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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김장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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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2건 조회 1,170회 작성일 20-12-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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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철에

윤복순

 

중국이 김치의 종주국이라고 우긴다는 글을 읽었다. 중국의 절임채소인 파오차이가 김치로 번역된다. 그렇다고 절임채소가 김치는 아니다. 국제식품귀격위원회(CODEX)에서 한국 김치와 중국 파오차이는 제조공정과 발효단계에 있어 큰 차이가 있고, 김치는 2001년 국제규격을 인정받은 한국 고유 식품이라고 규정했다.

요즘은 김장철이라서 피로회복제가 많이 나간다. 핵가족화가 되어 김장을 하지 않는 집이 많다고 하지만 자기 집에서 하지 않을 뿐 친정이나 시댁에서 다 같이 모여서 한다. 친구들끼리 품앗이처럼 하기도 한다.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나 젊은 엄마나 모두 김장 이야기를 한다.

빈 김치통을 챙겨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도, 차에서 김치를 가득 채운 김치통을 내리는 사람도 자주 목격된다. 김장을 한 사람은 한갓지다 하고 아직 하지 않은 사람들은 할 일이 걱정이라고들 한다. 김장하기가 1년 행사인 것은 확실하다. 나는 우리 포도밭 농사를 지은 아저씨네 집에서 해 준다고 해서 마음 편하게 있다.

예년에는 11월 하순부터 이집 저집에서 김장했다고 한 포기, 한쪽씩 갖다 주어 한 통이 되었는데 올해는 K선생만 한 쪽 주었다. 뿌리 부분만 잘라 쭉쭉 찢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새 김치 맛을 보니 묵은 김치 못 먹겠다.

마침 포도밭에 일하러 오는 아주머니가 자기네 김장하는 날이니 어서 김치통 가지고 오라고 한다. 아주머니가 나보다 나이가 많아 양심은 찔리면서도 김치냉장고용 통을 들고 갔다.

아주머니는 밭에서 배추 뽑아 다듬어 간죽이고, 장에 가서 준비물 사오고, 배추 씻고, 양념 만들고 하나에서 열까지 전부 직접 했다고 한다. 젓국 까지 집에서 다리고 새우젓도 직접 담은 거라고 한다. 동네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웃으면서 김치 담그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일주일도 더 걸렸을 대 행사에 빈손으로 너무 큰 통을 가지고 간 것 같아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통이 없어 김치냉장고용을 가지고 왔는데 반절만 주세요.” 걱정 말라고 한다. 당신들은 봄에 햇김치를 담아먹을 수 있으니 꼭꼭 눌러 채워주겠단다.

토요일 다 저녁에 딸이 죽어가는 목소리로 어떤 놈이 김장이란 걸 만들었는지 옆에 있다면 때려주고 싶다.” 고 한다. 시댁에서 김장하고 저희 집에 가면서 하는 전화다. 딸네 시어머니는 손이 커서 김장을 많이 한다. 내 몫까지 해서 매년 보내주신다. 작년에는 초대해 김장은 전날 다 담가놓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줬는데 올해는 두 박스를 택배로 부쳤다고 한다.

딸이 금요일까지 근무하고 토요일 300포기나 김장을 했으니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시이모들 시외숙모들 동서까지 다 모여서 한다고 하지만. 나는 딸을 달랬다. 아무리 힘이 들기로 너의 시어머니보다 더 힘이 들겠냐. 나이도 많지, 너는 버무리기만 하지만 사부인은 버물릴 수 있게 며칠 전부터 준비 다 했지, 그 많은 식구 점심 저녁 해 먹여야지, 싸 보내야지, 뒷정리 다 해야지. 한 달은 몸살 날 것 같다. 그 양반들 둘이 먹겠다고 그렇게 많이 하시겠냐.

아무 짬도 모르고 불평하는 딸에게 중국의 김치 종주국 주장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한국 사람들은 김장을 하지 않는다. 중국 김치 수출의 90%는 한국이 가져간다.” 등의 이유를 댄다고 한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듣지 않으려면 힘이 들더라도 집집마다 김장을 해야 하지 않겠냐? 김장은 김치를 담그는 것뿐만 아니라 김치를 나누는 것 까지가 김장문화다. 식구들이 모여 공동으로 연대감과 소속감을 가지고 김치를 담그고 이웃 간에 나누어 먹는 나눔을 실천하는 점이 유네스코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다. 너의 시어머니가 그 중심에 있으니 대단하다고 박수쳐드리라고 했다.

아주머니가 주신 것, 사돈마님이 보내 주신 김치, 부자가 되었다. 아저씨 네도 김장을 했다고 가져가라고 한다. 김치냉장고에 다 넣을 수가 없다. 아저씨 네가 준 것은 포도밭 저온창고에 보관하기로 했다.

내가 딸 나이일 때 우리 시어머니도 매년 김장을 많이 하셨다. 어느 해 김장한다고 불러서 갔다. 아마 나도 딸 같이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다 준비해 둬서 버무리기만 했다. 내 하는 짓이 얼마나 당신 눈에 거슬렸는지 그 다음 해부터 일요일이 아닌 평일에 다 해서 보내주셨다. 김치통에 번호까지 적어 순서대로 먹으라면서. 시어머니 편찮으시기 전까지 이렇게 김장김치를 받아먹었다.

나에겐 우리 집안의 김장 비법이니 전통이니 이런 것이 있을 수가 없다. 며느리를 봤지만 김장하게 내려와라, 김장했으니 보내줄게 이런 말도 할 수 없다. 어설펐지만 그 때 시어머니에게 잘 배웠으면 지금쯤 김치명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며느리에게 전수해줄 것이 없으니 면이 서지 않는다. 딸에게 엄마 꼴 나지 말고 시어머니한테 김장하는 것 잘 배우라고 했다.

연말은 다가오는데 나는 일 년 동안 무엇을 이웃과 나누었나. 머리를 쥐어짜듯 생각해봐도 아무것도 없다. 특히 김치를 담가 이웃이나 친척에게 한 포기라도 선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 주는 것만큼 좋은 일도 없을 텐데. 안 해봐서 겁도 나고 솜씨가 없어서 감히 김장을 담가야겠다는 마음도 못 내고 있다.

김치종주국이라고 떼쓰는 중국의 코를 남작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김장을 하기는 해야겠는데. 맛이 없게 담가져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수업료를 냈다고 생각하고 내년부터는 도전해 봐야할까 보다.

 

2020.12.4


댓글목록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2020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네요.
코로나19로 지치고 무기력하지만 이 또한 지나갈 것입니다.
연말 잘 마무리 하시고
2021년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새해를 맞이 합시다.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저의 집에서 김장김치를 담그지 않은 지 20년 가까이 되는 것 같습니다. 매년 여동생들이 보내주기 때문이죠. 금년에도 두 여동생들이 택배로 6박스를 보내줘 김치 냉장고가 모자랄 지경이지요. 그런 까닭에 김장김치 담그는 재미가 없어 졌습답니다. 따지고 보면 김치외에 된장과 고추장도 매년 보내줘 담그지 않아 무척 미안한 마음이랍니다. 어린 시절 어머님은 몇 백 포기씩 담다 이웃에 나누어 주시곤 했는데... 가을만 돌아오면 부모님 생각이 더욱 간절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