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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영혼을 위한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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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래여 댓글 3건 조회 1,137회 작성일 20-10-12 11:46

본문

<단편소설>

영혼을 위한 춤

       박래여



 

 현 선생은 마당가에 놓인 벌통 앞에서 생각에 잠긴다. 꿀벌은 주인의 숨소리를 듣는다. 작은 구멍을 나와 받침대 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현 선생을 바라본다. 벌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그는 주인일까. 머슴일까. 꿀벌은 현 선생의 침묵을 이해한다. 날갯짓을 접고 얌전히 앉았거나, 발에 꽃가루를 묻히고 온 벌은 꽃가루를 문틈에 닦을 생각도 않는다. 현 선생이 오갈 수 있는 틈만큼 간격을 둔 노란 벌통들에서 나온 벌이 각자의 집 앞에 진을 치고 생각에 잠긴 현 선생을 주시한다.

현 선생은 여왕벌을 만나지 않아도 일벌만 봐도 벌의 마음을 안다. 4년의 세월을 벌과 함께 살아왔다. 좌충우돌을 하면서 벌과 정이 들었다. 벌이 있어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 선생은 아내와 함께 귀농 4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는 돈을 벌겠다는 목적보다 목가적인 행복을 꿈꾸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찾아오는 노후를 자연과 함께 맞으며 고향에 뿌리박겠다는 생각이었다. 맏이로서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혼자 남은 어머니와 작은 농토지만 몇 마지기 남겨진 땅을 일구며 촌부로 늙어가는 것이 참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이렇게 힘들어지려고 시골로 온 것은 아니잖아. 시간이 갈수록 더 힘들어져. 다시 나가고 싶어.”

“그래, 당신 말 맞아. 사람관계를 피해 시골로 왔는데. 사람관계로 인해 더 고통당할 줄이야 나도 몰랐지. 그래도 우리 저 벌들을 믿어보자.”

매일 현 선생은 새벽 네 시도 되기 전에 일어나 작업준비를 한다. 끙끙 앓으며 꿈속을 헤매는 아내를 깨우기가 미안하지만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 혼자 200여 통의 벌을 모두 관리할 수 없다. 아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부지런한 일벌이 깨어나기 전에 벌통 청소를 할 수도 없다. 벌통을 깨끗하게 관리해야 벌이 건강하다. 벌이 건강해야 현 선생도 건강하다. 현 선생은 미안한 마음을 꾹 누르고 창문을 탕탕 두들기거나 ‘일어나라 아내여~~갈 길이 머네.’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궁상스럽게 아내를 깨운다.

현 선생의 노랫가락에 아내도 못 이기는 척 슬그머니 잠을 털고 일어난다. 아내는 잠에 취한 척 뭉그적거린다. 꿀벌이 꿀을 물어오는 봄철에는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정신없지만 칠팔월이 되면 꿀벌도 더위에 지쳐 게을러진다. 벌 키우는 일은 과수보다 수월할 줄 알고 시작했는데 배워갈 수록 어렵다. 벌은 봄부터 가을까지 월동준비가 끝나도록 돌봐야 한다. 특히 벌이 분봉을 하는 봄철에는 새벽잠을 설친다. 꿀과 꽃가루를 거두는 일도 만만찮다. 말벌 같은 천적을 잡아주는 것도 일상이다.

그래도 짬을 내어 한 낮의 느긋함을 즐기고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한다.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집에 오는 친구를 마중하거나 하면서 여유롭다. 단지 가족으로 함께 기거하는 어머니와 부드러워질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고부간이든 모자간이든 화해 모드만 형성될 수 있다면 시골생활이 달달할 텐데.

“어떻게 어머니는 당신 아들보다 옆집 아주버님을 더 믿지? 참 불가사의야.”

아내가 구시렁거려도 못 들은 척 현 선생은 벌통 청소만 한다. 현 선생도 그 점이 심히 불만족이긴 마찬가지다. 그동안 어머니께서 재종형님 덕에 편하게 살았다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데. 어머니는 밖으로 굽은 거다. 왤까. 현 선생은 생각을 지우고 꿀벌에 몰입한다. 꿀벌도 현 선생 마음을 아는지. 손등에 앉았다가 살포시 날아간다. 현 선생은 꿀벌의 반을 양봉 농가를 희망하는 귀농 인을 찾을 계획이다. 일에 치어 살지 않기 위해 귀농을 했지 않는가. 꿀벌의 군사가 많아질수록, 고추농사며, 벼농사며, 기존 토박이 농부라면 누구나 겪는 잡스런 온갖 농사까지 겹치다보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 되어버렸다. 거기다 어머니와 관계는 갈수록 악화 일로에 있다. 고부간의 갈등보다 모자간의 갈등의 벽이 더 크다. ‘해결책을 찾아야 해. 여유와 낭만은 어디로 갔지?’ 현 선생은 삭막한 마음을 느끼며 우선 벌통 수부터 줄여보기로 한다. 꿀벌을 분가시킬 것이다.

현 선생은 새벽에도 어김없이 세시 반 경 일어나 벌통이 놓인 선산부터 다녀왔다. 아내가 아침 겸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집 마당에 놓인 벌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다. 집 주변은 온통 꽃과 나무로 어우러져 있다. 동네 가운데지만 밖에서 보면 동네 가운데 있는 작은 숲이다. 숲 안에는 벌과 현 선생 부부와 어머니가 산다. 본채와 아래채가 있다. 본채는 어머니 차지고 아래채는 현 선생 보금자리다. 원래 아래채는 헛간이었다. 헛간을 부부가 손수 고쳐서 서재로 꾸몄다. 그때만 해도 전원생활의 꿈에 부풀었다. 땀 흘리며 하는 노동의 강도가 아무리 강해도 그들은 행복했다.

“식사하러 오세요.”

안채 식당 겸 부엌에서 아내가 불렀다.

“엄니는?”

“마을 회관에 가셨겠지요. 일부러 우릴 피하잖아요. 차라리 잘 됐죠.”

“이럴 줄 알았으면 부엌을 우리 방 옆에 넣어야 했는데. 당신 많이 불편하겠다.”

“말씀만으로도 감사.”

하면서 아내는 생긋 웃는다. 현 선생은 아래채를 단독 주택으로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아래채를 부부의 서재 겸 쉼터로 보수하면서 부엌은 뺐던 것이다. 대신 본채의 부엌을 현대식으로 널찍하게 고쳤다. 어머니와 아내가 편리하고 쓰기 좋게.

현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채로 들어간다. 작은 숲을 벗어난 본채는 뒤꼍에 있다. 본채는 어머니가 살고, 숲을 막고 있는 담 너머에는 재종형님이 살지만 원수지간이나 다름없다. 어려서는 재종형님을 친형처럼 따랐다. 열 살 정도 나이차가 난다. 현 선생은 맏이라 외로웠던 탓에 재종형님을 친구 이상으로 의지했다. 소를 먹이러 갈 때도, 개울에 미꾸라지나 피라미를 잡으러 갈 때도, 재종형님을 따라다녔다. 형님이 시키는 일은 뭐든지 살갑게 했다. 형님이 내 동생이라며 등이라도 토닥거려주면 현 선생은 가슴이 벅차서 잠을 설치기도 했다. 평생 형님 옆에서 살아야지. 소원했었다.

그는 어릴 적 소원대로 귀농을 결심했다. 가장 반겨야 할 재종형님이 가장 먼저 그를 내쳤다. ‘이 촌구석에 들어와 뭐 하려고. 그냥 그 곳에 있게. 퇴직하고 새 인생 시작하기에는 도시가 훨씬 낫지.’하면서. 재종형님은 개발위원인가 뭔가 감투를 쓰고 있었다. 반겨 주기는커녕 반대부터 했지만 현 선생은 고맙기만 했다. 그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고만 여겼다. 막상 그가 고향으로 이사를 들자마자 재종형님은 사사건건 트집거리만 찾았다.

“자네, 퇴직금 두둑하게 받았다는 소문인데 동네를 위해 거금 좀 내 놓게나.”

만날 때마다 농담처럼 던졌다. 예사로 들어도 어느 틈엔가 도둑가시처럼 그를 아프게 질렀다. 현 선생은 수시로 동네 사람들에게 찐하게 술도 사고, 안주도 샀다. 문중에도 재량껏 희사를 했지만 재종형님은 그것으로 양에 안 차는지 얼굴색까지 바꾸며 짜다고 타박했다. 현 선생도 성가셔서 적당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나이 들면 현명해질 줄 알았던 재종형님이 갈수록 심술보가 늘어지고 공짜를 즐기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러자 재종형님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래채를 고칠 때였다. 지적도를 떼어보고 집터의 경계를 알기위해 측량을 했다. 현 선생 땅이 재종형님네 마당까지였다. 현 선생이 재종형님께 그 사실을 알리고 현 선생 집과 경계로 세워진 담을 허물어줄 것을 요구했다. 차가 마당까지 드나들려면 삽짝이 좁았다. 그때부터 앙숙이 되었다. ‘너의 아버지도 인정해 준 내 땅인데 왜 네가 뺏으려고 드느냐’는 취지였다. 할 수 없이 기존 담장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아래채 공사를 했다. 재종형님은 먼지 난다고 군청에 민원을 넣었다. 집 옆의 논에 나무를 심어 작은 숲을 조성해 벌을 키우자 벌이 사람에게 달려든다고 또 민원을 넣었다. 옥신각신하는 사이 재종형님은 현 선생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을 자신의 땅이라고 막았다.

현 선생도 참을 수 없었다. 측량을 했다. 골목의 반은 현 선생 땅이었다. 재종형님은 자신의 땅에 축대를 쌓아 차 한 대 다니기도 힘들게 골목을 좁혀버렸다. 그런 와중에 희한하게 어머니가 아들 편이 아니라 재종형님 편을 들었다. 그 이면에는 누나와 동생의 이간질도 있었고, 재종형님의 농간도 있었다. 아버지 살아생전에 재산 분배를 했었다. 남동생에게는 들판의 논 두 마지기를 몫으로 떼어줬고, 누나에게는 밭 한 떼기를 주었다. 나머지 선산과 집과 집 옆에 붙은 논 서마지를 맏아들 몫으로 준 것이었는데 어머니는 둘째 아들 몫이 적다고 생각했다. 집 옆에 붙은 논을 동생에게 주라는 것이었다.

“너거는 퇴직금도 많이 받았다면서? 연금도 있다면서? 그러니까 못 사는 동생한테 저 논 두 마지기 주고 딸도 자식인데 겨우 밭 한 떼기라니. 그 아한테 논 한 마지 주어라. 누나가 맏이잖아. 두 애가 요즘 사업이 안 풀려 거리에 나 앉을 판이란다.”

“엄니, 누나랑 동생에게도 합당한 몫을 줬잖아요. 더구나 제게도 툭하면 손을 벌렸어요. 논 서마지기 값도 더 나갔어요. 그러니까 이제 더는 주지 않을 겁니다. 퇴직금, 퇴직금 하는데. 퇴직금은 우리 애들 밑막이 다 하고 없어요.”

“이 놈아, 넘보다 못한 넘. 이 집이라도 내 놔라. 내 몫잉께.”

그렇게 어머니와 불화를 겪게 되자 재종형님은 어머니를 꼬드겨 집안싸움에 부채질을 했다. 어찌 그것만으로 등을 돌렸겠나. 툭 하면 벌에 쏘였다고 고발을 하고, 벌떼소리에 잠을 설친다고 고발을 한다. 낯선 차량이 골목을 차지한다고 민원을 넣었다. 그러다가 사건이 터졌다. 현 선생은 제 어미도 패는 조선에 없는 패륜아가 되었다. 패륜아가 동네 인심 더럽힌다고 민원을 넣는 바람에 성주 골을 책임진 경찰서장도 체머리를 흔든다. 현 선생은 동네 개발위원장이라는 감투가 그렇게 당당한 것인 줄 몰랐다. 남도 아닌 재종형님인데. 촌사람 어수룩하게 봤다가는 개망신 당하고, 입은 옷까지 홀라당 벗겨진 채 다시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다 내 탓이다.”

현 선생은 입이 마르다.

“물 좀 주시오.”

아내는 말없이 물 잔을 건넨다. 한 부엌 두 살림이다. 어머니가 쓰는 부엌살림 따로, 아내가 쓰는 부엌살림 따로 선이 그어져 있다. 식탁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의 식탁은 비어있다. 귀농 초기에는 아내가 밥상을 차려놓고 어머니를 모셨다. 모자간에 티격태격하는 횟수가 늘자 어머니는 함께 밥상에 앉는 것부터 거절했다. 어머니가 밥을 먹든지 말든지 일단 아내는 며느리 도리는 다 하자는 주의였다. 그 마음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저녁을 지으러 부엌에 들어가 보면 아내가 차린 어머니의 밥상이 고스란히 싱크대에 부어져 있기 일쑤였다. 어느 날부터 아내는 어머니의 밥상을 차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마음을 얻는 것을 포기해버리니 오히려 낫단다. 현 선생도 마찬가지다.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 나가도 샌다고 했다. 나쁜 노오옴! 니가 올매나 잘났시모 너거 동상들한테 그랄 수가 있나. 내 집이다. 내 집을 와 너거가 차지하고 앉아 그 아~~들도 몬 오고로 막노? 니는 퇴직금만 해도 부자라매? 내 집에서 나가라. 나가란 말이다.”

대뜸 귀청을 찢는다. 현 선생이 돌아보자 삽짝을 들어서는 어머니의 얼굴이 불콰하다. 아침부터 술에 취했다. 어머니는 당장에라도 현 선생의 멱살을 잡아 흔들 기세다.

“엄니, 아침부터 술 드셨소? 또 누가 뭔 소리로 엄니 염장을 질렀소? 인자 고마하소. 제발이지. 우리 새벽 일 하고 와서 녹초요. 건드리지 마소. 나도 인자 이판사판이요.”

“그래, 에미랑 해 보것다 이 말이제? 니가 뒷집 아를 맞고소해? 니가 인간이가? 순 호랑말코 겉은 이노옴! 에미 말은 발 꼬랑지 때만큼도 안 여기는 이놈아.”

아내는 서둘러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끝낸 후 부엌의 뒷문을 열고 사라졌다. 마주치지 않는 것이 상수다. 젊어서부터 술을 즐겼던 어머니다. 일흔 중반의 어머니는 아직도 정정하시다. 잔병치레조차 않는 강단 있고 억센 촌부였다. 아버지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온순했지만 동네에서 호가 날 정도로 싸움꾼이었다. 성질이 났다하면 술이 사람을 먹을 지경까지 취해 행패를 부렸지만 ‘그만해라.’ 아버지가 나서 한 마디 하면 길 잘든 강아지처럼 다소곳해졌다. 소년시절부터 그런 어머니를 봐 왔다. 어머니는 자식보다 남편보다 살림 사는 재미보다 산야를 돌아다니며 들일하는 재미로 사셨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술을 친구삼아 사셨다.

“나는 현가 네 새경 없는 머슴이었다.”

어머니의 푸념이 늘어져도 현 선생은 아버지를 더 좋아했다. 아버지는 선비셨다. 아버지는 말 한 마디로 동네에 어떤 송사가 나도 제압했다. 아버지는 약골이셨지만 타고난 위엄이 있어 아무나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한 마디 말이면 통했다. 말에 무게가 실리고 조리에 어긋나는 법이 없으니 봉건시대에 사셨다면 명재상 소릴 들어도 마땅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엄하기로 소문난 아버지였기에 기갈이 드센 어머니를 좌지우지 할 수 있었다. 자식들에게는 자애롭고 품성 바른 어른이셨던 아버지, 현 선생은 새삼스럽게 아버지가 그립다. 어른이 되면서 닮고 싶었던 분은 아버진데 자신의 기갈이 어머니를 빼 박았다는 것이 못 마땅하다. 모자의 성격이 막상막하니 부딪히면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엄니, 노망 나셨소? 언제까지 나를 괴롭힐 거요? 내 죽는 꼴 봐야 속이 시원하겠소?”

“니가 와 죽어? 내가 죽어야제.”

“그럼 하루라도 빨리 죽어 삐소.”

“머라? 내 보고 죽으라꼬? 또 날 패 보제. 니 놈이 때린 데가 아직도 아푸다. 에미 떼리는 천하에 배은망덕한 놈아! 니놈을 순사는 와 풀어 주노. 니는 내 자슥 아이다. 웬수다. 그라이께내 내 집에서 나가라 이놈!”

“내가 온제 엄니를 때렸다고 그라요. 엄니가 내 멱살을 잡고 낙루를 하니 뿌리친 건데. 생사람 잡지 마소. 어미 때리는 패륜아라고 동네방네 소문낸다고 내가 눈이나 깜짝 할 것 같소.”

“에미를 밀친 기 때린 기제. 현가, 이 영감탱이 저승 가서 보자.”

어머니는 문자까지 써가며 악을 썼다.

“와 말만 나오모 돌아가신 아버지를 욕하요? 엄니랑 살아준 것만도 고마운 아부진데. 내 앞에서 아부지 욕하지 마소. 엄니보다 백배천배 나은 어른이요.”

현 선생도 욱하는 성질에 부엌문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현 선생은 허탈했다. 어머니의 손이라도 잡았다가는 또 무슨 올가미를 씌울지 겁나 어머니 곁을 멀찍이 돌아 아래채로 나왔다. 현 선생을 금이야 옥이야 거둔 것은 할머니지만 자신을 낳아주고 뒷바라지 해 준 것은 어머니가 아니던가. 그런 어머니가 어쩌다 저리 변하셨는지. 노망 들 연세도 아니다. 학교 문턱에도 못 갔지만 언문도 깨친 어른이다. 엄한 아버지 옆에서 숨소리조차 조심하며 사신 어른이란 것은 안다. 유일한 낙이 아버지 몰래 여기저기 숨겨두고 먹는 술이었다. 소주를 물병에 부어놓고 물마시듯 해도 아버지 앞에서는 술 먹은 티를 전혀 안 냈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초상을 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인자 나는 자유다. 우찌 이리 좋을꼬. 영감탱이가 골골 안하고 죽어주니 올매나 좋노. 이럴 때 너거 당숙이 있었시모 같이 춤이라도 출 낀데. 젊은 사람이 먼저 간 것도 다 이유가 있제.”

슬픔에 젖어있는 자식들 앞에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손뼉까지 치며 웃었다. 현 선생은 그 때 알아채야 했다. 어머니의 가슴 속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분노와 미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자식에게 잔정 없기로 소문난 어머니였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특히 맏이인 현 선생을 대하는 태도는 차갑고 무심했다. 평소 맏아들인 현 선생이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따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너도 너거 아부지처럼 나를 무시했다. 부전자전이라는 말이 올매나 내 가슴을 쥐어짰는지 니는 모를 기다. 못 배우고 무식한 여자가 너거 어미라고 부끄러워한 줄 내가 모를 줄 아나. 출세한 놈이 만다고 이 촌 구석에 도로 들어와 내 가슴에 피멍을 들이노? 나쁜 놈아.”

처음부터 어머니는 직장에서 퇴직하고 귀농한 아들을 못 마땅해 했다. 술에 취해 들어온 날은 현 선생을 불러 앉혀놓고 따지는 재미로 사는 노인 같았다. 현 선생은 그런 어머니를 품어주기보다 타박하기 일쑤였다. 그것이 어머니와 등을 질 수밖에 없이 만든 계기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물그릇은 엎어져버린 뒤였다. 주워 담을 방도가 없었다. 아내는 세월이 더 가고 어머니가 더 연세가 들어 맏아들에게 의탁할 때가 되면 수그러질 것이라며 현 선생을 위로했다.

현 선생은 아내랑 다시 선산으로 향했다. 선산에 놓아둔 꿀벌 통 앞에서 오전 내내 할 일이 있다. 분봉하는 벌을 통에 담아 거두는 일은 아침나절이면 끝나지만 토종벌을 물어 죽이는 말벌은 지키고 섰다가 파리채나 잠자리채로 잡아야 한다.

현 선생은 아내의 손을 잡고 논길을 걸으며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주웠다. 아버지는 들일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만큼 허우대는 허약한 샌님이었다. 옆에 사는 당숙이 현 선생 네 머슴이었다. 호형호제 하는 사이였지만 아버지 대신에 들에 나가 일하는 것은 당숙어른과 어머니셨다. 당숙은 육이오 때 고아가 되었다. 어린 당숙을 할아버지는 거두어 꼴머슴으로 키웠다. 학교는 못 보냈지만 살림밑천을 마련해 장가도 보내고 이웃에 집을 마련해 준 것도 할아버지였다. 당숙은 할아버지를 은인이라며 친부처럼 모셨지만 재종형님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았다. 열등의식일까.

“당숙과 당숙모는 언제 돌아가셨어?”

“나도 정확히는 몰라. 당숙모는 재종형님 낳고 산후조리를 잘못해서 돌아가셨다는 말만 들었어. 신기하게도 누나랑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엄니가 두 아이를 키웠다나 봐. 당숙은 환갑 지나고 갑자기 돌아가셨대.”

“당숙 어른은 혼자 됐을 때 젊었을 거 아냐. 왜 새 장가 안 갔어?”

“아들 하나 보고 산다고 했다 더마. 당숙 어른이 우리 집 집사였어. 돌아가실 때까지”

재종형님은 중학교까지 선후배 사이로 누나랑 동갑나기다. 형님은 집안 형편상 중학교를 졸업하고 농사꾼으로 눌러앉았지만 현 선생은 도시로 나갔다. 집안의 자랑이 되었다. 성주 골에서는 현 씨 네 큰 아들은 난 인물이었다. 그 사이 당숙이 돌아가시고 당숙에 이어 재종형님이 현 선생 네 선산이랑 전답까지 관리해 왔다. 현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오리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던 셈이다. 재종형님은 소작이란 명목으로 현 선생 네 농사를 지었지만 거기서 나오는 소출에 대해서 현 선생은 문외한이었다. 어머니 소관이었다. 현 선생이 고향으로 돌아오자 소작으로 줬던 논밭과 선산을 돌려받았다. 어머니는 재종형님이 계속 농사를 짓게 하라고 했지만. 어쩌면 그것이 재종형님의 가슴 밑바닥에 딱지로 앉아 있던 상처를 터져 나오게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촌살림은 내게 맡기고 연금이나 받으며 도시에서 편하게 살지 뭔다고 귀농을 하려느냐? 여기는 내게 맡겨도 되는데.”

아버지 돌아가시고 친인척 간에 모인 자리에서 귀농을 할 계획을 말하자 첫 마디에 반대를 하고 나선 것도 재종형님이었다. 현 선생은 생전에 아버지와 한 약속이라고 했지만 재종형님은 믿지 않았다.

사실 아버지는 맏이에 대한 기대가 컸다. 아버지의 애정은 남달랐다. 현 선생 만큼은 집안의 대들보라며 일찌감치 도시로 유학을 보냈었다. 누나와 남동생이 있었지만 모두 읍내 고등학교 졸업장이 마지막이었다. 공부는 맏아들만 시키면 된다고 했다. 여자는 살림만 잘하면 된다고 했다. 누나가 읍내 고등학교 졸업장이라도 딴 것은 어머니 덕이었다. 요리조리 아버지를 속여 딸을 공부시켰던 것이다. 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간 것을 알고 노발대발했던 아버지께 평생 눈 한 번 떠보지 못하고 죽어지낸 어머니였지만 한 마디 했다.

“딸자식도 자식이요.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 했소. 고등핵교는 마치야 지 짝을 찾아도 에미보다 낫것제. 정 당신이 허락을 안 하모 내가 애들 데리고 나가 살라요. 인자 나도 이판사판 잉께 알아서 하시구랴. 현 씨 집 종노릇 고마 할라요.”

제 새끼 보호하려고 발톱을 날카롭게 드러낸 암코양이를 보고 아버지는 뒤로 한 발 물러났다. 여자가 드세질 때는 자식 감쌀 때라는 것을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현 선생이 시골 행을 했을 때마다 어머니 눈을 피해 아들과 선산이나 들녘 산책을 즐겼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유언 아닌 유언을 했다.

“니는 우리 집 대들보다. 퇴직하모 시골 들어와 선산을 지켜야 한다. 너거 엄니도 돌보고.”

죽음에 임박했을 때도 아버지는 현 선생을 불러 앉히고 그 말을 반복했다. 칠순에 갑자기 쓰러진 아버지는 뇌종양이었다. 아버지는 두 달 만에 돌아가셨다. 현 선생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틈만 나면 고향에 돌아와 자리를 다져갔다. 집 마당가에도 빙 둘러 나무를 심고, 사철 피는 꽃을 종류별로 사다 심었다. 선산에도 돈이 될 만한 헛깨나무, 엄나무, 매실, 자두 등, 약용 나무를 구해다 심었다. 퇴직 후 고향에 돌아올 자리를 마련할 때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

그는 S 대기업 연구실에서 사무장이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인텔리였다. 아들과 딸, 남매를 두고 아내와 연애하듯이 살았다. 부부가 은혼식을 맞이할 때까지 고향은 그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꿈의 자리였다. 주말이면 온갖 구실로 불러내는 지인들의 청조차 적당히 따돌리며 고향으로 향했다. 선산을 잠식하고 있던 밤나무를 베어내고 약초가 되는 묘목을 사다 심으며 행복했다.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논농사 밭농사에 눈을 떴다. 초보 농사꾼의 면모를 갖추자 자신감도 생겼다. 그때만 해도 어머니는 그가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라 믿지 않았다. 잠깐 재미삼아 객기 부리는 것이라 여겼다.

사실 농촌 출신이지만 어려서부터 도시로 유학을 떠나 공부를 했던 그는 농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농촌출신으로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사실 아닐까. 특히나 어려서부터 주변으로부터 영특하다느니 공부를 잘한다느니 하며 떠받들림 받고 자란 청소년일수록 부모님은 ‘너는 공부나 해라. 공부해서 가문을 빛내는 인물이 되어라.’며 농사일을 시키지 않았고, 만약 부모님이 일하는 것을 거들어 달라고 하면 ‘저 공부해야 돼요.’ 한 마디면 만사형통이었다.

무지렁이 촌부의 바람은 자식들의 성공이었다. 오륙십 대 농촌 출신들 중에 현 선생이 개천에서 난 용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된 것도 부모가 밑거름이 되어 줬기 때문이다. 현 선생은 그 점을 기억한다. 아무리 효가 바닥에 떨어지고, 노인이 설 곳에 없어진 세태라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현 선생은 부모님이 늙어 자식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부모를 모시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현 선생 같은 마음을 가진 자식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부모를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을 시키지만 많이 힘들어한다. 불효자라고 스스로 낙인을 찍기 때문이다. 중장년층의 마음속에는 부모를 모시는 않으면 불효라는 죄의식이 안개처럼 깔려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너거는 내 죽기 전까지 고향에 돌아올 생각은 말거라. 뒷집 아가 저거 일 맹키로 해 주니 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4년 전, 어머니께 농촌으로 들어올 의사를 비치자 일언지하에 반대하고 나섰다. 현 선생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었으면 좋겠다는 간곡한 표현을 했지만 고개를 저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지만 너는 송충이가 아니라 개천에서 난 용이기 때문에 농촌에 돌아올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현 선생은 어머니가 자신과 아내를 위해서 그러는 줄 알았다. 속으로는 아들의 귀환을 환영하면서도 겉으로만 반대하는 줄 알았다. 현 선생은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자니 하루라도 빨리 농촌으로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어머니를 모시게 되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결과는 참패다.

“당신 얼굴이 자꾸 어두워져. 처음 시골 생활 했을 때는 얼굴에서 빛이 나더만. 어머니야 늘 그러시는 걸 내려놓으소. 그래야 당신이 살지.”

현 선생은 길가의 개망초 꽃가지를 꺾어 아내에게 내민다. 아내는 빙그레 웃으며 꽃을 받아 모자를 벗고 귀 뒤에 꽂는다.

“안 보살, 도 다 닦았소? 울 엄니가 그렇게 미워하는데도?”

“내가 안 보살 아니우. 보살이 아니라는 뜻이잖우. 그러니까 도와는 거리가 멀지요.”

아내가 활짝 웃는다. 오십 중반인데도 아직 수줍음 타는 목련 같은 아내다. 그런 아내에게 미안해서 고생 덜 시키려고 나름 노력하지만 타고난 성질은 다 내려놓지 못해 윽박지르고 화낼 때가 많다. 그때마다 아내는 다소곳이 말한다.

“우리 00선원에 마음 공부하러 가지 않을래요? 맺힌 것을 풀어준대요. 어머니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는데. 당신 성질도 좋아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요. 기도발이 좀 먹힐 때도 됐는데. 왜 감감 무소식일까.”

현 선생은 씩 웃는다. 아내는 속도 없이 착한 여자다. 복이 저절로 굴러들어 왔다고 농담을 하는데 진심일 때가 많다. 착하고 속 깊은 아내다. 현 선생은 귀농의 조건을 따져본다. 귀농은 필요한 조건이 구비되어야 실패하지 않는다. 첫째 아내의 찬성, 둘째 농사지을 터전이 있어야 하고, 셋째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 넷째 자연에게 맡기기, 다섯째 가난하게 사는 것을 행복이라 여기기, 여섯 째 이웃과 너나들이 잘 하기로 곱지만 여섯 번째 항목에서 꽉 막혀버렸다.

오전 내내 선산의 벌통 앞에서 진을 쳤다. 아버지의 묏등 옆에 있는 우람한 상수리나무 한 그루 밑에 평상을 갖다 놓았다. 그들의 휴식장소다. 거기 앉아 있으면 세상 시름이 전무해진다. 자연에게 자신을 송두리째 맡기고 사는 것이 이런 것인가. 반문하면서 빙그레 웃을 수 있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데 앞으로는 이웃 간에 너나들이 하며 배려하는 삶으로 이어갈 수 있는 길을 개척하는 것도 두 사람 몫이 아닐까 싶다. 아내가 챙겨온 물과 떡으로 요기를 하는데 멀리서 누군가가 소리쳐 부르면서 달려온다. 현 선생은 떡을 우물거리며 일어나서 바라본다. 재종형님이다.

“어이, 동상, 동상, 퍼떡 내리 온나. 큰 일 났다. 엄니가.”

“울 오메가 와요? 또 동네 할매랑 쌈박질 하요?”

재종형님은 숨이 턱에 닿아 달려왔다. 산비탈을 오르는데 비지땀을 줄줄 흘린다. 얼굴도 하얗게 변했다. 다급하긴 한 모양이다. 재종형님은 멀뚱하게 쳐다보는 현 선생에게 마구마구 소리를 질렀다.

“엄니가 다쳤다는데 머 하고 있노? 퍼떡 병원 모시고 가야제. 한 시가 급하다.”

“많이 다쳤소?”

“사지도 몬 쓰고 숨만 깔딱인다. 회관에서 술을 좀 묵었다. 술이 취하자 다른 때와 달리 얌전하게 집에 가서 자야겠다며 나갔다. 근데 글쎄 엉뚱한 길로 갔던 기라. 저기 큰 들에 들어가는 다리 안 있나. 거기서 다리 밑으로 떨어진 기라. 들에 일하던 사람들이 봤으니 다행이제.”

“전화를 하지요. 형님이 직접 뛰어올 것 없이”

“글쿠나. 경황이 없어 전화하는 걸 깜빡 했네. 퍼떡 가자.”

현 선생은 재종형님과 선산 비탈을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내도 서둘러 새참 바구니를 챙겨 그들을 뒤따랐다. 재종형님은 얼굴이 하얗게 변해 술 취한 사람처럼 휘청거리며 달렸다. 달리면서 ‘옴마아, 옴마아’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아주버님이 이상해요.’ 어머님이 누워있는 다리에 도착하기 전 아내가 말했다. 평소 어머니와 재종형님 사이에 뭔가 끈끈한 것이 있는 것 같다는 아내의 말을 일축하곤 했던 현 선생도 뭔가 이상낌새를 느꼈지만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어머니가 급했다.

어머니를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실로 모셨다. 고관절이 부서진 데다 척추까지 금이 갔고, 개골창의 돌에 부딪히면서 뇌까지 다쳤다. 전신에 붕대를 감은 어머니는 갑자기 구십 노인이 되어버렸다. 우선 급한 대로 뇌수술부터 했다. 다음에는 고관절 수술, 척추 수술까지 했다. 어머니는 의식불명 상태로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 병원 생활이 이어졌다. 현 선생은 누나와 동생에게 어머니의 사고 소식을 알렸다. 병원에 온 누나의 첫마디는 현 선생을 황당하게 했다.

“네가 촌에 들어온다고 했을 때 우리 엄마 잡을 줄 알았다.”

“누나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러자 옆에 있던 동생이 현 선생 팔을 잡았다.

“형님이 참으소. 누나도 속이 상해서 저러는 거지. 그나저나 엄마는 의식이라도 돌아올 건가? 이대로 가실 건가? 형수님이 고생 하셔야겠네요.”

초죽음이 된 어머니 앞에서 너무도 담담한 누나와 동생이 이상했다. 죽이니 살리니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하던 모자간이 오히려 더 끈끈한 것인지. 현 선생은 하늘이 무너지는 통증에 시달리는데. 어머니가 의식을 차리면 무조건 ‘엄마, 내가 잘못 했어.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할게. 재산 그것이 뭐가 중요해. 내겐 엄마가 중요해. 누나와 동생도 중요하고. 엄마가 원하는 대로 재산 다 나누어줄게.’ 이렇게 용서를 구하고 싶었다.

누나와 동생은 잠깐 얼굴만 비추고 돌아갔다. 형제자매간에 의절하다시피 지낸지도 햇수가 바뀌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한들 풀어질 기미는 없어 보였다. 현 선생은 병원대기실 천정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로부터 현 선생은 집과 병원을 오가는 시간이 길어졌다. 벌들과 있는 시간이 그나마 편했다. 병원생활은 환자보다 간병인이 더 힘들다. 날마다 병원을 들락거리는 아내도 파리해져 갔다. 중환자실은 보호자 외에 아무도 필요 없다. 날마다 출퇴근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가 언제 의식이 돌아올지 모르니 그때까지라도 곁에 있고 싶다는 거다.

“안 보살, 당신이 그런다고 엄니가 달라지지 않아. 내가 울 엄니 아들이잖아.”

석 달이 지났다. 어머니의 의식은 돌아왔지만 말은 못했다. 어머니는 일반 병동으로 내려왔고 간병은 아내가 맡았다.

현 선생은 들녘을 바라봤다. 들녘은 어느새 파릇파릇 벼 포기가 자라기 시작했다. 고추밭도, 깨밭도, 콩밭도 무성해질 즈음 분봉도 끝났다. 벼논에 병해충 방지 농약을 처대자 죽어나오는 벌의 개체가 자꾸 늘어났다. 선산에 놓아둔 벌통은 그나마 나았지만 들 가운데 집 주변에 둔 벌통은 벌이 다 죽어 빈 벌통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때도 있었다. 현 선생은 귀농에 대해 회의가 왔다. 귀농 자금으로 시작한 꿀벌농장의 꿈은 빚만 남기고 막을 내릴 것 같다. 돈 벌이로 시작한 귀농이 아닌데도 허전하고 힘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다정하게 대해줄 줄 알았던 재종형님과 어머니, 동네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것이 아팠다. ‘이런 대우 받으려고 고향에 돌아왔던가.’ 현 선생은 가슴을 짓누르는 외로움에 시달렸다. 늘 그리워하던 고향인데 지금은 타향보다 더 타향 같다. 무늬만 고향인 마을에서 내가 무엇을 하나. 노후를 어떻게 보내나. 어미 잡아먹은 아들이라는 손가락질을 어떻게 감내하나.

어머니가 병원에 있는 동안 가장 열심히 어머니를 병문안 와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재종형님이었다. 날마다 오다시피 했다. 아내 말에 의하면 재종형님은 말이 없단다. 어머니 곁에 앉아 손발을 주물러 주고 손을 꼭 잡고 있다가 돌아가신단다. 동네에서 만나는 재종형님은 풀이 죽었고, 현 선생을 봐도 옛날처럼 째려보거나 비웃는 말을 건네거나 하지 않았다. 슬픔을 가득 머금은 눈빛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고 멀어져 가곤했다.

현 선생이 재종형님께 고맙다고 한 날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그것 밖에 달리 해 드릴 게 없잖나. 가슴에 한이 깊은 어른인데.”

손전화가 신나게 울린다. 아내였다. 어머니가 말문을 여셨단다. 현 선생만 찾는단다. 현 선생은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렸다. 석 달 만에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게 되다니. ‘엄니, 내가 잘못했어. 무조건 이제 엄니 말대로 할게. 엄니 속 안 뒤집을 게. 그러니까 이아들 한 번만 곱게 봐 줘.’ 그런 마음이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던 아내가 먼저 손을 잡았다.

“어머니 뵙기 전에 의사선생님 먼저 뵙고 가래”

“왜?”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담당 의사의 방을 찾아갔다. 의사는 현 선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수술이나 모든 게 잘 되었지만 소생은 힘들지 싶습니다. 마음 준비하시라고. 제가 보기에 어머니는 잠깐 기운을 차린 것 같아요. 노인은 대부분 돌아가시기 전에 잠깐이지만 맑은 정신으로 돌아오시거든요. 어머니가 그 케이스 같아요. 모든 기능이 소생불능 상태로 진입하고 있어요. 마지막 유언이라 생각하시고 어머니를 만나 보세요. 그리고 환자를 보고 싶어 하는 분들 모두 와서 인사하고 가는 게 좋을 겁니다.”

현 선생은 망연자실했다. 눈물도 안 났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내가 네 놈을 내 집에서 쫓아내야 두 다리 쭉 뻗고 자겠다. 내 재산 니한테 한 푼도 안 줄라 캤는데. 내 모르고로 그 영감텡이가 니 앞으로 다 해 준 줄 우찌 알았것노. 그 생각만 하모 분이 나서 몬 살것다. 너거 현가들, 너거 할매. 아이고 가슴이야.”

술에 취해 동네 부끄러운 줄 모르고 패악을 부리던 어머니가 갑자기 그립다. 엄니, 울 엄니, 어쩌면 좋아요. 현 선생은 보호자 대기실에 들어가 긴 의자에 무너지듯 너부러졌다. 눈을 꼭 감았다.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머니가 당신 집이라는 본채도 아버지는 현 선생 명의로 생전 증여를 했었다. 당신 죽고 나면 알리라면서. 신기하게도 잠이 들었다. 꿈에 아버지를 봤다. 빙그레 웃으시며 ‘괜찮다. 괜찮다.’하셨다. 현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를 뵈러 병실로 향했다.

병실에 누운 어머니는 현 선생을 보자 투명하게 웃었다. 당신 옆으로 오라고 손을 움직였다. 아내에게는 병실에서 나가 달라고 손짓했다. 아내는 어머니의 침대 곁으로 칸막이를 쳐 주고 병실을 나갔다. 현 선생은 어머니의 핏기 없는 손을 꼭 잡았다.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엄니!”

고개를 끄덕이던 어머니는 그의 손을 끌어당겨 가까이 오라고 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모기소리만 했다. 또박또박 어머니는 말했다. 현 선생은 멍한 채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가 희미하게 웃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현 선생 속에서 회오리바람이 사정없이 휘갈겼다. 어머니는 그의 손을 꽉 잡더니 스르륵 힘을 놓았다. 현 선생은 어머니를 소리쳐 불렀고, 아내와 간호사들이 달려왔다. 어머니는 다시 의식 불명 상태에 놓였다가 사흘 만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재종형님이 가장 서럽게 울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넋을 놓고 있는 현 선생 대신 맏아들 노릇을 했다. 그는 장례 식장을 찾은 손님을 맞이하고 보내는 것에 빈틈이 없었다.

마을 가까운 행운사 절에 사십구제를 올리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내가 물었다.

“어머니가 무슨 말을 했는데 당신 넋을 뺀 거야?”

“그냥, 아무것도.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하더라. 당신한테 참 고맙다고 했어.”

현 선생은 거짓말을 했다. 그것은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재종형님과 현 선생만 아는 일이었다. 인간의 삶속을 들여다보면 소설 보다 더 소설 같은 일이 많다하지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이야.

“사는 게 진짜 소설 같지?”

현 선생은 아내를 보고 자조하듯 웃었다.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이 또렷하게 들린다. 또박또박 혼신의 힘을 모아 쏟아내던 그 말.

‘누나만 당숙모의 친딸이다. 너거 아부지. 첨부터 씨 없는 수박이었다. 너거 할매가 꾸민 일에 나는 평생을 희생당했다. 할매가 그 아이를 네 형과 바꿔치기 했다. 너희들 친 아비는 당숙이시다. 그가 보고 싶구나. 그동안 고마웠다. 뒷집 큰 아는 그날 말했다. 내가 다치기 전에’

집에 도착하자 꿀벌무리가 먼저 반겼다. 벌들은 하얀 모자를 쓰고 어머니의 집을 에워쌌다. 벌들은 나선형의 원을 그리며 군무를 추고 있었다. 영혼을 위한 춤사위가 아스라이 멀어져갔다. 현 선생과 아내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어머니!

                   2019. 6. <경남작가 36호>

 

 

댓글목록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오랜만에 소설 하나 올립니다. 지난해 발표작입니다.^^이젠 가을걷이 철이라 바빠요. 타작도 해야 하고 단감도 따고 있어요.^^
모두 코로나19에 걸리지 마시고 건강하시고 문운 대통하길 빕니다.^^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기막힌 가족사에 현선생과 어머니 그리고 재종형에 숨겨진 비밀에 대한 소설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늘 보람되세요.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샘, 건강 하세요. 항상 발표한 소설을 보면 퇴고를 제대로 못한 것이 눈에 들어와요.
왜 저는 퇴고하기가 어려울까요. 내가 쓴 소설을 다시 읽고 다듬는 작업만큼 힘든 게 없지 싶어요.ㅋ
티가 자꾸 눈에 들어와요. 몇 군데 고쳐서 새로 올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