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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실수와 동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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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975회 작성일 20-06-02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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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와 동거

 

제아무리 생각해도 부끄러워 얼굴을 들기 힘든 실수 얘기이다. 선친(先親)이 세상을 뜨셨을 때의 일이다. 여러 지인들이 정중한 조의를 전해와 고마운 마음에서 답신을 보내기로 했다. 해서 인쇄소를 찾아가 내 경우에 맞도록 인사장을 만들어 달라는 조건을 제시하고 인쇄를 맡겼다. 그리고 며칠 후 찾아다가 경향 각지로 발송했다. 그런데 달포쯤 지나 후배 하나가 자당(慈堂)께서 언제 별세하셨느냐고 물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망발일까 의아한 눈초리를 한 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후배가 자초지종을 들려줬다. 선친의 장례 뒤에 보냈던 인사장 말미에 분명히 고애자(孤哀子)”로 표기 되었다고 했다. 오호통재라. 왜 지극히 상식적인 사실을 왜 걸러내지 못했을까. 어찌되었던 내 스스로 양친을 모두 여읜 사람임을 선언하는 얼토당토않은 남우세스러운 짓으로 칠갑을 한 꼴이었다. 선친 상()을 당했기 때문에 당연히 고자(孤子)”로 표기되어 있으려니 생각하고 문안 내용의 확인도 없이 덜컥 발송했었다*. 하기야 어디 그 뿐일까. 이 외에도 내가 펴낸 다양한 책속에 지뢰처럼 납작 엎드려 웅크리고 있는 오자나 탈자 문제는 아예 눈 감고 아옹 하는 낯 두꺼운 강심장이기도 하다. 자신의 일임에도 그런 중대한 실수를 걸러내지 못한 함량 미달인 나의 눈에 남이 한 실수 흔적이 숱하게 띄니 신기할 따름이다.

 

내 실수에는 이런저런 핑계를 둘러대며 한사코 발뺌을 하며 합리화시키려고 기를 쓴다. 그에 비해서 남의 실수에는 가차 없이 지적하거나 인정하려 들지 않고 매정한 편이다. 이런 경우를 내로남불이라고 하는 것인가. 예로부터 해와 달은 모든 사물을 공평하게 비춘다는 뜻으로 일월무사조(日月無私照)라 일렀거늘. 대학에서 중간고사나 학기말고사 답안지에는 반드시 교수 이름을 쓰는 란()이 있는데 이는 같은 과목을 여러 교수가 분담해서 강의할 때 초래 될 혼란의 개연성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내 이름이나 성을 틀리게 쓰는 학생에겐 절대로 후한 성적을 준 적이 없다. 교수 이름이나 성을 제대로 모르는 학생은 좋은 성적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그런 이유로 성적을 야박하게 줘도 항의하는 학생은 없어 다행이었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한편 오래전 어느 유명한 수필가가 자기 출판기념회를 알리는 편지 겉봉에 박판암이라고 써서 보내왔었다. 이는 단순한 실수라기보다는 저승에 계신 내 어머니를 욕 뵈는 중차대한 처사라고 여겨 그 출판기념회에 참석은 고사하고 그 후 연락마저 두절한 상태로 지내기 때문에 절교한 셈이다.

 

경자년 일정의 첫걸음은 새해의 소망을 담은 타종식(打鐘式)에 참석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시와 늪문우 여덟이 밀양의 영산정사(靈山精寺)를 찾아 곡진한 소망과 건강을 염원하며 타종했다. 타종 후에 이 절의 자랑거리인 7층의 성보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겨 둘러봤다. 점심을 마치고 무안에서 창원 마금산 온천 쪽으로 십 리 가까이(3.5km) 달리다가 창녕 남이(南怡) 장군의 충무사(忠武祠)와 기념관(창녕군 부곡면 구산학포로 425)’을 찾았다. 한편 충무사 관람을 마치고 수산제(守山堤 : 경남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를 둘러봤다. 게다가 창원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용지호수에서 시와 늪 문우들이 개최했던 시화전의 시화를 철거하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새해 첫날 무척이나 다채로운 하루였다. 그러나 과연 보람되고 의미가 있었는지 곰곰이 반추해 봐야겠다. 아무리 곱씹어도 일정에 쫒기며 허둥댄 모양새였다.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나름대로 밥값을 한 경우도 있지 싶었다.

 

첫 번째로서 성보박물관 입구에서 일이었다. 웬일인지 왼쪽에 하얀색의 플라스틱판에 까만 글씨로 새겨진 내용이 클로즈 업(close up) 되었다. 이 박물관 4층에 전시된 고불서(古佛書)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345호로 지정되었다는 표현을 문화 제345라고 엉터리로 표기하여 문화재 제345로 바로 잡아야 했고, 3층에 사리 전시관세계 기네스북 등제로 오기되어 세계 기네스북 등재(登載)’로 수정해야 함을 관리 담당자에게 존조리 설명해 주었다.

두 번째 일은 충무사 입구 방명록이 비치된 충의문에서 일이었다. 분명 그 문()의 현판에는 한자로 忠義門으로 쓰여 있는데 방문자들을 위해 제공되는 리플렛(leaflet)에는 버젓이 한글로 충무문이라고 인쇄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후손인 후원회장이나 N시인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분들에게 알려주며 수정 방법도 귀띔했다.

 

세 번째는 시와늪 문학관에서였다. 어둑해져 환하게 전등을 밝히고 모두가 회의에 열중할 때였다. 나는 정식으로 회의에 참가할 멤버가 아니라서 한쪽으로 비켜서 이것저것 뒤적이던 순간 어떤 교회의 소식지가 눈에 띄었다. 신기해서 몇 장을 넘기다가 어떤 분이 기고한 성경과 한자라는 글과 마주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자라는 단어를 漢子로 표기하고 있었다. 바른 표기는 漢字일 터인데.

 

우리는 비범한 존재나 대덕고승이 아니기에 삶을 누리면서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실수의 잔재들과 뒤엉켜 어정쩡하게 동거하는 혼란스러운 지경에 빠져들어 둔감해진 채로 사는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동안 우연찮게 이런저런 잘못의 흔적들과 조우했던 것처럼 매 순간의 삶에서 사소할지라도 쓸모 있는 것을 들춰낼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이 있다면 오죽이나 좋으랴. 이 같은 맥락에서 올해는 비록 작을지라도 매사를 꼼꼼하게 살피고 생각해 허투루 지나치거나 실수를 범하는 어리석음에서 자유로워지길 간원한다. 그렇지만 차분하거나 신중하지 못해 덤벙대는 천성에다가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집념이 무던히도 무른 터수에 새해 원단(元旦)의 바람을 제대로 갈무리해 지켜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연유에서 체면치레를 위해 같은 말이나 글이라도 한 번 더 반복해 되새김 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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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자(孤子)아버지의 상중(喪中)에 있는 사람이 자기를 이르던 일인칭 대명사이다. 한편 애자(哀子)어머니의 상중에 있는 사람이 자기를 가리키는 일인칭 대명사이다. 그리고 고애자(孤哀子)어버이를 모두 여읜 사람이 상중(喪中)에 자기를 이르는 일인칭 대명사이다.

 

202011일 수요일


댓글목록

남창우님의 댓글

남창우 작성일

실수는 평생 하는 거 아닌가요? 교수님?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교수님, 지나온 세월 교수님 책을 만들면서 저질렀던 많은 실수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릅니다.^*^
어느 수필가님 책에 한 자 하나 잘못 써서
책 전체를 다시 찍었던 때도 있었군요.
실수 하면 아마 저만큼 많이 한 사람도 드물지 싶습니다.^^

교수님, 날씨가 더워졌습니다. 날마다 건강 잘 챙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