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출판사

좀 마르신 것 같습니다 > 자유창작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고객센터
상담시간 : 오전 09:00 ~ 오후: 05:30
(주말 및 공휴일 휴무)
02.2612-5552
FAX:02.2688.5568

b3fd9ab59d168c7d4b7f2025f8741ecc_1583557247_0788.jpg 

수필 좀 마르신 것 같습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65회 작성일 20-12-14 14:53

본문

좀 마르신 것 같습니다


이따금 ‘좀 마르신 것 같습니다’라는 인사치레의 말을 듣는다. 그런 수인사를 받고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봐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갸우뚱거리기 마련이다. 믿겨지지 않아 부리나케 체중기에 몸을 맡겨 봐도 체중은 평소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지천명 초부터 고희 중반 고개를 넘은 여태까지 체중이 64~66kg을 벗어났던 적이 있었던가. 따라서 남의 눈에 띌 정도로 체중이 증가하거나 감소했던 기억이 전혀 없다. 그런 나를 두고 오랜만에 만나서 건네는 수인사 치고는 괴이하여 그 진의를 어림짐작하기 어렵고 헷갈렸다. 과연 그 내면에는 뭘 담고 있을까?


체중기를 오르내리며 확인에 확인을 거듭해도 늘 그 타령이었다. 미심쩍어 건전지를 새것으로 갈아 끼우거나 바닥이 경사진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어 이리저리 위치를 바꿔가며 야단법석을 떨어 봐도 결과는 매 한가지였다. 그럴 때마다 정중하게 건네던 인사말의 참뜻을 헤아릴 수 없을 뿐더러 답답해 거울을 들여다보며 독백하듯 중얼거리는 버릇까지 생겼다. 내 체중은 늘 제자리를 맴도는 데 첫 인상에 따른 섣부른 어림짐작이 턱없이 틀렸다는 생각에 어이가 없어 실소를 금할 수 없어 씁쓸했었다. 그렇게 심란해하면서 허튼소리에 가까운 인사말을 건네던 진의가 궁금해 딴에는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펴기도 했다.


나는 원래 운동 신경이 둔한 등신인데다가 천성이 무척 게을러 젊은 날부터 특별한 운동에 마음을 뺏겼던 경험이 전혀 없다. 게다가 덩치 또한 평균을 조금 웃도는 처지였다. 그런 터수에 하루 세끼 꼬박꼬박 찾아 먹으며 기껏해야 주어진 일을 했던 까닭일까. 성인이 된 이후 여태까지 체중은 늘 그 자리를 맴돌고 있다. 그런 연유에서 특별히 “좀 마르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다소곳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끙끙 앓으며 별의별 생각을 거듭하게 마련이다. 여기에 사족 하나 붙이련다. 지천명의 끝 무렵부터 여태까지 동네 뒷산을 자주 오르내리는 등산에 심취해 있다.


세월이 흐르며 “늙어 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고 읊조리던 어떤 노랫말이 떠오른다. 생을 누리며 세월을 거역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섧고 애답게 늙어가는 게 아니라 기품 있고 후덕하게 영글어 가는 과정이 늙음이라면 분명 크나큰 은총이다. 고희를 넘기면서 듣기 시작했던 ‘좀 마르신 것 같습니다’라는 인사를 들을 때마다 그 이면에 내밀하게 담겨있는 메시지가 무엇일까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다가 최근에 어렴풋이 깨달을 것 같았다. 어쩌면 위대한 발견일지도 모른다. 애초엔 아무것도 건져내지 못했는데 실마리를 찾아내다니! 그런 인사를 받았던 날 내 얼굴 모습은 평소와 달리 ‘유달리 피곤하거나 긴장한 기색이 완연해 남에게 주는 느낌이 편해 보이지 않았을’ 게다. 여느 때와 달리 가볍지 않은 일이나 피치 못할 걱정거리에 직면할 경우 표정이 굳어지거나 어둡고 무거워 행동까지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저런 과한 운동이나 행동을 거듭하거나 가정사에 휘말려들어 비틀거릴 때 피곤하고 지친 기색을 완연하게 밖으로 드러내 한층 늙어보이게 마련이었지 싶다. 그런 경우를 매구 같이 간파하고 웃는 낯으로 에둘러 “좀 마르신 것 같습니다”라는 두리뭉실한 인사를 건네지 않았을까. 이런 정황을 곧이곧대로 “좀 늙어 보이 십니다”라고 이른다면 가혹하게 정곡을 후벼 파는 결례일까?


이즈음 내 모습의 진면목이다. 백두옹에 정수리가 민둥산을 연상시키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물론이고 볼품없는 백미(白眉)도 맘에 들지 않아도 눈을 질끈 감고 넘기고 있다. 그뿐이면 좋으련만 눈언저리에 잔주름이 자글자글 거리고 목 부위의 볼썽사나운 주름살은 섧게도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이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얼굴 여기저기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검버섯 또는 저승꽃이라는 지루각화증(脂漏角化症)에 눈길이 머물면 왠지 가슴이 시리고 쓸쓸한 감상에 젖기도 하는 내 맘을 정확히 헤아리기 힘들어 휘청거린다. 또한 요즘 걸을 때 몸을 앞쪽으로 구부정하게 숙이는 버릇이 생겼다. 이런저런 연유에서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최근에는 거울을 멀리한다. 그 이유는 낯선 노인의 엉거주춤한 꼴이 영 탐탁하지 않고 젊은 날의 나는 오간데 없고 총기도 없어진 추레하고 부스스한 모양새를 마주하기 싫다. 또한 퀭한 눈에 탄력 없이 번들거리는 피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용기가 나지 않는 어리석음 때문이다.


언제였던가. 말기 암 환자인 친구 문병을 갔던 적이 있다. 예상은 했지만 이지적이고 학자적인 기품이 넘쳐났던 당당한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의식이 거의 없는데다가 앙상하다 못해 참혹한 몰골에 이승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직감이 엄습했다. 그런데도 달리 할 말이 궁색해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가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혼란에 빠져 기껏 생각했던 말이 “평소 의지가 굳었던 친구라서 곧 툴툴 털고 일어 날 것”이라며 어울리지 않는 말을 친구 부인에게 위로랍시고 건네며 천장을 향해 눈길을 피한 채 애꿎은 눈물만 떨궜던 씁쓸한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친구의 참혹한 상황을 낱낱이 목도하고 겨우 내뱉었던 어쭙잖은 내 말처럼 지인들이 몇 살 연상인 나를 앞에 대놓고 늙어 보임을 직접 입에 담기 어려웠을 게다. 그래서 ‘좀 마르신 것 같습니다’라는 말로 에둘러 표현하며 위로를 담아 덕담을 했을 거라는 추측이 사리에 합당하지 싶다.


일터에서 물러난 지 10년째이다. 그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간헐적으로 들어온 인사 중에 하나가 “그동안 하나도 변하지 않고 한결 같습니다”라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는 야박한 세상에 상처입고 의기소침할지 모를 내게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부조였으리라. 그래서 이 같은 립 서비스(lip service)는 앞으로 건강 잘 챙기며 살라는 조언쯤으로 여기련다. 이런 맥락에서 향후에 “좀 마르신 것 같습니다”라는 인사를 들을 때 덤벙거리지 않고 “좀 늙어 보이 십니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 맘 편하게 살아갈 요량이다.


한국문학인,이천이십년 겨울,Vol.53, 2020년 12월 15일
(2020년 8월 16일 토요일)   
 

댓글목록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선생님 글에 댓글 단다는 것이 제 글에 달았습니다. ㅋ
춥습니다. 건강 잘 챙기십시오. 꾸준한 글향이 노옹이라는 것이 무색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