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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또 한 해를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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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2건 조회 1,100회 작성일 21-01-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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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를 열며


신축(辛丑)의 첫날 서둘러 청량산(淸凉山)*에 다녀왔다. 경자(庚子)의 마지막 날인 어제 아무도 없는 청량산 정상의 육각정(六角亭)에서 해넘이를 지켜보고 내려오는 길에서 내일 새벽에 찾아와 신축의 첫 해돋이를 맞을 요량을 했었다. 그런데 하산 길에 등산로 입구의 낯선 현수막에 내일 새벽부터 아침 9시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해넘이 및 해돋이, 기타 등산객”들의 출입을 완전히 통제한다고 알리고 있었다. 그래서 새벽 등산을 고집하지 않고 시간대를 오전으로 바꿔 다녀왔다.


건강 악화로 등산을 시작했다. 처음엔 체력이 너무 약해 등산이 불가해서 당국에서 산을 관리하기 위해 개설하며 아스팔트 포장을 한 임도(林道)를 세 해 남짓 걸었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출발 이후 어느 정도 체력을 되찾으면서 2004년 초부터  이때껏 청량산 정상을  오가는 등산길을 걷고 또 걷고 있다. 지금 돌이켜 보니 어느 결에 청량산 정상을 오간지 어언 18년째의 첫날이었다. 그동안 매주 평균 5번 등산을 했기에 계산상으로는 4천 번 이상 등산을 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게다가 1번 왕복을 12km로 하여 단순 계산을 하면 모두 5만 킬로미터(km) 이상을 걸었다는 얘기이다*. 태어나 지금까지 ‘내 집’이나 ‘젊은 날의 직장’을 제외하면 가장 많이 반복해서 다닌 곳이 청량산 정상이다.


여태까지 어떤 한 가지 일에 이렇게 오래 매달렸던 경험이 전혀 없다. 만일 젊은 날 특정한 분야에 애착을 가지고 외골수로 파고 들었다면 일가견에 이른 성공을 거둬 전문가나 기술자 혹은 스페셜리스트의 반열에서 지존으로 존경을 받을 터인데. 안타깝게도 어리숙해 엉뚱한 꿈을 꾸거나 허황된 탐욕에 노예로 전락하여 야랑자대(夜郞自大)*하는 어림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황금 같은 세월을 허투루 보낸 업보 때문에 휘청대지만 만시지탄의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다른 분야에서 같은 일에 오랫동안 몸 담았다면 일머리나 문리(文理)를 깨우쳐 누구도 쉬 넘보기 어려운 장인(匠人)의 경지에 이르렀을 터이다. 그런데 등산의 경우는 해가 지날수록 오가는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힘이 더 듦은 어디에 연유할까.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를 처음 찾던 지천명(知天命)의 끝 무렵에 비하면 같은 길임에도 힘이 부치고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런 때문에 등산과 하산 과정을 막론하고 나를 추월해 지나가는 이들이 숱해지면서 묘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올해에 겨우 희수(喜壽)에 이르기 때문에 아직은 늙지도 젊지도 않은 어정쩡한 나이를 감안할 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헷갈린다.


지천명에 들어서며 건강이 악화되어 즐기던 끽연(喫煙)까지도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결별하고서 녹록치 않은 규칙적인 운동에 몰두하고 있다. 그럼에도 야속하게도 그동안 두 차례(2016년과 2018년) 정신을 잃는 블랙아웃(blackout) 경험을 하며 놀라 허겁지겁 병원을 찾아갔다. 다양한 검사 결과에 의거한 처방에 따라 매일 약을 한 주먹씩 복용하는 궁색한 삶을 꾸리는 나날이다. 약의 복용은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기 때문에 이승의 삶을 접는 순간까지 지속해야 할 모양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건강이란 노력해도 지킬 수 있는 한계가 분명하고 태어날 때부터 복을 타고나야 하나 보다.


등산을 시작할 무렵에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에서 수인사를 나누거나 낯을 익혔던 연세 많은 어른들 모습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더니 이제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저간의 사연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을지라도 대충 미루어 지레짐작할 수 있지 싶다. 이즈음 등산을 나서는 시각이 들쭉날쭉해서 새벽인가 하면 오전일 경우도 있고 오후나 어둑어둑할 무렵이기도 하다. 따라서 다양한 부류의 등산객을 눈여겨보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들 중에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과연 언제까지 정상을 향하는 등산로를 온전히 오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에 대한 답변은 내 영역이 아니리라. 그래서 신축년 새해를 맞으며 젊은 날처럼 활기차고 빠르게는 아닐지라도 꾸준히 등산을 할 수 있도록 건강이 허락되고 쓰고 싶은 글 쓰면서 가족 모두가 건강한 채 스스로의 역할을 무리 없이 해낸다면 무얼 더 바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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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량산(淸凉山) : 신마산 밤밭고개 언저리에서 가포동(架浦洞)과 덕동동(德東洞) 쪽의 해안까지 이어지는 산으로 정상의 높이 323미터(m)인 산이다. 그런데 내가 다니는 길은 그 정상에 등정했다가 돌아오는 데 12km 정도로서 2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 52주(1년) x 5회(매주) x 17년 = 4,420회
* 4,420회 x 12km = 53,040km
* 야랑자대(夜郞自大) : 용렬하거나 우매한 무리 가운데서 세력이 있어 잘난 체하고 뽐냄을 이르는 말. 중국 한나라 때에 서남족의 오랑캐 가운데서 야랑국(夜郞國)이 가장 세력이 강하여 오만해진 데서 유래했다.


한맥문학, 20212월호(통권 365), 2021125

2021년 1월 1일 금요일(辛丑年 元旦)      

댓글목록

윤복순님의 댓글

윤복순 작성일

새해에 더욱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선생님 덕분에 여기에 오는 것이 기쁘고 글도 열심히 씁니다.
항상 든든하게 지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교수님!
건강하시고 안전한 2021년 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