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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지루한 장마와 역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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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0건 조회 32회 작성일 20-12-2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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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장마와 역병
 
기나긴 장마와 끔찍한 수해에 이어 찜통더위와 역병의 창궐 조짐으로 정신이 혼미한 여름이다.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기나긴 장맛비가 지속되며 물 폭탄을 쏟아 붓는 듯한 국지성 호우가 입힌 심각한 피해의 복구에 모두가 울력을 보태도 역부족인 상황이다. 한껏 지루했던 장마 뒤끝에 곧장 이어지는 찜통더위가 심술을 부리고 꺼질 듯 사위어 가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다시 일어서려고 꿈틀거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형국으로 위태위태하기 짝이 없다. 예로부터 ‘재앙은 홀로 다니지 않는다’고 하여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고 경고했다던가.


올해 초부터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인 돌림병이 벼락 치듯이 급습해 지구촌 전체가 심한 몸살에 허우적이며 심한 혼돈에 빠져있다. 여태까지 인류사회의 기본 틀(frame)은 얼굴을 마주보고 일을 처리하는 대면(face to face) 문화였다. 그런데 무뢰배 같이 몰염치한 역병의 발현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나 온라인 원격처리 같은 방안이 일상화된  비대면(非對面)을 기본으로 하는 언택트(untact) 문화의 서막이 활짝 열렸다. 그래서 원했던 원치 않았던 온라인 원격교육, 재택근무, 온라인 화상회의, 원격진료, 무인 자동화 공장, 언택트 물류 배송 시스템 따위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매김 되어 감은 시대적 소명이다. 이로 인해 기존의 가치관이나 철학과 상당한 마찰과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명제이지 싶다.


역병(疫病)의 대응 요법으로 잔뜩 웅크린 채 여러 달을 납작 엎드려 지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지루할 정도로 빗밑이 질긴 장마의 게릴라성 폭우가 쏟아 부은 물 폭탄이 온 나라 이 구석 저 구석을 들쑤시고 다니며 엄청난 피해를 낸 까닭에 모두가 힘을 보태 진력해도 많은 시간이 걸릴 터이다. 그렇게 눈꼴 사납게 분탕질하던 장마 전선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면서 곧바로 찜통더위에다가 괴팍한 돌림병이 또 다시 패악 질을 해댈 징조가 뚜렷한 것 같다. 만일 전지전능한 신(神)이 미욱한 우리네 삶이나 나라꼴이 성에 차지 않아 엄한 벌로 다스린다 해도 어느 정도껏이지 해도 너무한다는 푸념이 절로난다.


끝을 알 수 없는 괴질의 몽니와 달포 남짓 이어진 지루한 장마에 정나미가 떨어져 몸도 마음도 마냥 지쳐있는 작금이다. 일터를 떠난 지 10년이 흘렀다. 그런 주제인 관계로 누군가를 만나려면 쭈뼛거리며 좌고우면하기 마련이다. 고약한 돌림병이 마음에 걸려 누군가를 만나려고 하는 자체가 민폐라고 여겨져 꼭 필요할 경우 전화 메시지나 통화로 대신하고 직접 만남은 가능한 미루거나 피하고 있다. 결국 자의반타의반 판단에서 거의 은둔에 가까운 생활이 반년 정도 지속되었다. 그렇다고 스님들의 하안거나 동안거처럼 벽면만 바라보고 살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거의 매일 3시간 안팎의 등산으로 심신을 달래본다. 하지만 허업(虛業)에 자니지 않는 삶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상실의 세월에 함몰된 것 같은 헛헛함에 점점 지쳐가고 있다.


찜통더위에 하루 종일 에어컨과 선풍기를 쌩쌩 틀어놓아도 짜증나고 들쭉날쭉한 마음의 기압골은 한랭전선과 온난전선의 경계를 넘나들며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하는 혼란스러운 모양새이다. 이런 경우를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라고 할까.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어제부터 우리 동네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는 경고 방송을 시도 때도 없이 반복해대고 있다. 확진자가 우리 아파트에서 가까운 교회 예배에 참석했었다니 조금은 께름칙하다. 우리 아파트 정문의 길 건너편에 자리한 초등학교 담장에 인접해 자리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아파트 정문에서 직선으로 300m 남짓한 위치이다. 한편 입때까지 우리 동네는 청정지역이라고 여기며 마음 놓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한가한 생각을 하며 태평가를 부를 계제가 아니기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꼴이 아닐까. 어찌되었던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기저질환을 상전처럼 떠 받들고 사는 우리 내외의 입장에서는 잔뜩 긴장한 채 조심하는 길밖에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문화적 하위계층에 대한 차별일까 아니면 공연한 자격지심일까. 나는 지금까지 폴더 폰(2G 폰)을 사용한다. 그런 때문인지 태풍이나 폭우, 지진이나 질병 따위에 대한 재난 혹은 경고 메시지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런 이유에서 홀대 받는 국민으로 섧게 사는 게 아닐까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그동안 각종 세금은 물론이고 적십자 회비까지 납기를 넘기지 않고 꼬박꼬박 납부했는데 왜 내게는 통보하지 않는 걸까. 만일 시대에 뒤떨어지는 폴더 폰을 사용한다는 맥락에서 차별이라면 또 다른 방법으로라도 벌충해 줄 차선책이 과연 없었던 걸까.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연락이 되는데 유독 나만 누락되었다면 차라리 마음 편할 것 같다. 물론 모든 게 전산화된 마당에서 뭐 그리 눈꼴 사나운 미운털이 박혔다고 나만 꼭 집어서 누락 시켰을 리 만무하지만 말이다.


내일(22일) 오전에는 아내가 두 달 만에 정기 검진을 받기 위해 담낭절제 수술을 받았던 병원을 찾아 가는 날이다. 물론 병원의 입구에서부터 발열 여부를 철저히 체크하고 방문 기록을 정확히 남긴다 해도 왠지 찜찜하다. 원래는 내일 서울의 방배동에서 글동무들과 점심 모임이 있다. 그런데 요즘 발광하듯 껄떡대기 시작한 감염증의 은근한 갑질에 오만정이 떨어지고 께름칙해서 아예 참석을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KTX 열차나 고속버스 중에 어느 쪽을 이용해도 왕복 8시간 가까이 밀폐된 공간에서 갇혀 있어야 한다는 심적인 부담감을 견뎌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내린 단안이었다. 모두가 한결같이 조심하고 모임 장소에서 철저히 체크하는 외에도 예방에 만전을 기해도 썩 내키지 않았다. 아무래도 기저질환과 철석같은 동거 동맹을 맺고 옹색한 구석으로 몰리는 처지가 되면 가을에 낙엽 떨어지는 하찮은 소리까지도 서럽고 신경이 씌이게 마련이다. 횡포를 거듭 저지르며 무자비했던 장맛비와 끔찍한 물 폭탄과 수해에 이어지는 가마솥더위와 괴질(怪疾)이 막무가내로 다시 발호(跋扈)하려는 만용에 제아무리 궁리해도 속절없이 비틀거릴밖에 묘책이 없는 우울한 시련의 계절이다.


마산문학, 제44집, 2020년 12월 19일
(2020년 8월 21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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