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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창원시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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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0건 조회 66회 작성일 21-01-26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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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시 조명


창원시를 들추는 조명이다. 우금(于今)*의 창원시는 지난 2010년 중소도시였던 마산시와 창원시 그리고 진해시가 긴 안목에서 미래를 겨냥해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를 한 뒤에 하나로 통합해 메가 시티(mega city)를 향해 첫발을 내디딘 통합도시이다. 현재 5개 구(區)로 편성되어 있다. 그 옛날 마산시에 속했던 구(區)의 이름에 ‘마산’을 추가해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로 정했고, 창원시에 속했던 의창구와 성산구 등의 명칭은 기존의 명칭대로 사용하기로 확정했다. 다만 옛 진해시를 진해구로 개칭했다. 그렇게 정해진 이들 5개 구에 각각의 명칭 유래와 특징*을 조명하는 여행이다.


원래 ‘창원(昌原)’이라는 지명은 조선조 제3대 태종대왕 실록8년(1408년) 7월 13일조에 의창현(義昌縣)과 회원현(會原縣)을 통합하면서 의창(義昌)의 ‘창(昌)’자와 회원(會原)의 ‘원(原)’자를 따서 창원부(昌原府)로 명명하며 생겨난 지명이라는 기록이다.


옛 마산시의 남부에 자리한 마산합포구에서 ‘합포(合浦)’라는 명칭의 유래이다. 신라 시대 마산항을 ‘골포(骨浦)’, 마산을 ‘골포현(骨浦縣)’이라고 부르며 ‘굴자군(屈自郡)’에 귀속시켰다. 그런데 경덕왕 시절에 전국의 지명을 바꾸고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굴자군’을 ‘의안군(義安郡)’으로, ‘골포’를 ‘합포(合浦)’ 또는 ‘합포현(合浦縣)’으로 바꾼 뒤에 ‘의안군’에 귀속시키면서 ‘합포’라는 지명이 탄생했다는 귀띔이다. 구청에서 밝힌 마산합포구의 특성을 간추린 대강이다. 근대에  개항(開港) 이후 근대문물의 유입 관문으로 기미년 4대 독립항쟁 중에 하나인 마산삼진의거(馬山三鎭義擧)를 위시해서 3.15의거를 이끈 민주주의 운동 요람이라고 했다. 아울러 마산어시장은 2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농수산물 유통 중심지이고 무학산, 만날재, 저도연륙교, 문신미술관, 마산박물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문화예술의 혼이 깃들어 있는 예향의 고장이라고 꼽고 있다. 한편 현재 구민(區民)은 대충 18만 명 미만 정도로서 4개의 면(面)과 11개 동(洞)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전 마산시의 북부에 자리한 마산회원구에서 ‘회원(會原)’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이렇다. 합포구 유래에서 밝혔듯이 신라의 경덕왕 16년(757년) 전국의 지명을 바꾸고 행정구역을 새로 개편할 때 ‘골포(骨浦)’를 ‘합포(合浦)’ 또는 ‘합포현(合浦縣)’으로 바뀌었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고려(高麗) 충렬왕 8년(1282년)에 ‘합포현’을 ‘회원현(會原縣)’으로 개칭하면서 탄생한 이름이란다. 한편 구청이 소개하는 지역특성의 요약이다. 창원시 서북부 관문에 자리한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지로서 무학산과 천주산을 비롯해서 팔용산과 팔용산돌탑 그리고 봉암갯벌생태학습장  따위의 걸출한 자연과 도심이 어우러지는 생활 중심지라는 자랑이다. 여기에 더해 마산자유무역지역(옛 수출자유지역)과 봉암과 중리 공단을 거느린 경제 중심지이기도 하단다. 또한 국립3.15민주묘지, 각종 관공서와 마산야구장 그리고 3.15아트센터 등을 품고 있어 문화와 예술과 체육의 중심지라는 자랑이다. 현재 구의 인구는 19만 명을 약간 웃도는 정도로 1읍(邑) 11개 동(洞)을 거느리고 있다.


의창구의 ‘의창(義昌)’이라는 명칭의 유래이다. 신라 35대 경덕왕이 전국의 지명을 바꾸고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굴자군’을 ‘의안군(義安郡)’으로, ‘골포’를 ‘합포(合浦)’ 또는 ‘합포현(合浦縣)’으로 바꿨다. 그 후 고려 25대 충렬왕(1274년) 때 원나라와 함께 일본을 정벌하려던 동정군(東征軍)의 근거지가 되고 나서 ‘의안군(義安郡)’을 ‘의창현(義昌縣)’으로, ‘합포현(合浦縣)’을 ‘회원현(會原縣)’으로 독립시키면서 ‘의창(義昌)’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단다. 구청에서 적시한 의창의 특성을 요약한 내용이다. 창원부(昌原府)의 읍성(邑城)이 설치되었던 창원의 뿌리, 창원산업단지의 심장(창원국가산업단지, 차룡공업단지, 테크노파크, 창원과학연구복합파크), 우수 농산물 집산지(단감, 수발, 파프리카), 교통의 요충지, 스포츠의 메카(창원스포츠파크, 사격장, 경륜장) 등을 특성으로 열거하고 있었다. 아울러 현재 26만을 조금 웃돌아 창원시 5개  구중에 가장 많은 주민이 거주하며 1읍(邑) 2면(面) 5개 동(洞)을 구성되어 있다.


성산구에서 성산(城山)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이렇다. ‘성(城)이 있는 산(山)’이라는 한자(漢字)) 지명으로 ‘내동에 소재한 구릉을 가리킨다’고 한다. 성산에는 성산패총(사적 제240호)을 위시하여 야철지(冶鐵地)와 통일신라시대 정치체제 중심인 치소(治所)를 유추하게 하는 장방형 산성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아울러 성산 야철지 유적은 삼한시대(三韓時代) 창원지역에 철기문화가 활짝 꽃폈음을 뜻한다. 이런 역사적 의미를 지닌 지역에 오늘날 우리나라 기계산업의 메카로 성장한 창원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있음은 각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했다. 이 같이 과거 성산지역을 기반으로 번영을 누리며 구가했던 선조들의 얼이 담긴 역사적 지명 “성산”을 구(區) 이름으로 사용한 것이란다. 성산구청에서 밝힌 성산구청의 특성 요약이다. 교통의 중심(국도 2호선, 2-25호선, 77호선, 25호선)으로 깨끗한 해안(삼귀해안)과 수많은 테마공원 및 유적이 산재한 문화 관광(성주사, 불곡사, 안민고개)의 요람이라고 밝히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 기계산업의 중심인 창원국가산업단지(1,500개사)가 있고 금융기관이 집약된 시가지와 대형 상업지구의 발달을 열거하기도 했다. 현재 구민(區民)은 22만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정도로 7개 동(洞)으로 구성되어 있다.


진해구라는 이름의 유래이다.  가야(伽耶) 연맹이 신라에 편입된 뒤에 웅지현(熊只縣)이었던 오늘날의 웅천(熊川)이 통일신라시대에 웅신현(熊神縣)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의안군(義安郡)에, 중심지에 위치했던 완포향(莞浦鄕)은 합포현(合浦縣)에 속했다. 그러다가 고려 후대에 이르러 완포향이 현(縣)으로 승격하여 합포현에서 분리 독립했다. 그 후 조선 문종 재위 시절 완포현과 웅신현이 웅천현(熊川縣)으로 통합되고 갑오개혁 뒤에는 웅천군(熊川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08년에 창원부(昌原府)로 통합되었다는 기록이다. 1912년 최초로 “진해(鎭海)”라는 이름의 진해면(鎭海面)으로 개편되었단다. 그 후 1931년에 창원군(昌原郡) 진해읍(鎭海邑)으로, 1955년 9월 1일에 진해시(鎭海市)로 승격되었다가 2010년 7월 1일부로 창원시에 통합되면서 진해구(鎭海區)로 바뀌었다고 한다. 한편 구청에서 밝힌 진해구의 특성은 다른 구와 달리 달랑 두 개 항목뿐으로 원문 그대로 옮긴다. 아름다운 해안선과 국내 최대 벚꽃 축제로 자연경관을 활용한 해양관광레저산업의 허브로 발전, 신항만 건설, 경제자유구역개발사업 추진으로 무한한 성장 잠재력 보유 등만을 열거하고 있었다. 현재 진해 구민은 19만 명 약간 웃도는 정도로서 13개 동(洞)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경계를 맞대고 발달했던 3개의 독립된 시가 하나로 통합한 취지는 단순히 행정적으로 물리적 통합을 겨냥한 무의미한 공리나 정치적 목적을 지향한 게 아니었다. 고만고만한 중소도시가 대도시로 재탄생함으로써 한 때 전국의 7대 도시였다는 자존심을 되살리려는 마산의 염원인 르네상스(renaissance), 창원에서 지향하는 목표인 스마트(smart), 진해가 겨냥했던 블루오션(blue ocean)이라는 장밋빛 꿈을 실현시켜 균형발전을 이룩하는 게 진정한 목표였다. 이를 위해서 개개인이 다소 불편하거나 어려움이 따른다 해도 대승적으로 울력을 보태며 합심하는 게 시민의 도리이리라. 그런데 아직까지도 최초 기대했던 대로 여타의 광역시 같이 중앙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해 그다지 실익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에 특별 대접을 해달라고 떼를 쓸 처지도 못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현재 엇비슷한 목표를 겨냥하는 관계로 데자뷰(Deja Vu) 되는 수원시나 용인시를 비롯해 고양시의 인구가 창원시보다 많고 규모가 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도 뒤쳐진다는 얘기이다*. 게다가 현재 경상남도 여타의 시군에서 전제 조건 없이 그런 취지에 선뜻 동의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첫 걸음을 당차고 요란하게 출발했음에도 기대와 달리 미미한 결과가 왠지 씁쓸하고 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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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금(于今) : 지금에 이르기까지(유의어 : 지우금일(至于今日), 지우금(至于今), 지금(只今))


* 각 구청의 특징 : 20201112일 현재 창원시 각 구청의 홈페이지에 적시한 특징 내용을 요약한 것으로 본인의 자의적인 첨삭은 없었음.

 

* ‘특례시’ 지위 부여를 법적으로 공식화한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안이 2020년 12월 9일 국회에서 통과됨으로써 창원시, 수원시, 용인시, 고양시 등의 4개의 시가 ‘특례시’로 확정되었다.


2020년 11월 12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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