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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희미하게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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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969회 작성일 20-07-2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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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게 들렸다

 

오른쪽 귀의 청력(聽力)이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오늘 처음으로 인지했다. 어림잡아 10% 정도 상실했지 싶다. 수명이 다해가는 때문일까. 일흔 여섯 해를 살아오면서 한 번도 청력 이상으로 애로나 문제가 야기되었던 적이 전혀 없었다. 오늘 TV를 시청하다가 오른쪽 귀에 이물질이 들어있는 느낌이 들어 혹시 귀지인가 싶어 귀이개로 파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해서 무심코 왼쪽 귀를 손바닥으로 가렸더니 강한 바람 같은 이명(耳鳴)이 윙윙대는 꼴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재작년 병원에서 청력검사 때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무슨 청천벽력 같은 조화일까. 그동안 이따금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명확하지 않게 들려도 무심하게 지나쳤었다. 그러하니 타고난 천성이 무척 둔하고 투미한 게 분명하다. 전자제품의 부품처럼 필요할 때 손쉽게 갈아 끼울 수 없는 귀()인데 어이하란 말인가. 갑자기 발생한 믿기지 않는 상황이 두려울 뿐 아니라 막막하고 무서웠다.

 

벌써 10년 전의 일인가보다. 일터에 물러나던 그해(2011) 봄이었다. 왼쪽 눈을 백내장 수술을 했고 그로부터 세 해(2014) 뒤엔 오른쪽 눈마저 같은 수술을 했다. 그 두해 뒤(2016)엔 마른하늘에 벼락 치듯이 가벼운 뇌졸중이 지나가면서 전문의 처방에 따라 장기적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투약은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어 엄청 맹랑하고 난감하다. 한편 그 다음해(2017)엔 치아가 말썽을 부려 한꺼번에 임플란트 4개를 시술하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정황을 참작할 때 오만가지 병을 줄줄이 달고 골골거리며 황혼의 세월을 허둥대며 지동지서하는 꼴불견이리라.

 

가는 세월이 야속타고 원망해야 할까. 입때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너무도 무관심했나 보다. 청력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처구니가 없고 허탈해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그렇다고 원인 제공을 할 개연성이 다분한 중이염이나 다른 귓병을 앓았던 병력이 도통 없어 칠흑 같은 미궁에 빠져 허우적이는 모양새이다. 혹시나 최근 10년 안팎의 세월에 앓거나 경험했던 백내장 수술, 경미한 뇌졸중의 발현, 치아의 임플란트 시술 따위가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걸까.

 

병약한 체질로 태어난 때문일까. 아마도 대여섯 살 무렵이었지 싶다. 그 시절 어느 가을날 돼지고기를 먹고 탈이 나서 거의 일 년 가까이 사경을 헤매다가 천우신조로 겨우 목숨을 건졌다. 그 후 이렇다 할 병치레는 없다가 대학 신입생 시절(1965) 맹장 수술을 했다. 그런데 대학 입학 뒤에 치질에 걸려 50대 초반까지 숱한 고초를 겪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성가신 치질을 신병으로 끌어안고 살아오다가 지천명의 중반에 수술하여 흔적 없이 완치되어 그 끔직한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자유를 구가하고 있다. 병은 아니지만 또 하나 큰 사고를 당했다. 37(1982) 여름엔 고속버스 전복 사고로 반 년 동안 병원에 입원하는 불운과 드잡이를 했었다. 이런 일련의 병고나 사달을 감안할 때 아무래도 건강한 부류와는 거리가 있었지 싶다. 그런 험한 질곡의 세월을 온몸을 던져 견뎌내며 시나브로 누적된 요인들이 직간접적으로 청력에 해가 되지 않았을까.

 

늙기도 서러운 데 병고에 시달리다가 병실에서 서러운 통한의 세월을 보내는 이들처럼 될까봐 나름 운동에 힘을 쏟으려 애를 써왔는데 모래성을 쌓은 걸까. 그래도 20여 년 동안 매주 마다 대여섯 차례씩 꾸준히 등산을 해왔다. 비록 동네 뒷산으로 나지막해도 왕복 10km를 훌쩍 넘는 거리로 등산로 중간 서너 군데 된비알의 깔딱 고개를 오르내리는데 3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맞춤한 길이다. 건강을 움켜쥐려고 아등바등 밀고 당기기를 되풀이 해왔다. 그럼에도 여기저기 뜻하지 않은 병증이나 기능 저하가 뚜렷해 야속하다 못해 부질없는 욕심이 되레 화를 부르는 게 아닌지 미심쩍고 마냥 헷갈린다.

 

지는 해 멈추게 할 수 없고 가는 세월 잡아 두지 못하는 게 자연의 섭리이고 하늘의 뜻인 천리가 아닐까. 이런 이치에 달통한 선인들은 열흘 가는 붉은 꽃이 없다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일렀는가 하면 달도 차면 기운다라는 의미로 만월즉휴(滿月則虧)라고 일렀다. 게다가 21세기 현대과학의 꽃인 다양한 첨단제품도 10~20년이면 수명이 다해 폐기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제아무리 전지전능한 신이 빚어낸 걸작 품인 인간이라도 70년 이상 모진 세월과 부대끼면서 이상이 발생하고 부실해져 병이나 비정상 징후가 발발함은 당연한 게 아닐까. 어차피 천만년 젊음을 유지하거나 영생은 어불성설인 까닭에 노쇠하면서 나타나는 병증에 대해 호들갑을 떨거나 되지 못하게 몽니를 부리듯 마구 불뚝거리며 불만을 쏟아낼 일이 아니지 싶다. 이 모두를 자연에 대한 순응으로 받아들임이 순리에 따르는 현명함에 이르는 길이리라.

 

예로부터 병은 대놓고 주위에 자랑을 해야 한다고 이르지 않던가. 한 가지 예이다. 20대부터 50대 중반까지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히던 치질을 기회 있을 때마다 드러내놓고 얘기했었다. 그 덕이었을까. 어떤 지인이 나와 궁합이 잘 맞는 의사를 소개했다. 예로부터 밑져야 본전이라고 하지 않던가. 오그랑장사는 아닐 것이라는 믿음에서 앞뒤 재지 않고 무작정 밀고 들어가 어려운 수술을 청탁했다.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완치되어 지금은 찰거머리같이 달라붙던 고질병과 완전히 결별하고 정신적 안정을 되찾은 지 스무 해를 훌쩍 넘겼다. 오른쪽 귀 청력의 일부가 퇴화된 상황은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다. 이를 드러내다보면 선험자들의 알찬 체험이 응축된 슬기로움을 배울 수 있으리라. 그래도 제대로 듣지 못해 대화 당사자에게 자꾸 되묻는 경우가 숱해질 터인데앞으로 어떻게 적응해 나갈지 앞이 캄캄하고 걱정이 태산이다. 게다가 철없던 어린 시절 미욱했던 때문인지 엇비슷한 또래의 청각 장애자에게 농아(聾兒)나 귀머거리라고 놀렸던 행동이 어렴풋이 떠올라 무척 면구(面灸)하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산성문학, 2020년 제5, 725

(2020428일 화요일)


댓글목록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건강이 지키고 싶다고 지켜 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드시고 운동 잘 하시면 괜찮으실 겁니다.
교수님을 응원합니다.

남창우님의 댓글

남창우 작성일

거 참 걱정되시겠습니다.
열심히 치료 잘 받으시면 좋아지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운동은 꾸준히 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체력이 감당할 만큼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