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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한 가지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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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1건 조회 1,026회 작성일 21-01-1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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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는 좋다

윤복순

 

나는 먹는 것을 좋아한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머릿속에선 폭죽이 터지고 벌집에서 꿀을 쭉쭉 빨아먹듯 음~~ 온 몸이 진저리친다. 맘에 맞는 사람과 맛있는 것을 먹을 땐 그 기쁨이 두 배다. 올해는 그 두 배를 즐기지 못했다.

작년 연말쯤 간단한 건강검진을 받았다. 근육양이 줄었고 공복혈당이 약간 높게 나왔다. 매번 받는 과체중도 지적받았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1월 중순부터 108배를 시작했다. 허벅지가 터져나가게 아프고 배 가죽이 땡겨 죽는 줄 알았다. 겨우 익숙해질 때쯤 코로나19가 터졌다. 마스크 때문에 하루 종일 약국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집에 들어가면 108배 할 기운이 없었다.

기진맥진했고 좋아하는 밥도 의무감으로 먹었다. 이럴 때 동네사람들이랑 음식점에서 입에 맞는 것을 먹으면 스트레스도 날리고 기운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약사라는 직업 때문에 철저하게 방역수칙을 지켰다. 생일 때도 아들딸을 못 내려오게 했고, 익산에서 하는 조카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마트 가는 것도 확 줄였다.

지치고 무기력해졌고 마스크와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집에서 약국으로 약국에서 집으로 시계추 같은 일상이 지속되었다. 익산을 벗어나는 여행 한 번 하지 못했다. 일요일 탑천의 자전거길을 걷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살림을 잘 하지 못 할뿐 아니라 음식 솜씨가 없다. 집밥이 훌륭할 수 있겠는가. 애들이라도 와야 이것저것 장만이라도 할 텐데, 그 반찬이 그 반찬이다. 식당에서 맛있는 것을 먹을 때면 기쁨 두 배를 즐기며 과식을 했다. 그리곤 저녁밥은 굶었다. 집에서만 밥을 먹으니 과식할 일도 굶을 일도 없다.

초여름이 되었다. 동네 언니가 깜짝 놀라며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배가 들어가고 얼굴이 반쪽 됐단다. 동생 친구가 약국 언니는 애기가 몇이니? 라고 물어 둘이라고 했더니 볼 때마다 임신 중인 것 같았는데.” 라고 할 정도로 복부비만이 있는데 그런 배가 들어갔다는 것이다.

뚱뚱이가 된 이후로 거울도 아침에 한 번 보면 그것으로 끝이고 체중도 건강검진 할 때나 달아보는 정도다. 특별히 아픈 데가 없었는데 왜 얼굴이 반쪽 됐을까.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여행도 못가고 마스크 때문에 고생하니까 위로해 주려고 하는 말이라고 한다.

내 체중은 콘크리트다. 둘째 낳고 지금까지 변동이 없다. 젖 잘나오라고 새참까지 꼭꼭 챙겨 먹었더니 임신 때 체중이 1도 줄지 않고 그대로였다. “돼지를 이렇게 키워놨으면 동네 갑부 소리 듣겠네.” 이런 농담을 주고받았다.

아이 젖을 떼고 나서 식욕억제제 한 알을 먹었는데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손이 덜덜 떨렸다.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한 갑을 다 버렸다. 두 번 다시 다이어트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약국에선 비만치료제, 다이어트약 등은 취급하지 않았다. 약사가 과체중이면서 사람들에게 이런 약 저런 약 설명해 줘봐야 먹힐 일이 없다.

언제 부턴가 비만 율 계산하는 법도 바뀌어 보기 좋은 사람들도 과체중으로 나온다. 다이어트하다 빈혈 오는 것보다, 골다공증 걸리는 것 보다 좀 뚱뚱한 게 낫다는 뱃장으로 살고 있다. 삐짝 말라 예민하게 보이는 것 보다 통통한 건강미가 있고 성격 원만하고 수더분해 보이는 편이 더 좋다는 아전인수 이론으로 체중에 무신경한 척 한다.

건강한 몸에서 건강한 정신이 나온다. 배가 고픈 상태에선 긍정적인 사고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나 배운 것을 나 혼자 다시 해봐야 할 경우 일단 밥부터 먹고 편안한 상태에서 해야 지구력을 가지고 끈질기게 할 수 있다.

병적으로 뚱뚱한 것도 아니고 남에게 혐오감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자위하면서 몸무게 줄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행복함을 다이어트 해야 하는데 하며 스트레스 받는 것과 바꾸고 싶은 마음도 없다. 이런 생각으로 사니 과체중을 면할 날이 없었다. 아직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 등 성인병은 없다.

건강검진에서 공복혈당이 높게 나온 것은, 뒤 베란다에 쭉 줄 세워 놓은 대봉시가 장마에 도랑물 불어나듯 시간을 다투며 물러져서 하루에 두 개씩 먹은 탓이었다.

아침마다 한 시간 이상 걷고 체조를 한다. 퇴근 후 TV를 볼 때는 서서 본다. 음악프로그램을 보면서는 춤을 춘다. 가수들을 따라 할 순 없어 내 느낌대로 몸을 흔든다. 흥에 취해 눈을 감고 추다 넘어질 뻔도 했다. 일요일은 4시간 이상 걷는다. 그래도 체중은 줄지 않았다.

며칠 전 K가 어떻게 살을 뺐냐고 물었다. 겨울옷이라서 표가 나지 않을 텐데? 자기 눈은 날카로워서 피할 수 없단다.

창고 속에 쳐 박아 뒀던 체중계를 꺼내 건전지를 갈았다. 3 킬로그램 정도 줄었다. 뭐든지 알듯알듯할 때 재미가 있어 열심히 하듯 콘크리트 체중에 아주 쪼금 실금이 가기 시작해 체중계에 자주 올라가본다. 일요일 점심 먹고 운동을 나가면서 몸무게를 재 보았다.

4시간 걷고 와서 보니 400그램 줄었다. 많이 걷고 왔으니 저녁밥이 얼마나 맛있겠는가. 동네 생선가게에서 회를 뜨고 매운탕거리도 가지고 왔다.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먹방 스타가 되었다. 바로 1킬로그램이 늘었다. 내가 운동이랍시고 한 것들은 밥맛만 좋게 하는 독약이었던가 보다. 체중은 운동보다 먹는 것이 더 좌우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2020년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여행 한 번 못했다, 아들딸과 밥 한 번 못 먹었다, 보고 싶은 사람도 못 만났다. 마스크만 쓰고 살았다, 집 밥만 먹었다. 모든 것이 불만이고 불평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다 나쁨 나쁨이었다. 코로나19시대 사회적 거리두기로 기쁨 두 배도 즐기지 못했다. 콘크리트 체중이 깨지기 시작했다. 이 한 가지는 좋다.

 

2020.12.29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크게 악화된 건강은 아니었는데, 어쩌다가 스쳐지난 가벼운 뇌졸중 증상 때문에, 병원 처방에 따라  끝이 없는 약을 복용하던 중에, 당이 높다는 지적에 따라 단것을 피하고 보리밥만 먹고 지냈더니, 지난해 후반기부터 체중이 2kg쯤 줄어들더니 제자리로 되돌아올 기색이 없답니다. 지난 3,40년 동안 늘 65kg 안팎을 맴돌던 체중이었는데.... 코로나19로  어쩌다가 지인들을 만나면 살이 많이 빠졌다고 야단들이지만 실제로는 2kg 빠진게 전부인데... 건강하게 살고파 거의 매일 등산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가는 세월은 어찌할 수 없나 봅니다. 이제 겨우 희수(喜壽)에 이르렀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