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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손과 엄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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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래여 댓글 2건 조회 1,066회 작성일 20-09-25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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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 엄마의 자리



 

 

 그는 잔디 깎기 기계를 챙긴다. 시댁 마당 정리를 해야 한단다. 추석맞이 대청소다. ‘우리 집 마당은 애들 오면 하라지요.’ 말도 끝내기 전에 재채기를 심하게 했다. 새벽부터 재채기로 잠을 설쳤다. 환절기가 되면 비염이 온다. 몇 년 무탈했는데 다시 도졌다. 올해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인지, 날씨가 변덕을 부려서 그런지, 면역성이 바닥나 그런지 초장부터 힘들다. 햇볕이 나면 수그러든다. 새벽 찬바람만 코에 스치면 재채기를 해 댄다. 눈과 코도 간질간질하면서 코맹맹이 소리가 난다. 비염은 면역성이 떨어지면 심해진다.



 반찬 두 가지를 만들어 쌌다. ‘점심은 당신이 챙겨드리고 오소.’ 그에게 내밀었다. 그를 보내고 텃밭에 들어섰다. 배추가 땅내를 맡고 나풀나풀 하다. 호미와 씨앗을 챙겼다. 빈 두둑에 무씨를 넣었다. 골을 타는데 지렁이가 나와 꿈틀거린다. 기겁을 했지만 다시 흙을 덮어준다. 닭장의 닭들이 눈치를 챘는데 갈갈거리고 꼬꼬댁거린다. 밖에 풀어놓고 키우면 온갖 곤충과 풀은 닭 먹이가 된다. 지렁이를 특히 좋아하는 닭이다. 땅을 기름지게 한다는 지렁이와 굼벵이가 호미 끝에 걸려 나올 때마다 기겁을 하면서도 호미질을 멈출 수 없다. 무씨를 심어놓고 그 위에 아궁이에서 재를 한 바가지 퍼다 뿌려준다. 소독제도 되고 벌레 방제도 된다.



 바람은 선들거리고 햇살은 눈부시다. 밤 산에 알밤이 툭툭 떨어질 것 같다. 방치해버린 밤 산은 먼저 줍는 사람이 임자다. 다리에 힘이 있어야 남의 밤 산의 알밤도 줍는다. 누구든 주워 먹으라고 했다.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추석 즈음이면 집 주변을 돌며 도토리를 주워 도토리묵을 쑤었었다.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면 시댁은 내 손으로 만든 도토리묵과 손두부가 단연 인기였다. 지난해부터 손두부도 도토리묵도 사 먹고 말겠다며 손 털자 그는 무척 아쉬워했다. 당신이 하겠다고 설치더니 올해는 조용하다. 골골 하는 아내에게 두부 하라기엔 염치가 없어서 입 다물고 있는 건지.



 그러나 두 아이가 올 것이고 시부모가 계신 명절이다. ‘식구들 먹일 국은 뭐로 끓일까. 추어탕은 끓이기 싫은데. 청계 두 마리로 닭개장을 끓여 봐?’ 마침 딸이 전화를 했다. ‘추석에 추어탕 먹을래? 닭개장 먹을래?’ 했더니 닭개장이란다. ‘재료 준비 해 놓으면 네가 끓일 거지?’ 했더니 엄마 표 닭개장이 맛있단다. 엄마의 자리는 평생 손에서 물 떨어질 날 없다. 나는 거칠어진 내 손을 본다. 어린애손처럼 곱다고 했던 손이다. 평생 펜대 굴리며 살 거라고도 했었다. 펜대 대신 자판 두드리고, 농사일하고, 음식 만들다 망가질 줄 어찌 알기나 했을까.



 가끔 삼시세끼에서 해방되어버린 시모의 손이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거친 농사일과 집안일로 쩍쩍 갈라져 늘 반창고를 붙여야 했던 손가락 끝이 보드랍다. 어머니는 지금의 삶이 행복하실까. ‘엄니, 밥 안 차려 드시니 행복해요?’ 물어보면 웃기만 하신다. 평생 고된 남편 시집살이를 하신 어른이다. 시모는 모든 일상에서 손놓아버렸지만 여전히 시부의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산책을 해야 다리에 힘이 안 풀린다. 유모차 밀고 동네 한 바퀴 하라는데도 말을 안 듣는다.’며 사사건건 간섭이다. ‘아버님, 그냥 엄니 하시고 싶은 대로 하게 두세요. 엄니, 하기 싫으면 하지 마.’ 시모 역성을 든다.



 나도 시모처럼 부엌일, 집안일에서 손 뗄 날 있을까. 그땐 누가 삼시세끼를 챙겨줄까. 챙겨줄 사람 없다. 며느리에게 부엌살림 맡기는 것은 시모 대에서 끝나버린 일이다. 내가 못하면 그가 해야 하고, 그이도 못하면 요양원 들어가야 한다. 우리가 두 어른 연세까지 산다면 요양원이 집이 될 확률이 가장 높다. 자식에게 기댈 사회는 아니다. 내 손으로 밥 차려 부부 같이 먹다가 한 사람 떠나고 따라 떠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내 살림을 남의 손에 맡길 수도 없지만 자식이 맡아서 부모를 거천하지도 않을 것이다. 내 손으로 밥 차려 먹을 힘없으면 내 살림 마무리 깔끔하게 해 놓고 요양원 가든가. 스스로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



 딸은 다시 전화를 한다. 고춧가루도 참기름도 떨어져 간단다. 추석에 오면 챙겨주겠다고 했다. 딸에게 보낼 조기도 먹기 좋게 다듬어서 토막 내어 냉동 보관한다. 시모는 늘 그랬다. 명절 때마다 타지에 사는 며느리와 딸에게 줄 것은 챙기면서 ‘니는 니가 사 무라.’며 옆에서 온갖 심부름 다하는 나는 늘 찬밥이었다. 서럽고 억울해서 울었던 적이 있다. 똑 같은 며느린데 왜 차별하느냐. 고생은 내가 하는데 왜 몰라주나. 두 노인 모시며 농사는 우리가 짓는데 왜 내 것은 안 챙겨 주냐고. ‘갸아들은 돈 준다 아이가.’ 노인의 그 말이 목에 걸려 아직도 삭지 않았는데. 나도 늙어가니 딸에게 줄 양념거리를 챙기고 있다. 시집가면 사위 줄 것도 챙겨야 하겠지. 아들이 장가들면 며느리 줄 것도 챙겨야 할 것이다. 그게 엄마의 자리지만 왠지 서글프다.



 그가 왔다.

 “노인들 점심 잘 드셨어요?”

 “다른 반찬은 손도 안 대고 당신이 해 준 반찬만 잡숫더라.”

 “노인이 되면 새 반찬만 드실 수밖에. 우리도 비슷해지고 있잖아요. 당신도 같이 먹고 오지.”

 “당신이 굶을까봐 참았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 나는 서둘러 점심상을 차린다.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처녀 시절 아내를 만났을 때 내 눈에 유일하게 예쁘게 보였던 것은 가늘고 자그마코 하얀 손이었답니다. 그런 아내가 결혼 후 두 아이를 기르고 나서 자유로운 처지가 되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고희를 넘긴 지금은 뜻하지 않은 손주 양육을 하며 학교를 보내고 건사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어느날 아내의 손을 유심히 들여다 보니 조글조글하고 형편없이 변했더군요. 그런 아내 역시 며느리의 도움을 받을 길은 전혀 없어 보인답니다. 그래서 틈만나면 아내의 일을 도우며 황혼의 삶에 동행을 즐기고 있답니다.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네, 늙어가면 둘이 함께 음식도 준비하고, 둘이 서로를 지팡이로 삼아 살아가야 할 것 같아요. 거칠어진 손을 볼 때면 슬프지곤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