으며 퇴임 후 14년째에 접어 들어섰다. 때늦게 지난날을 돌아보니 천성적으로 모자라거나 매정한 성격이었던 것 같다. 지난날 나는 그리하지 못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제자들의 마음 씀씀이와 행동은 나를 부끄럽고 초라하게 만들기 충분한 청출어람의 본보기이다. 이들 중에 두 사례이다.


지난 80년에 입학했던 학부 1회 졸업생들은 거의 퇴직하고 초로(初老)의 길을 걷고 있다. 당시 유일한 여학생으로 1학년 때 공대 전체 수석으로 발군의 성적을 자랑했던 Y도 이제는 세 손주의 할머니로 현재 수원에 둥지를 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을 바랐는데 곧바로 결혼했다. 남편은 물리학을 전공한 S 박사로 서울의 K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하고 정년퇴임 했다. 제자 Y는 아내와 남편인 S 박사는 나와 띠 동갑이다. 이들 부부가 항상 나를 감동케 한다. 자기 가정에 인터넷으로 뭔가를 주문할 때면 의례적으로 우리 것도 함께 주문해 친정 부모님께 보내듯 하는 마음씨가 너무 황송해 이따금 Y에게 전화를 한다. “우리 집 살림 걱정 말고 자기 집이나 잘 챙기라”고. 그보다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S 박사의 심성과 마음 씀씀이다. 매년 한 차례 정도 Y가 우리 집을 찾아오는 길엔 언제나 S 박사가 동행한다. 자기 아내의 학부시절 은사라는 외에 나와는 학연이나 지연이 전혀 없는데 그리 행동하니 감동 그 자체이다. 나는 이제까지 아내의 은사 만나던 자리의 언저리에도 가봤던 적이 아예 없어 더욱 송구한 마음으로 늘 부부에게 큰 빚을 지고 살아가는 기분이다.


대학에서 석 • 박사과정에서 고락을 함께했던 제자 중에 대학에 적을 두었던 대부분은 퇴직을 했다. 그런 때문에 지금은 석사과정만 함께 하고 다른 대학에서 박사를 취득한 2명을 비롯해 박사과정까지 함께했던 3명 등 모두 다섯이 대학에 재직하고 있다. 특히 대학에 재직하던 제자들과는 다른 분야보다 더욱 직 • 간접적으로 얽히고 설켜 유대 관계가 끈끈하게 마련이다. 그런 특별한 경우 중에서도 배움의 과정에서 달랑 석사과정 2년 동안 연을 맺었었고 현재 수도권의 B 대학에 재직 중인 H 박사는 내게 여러 가지로 자성하도록 일깨워 주고 있다.


옹졸하고 부족한 때문이었을 게다. 감히 은사들께 한 번도 H 박사처럼 베풀어 보지 못했다. 물론 능력이 따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마음도 미치지 못했음을 이실직고해야 할 것 같다. 그는 전국 교수들의 학술모임 단체인 학회(學會)의 회장을 여러 차례 역임하면서 국내외에서 국제논문발표 학술대회를 많이 개최했다. 그 중에서 제주도(2회), 중국 청도(靑島 : Qingdao)와 일본의 삿포로(サッポロ)에서 개최 될 때 사비(私費)로 여행 경비를 자기가 몽땅 부담하고 초대했었다. 게다가 제주도와 청도에는 아내의 경비까지도 전담하여 초대해 할 말을 잃게 만들기도 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나는 내 은사들께 꿈도 꾸지 못했던 일로 청출어람을 자랑하려니 낯이 절로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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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藍) : 마디풀과의 한 해살이 풀로서 한자로는 남(藍(남) 혹은 람(藍)이라고 한다. 높이는50~60cm이며, 잎은 어긋나고 긴 타원형 또는 달걀 모양이다. 7~8월에 붉은 꽃이 수상(穗狀) 화서로 피고 열매는 수과(瘦果)를 맺는다. 잎은 염료로 사용된다. 중국과 인도차이나가 원산지로서 아시아와 유럽에 분포한다.

* 공번(孔磻) : 북조(北朝)의 저명한 학자였다.


시와 늪, 2024년 봄호, 제 63집, 2024년 3월 30일

(2024년 1월 28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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