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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날개를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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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1건 조회 1,037회 작성일 20-12-0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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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달았다

윤복순

 

1년에 한 번씩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다라 클럽 회원들과 전통문화 국제교류 행사를 한다. 작년에 우리 팀이 일본에 갔기에 올해는 그녀들이 전주에 와야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길이 막혔다. 그래서 도내 거주 일본인들과 도민을 초대해 교류의 장을 열었다.

전통문화 교류이다 보니 행사 때는 한복을 입는다. 나는 한복이 없다. 이 단체의 회원이 되기 전 까지는 한복 입을 일이 없었다. 아들딸 결혼식 때도 한복집에서 빌려 입었는데 하루 입겠다고 수 십 만원 하는 한복을 맞추기는 쉽지 않다. 한복은 빌리는 값도 만만치 않다. 이만저만 한복 걱정을 하니 아파트 아주머니가 아쉬운 대로 입으라며 남녀공용 생활한복을 줬다. 모두들 아름답고 화려한 전통한복인데 나만 생활한복을 입으니 미운 오리새끼가 되었다.

올봄 동네 아주머니가 우리 이사가.” 하며 큰 가방을 약국으로 가져왔다. 조심스레 열어보니 한복이다. 입을 일도 없는데 이사 가면서까지 끌고 다닐 필요는 없단다. 어지간한 것은 다 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 챙겼다며 나보고 잘 입으라고 한다. 치마 두 개 저고리 하나 속치마 속저고리 속바지 등등 일체를 다 주었다.

평소에도 옷을 잘 얻어 입는다. 옷 사러 다니면서 시간 뺏기지 않아 좋다. 촌스러워서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지 않는데 이 옷 저 옷 입어보면서 스트레스 받지 않아 더 좋다. 내 돈 주고 산 것이 아니니 맘에 들지 않아도 속상할 일도 없다. 얻은 옷들 끼리 색을 잘 맞춰 입는다. 옷 하나 얻을 때마다 지구 생명을 1초 늘린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산다. 이런 나를 알기에 동네 사람들이 자기 옷뿐만 아니라 친구들이 안 입는 옷까지 얻어다 준다.

그녀가 주고 간 한복은 치마 길이만 자르면 될 것 같다. 그녀가 키가 크고 날씬해서 저고리 품이 작을 줄 알았는데 코로나19로 외식하러 다니지 않았더니 체중이 줄어 저고리가 맞는다. 수선 집 아저씨가 치마 물색이 참 곱다며 본견 좋은 것이니 물세탁하면 안 된다고 알려준다.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코로나가 주춤해 한복 입을 일이 생겼다고, 저고리는 맞아 치마 길이만 줄였다고, 수선 집에서 비싼 것이라고 하더라고, 고맙다고, 잘 입겠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입으니 기분이 좋단다. 일본인과 국제교류를 하면서 입으니 더 의미가 있다. 아들 결혼식 때 입은 옷이라며 제일 비싼 걸로 맞췄다고 한다.

아들이 결혼할 사람이라고 데리고 왔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단다. “하필이면 왜 일본 여자? 네가 왜?” 내가 한일여성친선협회 일을 한다고 해서 나에게만 며느리가 일본인이라고 처음으로 말했단다. 한일관계가 냉각된 요즘 같은 때는 나도 이런 행사하러 가는 것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한복을 나에게 준 것도 며느리를 생각해 양국의 관계가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새벽운동을 나가는데 의류수거함 위에 흰 구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한복에 신는 고무신 모양이다. 코 양쪽에 수까지 놓은, 누군가 결혼식 때 신은 것 같다. 신어보니 내 발에 딱 맞는다. 한복은 생각도 못하고 약사회 합창 때 흰색드레스를 입는데 그 때 신을 생각에 챙겼다. 합창대회 때 잘 신었다. 신발까지 완벽하니 행사 날에 멋지게 입고 신기만 하면 된다.

회장의 전화다. 도지사님이 그날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잼버리대회 D-1000 행사 때문에 참석을 못 하신다고 나보고 도지사 축사를 읽으란다. 다른 때 같으면 한복이 없어서 앞에 못 선다고 했을 텐데 큰 목소리로 걱정 말라고 했다. 센스 쟁이 회장이 축사를 메일로 보내줬다.

보고 읽는 것도 못 읽을까봐? 막상 읽으려니 매끄럽게 읽혀지지 않았다. 소리 내어 책 읽은 적이 언제인가. 웅변식으로 할까 시낭송 하듯 분위기 있게 할까 이야기 하듯 할까. 이렇게 저렇게 읽어 보았다. 누굴 앉혀 놓고 들어보라고 할 수도 없고.

어떤 사람이 돈을 많이 벌었다. 국회의원 해 볼 욕심이 생겼다. 사람들 앞에서 유세를 하려면 말을 잘 해야 하는데 배움은 많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참깨 단을 뒷동산에 죽 세워놓고 그 앞에서 연설 연습을 했다고 한다. “친애하는 깻대 여러분그 생각이 떠올랐다.

이야기 하듯 하기로 했다. 그 사람처럼 연습을 했고 그날 잘 읽었다. 선배가

도지사 축사를 아무나 대독하냐.”

그러게요, 가문의 영광이라 오늘 밤에 잠도 못 잘 것 같아요.”

나 같으면 내일까지 못 자겠다.” 웃을 수 있었고 밍밍하던 일상에 잠시나마 긴장할 수 있게 해 줘서 축사 대독도 나에겐 좋은 일이다.

그녀에게 자기 한복 덕분에 도지사 축사를 대독했다고 나에게도 잘 어울리더라고 더 잘 입겠다고 전화를 했다. “어머, 내 한복이 날개를 달았네.” 활동 많이 하고 통화 자주 하자고 한다.

옷을 얻어 입는다고 자랑을 많이 했더니 어쩌다 옷을 사 입어도 동네 사람들은 안 보던 옷인데 누가 줬어?” 하고 묻는다. 남들이 준 옷이 나에게 더 잘 어울리는 모양이다. 앞으로도 많이 얻어 입고 지구 생명도 늘리자.

얻은 한복과 주은 신발로 도지사 축사 까지 대독했으면 그녀 말대로 날개를 달았다.

 

2020.11.13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물려 받은 한복을 입고 도지사 축사를 대독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옷을 주위에서 물려받아 입으시는 소탈한 성품을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저도 한복을 입어본게 언제 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의 생긴 모습이 한복을 자주 입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심심치 않게  주위 사람들이 한복이나 두루마기를 빌려 달라는 얘기를 해오지만 실은 없어서 그 청을들어주지 못해 민망하기도 하답니다..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하시는  모습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