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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디지털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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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1,298회 작성일 20-09-08 07:44

본문

디지털 흔적

 

 

자신을 밖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은폐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금세기 시작과 함께 활짝 열리기 시작한 디지털 문명은 분명 축복이다. 하지만 거기에 탐탁하지 않은 복병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리송해 헷갈린다. 아날로그 시대엔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숨기고 싶었던 어두운 구석은 양심이나 진실에 반할지라도 눈 딱 감고 두리뭉실하게 둘러대거나 강력하게 부정하면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어물쩍 위기를 넘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디지털 문명이 지배하는 세상이 열리면서 각종 디지털 흔적(각종 카드, 스마트 폰, CCTV, 인터넷 접속 및 검색, 이메일, 소셜 미디어, 쇼핑몰 등등)은 적당히 눙치거나 섣부른 거짓 대응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스모킹 건(smoking gun)이 되기도 한다. 이런 시대에 기껏해야 컴퓨터에 친숙할 뿐 각종 카드 사용이 거의 없고 ‘2G 을 사용한다. 그 때문에 지진, 태풍, 돌림병(코로나19) 경고 문자 메시지를 받지 못하는 내 자신의 처지는 아날로그 세상에서 이주해온 디지털 이주민(digital immigrant)에 대한 차별이며 설움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같은 부류들은 모든 걸 디지털 사고(思考)에 의존하는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에 견줄 때 상대적으로 적게 신상 정보를 털린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아야 하나.

 

예로부터 세상일은 아무리 몰래 해도 최소한 넷은 알고 있다는 뜻에서 사지(四知)라고 이르기도 했다. , 어떤 일이라도 첫째로 당사자인 나와 둘째로 네가 알게 마련이고, 셋째로 하늘이 알고 넷째로 땅이 지켜봤기 때문에 최소한 넷은 알고 있다의미에서 이른 가르침이다. 그럴지라도 어떤 일의 당사자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 명명백백한 증거나 증적이 없을 경우 적당히 둘러대거나 거짓으로 눙치며 위기를 면하거나 혐의를 벗어났던 적이 숱했다. 그런데 첨단 문명의 혜택을 만끽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물이 흐르듯 스쳐 지나면서 무심코 남긴 디지털 증적으로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들여다 볼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이는 어쩌면 일찍이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 예견했던 빅 브라더(big brother)가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가하는 섬뜩한 착각에 빠지게도 한다. 이런 연유에서 오늘날은 그 옛날부터 이르던 사지(四知)에다가 모든 세상사를 온새미로 쓸어 담아 기록하고 있는 디지털 흔적하나를 더해 5(五知)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부지불식간에 남겨진 디지털 흔적에 발목을 잡히는 몇 가지 예이다. 스마트 폰은 당신의 행적을 샅샅이 까발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애물단지이기도 하다. 요즈음 코로나19의 위험지역에 머물렀던 사실을 족집게로 집어내듯 가려내는 데 일등공신이 바로 스마트 폰이다. 이는 위험지역의 기지국에 접속한 통화기록을 바탕으로 수집한 통화정보가 바탕이 된다. 이 자료만으로 부족한 부분은 각종 카드를 사용하며 남기게 마련인 거래처 명, 거래시간 따위를 비롯하여 여기저기에 산재된 CCTV에 녹화된 영상은 보완 정보가 된다. 한편 인터넷에 접속하여 무심코 검색했던 흔적은 접속자의 생각이나 지향했던 바를 미루어 짐작할 증적이 되기도 한다. 아울러 소셜 미디어(블로그, 소셜 네트워크, 인스턴트 메시지 보드, UCC)를 통해 공유되는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 등은 당사자의 기호나 교류 계층의 유추를 비롯하여 암묵적인 증적이 되어 화()를 부르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지난해 어느 특정한 인물에 대한 일련의 사건이 사회적 관심이 중심 되었을 때의 일이다. 그가 과거에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활발하게 이용하며 거침없이 쏟아 냈던 거친 말과 글들이 최근의 상황과 맞물려 부메랑이 되어 자신을 겨냥해 돌아왔던 수많은 말 폭탄을 빗대서 의 적은 조이라던 조롱은 디지털 흔적이 어떤 골목으로 자신을 내몰며 옭아매는지 본보기로 삼기에 충분한 사례였다. 그런가 하면 인터넷 쇼핑은 개인의 쇼핑 경향이나 상품의 유행, 구매집단의 연령대 등을 분석해 내는 기초자료가 되기도 한다.

 

다양한 디지털 방식이 씨줄과 날줄로 물샐틈없이 촘촘하게 엮여 사각지대나 맹점 없이 쓸어 담았던 여러 형태의 디지털 자국(흔적)은 개인의 동선 파악, 범죄자 추적, 감염경로 추적, 특정 사건이나 사고의 진행과정을 규명하는 유용한 데이터가 되기도 한다. 아울러 특정 정당이나 집단을 비롯해 개인에 대해 배척 또는 선호하도록 의도적으로 호도할 개연성도 다분하다. 마찬가지로 특정한 사회적 이슈나 집단에 대한 대중의 의견을 반영하는 여론을 왜곡시키거나 누군가의 구미에 맞게 꿰맞춰질 가능성도 도외시할 수 없는 위험 요인이다.

 

현실세계에서 유명을 달리하면 장례 절차를 거치면서 망자(亡者)에 대한 이승의 흔적을 지워가는 게 관례이다. 장례를 치루면서 옷가지를 비롯해 손때가 묻은 소지품을 불에 태우는 풍습을 비롯해 사망신고를 통하여 제적(除籍)이라는 방법을 이용해 존재를 지워나갔다. 그런데 망자가 남긴 다양한 디지털 자국을 유족이 모조리 지울 재간이 없다. 대가를 받고 이 흔적을 전문적으로 지워주는 업종이 디지털 장의사(digital undertaker)이다. 디지털 공간에 남겨진 다양한 자신의 흔적에 대한 편감이다. 원래 인터넷에서 주고받던 각종 정보는 해당 사이트 계정을 탈퇴한다고 남겼던 모든 흔적이 자동적으로 삭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 다양한 정보를 깡그리 찾아내서 지워버리기 위해서는 여러 곳을 이 잡듯이 꼼꼼히 뒤져 하나하나 삭제해야 한다. 게다가 자기가 남겼던 정보를 누군가가 불법 혹은 합법적으로 퍼 날랐다면 그것까지 추적해서 완벽하게 지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한편, 죽은 사람이 생전에 남겼던 각종 정보는 실정법이나 운영규정 때문에 손댈 수 없어 속수무책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처럼 난감한 문제의 해결사로서 디지털 장의사가 등장했다. 이들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망자들의 디지털 자국뿐일까. 어쩌면 되지못하게 나대며 하수구에서 더러운 구정물 쏟아내듯 뱉어낸 독설이나 입방정, 한풀이 하듯 무절제하게 갈겨써 꼴 같지 않은 글 나부랭이, 세상 모두에게 백안시당할 언행 따위의 디지털 흔적을 남긴 쓰레기 같은 이들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수치스러운 낙인(烙印) 같은 증적들을 말끔히 지우려고 덤벼들 것이다.

 

디지털 공간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다양한 글을 비롯한 흔적은 생각보다 맹랑한 방향으로 튈 개연성이 다분하고 쉬 썼다가 지울 수도 없다. 어쩌다 남겨진 디지털 흔적이 세인의 구미에 당긴다 싶으면 네티즌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여기저기 퍼 날라 속수무책으로 널리 전파되기 일쑤다. 한편 그 흔적이 특정 집단의 철학이나 가치관과 완전히 궤를 달리할 경우 허물을 부풀리고 후벼 파고들며 모질게 헐뜯는 악성댓글에 시달리다가 끝내 패닉(panic)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면서 호오(好惡)와 관계없이 다양한 디지털 자국을 남길 수밖에 도리가 없다. 이런 작금의 현실에서 아무리 공익(public interest)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도 개인의 사삿일(privacy) 보호라는 관점에서 어느 수준까지 들여다보거나 공개하는 게 참다운 접근이며 정도일까?

 

현대문예, 2020 칠팔월호(통권 11), 2020730

(2020512일 화요일)

 

 

 

 

 

 

 


댓글목록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이제는 인터넷 없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인터넷의 가장 큰 적폐는 사람들의 정서를 삭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사 댓글을 보면 정말 인격이 있는 사람들일까 싶을 정도로 심한 말이 난무하거든요.
저도 늘 조심스럽습니다.
내가 남긴 짧은 글 한마디가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 여기저기 떠도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코로나가 여전히 기승을 부립니다.
늘 건강하세요, 교수님

남창우님의 댓글

남창우 작성일

아무리 좋은 글이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고, 반드시 안티세력은 출몰하게 되어 있지요. 자신의 글이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그 정도는 각오해야 할 듯합니다. 저도 책을 냈지만 벌써 한 사람으로부터 물어뜯기도 있답니다. 그것도 가까운 친구한테서...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