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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죽음'의 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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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82회 작성일 20-12-0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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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호칭


‘사는 일 또는 살아 있음’을 뜻하는 말이 ‘삶’이다. 이의 유의어(類義語)가 ‘목숨 • 생(生) • 생명(生命)’이다. 한편 ‘삶’ 반대말은 ‘죽는 일,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을 뜻하는 ‘죽음’을 높이지 않고 일반적으로 표현하는 비슷한 말이 ‘사망(死亡) • 사몰(死沒) • 입몰(入沒)’이다. 아울러 ‘죽음’의 참조어로 ‘잠매(潛寐)를 열거할 수 있으리라. 자고로 선조들은 ‘죽음’에 대해서는 관대했었던 관계로 최대한 예를 갖췄다. 따라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망자에 대하여 야박하게 대하지 않고 완곡하게 높이는 표현을 하는 게 암묵적인 관습이었다. 그런 까닭일까. ‘죽음’에 대한 표현이 상당히 다양해 각각에 대한 정확한 용처가 헷갈리기도 하는데 그들에 대한 대강이다.


‘사망(死亡)’은 ‘사람이 죽음’을 뜻하는 단어로 가장 많이 회자(膾炙)된다. 일반적으로 ‘죽음’에 대신해 쓰이는 높임말의 몇 가지이다. ‘지하에 숨어 잔다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을 이르는 말’인 잠매, ‘고인이 되었다는 뜻으로 자기 가족 등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인 작고(作故) • 임종(臨終), ‘사람의 목숨이 끊어짐 다시 말하면 죽음을 뜻하는 말’인 운명(殞命), ‘영원히 잠든다는 뜻으로 죽음을 이르는 말’인 영면(永眠), ‘영원히 간다는 뜻으로 죽음을 이르는 말’인 영서(永逝), ‘세상을 버린다는 뜻으로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인 기세(棄世)이고 이의 비슷한 말이 하세(下世)이다. ‘영영 가고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으로 죽음을 완곡하게 나타내는’ 장서(長逝) 등이 쓰인다. 하지만 세상에서 망나니 노릇을 했거나 범법을 했던 ‘죄를 지은 사람이 죽음 또는 죄를 지은 사람을 죽임’에 대해서는 야박할 정도로 단호하고 몰인정하게 물고(物故)라고 했다. 이 말의 유의어가 사형(死刑)이다.


‘죽음’에 대한 높임말에도 엄연히 등급이 있었다. 그 옛날 ‘일반적으로 천자(天子)나 황제(皇帝) 또는 황후의 죽음 이를 때’에는 붕어(崩御) • 훙어(薨御)라고 했고, ‘임금이나 존귀한 사람이 세상을 떠남을 높여 이르던 말’을 승하(昇遐) • 등하(登遐)라고 했다. 또한 ‘왕이나 왕족, 귀족 등의 죽음을 높여 이르던 말’이 훙거(薨去) • 훙서(薨逝)이고, ‘그 옛날 일반 관리의 죽음을 뜻했는데 비해 오늘날엔 죽음을 격식 갖춰 이르는 말’로서 졸(卒) • 몰(沒)이라고 하며, ‘고꾸라져 죽는다는 의미’로 폐(廢)라고 하고, ‘녹(錄)을 받지 않고 죽는다는 의미로 선비의 죽음’을 불록(不祿)이라고 불렀다.

 

오늘날 지체 높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통상적인 지칭의 몇 가지 기준이다. ‘고인의 지체가 매우 높은 대통령이나 국가원수 급’에 대해서 서거(逝去)라는 표현을 쓴다. 그렇다고 일괄적인 적용이 아니고 해당 국가의 국력 또는 우방국 또는 적성국인가에 따라 달리 호칭되는 게 외교적 관례이다. 한편 ‘대통령이나 국가원수 급에 해당하지 않지만 저명한 외국인의 죽음’에 대하여 사거(死去)라는 표현하지만 사실상 서거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죽음을 높여 부르는 말’로서 별세(別世) • 서세(逝世)라고 표현하는 게 원칙처럼 굳어졌다. 또한 ‘인간계를 떠나서 다른 세계로 간다는 뜻으로 특히 귀인(貴人)의 죽음을 이르는 말’이 타계(他界)이다. 그런데 요즈음 ‘별세’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윗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경우에 사용’하고, ‘타계’는 ‘어른이나 귀인이 세상을 뜨셨을 때 사용‘하는 경향을 띄고 있다. 아울러 ‘금슬(琴瑟)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아내의 죽음을 이르는 말’로서 단현(斷絃), ‘목적을 이루려다가 목숨을 잃는 죽음’을 뜻하는 말이 산화(散華)이며, ‘자손이 조부모나 부모보다 먼저 죽는 죽음’이 참척(慘慽)이고, ‘어린 나이에 죽음’이 요절(夭折)이다.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죽음을 높여 부를 때’ 순국(殉國이라 하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높여 부를 때’ 순교(殉敎)라고 하며, ‘자신에 주어진 직책을 다하다가 목숨을 바친 사람의 죽음’이 순직(殉職)이다. 그리고 ‘전장에서 적과 싸우다가 목숨을 바친 죽음’을 전사(戰死) • 전몰(戰歿) • 전망(戰亡)이라고 한다. 아울러 중국 고대의 유가(儒家)의 경전으로서 오경(五經) 중에 하나인 예법(禮法)의 이론과 실제를 풀이한 책인 예기(禮記)에서 새(鳥)의 죽음을 ‘강(降)’이라 했고, 네 발 짐승의 죽음을 ‘지(漬)’라고 했으며, 구난(寇難 : 외국의 침략)에 인한 죽음을 ‘병(兵)’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종교에 무지몽매한 때문에 그리 느끼는 걸까. 같은 ‘죽음’에 대해 구태여 달리 지칭해야 하는 연유가 궁금하다. 이 땅에 먼저 뿌리 내렸던 때문일 게다. ‘죽음’에 대한 불교 용어가 다른 종교에 견줄 때 다양했다. 불교에서 ‘일체의 번뇌에서 해탈(解脫)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높은 경지나 석가나 고승의 입적(入寂)을 이르는 말’이 열반(涅槃) • 적멸(寂滅)이다. 그리고 ‘수도승(修道僧)의 죽음을 이르는 말’로서 입적(入寂) • 귀적(歸寂) • 입멸(入滅)이 사용된다. 아울러 ‘중의 죽음을 달리 이르는 말’이 귀적(歸寂) • 천화(遷化)이다. 한편 가톨릭에서는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생을 마친다.’라는 뜻을 지닌 한자성어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줄임말로서 “고해성사를 받아 대죄가 없는 상태로 ‘죽음’을 맞았을 때” 선종(善終)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개신교에서는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죽음에 이르는 말’로서 소천(召天)이라고 칭한다. 한편, 천도교에서는 죽음을 환원(還元)이라고 부른다.


‘죽음’의 행태와 유형이다. 자의(自意) 여부에 따라 자살(自殺)과 타살(他殺), 사고인가 혹은 노쇠함 때문인가에 따라 사고사(事故死)와 자연사(自然死)로 나뉜다. 아울러 ‘죽음’의 유형으로 ‘갑자기 죽음’을 급사(急死) • 졸사(猝死)라고 하며 이의 높임말이 급서(急逝)이다. 한편 ‘뜻밖의 재앙으로 죽음’이 횡사(橫死) • 변사(變死) • 생죽음이고, ‘병으로 죽음’을 병사(病死) • 병폐(病斃) • 병몰(病沒)라고 부르며 이의 높임말이 병졸(病猝)이다. 그리고 ‘명대로 살지 못하는 죽음’이 비명(非命) • 비명횡사(非命橫死) • 생죽음이다. 그런가 하면 ‘객지에서 죽음’을 객사(客死)라고 하고, ‘늙어서 죽음’이 노사(老死)이다. 이 외에 언뜻 떠오르는 압사(壓死), 동사(凍死), 옥사(獄死), 즉사(卽死), 안락사(安樂死), 아사(餓死), 익사(溺死), 추락사(墜落死), 질식사(窒息死) 따위가 있다. 오늘날 의술이 발달하고 사회보장 네트워크의 씨줄과 날줄이 촘촘하다지만 독거노인의 고독사(孤獨死)가 증가함을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난감하다.


‘죽음’이라는 말의 뜻은 비교적 간단하고 뚜렷하다. 그럼에도 사전에 따르면 ‘뜻이 유사한 말(유의어)’은 무척 다양했다. 이를 미루어 짐작할 때 큰 틀에서 뜻하는 바는 대동소이하지만 그들의 쓰임새는 미세할지라도 약간의 차이가 있어 말의 맛과 멋을 살리기 위해 쓰이지 싶다. ‘죽음’에 대한 큰 범주에서 유의어들이다. 하세(下世), 사멸(死滅), 불귀(不歸), 절식(絶息), 절명(絶命), 사망(死亡), 입적(入寂), 종신(終身), 하직(下直), 장면(長眠), 사(死), 사거(死去), 운명(殞命), 입몰(入沒) 따위를 들 수 있다. 이 다양한 말들이 함축하는 뜻과 품격의 차이를 올곧게 터득함은 우리말을 한층 더 찰지고 맛깔나게 부릴 가능성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증좌가 아닐까.


2020년 10월 4일 일요일    

댓글목록

신외숙님의 댓글

신외숙 작성일

죽음만큼 다양한 단어도 없을 듯 싶습니다. 죽음에 대한 원인도 다양하고 그런데 사람들은 망자를 보면서도 자신은 안 죽고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생각하니 그 또한 이상한 현상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