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출판사

뉴노멀 시대 > 자유창작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고객센터
상담시간 : 오전 09:00 ~ 오후: 05:30
(주말 및 공휴일 휴무)
02.2612-5552
FAX:02.2688.5568

b3fd9ab59d168c7d4b7f2025f8741ecc_1583557247_0788.jpg 

수필 뉴노멀 시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1,034회 작성일 20-07-04 19:26

본문

뉴노멀 시대

윤복순

 

코로나바이러스팬데믹 이후 일요일 늦잠 자는 버릇이 생겼다. 그전엔 더 일찍 일어나 새벽열차를 타고 여행을 다녔는데 이놈 때문에 꼼짝을 못하니, 토요일 늦게까지 TV를 보고 일요일 늦잠을 잔다. 여유를 즐기는 것 같아 그리 나쁘지 않다.

식사를 거르고 잠만 자면 기운 떨어진다고 남편이 아침 준비를 해 놓고 깨운다. 밥 먹고 또 자란다. 평일엔 새벽에 1시간 30분 운동을 하고 출근을 하려면 정신없는데 일요일에만 누리는 여유가 맞다. 밥 먹고 뒹굴뒹글하다 잠이 들기도 한다. 진품명품 시간에 맞춰 일어난다. 눈곱만큼 아는 것을 총동원해 인형퀴즈를 맞추고, 감정가격을 유추해 보며 모르는 것을 배운다. 눈 호강을 하는 시간이다.

끝나는 시간에 점심을 먹고 서둘러 함라산에 간다. 둘레길은 경사가 완만해 4계절 내내 걷기에 좋다. 눈이 쌓여도 비가 내려도 위험하지 않다. 금강이 내려다보이고 골프장도 있다. 특히 요즘엔 나무들이 울창하게 우거져 그늘을 만들어 준다. 편도 9Km 왕복 18Km를 걷는다. 그 동안 햇빛이 나는 구간은 20분도 안 된다. 나의 보험이다.

판박이 같은 일요일이 몇 달째다. 우리 집에 다른 사람이 왔다간 지가 얼만지 모르겠다. 아들딸도 동생들도 모여 밥 한 번 먹지 못했다. 집도 사람도 정물화 같다. 큰소리 날 일도 웃을 일도 없다.

아들이 전주에 출장 올 일이 생겼다며 금요일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고 전화를 했다. 전화 한 통으로 마음이 바쁘다. 설날에 다녀가고 처음이다. 어느 식당에다 예약을 할까, 챙겨줘야 할 약들을 적어본다. 몇 시쯤 올라가야 고속도로가 덜 막힐까. 괜히 약국 안을 왔다 갔다 했다. 그래 이게 사는 거지.

금요일, 출근해 막 컴퓨터를 켰다. 익산에 코로나19양성자가 나왔다고 재난문자가 왔다는 남편전화다. 전화 끊기가 무섭게 마스크를 사러 온다. 그 사람의 동선이 하나씩 밝혀지는데 우리 동네다. 교회, 내과의원, 식당, 장례예식장, 등등 정말 여러 군데를 다녔다. 비상이 걸렸다.

왜 하필 이런 날 아들이 출장을 올까. 서울은 하루에 몇 십 명씩 나오는데 서울보다 훨씬 덜 위험한데 걱정이 되고 마음이 뒤숭숭하다. 볼일만 보고 바로 올라가라고 할까. 머릿속이 복잡하다.

날이 더워지면서 마스크 쓰는 것이 좀 소홀해졌다 싶더니 결국 일이 터지고 말았다. 나도 약국에서 혼자 있을 때는 잠깐잠깐 마스크를 벗고 있다. 약국 문이 열리면 얼른 쓴다. 오해도 받았다. 아주머니가 확진자도 아니고 아무데도 다녀오지 않았는데 왜 자기가 들어오니까 마스크를 쓰냐고 기분이 나쁘단다.

약사는 여러 사람을 만나니 근무시간 내내 쓰고 있어야 하는데 너무 갑갑해서 벗었다. 약국에는 몸살 두통 등 가볍게 아픈 사람들이 많이 오고 그들이 초기 환자일지 모르니, 나 때문에 당신이 감염 될 수도 있어 내가 마스크를 쓴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아들이 왔다. 대표이사 비서인데 전주의 스마트 팜(smart farm)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농장에서 토마토와 오이를 가지고 왔다. 대표와 팀장 두 사람 몫만 실어주더란다. 기분이 살짝 나빴는데 대표님이 KTX를 타면서 월요일 가져 온다 어쩐다 하지 말고 다 어머니 아버지 드리고 와.”명령을 내렸단다. 싱싱하다. 식당에 가지 않고 삼겹살을 사서 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작은 박스 하나라도 갖다 드리라고 한다. 전국에서 매일 많이 오니까 걱정 말고 드시란다. 나는 비타민을 포장했다. “감사합니다. 오랜 만에 맛있는 토마토랑 오이를 먹었습니다. 사모님 드리세요.” 아들 편에 보냈다.

일요일 함라산을 가면서 토마토와 오이를 가지고 갔다. 시들시들 메말라가는 식물에 단비가 내리면 이런 맛일까. 눈이 번쩍 떠진다. 맛있는 것은 나눠 먹어야하는데. 동생들에게 전화를 했다. 모두 약속이 없단다.

둘레길 왕복하는데 4시간 걸렸는데 이제는 걸음이 느려져서 2~30분 쯤 더 걸린다. 걸음을 빨리해서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남편은 닭을 손질하고 나는 청소를 했다. 산행 뒤라서 지칠 법도 한데 오랜만에 동생들 내외가 집에 온다고 하니 오히려 힘이 난다.

사람만 생기가 도는 게 아니라 적막강산 같던 집안에 발소리가 바쁘다. 화분도 반짝반짝한다. 곰탕 솥이 노래를 하고 큰 상도 춤을 춘다. 빨간 녹색접시도 평생 간택을 못 받는 줄 알았는데 오늘에야 빛을 본다며 영광이란다.

적당히 출출하다. 오이 한 조각을 베어 물었다. 배고픔을 못 참는데 오늘은 기다리는 시간도 감미롭다. 네다섯 달 동안 이런 상차림도 기다림도 없었다. “1주일 동안 거리두기 잘하고 마스크 꼭 보건용으로 쓰라고 신부님이 몇 번이나 당부 하느라 미사가 늦게 끝났어.” 동생들이 왔다.

백숙도 오이도 고추도 마늘장아찌도 꿀맛이다. 이런 소소한 재미를 코로나19가 빼서갔다. 처음 발생했을 때만 해도 기온이 올라가는 5월쯤이면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란 불안이 생긴다. 모두들 뉴노멀을 얘기한다.

팬데믹이 길어질수록 삶에 재미도 없고 무기력해진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잘 챙겨먹고 잘 자고 운동도 열심히 한다. 그래도 신바람은 나지 않는다. 산행에 저녁식사 준비까지 많이 피곤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몸은 한창 때로 돌아간 듯 설거지에 뒷정리 까지 한 번에 다했다. 동생들 손에 토마토 1박스씩 들려줬다.

이 대유행을 지치지 않고 잘 이겨내는 길은 소중한 사람들과 집에서 밥을 같이 먹으며 수다를 떠는 것인가 보다. 식구들 끼리 밥을 같이 먹는 것, 마음의 허기까지 달래준다. 비대면 시대에 대면 한 번 했다고 이리 기운이 팔팔 나다니.

 

2020.6.30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코로나19 때문에 사람을 피해야 하는 야속한 세월이 되어 한편으로 생각하면 엄청 삭막한 세월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자괴감까지 듭니다. 누군에게 뚜렷한 목적이나 이유도 없이 차를 마시자거나 밥을 먹자고 전화하기도 껄끄러운 요즘.... 죽은 듯이 숨쉬며 한사코 산을 찾아 오르내리는 데 이골이 난 요즈음 저의 풍속도랍니다. 집을 찾아오는 손님도 엄청 조심스러워하고.... 따라서 저 역시 남과 만남을 주저하며 움츠러드는 자신이 맘에 들지 않아 쓴웃음을 짓는 요즘 세월이 야속하기 짝이 없네요.

남창우님의 댓글

남창우 작성일

남편분이 요리를 잘하시는 모양입니다.
저도 몇 년 후 퇴직인데, 퇴직해서까지 아내에게 하루 밥 세끼 요구했다가는 쫒겨날 것 같아 미리 요리 학원을 다니던가 해서 요리를 배워서
아내 눈치 안 보고 인생 후반전을 별탈 없이 지내려고 합니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