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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목서의 계절 - 윤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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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1,012회 작성일 19-11-1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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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서의 계절

윤복순

 

가을은 목서의 계절이다. 어느 해 그 꽃과 향을 보기 위해 중국 계림에 갔다. 계수나무의 꽃이 10월에 피고 그 향이 천리만리까지 간다고 하여 천리향 만리향 이라고도 불린다. 계림은 계수나무가 숲을 이루고 온 거리는 그 나무가 가로수일 거라고 내 맘대로 상상을 했다.

꽃이 만개한 시내는 샤넬 No 5의 향으로 가득할거라고, 그 꽃은 또 얼마나 매혹적일까 혼자서 마냥 행복했다. 아마도 10여 년 전 운남성 토림에서 본 봉황 꽃처럼 화려하고 큰 꽃을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보니 향도 꽃도 눈에 띄지 않을 뿐 아니라 가이드도 계수나무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어디 가야 계수나무를 볼 수 있을까. 꽃과 향은 고사하고 나무 설명도 없다. 현장에서 큰 감동을 얻기 위해 인터넷에서 찾아보지도 않았으니 나무도 모른다. 그냥 신비의 나무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그야말로 달나라에 사는 나무다. 그 나무만 봐도 횡재인데 꽃과 향을 볼 수 있다고 해 10월에 맞춰 간 것인데.

계수나무의 꽃과 향 때문에 왔다고, 가이드에게 물었다. 시기적으로 조금 늦었는데 어디든 가다 보이면 알려주겠다고 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어느 밭가에서 나를 불렀다. 꽃이 나뭇잎 속에 숨어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기저~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두세 꽃잎이 붙어있다. 천 리 간다는 향은 바로 밑에서도 맡은 수 없다. 다 지고 끝물로 남은 것이었다. 몸을 비틀어가며 보았지만 보람은 없었다.

계수나무의 꽃과 향에 대한 갈증에 아쉬움만 더했다. 기대나 하지말 걸. 돌아와 계수나무를 검색해 보니 금목서 은목서가 나온다. 우리나라의 남부지방에도 있다. 목서는 물푸레나무의 한자식 이름이다. 목서의 가지를 꺾어 물에 담그면 물이 푸르게 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황금색 꽃이 피면 금목서, 흰색 꽃이 은목서다. 계수나무는 은목서다. 중국에서는 향기 있는 나무엔 계()자를 붙인다고 한다.

진도 여행을 갔다. 신비의 바닷길, 용장성, 이충무공 전첩비, 운림산방 등을 둘러봤다. 운림산방에서 나무에 이름표를 달아 놓았는데 금목서 음목서가 있다. 다 잊은 줄 알았는데 계림 생각이 나서 유심히 관찰해도 꽃은 보이지 않았다. 11월 중순의 어느 따뜻한 날이었다.

세월이 흘러 계수나무도 금목서도 은목서도 다 잊혀졌다. 그런데 101일 달빛소리수목원에서 금목서 은목서 축제를 한다고 후배가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얼마만인가. 앞뒤 잴 것도 없이 따라나섰다. 입구에 들어서니 먼저 코가 행복했다. 나무는 아직 보이지도 않는데. 정말 천리향이 맞다.

조금 올라서니 금목서가 그 이름값을 하느라 황금빛의 꽃을 자갈자갈 달고 보무도 당당하게 죽 서있는 것이 아닌가.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마음이 달뜨고 몽롱해졌다. 나도 모르게 우와 우와 탄성이 나왔다. 자그마치 500여 구루가 자기 먼저 봐달라고 아우성이다. 꽃이 잘아서 마치 좁쌀 같은 열매가 달려있는 것 같다. 후배에게 계림 가지 말고 여기서 실컷 보라고 했다.

금목서가 양쪽으로 죽~ 서 있는 좁은 길을 걷는데 나는 여왕이라도 된 듯 했다. 걷는 길에 황금을 깔아 놓았는데 향까지 천상의 향이지 않은가. 그 길이 꽤 길었다. 최상의 상태를 군락으로 볼 수 있다니! 대단한 행운이다.

다음 날부터 태풍이 오고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다. 그래서 후배가 서둘러 그 날 데리고 간 것이다. 이 예쁜 것들이 미처 자랑도 제대로 못하고 다 떨어지고 향도 다 날라 갈 것을 생각하니 아쉽고 서운해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은목서는 금목서 보다 개화 시기가 늦다. 그날 은목서는 어쩌다 하나씩 피었고 꽃망울이 맺혀 있었다. 이 꽃도 무리지어 피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길 바랐다. 금목서가 10월 초순이 절정이라면 은목서는 중하순이 절정이다. 물론 기후 등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황홀함이 일주일 이상 갔다. 약국에서도 눈만 감으면 황금 꽃이 망울망울 보였다. 숨을 쭉 들이쉬며 향을 음미했다. 샤넬향이 온 몸을 감싸듯 콧구멍이 벌어지고 얼굴엔 미소가 번지고, 목이 길어지며 내 몸이 붕 뜨듯 도취상태에 빠졌다. ~~ 콧노래가 나오고 진저리가 쳐졌다. 누군가가 봤다면 약사 왜 저러지?” 수군수군 했을 것이다.

이리저리 시간에 쫒기다 오늘 수목원을 찾았다. 금목서는 우리가 다녀간 다음날 비바람에 다 졌다고 한다. 지난 번 같이 진한 향은 아니지만 은은한 향이 살짝 꽃 멀미를 하게 했다. 은목서 군락 쪽으로 올라갔다.

은목서도 꽃이 다 지긴 마찬가지다. 몇몇 구루가 나를 위해 꽃을 몇 송이 달고 있다. 떨어진 꽃잎이 길바닥에 고스란히 모여 있다. 수북이 쌓인 하얀 꽃잎 꽃잎들... 그 모습이 예뻐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사진을 찍었다. 어린 꽃봉오리 보다 더한 아름다움에 한참을 바라보다 가만가만 박수를 보냈다.

아무래도 계수나무 꽃과 나는 인연이 적은가 보다. 내년 은목서가 꽃을 다래다래 달고 있을 때를 기대하며 발걸음을 돌렸다.

 

2019.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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