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드림출판사

(단편) 한계상황 1 > 자유창작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고객센터
상담시간 : 오전 09:00 ~ 오후: 05:30
(주말 및 공휴일 휴무)
02.2612-5552
FAX:02.2688.5568

b3fd9ab59d168c7d4b7f2025f8741ecc_1583557247_0788.jpg 

소설 (단편) 한계상황 1

페이지 정보

작성자 신외숙 댓글 2건 조회 932회 작성일 21-01-27 14:13

본문

한계상황
신외숙



길을 걸어가는데 등 뒤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난 어릴 때 얼마나 머리가 나빴는지 스스로 저능아라고 생각했어요. 제대로 된 판단력이나 분별력도 없고 이성(理性)이나 존재했는지 모르겠어요.”
“어릴 때 무슨 생각인들 못하겠어요, 점차 자라면서 지혜도 생각의 틀도 변하는 거겠지요.”
“그게 아니라 내 말은 눈치코치도 없을 만큼 아둔함 그 자체라는 뜻이지요.”
“지금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내 말은….”
상대는 위로나 격려해 주기 위해 애쓰는 것 같았다.
“세상은 공평해요, 왜냐하면 하느님은 각 사람에게 재능을 주셔서 그걸로 먹고 살라고 은혜를 주셨거든요.”
“공평하다니? 그게 무슨 뜻이에요?”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셨다는 뜻이에요.”
발걸음을 시장으로 향하는데 그들과 길이 엇갈리면서 대화는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길을 지나는데 길냥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여자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는데 그녀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주신 사료, 얘네들한테 잘 먹이고 있어요.”
아기 냐옹이 3마리가 맛있게 사료를 흡입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까 내가 준 사료 외에 캔 사료도 함께 먹고 있었다. 여자는 아기 냐옹이를 계속 쓰다듬으며 귀여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네거리를 지나 어린이 공원을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아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어 앙칼진 여자 목소리도 들렸다. 사람들이 금세 모여 들었다. 5-6세쯤 됐을까. 여자 아이는 엄마로 보이는 여자로부터 무수히 난타를 당하고 있었다. 눈에 독기가 오른 여자는 아이의 조그만 어깨를 흔들고 주먹으로 아이의 얼굴을 암팡지게 두들겨 팼다.
누군가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112로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때였다. 젊은 청년 한명이 여자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왜 애를 때립니까? 말로 하시죠.”그제야 여자는 정신이 들었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사람들의 눈초리가 사납게 변하며 여자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 순간이었다. 언제 왔는지 경찰이 여자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잠시 서로 가 주실까요?”
“왜요? 내가 뭘 어쨌다고요?”
“글쎄 뭘 어쨌는지는 가 보면 알거고요, 방금 신고가 들어 왔거든요.”
경찰은 여자의 팔을 강하게 낚아챘다. 아이가 갑자기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엄마, 저 아저씨 누구야? 아앙! 무서워.”
아이는 엄마의 치마꼬리를 붙잡으며 말했다. 그때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젊은 여자가 물었다.
“아가 너희 친엄마 맞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 끄덕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자가 말했다.
“아! 애가 뭘 알아요? 친엄만지 아닌지. 하긴 제 배 아파 낳은 자식도 목 졸라 죽이는 세상인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저 어린 걸 물건 때려 부수듯 때릴 수 있어요?”
“저 여자도 틀림없이 맞고 자랐을 거야, 그러게 핏줄이 중요한 거야, 결혼할 때 왜 가문을 보고 집안 내력을 따지겠어?
그러자 어떤 여자가 지나가며 말했다.
“잘 키우지도 못할 것들이 낳긴 왜 낳아? 힘없는 어린 아이 때리고 괴롭히는 것들은 능지처참을 해야.”
그때였다. 아이 엄마가 그녀를 향해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뭐가 어째고 어째? 네깟 년이 뭔데 그딴 소릴 지껄이는 게야? 내 새끼 내가 때리는데 뭔 상관이야? 니가 내 새끼 키우는데 보태준 거 있어? 이 씨발년아,”
아이 엄마는 욕설과 함께 여자의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광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눈빛에 분노와 악이 충만했다. 여자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이 여자가 어디서 주먹질이야? 니가 그러고도 엄마야? 아니지? 너 친엄마 아니지?”
한낮에 길거리에서 때 아닌 핏줄 논쟁이 일자 구경꾼이 새까맣게 몰려들었다. 그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아이 엄마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그렇게 때리고 미워할 거 뭐하러 낳았니? 애가 불쌍하지도 않냐? 애가 무슨 죄가 있냐?”
경찰은 더 이상 볼 필요도 없다는 듯 여자에게 경찰서까지 동행을 요구했다. 여자는 사람들의 기세에 눌렸는지 순순히 경찰을 따라 나섰다. 사람들은 돌아서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그저 부모 잘 만나는 게 가장 큰 복이야, 부모가 반복을 준다는 옛날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니까. 부모 잘못 만나봐 일평생 신세 조지고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다니까.
그들은 모두 원한 맺힌 사람들 같았다, 그러니까 매 맞는 어린 아이를 그냥 못 지나치고 울분을 토했던 것이다. 돌아서는 내 발걸음도 분노에 차 덜덜 떨고 있었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현관 앞에 딍구는 휴지통을 발길로 걷어찼다. 뿐만 아니라 탁자 위에 있는 책과 필기도구를 바닥에 쏟아버렸다.
그러면서 후회했다. 좀 전의 그 아이 엄마를 뒤쫓아 가 머리통이라도 힘껏 내리치고 도망칠 것을. 하긴 경찰이 출동해 있고 지나는 행인도 많은데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아쉬움과 함께 분노가 가슴속에 요동쳤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분노조절 장애라고.
나 역시 공감했지만 기분이 더럽게 나빴다. 요즘 들어 생각과 마음과 행동이 따로 따로 움직였다. 마음으로는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입에서는 거침없이 비방과 욕설이 튀어 나왔고 생각은 의도와 상관없이 끊임없이 과거의 수렁을 맴돌았다. 생각은 의지로 제동이 안 걸리는 이상한 수레바퀴 같았다.  
의지로 제어가 안 되는 현상을 통제불능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난 이상하게 생각이 과거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게 가난에 뿌리박힌 인식이었다. 가령 물건을 사러 마켓에 들렀다 치자. 같은 종류의 물건을 사는데 디자인이나 품질보다 낮은 가격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라도 손해 보는 일이 발생하면 이성(理性)을 잃고 마구 난동을 피웠다. 그것은 내 부모가 내게 물려준 대물림 현상이었다. 물 한방울도 아껴 쓰라는 소리를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터라 쓸데없는 일에도 지나치게 아꼈다.
그러다 개망신을 당하고 수모를 뒤집어 쓴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피눈물로 범벅이 된 나 자신을 보면서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해도 똑같은 상황이 닥치면 매번 반복했다. 때에 따라 나의 행동은 극과 극을 달렸다. 선과 악, 진실과 위증, 평안과 불안의 끝을 끊임없이 질주했다.
어떨 땐 내가 꾸며낸 감정에 스스로 함몰되어 허우적댔다. 누군가 내 안에서 말했다. 넌 정서불안이야. 어릴 때 불안한 환경에서 자라 늘 감정이 파도치는 거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마음이 안정될까. 마인드 콘트롤 있잖아 그걸 해봐. 마인드 콘트롤?
그래 일종의 명상이야. 잡념을 없애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거야. 하지만 곧 내 안에서 반론이 일었다. 그거 하다 우울증에 빠진 지인(知人)을 본 적이 있다. 그는 신앙에서도 떠나고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마음의 평정은 고사하고 삶의 질서마저 무너질 위기에 이르자 신경정신과를 찾기도 했다. 그렇다면 적절한 취미생활을 해봐. 즐거움을 찾아 집중해 봐. 훨씬 효과가 클 거야.
그래 바로 그거야.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딱히 좋아하는 게 없었다. 무언가 취미생활을 하려고 해도 돈이 가로막았다. 돈에 대한 한 맺힌 기억이 포기와 절제를 요구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 돈에 구속되고 그에 따른 상처를 그대로 방치했다. 돈 한 푼에도 벌벌 떠는 내 모습에 스스로 화가 나 그때마다 누군가를 향해 원망의 화살을 쏘아 올렸다.
어느날 회사 동료들과 함께 심리테스트를 했다. 이른바 우울증과 정신분열 요즘 말로 조현병 검사였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비정상인 것은 확실했다. 특히 불안 증세가 심각했는데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보니 회복탄력성이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한번 감정이라는 맨홀에 빠지면 오래간 모양이었다.
나는 동료가 소개해 주는 심리검사 사이트를 접속해 간단한 조사와 함께 치유책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복잡한 내용도 그렇거니와 유투브와 인터넷에 재미있는 볼거리가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그러자 동료는 자기 교회에서 하는 상담세미나가 있으니 참석해 보라고 권유했다.
강사진도 다 대학 교수 출신에다 경력도 화려해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솔깃했다. 다음주 일요일 동료와 함께 상담세미나에 참석했다. 교인들의 수다도 귀에 거슬리고 종교적인 분위기도 거부감이 들었지만 공짜라는 말에 열심히 참석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공짜가 아니고 회비가 십만 원이었다. 동료가 내 대신 내준 것이다. 코끝이 찡했다. 왜? 라는 물음표가 마음속에서 계속 떠올랐다. 이유를 묻기도 전에 동료의 얼굴에 답이 있었다. 그에겐 나에겐 없는 포용력이 있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고 용납할 줄 아는 넓은 아량이었다.
어쨌거나 공짜라는데 못 나갈 이유가 없었다. 열심히 참석하는 동안 난 내 마음의 실체에 대해 점차 눈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집안에서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과 그 배후에 대해서도 느낌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강의 도중 간간히 성경적 비유가 등장했는데 그건 신앙적 믿음을 키우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세미나는 총 10주에 걸쳐 진행 되었는데 동료의 말에 의하면 내 얼굴빛이 나날이 좋아졌다고 한다. 강의는 매우 유익했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전에는 문제에 집착했다면 이제는 문제의 원인과 해석에 집중했다. 부정적인 사고가 긍정적인 사고로 변하기 시작했다.
동료는 교회 출석을 권유하며 등록하길 바랐지만 난 끝내 거절했다. 일단 교인으로 소속이 되면 귀찮은 일이 많을 것 같았다. 매주 교회 출석은 물론이고 헌금 강요도 이어질 것 같아서였다. 그건 나로선 끔찍한 시나리오였다. 언젠가 들었던 십일조 헌금 강요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 나로서는 그것만큼은 단연코 노였다. 그 대신 동료와 약속했다. 시간 나고 마음 내키면 교회에 나가 주겠노라고. 동료는 아쉬운 표정이었지만 이내 얼굴에 어떤 확신 같은 게 보였다. 그 일이 있고나서 동료는 내게 더없이 친절과 배려를 베풀었다.
불쌍한 어린 양 하나를 구원해 보겠다는 계책(計策)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계책이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생전 느껴보지 못한 따스함이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차츰 안정이 찾아왔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안정기조가 유지되는 건 아니었다.
마음이란 게 언제나 변화무쌍한 것이 아니던가. 늘 빛과 어둠이 갈리고 천국과 지옥이 엇갈리는, 그리고 강사의 말대로 사람의 마음이란 절대 믿을 게 못된다는 그 말이 팩트였다. 내 마음도 못 믿는데 어떻게 남의 마음을 믿겠는가. 그러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대표적인 게 속임수와 배반일 것이다. 심리 전문가인 모 대학 교수가 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내노라 하는 심리학자인데 얼마 전 가까운 지인에게 엄청난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 사람 마음을 읽는 전문가가 속임수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 사람 마음은 아무도 모른다.
마음을 판단하는 기준이 있다면 말이나 표정 행동인데 그런 것은 얼마든지  연기(演技)로 가능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꾀에 속고 어쩔 수 없이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두뇌가 비상한 사람도 학력이나 스펙과 상관없이 속임수에 예외 대상은 없다.
또, 사람들은 흔히 말에 실린 진실성에 무게를 두고 판단하는데 그 역시 믿을 바 못되는 게 위선과 매너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듣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절친을 믿고 거액을 맡겼다가 일순간에 전 재산을 날려 버렸다는 이야기도 들은 바 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욕심이라는 변수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기가 막힌 건 피붙이를 이용한 사기극이다. 돈은 때에 따라 피보다 진하고 목숨만큼 위력을 발휘할 때도 있다.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저는 비교적 사람을 잘 믿는 결점이 있습니다. 그런 성격 대문에 겪었던 일화 하나 입니다. 지난 세월 IMF가 몰아칠 무렵 동료 하나가 부인 사업 때문에 돈이 필요하다며 OO생명에서 몇 천만원 빌려주면 매달 갚아 나가겠다고 하도 간절하게 얘기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몇 달 뒤에 직장도 그만 두고 야반 도주 했습니다. 그후 한 번도 미안하다거나 어찌 하겠다는 소식도 없이 떼 먹었지요.  어찌했는지 지금 서울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제가 돈이 절실히 필요해도 그에게 전화 한 통 못한답니다. 제 마음이 약해서... 주위에서 그럽니다. 무조건 서울 그의 아파트에 처들어 가서 며칠 뭉개라고.... 차마 용기를 내지 못하는 유약한 나는 누구일까요?

신외숙님의 댓글

신외숙 작성일

그래도 한번 결심하고 찾아가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엄청 소심하고 남에게 싫은소리는 죽어도 못하는 성격인데 받아야 할 돈만큼은 기필코 받아 냅니다. 피해의식 쌓일까봐겁이 나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