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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시부와 가사도우미 - 박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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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880회 작성일 19-11-19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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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와 가사도우미

 

  오전 아홉 시였다. 귀가 안 들린다는 시부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아침에는 기운이 없어 일어나기가 어렵다는 노인이 이 시간에 어딜 가셨지? 독단적인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불안하다. 노인이 또 시간차 타고 병원에 간 건 아닐까. 서둘러 시댁에 내려갔다. 시부는 계셨다. 전화벨 소리를 못 들었단다. 양쪽 청각이 먹통이다. 바로 앞에서 하는 말은 대충 알아듣는데 조금 떨어져 하면 못 알아듣는다. 무엇보다 전화를 해도 상대방의 말을 거의 못 알아듣는다. 시댁에 간 김에 밖에 냉장고를 청소했다. 어제 전기콘텐츠를 뽑아 두었었다. 어머니는 다시 시댁으로 돌아올 가망이 없다. 어머님이 챙겨두신 것들,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것들을 몽땅 버렸다. 콩이며 녹두, 서리태, 무말랭이, 도라지, 대추 등등, 쓸만 한 것은 갈무리 해 놓고 오래 된 것들은 과감하게 버렸다.
 

  “거거 다 물긴데 와 내삐. 너어 놔라.”
 

  호통소리가 들린다. 어머님이 구부러진 허리로 유모차에 의지해 보고 계시는 것 같다. 평생 아끼고 절약하고, 모우고만 사신 어른이다. 부지런하시고 손끝 매운 어른이라 일솜씨 살림솜씨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야무진 어른이다. 그 어른이 이제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기 어렵다. 누군가 24시간 간병을 해 주지 않는 한 집으로 올 수가 없다. 병원에서 다시 요양병원으로 아니면 요양원으로 옮겨 갈 수밖에 없다. 마음 같아서는 옴마, 집에 가자.’하고 싶지만 시부가 계신 집에 와도 시모는 편할 수가 없다. 두 노인이 누워있는 꼴을 나 역시 더 이상은 못 보겠다. 사사건건 당신 고집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시부를 보는 것도 자리보전하고 있어도 시부 눈치 보며 불편해 할 시모도 더는 감당할 수 없다.
 

  어제 오후에 시모를 뵙고 담당의사 면담을 신청했었다. 환자가 밀려서 면담신청이 자꾸 늦어지고 있었다. 시모 옆에 있다가 아무래도 오늘 중으로 면담이 어려울 것 같아 아예 담당의사의 진료실로 찾아갔었다. 간호사에서 부탁을 했다. 시부를 다른 병원에 모시고 가기로 예약이 되어 있는데 시간이 초과되었다고. 잠깐 만나고 나오겠다고. 그렇게 해서 의사를 만났다. 시모의 병세는 호전 기미가 없다. 시모가 혈변을 보는 바람에 위내시경을 했고, 혈액이 모자라 수혈을 하고 있었다. 수혈하고 기운이 조금 돌아오면 대장내시경을 해야 한단다. 중환자가 대장내시경을 견디겠느냐고 물었다. 일주일 정도 몸 상태 봐가며 해야 한단다. 혈변의 원인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앞으로 시모가 얼마만큼 회복될 가능성이 있냐고. 의사는 회복될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더 나빠질 것이란다. 경동맥에 스텐트 뇌시술 후유증도 올 것이고, 알츠하이머 치매도 이미 많이 진행된 상태란다. 죽음을 향해 가는 시모의 눈빛은 고요했다. 이미 싫어. 집에 같은 간단한 언어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시모, 얼마나 답답하실까. 하고 싶은 말이 있을 텐데. 평생 입 다물고 속엣말 못하고 사신 어른인데 말이라도 시원하게 할 수 있음 오죽 좋을까.
 

  그렇게 시모를 두고 시부를 모시고 다른 병원 이비인후과에 갔었다. 며칠 전부터 양쪽 귀가 다 안 들린다고 보청기 타령을 했다. 당신 고집대로 해야 하니 방법이 없다. 며칠 말미를 가지자면 또 당신 혼자 일을 벌일 게 뻔하다. 지난번 전기선 사건처럼 헛돈 쓰신다. 보청기를 해 드려야지. 그렇게 해서 시부도 모시고 갔었지만 진료를 받을 수 없었다. 청각장애 진단서를 받으려면 절차가 복잡했다. 면소 복지과에 전화를 해서 물었더니 등급 받는 것만 해도 몇 개월이 걸린단다. 시부 성격에 단 일주일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처지라 포기했다. 돈이 들어도 할 수 없다. 노인이 원하는 것을 해 드리는 수밖에. 며칠 말미를 가지려고 했지만 아침에 전화를 받지 않으니 내가 더 답답했다. 노인의 안위는 하루밤새 안녕이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시댁 냉장고 청소를 하며 시부의 말씀에 답을 하려니 내 목이 더 아팠다. ‘뭐라고? 머라쿠노?’ 자꾸 묻는 바람에. 귀가 안 들리니 노인인들 오죽 답답할까. 안되겠다. 쇠뿔은 단김에 빼라 했다. 어차피 돈 들여 할 것인데 농부가 힘들어도 할 수 없다. 집에 오자마자 농부에게 오후에 시부를 모시고 나가 보청기를 맞추어드리는 게 낫겠다고 했다. 농부는 바빠 죽겠는데 또 진주를 가라고? 읍내에서 안 하시겠데? 산에 풀도 쳐야 하고 기계손도 봐야 하는데. 화를 버럭버럭 낸다. 주문한 단감 박스 오는 날이라 새벽부터 창고 정리하느라 진땀 빼는데. 마침 단감박스를 실은 농협 트럭이 도착했다. 그동안 농부가 정신없이 바쁜 농번기에는 시부나 시모를 모시고 병원 나들이 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었다. 오늘도 농부는 내가 갔으면 하지만 장거리 운전에 자신 없다.
 

  “난 안 되겠어. 어제 온종일 차타고 걸었더니 만신이 다 아파. 당신이 다녀올 수밖에 없어. 안 되면 주말에 아주버님이 병원에 오신다니까 집에 와서 아버님 모시고 가서 보청기 맞추라고 하든지. 그 동안 아버님이 가만히 안 계실 것 같아 문제지만. 이번에는 나도 괌 지를 거야.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느냐고 해 버릴 거야. 아버님이 생활비 주는 것도 아니면서 농사도 못 짓게 하냐고 쏘아버릴 거야. 그치, 당신 아버지 진짜 이기적이지? 어제 말이야. 어머님 수혈한다고 난리치고 옛날부터 환자가 혈변 보면 죽는다고 당장 집으로 모시고 오라고 난리칠 때 내가 그랬잖아. 아버님이 어머님 간병 할 거냐고. 그러면 모셔다 드리겠다고. 했더니 조용하데. 오늘도 그래볼까? 귀 좀 안 들린다고 죽지 않으니까 좀 참으시라고 할까?”
 

  내가 너스레를 풀자 피식 웃는다. 점심을 먹고 농부는 시부를 모시고 또 진주로 향했다. 읍내 보청기 점에서는 안 하시겠니 할 수 없지. 늦은 저녁에 농부는 파김치가 되어 돌아왔다. 병원에 가서 이비인후과 진료도 했단다. 보청기 전문점 여러 곳을 다녔지만 결국 시부가 택한 곳은 처음 갔던 곳이란다. 시모 병원비도 만만찮은데 시부는 좋은 보청기를 원하신다. 보청기 가격이 백에서 이삼 백까지 하는 줄 몰랐다. 시부의 청각은 장애 진단을 받을 정도로 낫게 나왔다. 한쪽 귀는 진작 어두워졌지만 남은 귀마저 급속하게 상태가 나빠질 줄이야. 암튼 한 가지 일은 해결돼 시원하다. 일주일 후에 보청기가 도착한다니. 농부 역시 귀가 어두워지고 있다. 노인이 되면 모든 몸의 기능이 약해지는 것이 정상적인 흐름이지만 쓸쓸하다. 우리도 이미 노화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그나저나 농부 일이 큰일이다. 일꾼을 대서라도 감산 풀부터 베야 하는데. 아버님께 일꾼 삯 달라고 할까? 일꾼 삯이 문젠가. 일당 챙겨 받아도 모자랄 판에 완전 공짜로 비서에 운전기사로 부리는데 어떻게 계산해서 받을까. 궁리 좀 해 봐야겠다. 막상 시부 앞에서는 돈 이야기는 한 마디도 못하는 주제에. 나도 참 한심하다. 시부 가사도우미가 굵은 멸치, 잔멸치 다 떨어지고 커피도 없다기에 사라고 했다. 사다가 드리고 시부에게 돈 받으라고 했다.
 

  “며느리가 사다 주면 돈 안 주지만 남이 사다주면 철저하게 챙겨주시는 어른이니 부탁해. 마이너스 통장이 쑥쑥 구는 중이야. 간이 덜컹덜컹 해. 빨리 단감 돈이 나와야 좀 살 것 같은데. 두 노인 때문에 수확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되는 대로 해야지 별수 없잖아. 자기가 많이 도와줘서 진짜 고마워. 담에 맛난 거 사 줄게.”
 

  그녀가 왠지 편하고 의지된다. 남의 서방 살 빠지는 것이 왜 그렇게 불쌍한지 모르겠다는 착하고 인정스런 그녀가 오늘따라 인생 선배 같다. 시부는 확실히 노후 복은 타고 났나보다. 노인 모시기 잘 하는 간병인을 만났으니. 시모가 병원과 집을 들락날락 하자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요령껏 꼬여서 시부를 장기요양 등급을 받게 했었다. 시모가 병원으로 간 후 구월 초부터 시부의 가사도우미로 오게 된 그녀는 시모의 가사도우미였다. 바통 탓치는 확실하게 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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