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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그래도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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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1,225회 작성일 20-09-22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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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걸어야 한다

 

요즘 저녁 여덟 시 무렵이면 어김없이 아내와 아파트 둘레길을 걷는다. 기껏해야 동네 뒷산일지라도 매일 등산을 하는 얼치기 등산 애호가(mania) 입장에서 성에 차지 않아 시큰둥하게 여기는 걷기운동이다. 하지만 고희를 넘긴 처지에 급전직하로 건강이 나빠진 아내를 위해 선택의 여지없어 매일 동행한다. 원래 평지에서 기를 쓰며 악착같이 발품을 팔며 걸어도 이문이 별로 없는 본전장사라는 생각에서 썩 내키지 않는다. 이런 운동은 쏟아 붓는 곡진한 정성이나 금쪽같은 시간에 비해 얻을 게 별로라는 수지타산에서 탐탁할 리 없다. 그럼에도 나락으로 추락된 아내의 건강을 위해 고른 으뜸의 방법이 아파트 단지 가장자리를 따라 뱅글뱅글 돌고 도는 걸음 품 팔기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타원형 대지의 왼쪽으로 4개 동()이 자리 잡고, 중앙에는 전체 단지를 관통하는 인도와 수목의 조경으로 꾸며진 공원과 연못을 비롯해 놀이터 따위가 오밀조밀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4개 동이 자리 잡고 있어 모두 8개 동에 9백 세대 남짓한 이웃들이 둥지를 튼 보금자리로서 모든 차량은 지하 주차장을 이용한다. 이 아파트 둘레길은 노약자나 부녀자들에겐 몇 바퀴 돌면 나름대로 운동이 되지 싶다. 게다가 밋밋하게 뻗어 내린 산비탈 펑퍼짐한 언덕 마루에 자리하여 주위의 동네보다 월등히 높다. 따라서 주변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단독 주택의 주민들 눈치를 봐야한다거나 멀찍한 차도를 내닫는 자동차의 소음이나 매연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 산책에 안성맞춤이다. 또한 아파트 경내를 걷는 길이기에 어디쯤 가면 솔숲이 나타나고, 어느 동 뒤쪽에 이르면 어떤 화초의 군락이 있고, 어느 모퉁이를 돌아서면 누구의 시비(詩碑)가 반길 것인지 줄줄이 훤하게 꿰기 때문에 휘휘하다거나 실증에 빠질 틈이 없어 그게 되레 맘에 든다.

원래 우리 부부는 나름 운동을 꾸준히 해왔다. 총론의 관점에서 볼 때 부부가 운동을 해왔다는 관점에서 닮은꼴이다. 하지만 아내는 고상한 수영을 30년 이상해왔기 때문에 마님운동을 한 셈이다. 한편 나는 환로(宦路)가 아니기에 현직에 있을 때부터 부담 없이 발품을 팔아야 하는 등산을 즐겨왔다. 그러므로 머슴운동을 해온 격이다. 따라서 각론의 측면에서는 생판 다른 길을 걸어왔다. 따라서 운동이라는 큰 틀에서 서로 닮았지만 세부적인 갈래의 관점에서는 사뭇 다른 방법으로 건강을 챙기며 여퉈왔다.

 

지난 정월 첫 주말 무렵이었다. 아내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해 이런저런 약을 복용하고 며칠을 견뎌도 증상이 심해져 진동한동 서둘러 응급실로 달려갔다. 다양한 검사결과 담석증으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간수치가 높아 즉시 수술이 불가능해 3단계로 진료가 이루어졌다. 첫 단계는 담즙을 빼내기 위해 옆구리에 비닐주머니를 채우는 수술 후에 입원했던 열흘이었다. 두 번째 단계는 담즙을 받아내는 주머니를 찬 상태로 퇴원하여 집에서 간수치가 내려가도록 기다리며 가료 했던 열나흘이었다. 마지막 단계는 재입원하여 담낭(쓸개) 절제를 받은 후 퇴원했던 아흐레였다. 이렇게 아내는 강낭콩 정도의 담석 3개와 담낭 제거를 받는데 무려 달 포 가까이 혼쭐났다.

 

아내는 여태까지 걷기라면 질색을 하며 온갖 핑계거리를 내세우면서 높은 담을 쌓고 거리를 두었다. 이런 상황에다가 설상가상으로 정초부터 신양(身恙)이 나타나 입원과 수술을 거듭하다가 겨우 퇴원하여 회복하려 들 무렵이었다. 갑자기 중국의 우한에서 발생한 역병인 코로나-19의 패악 질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해져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내남없이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영어의 신세와 다를 바 없다. 이처럼 와병과 수술 그리고 회복 과정에 역병까지 뒤엉켜져 속절없이 네 달째 비좁은 집안을 마냥 맴 돈 업보일까. 걷는 근력은 고사하고 장시간 서 있는 것조차도 힘겨워 쩔쩔매고 있다. 자칫 방치하고 고빗사위를 잘못 넘겼다가는 뜨거운 꼴이나 덤터기를 뒤집어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며칠 전부터 손을 내밀어 걷도록 이끌고 있다. 아무리 평탄한 길이라도 집안에 우두커니 앉아 멀뚱거리며 건강 운운하는 말장난에 견주면 결단코 오그랑장사는 아닐 터이기에 주판알을 이리저리 튕기며 수지타산을 가늠해 볼 때 이문이 남는 장사가 아닐까. 이런 맥락이 그래도 걸어야 한다는 당위성이지 싶다.

 

시작부터 비탈길이나 깔딱 고개가 수없이 반복되는 힘겨운 산길을 꿈꾸는 것은 지나친 사치이리라. 옛 선인들이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일렀다. 비록 높낮이 차이가 없는 아파트 단지 내의 둘레길을 노량으로 걸을 지라도 끊임없이 지속해야 잃었던 건강을 되찾지 않겠는가. 이런 연유에서 구메구메 아내의 등을 떠밀어 쉼 없이 걷도록 이끌며 응원할 요량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건강을 지탱해주던 한 모서리가 와르르 무너져 내려 참담한 꼴이 된 아내의 체력을 벌충하고 건강을 여투는 알파(α)요 오메가(Ω)이며 첩경이 걷기라고 여겨지는 까닭에서이다.

 

한국수필, 20209월호(통권 307), 202091

(2020410일 금요일)


댓글목록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건강하게 사는 것이 최고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건강하게 사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 같습니다.

운동 잘 하시고 드시는 것도 잘 드시고
즐겁고 행복한 생각만 하시면
건강하게 사실 것 같습니다.
운동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임영숙 올림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걷는 것이 운동이란 건 알지만 힘에 부치면 힘들지요. 어제도 울 시부는 시모에게 산책 안 한다고 꾸지람을 하더라고요. 저도 욱 해서 '엄니, 하기 싫으면 하지마. 엄니 맘대로 해요.' 그랬어요. 졸수 중반에 든 노인이 아직도 졸수 중반을 향하는 아내를 닦달해요. 평생 그 남편의 시집살이에 치매 2기에 접어든 시몬데. 수영장 못 가 힘든 건 저도 마찬가지랍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