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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반보기와 만날제 - 한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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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1,421회 작성일 19-11-1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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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보기와 만날제

 

만날제 시원(始原)은 반보기(--)이다. 매년 음력 팔월 열이렛날 월영동 경남대학교 뒤편의 만날고개에서 펼쳐지는 만날제 뿌리는 그 옛날 반보기 풍습을 현대식으로 승화시킨 문화축제이다. 그런데 반보기는 전국적인 풍습으로 마산 인근에도 유사한 여럿이 있다. 창원 북면의 백월산, 장유의 반룡산 시루봉, 창원 북면과 동면 경계인 구룡산, 창원과 진해 사이 안민고개 따위가 대표적인 반보기 장소라는 귀띔이다. 이 만날제 사연의 대강은 이렇다.

 

옛날 옛적 마산포(馬山浦)에 매일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무척 가난한 양반 댁 규수가 고개 넘어 감천골에는 천석꾼인 진사 댁의 외아들로서 노총각인 반신불수에 벙어리와 어렵사리 혼인을 했다. 하지만 시부모의 학대가 극심했다. 그런 자기 아내에게 도움이 될 수 없는 자신의 무능을 탓하다가 자진(自盡)으로 생을 마감해 청상이 된 과수댁이 어느 해 팔월 열이렛날 친정 소식이 그리워 몰래 멀리 친정이 보이는 고개에 올라갔다. 지성이면 감천이고 이심전심으로 통했던가. 마침 친정어머니와 동생들도 그리운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역시 고갯마루를 찾아 왔다가 감동적인 해후를 했다. 그 이후 매년 음력 팔월 열이렛날이면 한 많은 젊은 과수댁과 친정 식구들이 만나게 되었는데, 이 고개를 후세 사람들은 만날고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 만남은 전형적인 반보기이다.

 

농경문화가 지배하던 시절 8월 한가위 무렵에 급한 농사일을 마무리 짓고 짬을 내서 출가한 딸과 친정어머니가 시집과 친정 중간 지점에서 만나 회포를 풀고 저녁이 다가오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던 애틋한 풍습이 반보기의 원형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만남의 형태는 다양하게 바뀌었다. 이 만남은 당일치기이기 때문에 요즘 군대에서 잠시 밖에 나갔다가 귀대하는 외출에 해당하며 달리 부를 때 중로상봉(中路相逢), 중로보기(中路--)라고도 부른다.

 

예로부터 출가한 딸이 친정에 가서 친정 부모님을 뵙는 것을 공식적으로 허락하던 근친(覲親)이 있다. 이는 며느리에게 주는 특별한 포상휴가인 셈으로 추석명절에 빠질 수 없는 풍속 중의 하나였다. 전통사회에서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는 말이 통용되었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때 출가한 딸이 평상시 친정과 교류를 거의 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추된다. 또한 처가와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고리타분한 속담은 사돈 사이에 교류가 뜸해 상호 방문이나 왕래가 드물다는 얘기가 성립하지 싶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들 사상은 유교적 윤리관이나 가치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분석이다. 어찌되었든 그 옛날 여성의 외출 자체를 삐딱하게 여겼기 때문에 며느리의 친정 나들이마저도 자린고비처럼 인색했던 게 아닐까. 아울러 농경사회에서 며느리는 가사와 함께 농사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왔던 까닭에 농번기에 함부로 외출을 한다거나 며칠씩 집을 비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복합적 요인 때문에 잠깐 동안의 외출이나 오랜 기간의 출타를 금기시했으리라. 그래서 기껏해야 명절, 친정부모의 생신이나 제삿날 정도만 근친을 보내는 게 보편적인 습속으로 굳어졌을 법하다. 원래는 혼인 뒤에 맞이하는 첫 명절에 며칠간 친정에 보내는 것을 근친이라고 불렀다. 근친 길에는 가정 사정이 넉넉할 경우는 의복과 버선 따위를 준비하고 거기에 더해서 햇곡으로 술이나 떡을 빚어 갔다. 하지만 형편이 옹색한 가정에서는 술과 떡만을 준비해 갔다. 한편, 친정에서 시댁으로 돌아올 때도 만찬가지였다.

 

형편없이 빈한하거나 돌발적인 사정이 생기는 경우를 비롯해 시댁이 괴팍하거나 깐깐해 근친이 어려울 경우 반보기로 회포를 푸는 방법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시댁과 친정에서 미리 서로 연통하여 날짜를 정하고 양쪽 집의 중간 지점의 고갯마루, 시냇가, 징검다리, 나루터 따위에서 친정어머니와 출가한 딸이 만나는 풍속이라는 전언이다. 모녀가 만나서 나름대로 정성들여 만든 음식을 들며 정담을 나누다가 해질 무렵엔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애끓는 풍습이었다. 반보기는 원래 그리움의 해소라는 맥락에서 출가한 딸과 친정어머니의 비밀스런 만남이 원형이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안사돈 사이의 교류, 동년배 사이의 교류, 지역 간 공동체 교류의 장으로까지 발전했다. 지금은 동창생들의 모임이나 친소관계에 따른 동년배 모임 등의 반보기 행사까지 있다. 아울러 군대로 치면 당일치기 만남인 반보기는 외출에 해당하고, 근친은 온보기로서 특별 포상휴가와 모양새가 흡사하다.

 

전문가들의 얘기이다. 근친과 반보기는 시집살이가 일반적인 가족생활로 정착한 조선 후기 이후에 풍속이라는 견해이다. 결국, 사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 시집살이가 정착하면서 며느리가 친정에 가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아 암묵적으로 기피해 오지 않았을까. 이런 사회적 관습이나 조선 시대 혼례에서 친영례(親迎禮)가 강화되는 등 유교적 성향이 짙은 가족제도 때문에 생겨난 풍속이라고 이르고 있다.

 

디지털문화의 흐름이 도도한 지금이다. 그 옛날 문화의 부스러기인 근친이나 반보기는 그 시절 여성들에게 불평등한 풍속임에도 숙명처럼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켜켜이 쌓이는 한을 끙끙 앓으면서도 태연자약한 척하며 속으로 삭혔을 터이다. 그런 풍속이 작금에는 가족 제도가 바뀌었을 뿐 아니라 사회적 통념이나 철학이 변했기 때문에 그 원형은 사라졌다. 한 가지 위안은 인터넷의 지식백과 따위에서 반보기는 8월 추석 이후 농한기에 여성들이 일가친척이나 친정집 가족들과 양쪽 집의 중간 지점에서 만나 회포를 푸는 풍속이라며 낱낱이 기록으로 보존함으로써 그 흔적을 세세히 더듬어 볼 수 있어 다행이다. 그렇다 손치더라도 본래의 반보기 풍속이 첨단문화의 거센 파고에 묻혀 화석으로 변해 허전한 기분이다. 하지만 오늘날 고향을 등지고 떠난 현대판 디아스포라(diaspora)들이 고향을 찾는 대신 적당한 지점에서 만나서 회포를 푸는 모습을 비롯하여 동창이나 뜻을 함께하는 동도들이 모이기 편리한 장소에 집결하여 펼치는 모꼬지 등은 새로운 반보기 유형과 조우하는 것 같아 무척 반갑다. 이런 연유에서 그 옛날 반보기 유전자(DNA)는 현대사회에 걸맞게 변형하며 진화한 걸까.

 

마산사랑, 꿈을 키우다, 마산문협사화집 제6, 2019,1030

(2019225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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