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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두 해방둥이와 조우 - 한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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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1,334회 작성일 19-11-1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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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방둥이와 조우

 

대전과 함안(경상남도 함안군)에서 동갑 두 분과 만남 속에 하루해가 저물었다. 문예지 발행인이며 시인인 C님의 문병과 오랫동안 캄보디아에서 포교활동을 하다가 귀국하셔서 함안에 머무는 M스님의 만남이었다. 우연하게도 오늘 만났던 두 분은 을유생(乙酉生) 해방둥이로 나와 동갑이라는 동질성의 연()을 찾을 수 있다. 어제 저녁 무렵이었다. 시와늪 배회장의 전화였다. 함께 대전에 계신 C님 문병을 가지 않겠느냐.”. 기꺼이 동참하겠다는 약속에 따라 배 회장, K시인, G관장 그리고 나를 포함해 넷이서 오늘 아침 서둘러 길을 나섰다. 대전에서 C님의 문병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함안에 들려 M스님을 만나 해외 포교활동 경험을 비롯한 삶에 필요한 덕담을 청해 듣고 창원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서서히 드리워지며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문예지를 발행하며 시인으로 대쪽 같은 선비 정신의 표상이었던 C님의 편린과 만남이다. 어디선가 당신 스스로 밝혔던 이력에 따르면 젊은 시절 장교로 임관되어 국방을 위해 헌신했고, 교사로 봉직했던가 하면, 열정적인 사업가로서 활동을 하는 한편 시인으로 문예지를 창간하며 발행인 직책을 맡아 우리 문학 발전에 디딤돌 역할을 자임했던 지성인이다. ()를 묻은 대구에 뿌리 내리고 삶을 꾸려오다가 고희를 넘기며 두 가지의 모진 병치레를 하는 과정에서 아드님이 일터를 따라 똬리를 튼 대전으로 이주했다.

 

재앙은 번번이 겹쳐서 온다는 뜻으로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했던가. 불행하게도 C님에게는 고희를 넘어 연거푸 두 번이나 모진 병마가 쓰나미(tsunami)처럼 덮쳤다. 첫 번째 병마를 겪은 뒤에는 간간히 나들이를 했었다. 그러나 두 번째 고초를 겪으신 이후 몇 년 동안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어제 대전의 댁을 방문하여 겨우 상면할 수 있었다. 지금은 많이 쾌차해졌다고 하지만 무척 수척하고 거동이 불편해서 병색이 완연해 마음이 아팠다. 우리 일행과 점심식사를 위해 찾아갔던 음식점에서도 힘들어 쩔쩔매는 모습이 아직까지도 아른아른 거린다. 이제 겨우 일흔의 중반인데. 생각할수록 서글픔이 앞섰다. 그 모습은 동갑인 나의 또 다른 모습일 개연성 때문에 더욱 절절하게 다가 왔으리라.

 

온갖 번뇌나 욕심을 내려놓고 영혼이 자유로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때문일까. 세속의 연세나 법랍(法臘)의 연조를 고려할 때 큰스님으로 받들어 모심이 당연하련만 허업(虛業)같이 진부한 명예나 탐심을 미련 없이 벗어 내려놓고 낯선 외국으로 눈을 돌려 불법(佛法)을 펼치시는 열린 사고의 신봉자이며 매사에 거리낌이 없는 무애(無碍)M스님이다. 정처 없이 떠돌며 불법을 전파하는 고된 신역 때문일까 아니면 열악한 외국에서 녹록치 않은 포교활동의 힘겨움 때문일까. 오랜만에 마주한 스님의 표정이 조금은 지치고 어두운 모습으로 투영되었다. 게다가 평소 당뇨와 고혈압 증세로 지속적인 투약과 진료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럼에도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과 달리 또렷이 들려주는 말씀과 덕담은 힘차고 넓고 깊어 자세를 가다듬고 되새기게 만드는 기품에 절로 옷깃을 여몄다.

 

지금 시와늪에서 활동하는 해방둥이는 문예지 발행인이며 시인인 C, M스님, 장로이신 K시인을 비롯해 나까지 넷이다. 그런데 아직도 장년의 젊음이 부럽지 않은 건강을 자랑하는 K시인을 제외하고 나머지 셋은 나름대로 지병을 한두 가지씩 정성껏 모시고 살아가야 하는 맹랑하고 옹색한 숙명을 비켜 갈 묘책이 없다. 백세시대라는 데 겨우 올해 일흔 다섯에 자신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허둥대는 나약한 모습을 연로한 어른들이 보신다면 뭐라고 하실까. 이런 맥락에서 나도 내가 싫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신이 내린 축복이 그 뿐인데. 이따금 칠칠치 못한 해방둥이 넷이 다음 닭띠 해인 2029년 기유년(己酉年)까지 모두 문학 활동을 할 수 있을까?”라는 객쩍은 생각을 하다가 어이가 없어 쓴 웃음을 짓기도 한다. 이런 연유일까. 요즈음은 사진을 촬영하는 일이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진 속에 내가 아닌 옹고집쟁이를 빼닮아 자린고비 같은 낯선 늙은이 삐딱한 모습이 마냥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 대전을 거쳐 함안에 들렸다가 귀소 했던 여로였다. 이 나들이 길에서 스쳐 지난 곳은 마산의 변두리 길, 남해안고속도로, 구마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경부선고속도로, 대전의 남부순환도로, 대진고속도로, 함안읍 변두리 길 따위였다. 그들 모든 도로 변에는 한결같이 노란 꽃 일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도로 위를 달리던 순간에는 꽃 이름을 몰랐으나 귀가하여 인터넷을 들춰봤더니 금계국(金鷄菊 : golden wave)으로 한두 해 살이 풀로서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였다. 그러고 보니 그들 도로를 위시하여 전국 대부분의 도로변에 봄여름을 대표하는 꽃으로 폭군처럼 군림한 상태였다. 봄꽃으로 이보다 더 빼어난 대체 품종의 경쟁 상대가 없었던 때문일까 아니면 미적인 측면이나 경쟁력에서 다른 꽃을 일방적으로 압도하는 우성적인 유전자를 앞세워 점령군처럼 전국에 파죽지세로 뒤덮게 되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리송할 뿐이었다. 지나치게 노란 금계국 세상으로 변모된 모양새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이런 이유에서 다양한 종류의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울긋불긋한 꽃 대궐을 이루는 장관을 그리다가 자꾸만 고개가 꺄우뚱해짐은 비정상적인 심사의 발로일까?

 

이태 전 일이다. 어떤 문예지 신인상 응모자 중에는 을유생 닭띠로서 심사자보다 12살 위인 계유생(癸酉生)으로 여든 다섯이라는 연세의 625 참전용사가 계셨다. 그런데 글의 구성이 빼어날 뿐 아니라 생각이 젊고 진취적이며 시간적으로는 옛과 현대를 아우르고, 공간적으로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작품이라서 기꺼이 해외부문 당선자로 선()하여 정중한 심사평을 썼던 적이 있다. 이런 견지에서 생각할 때 을유생 해방둥이들은 앞으로 10년 뒤인 2029년에 겨우 여든 다섯에 들어선다. 비록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다소의 문제가 있어 한두 가지의 병을 신줏단지처럼 떠받들고 살지라도 올곧게 삶을 꾸리며 건강을 여툰다면 다음 닭띠 해엔 넷이 그동안 삶을 우려낸 걸출한 작품으로 시와늪을 빛 낼 수 있지 않을까? 무정한 세월과 천지신명께 곡진한 심정으로 빌고 싶다. 골골거리는 해방둥이 넷이 서로 의지하고 글밭지기 동도로써 울력을 보태며 알콩달콩 동행하면서 글 농사를 옹골지게 지을 수 있도록 은전을 베풀어 달라고 말이다.

 

시와늪, 2019년 가을호, 통권45, 20191010

](201964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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