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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단편) 한계상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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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외숙 댓글 2건 조회 931회 작성일 21-01-27 14:23

본문

그 모든 게 부패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성경에도 나와 있지 않은가. 만물보다 부패한 게 사람의 마음이라고. 그 부패한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때론 독을 뿜어내고 그로 인한 상처는 원한이 되어 가슴 속에 쌓인다. 특히나 어릴 때 받은 상처는 일평생 따라 다니며 시한폭탄 노릇을 한다.
또한 어린 시절 받은 상처와 학대는 대물림 되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가정 폭력 속에 자란 여자는 결혼 이후에 폭력에 노출될 확률이 70퍼센트다. 이것은 어느 상담학자가 밝힌 증거다. 한마디로 어릴 때 잘못된 환경이 평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것이다.
악은 집요하고 반드시 보복하고 싶어 한다. 특히 약자의 대상을 향해 잔인성을 발휘하는데 그 대상이 바로 자녀이다.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라. 당연하게 여긴다. 일전에 방송에서 들은 이야기다. 어린 시절 계모에게 극심하게 학대를 당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학대를 피해 친모에게 찾아갔다.
친모는 처음에는 받아 주었지만 나중에 사정이 바뀌자 계모보다 더 끔찍한 학대를 가했다. 딸은 그 분노를 가슴 속에 쌓고 죽을힘을 다해 공부해 한의사가 되었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갈 무렵 어느날 학대 받은 상처가 떠올랐다. 분노의 화신이 된 여자는 계모가 아닌 친모를 찾아갔다.
어릴 때 친모로부터 학대 받고 살았던 그곳에 아직도 친모가 살고 있었다. 한밤중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친모가 나와 보고는 깜짝 놀랐다. 딸은 문을 걷어차고 들어가 친모에게 말했다. 계모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난 친딸이 불쌍하지 않았냐, 그런 딸을 그렇게 또 때리고 학대하고 싶었냐.
친모는 대답했다. 난 모르는 일이다. 니가 지금까지 살아온 게 부모 덕인데 이제 와서 이게 무슨 못된 버릇이냐?
못된 버릇? 딸 가슴에 못 박아놓고 뭐 부모 덕? 그게 말이냐?
학대라니? 내가 너를 언제, 난 모르는 일이다.
친모는 자기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며 발뺌했다. 분노가 치솟은 그녀는 친모의 집안 살림살이를 때려 부수며 악담을 했다. 심지어 욕설까지 퍼부으며 말했다. 계모에게 학대당해 쫓겨온 친딸을 또 구박하고 때려서 내쫓은 넌 엄마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 너 같은 인간은 살 가치도 없다.
딸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난동을 부렸다. 그녀는 진료를 마치고 나서도 또다시 분노가 폭발하면 친모에게 찾아가 욕설을 퍼붓고 난동을 부렸다.  
드디어 상담사가 중재에 나섰다. 상담사는 딸의 입장을 충분히 들었다. 그리고 친모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린 딸에게 왜 그렇게 몹쓸 짓을 했는가. 친모는 전혀 딴소리를 했다. 난 모르는 일이고 딸이라는 년이 찾아와 살림 도구를 때려 부수고 난동을 부리고 창피해 못 살겠다.
말이 전혀 안 통했다. 사회자는 상담사에게 물었다. 왜 딸은 계모가 아닌 친모에게 찾아가 분풀이를 한 겁니까? 이에 상담사는 시청자에게 말했다. 학대를 맨 마지막으로 가한 당사자에게 가장 많은 분노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계모는 피 한방울 안 섞인 남이니까 그럴 수 있다 치지만 친모는 피를 나누었기에 분노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딸은 자기의 행동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용서도 빌지 않는 친모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어린 딸을 지옥 속에 살게 했으니 응분의 보응(報應)을 받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천륜이라고 한다.
그 천륜을 설명할 때 자녀의 효를 먼저 강조하는 게 도덕관념이라고 가르친다. 부모의 자식 사랑을 내리사랑이라고 절대적인 사랑으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인륜을 저버린 건 자녀이지 결코 부모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 인터넷을 보라.
신생아 자녀를 죽인 20대 부모와 어린 자녀를 노동자로 팔아먹고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 하여 다 성장한 딸을 생매장 한 경우도 있다. 어떤 여 목회자가 유투브에서 한 설교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녀는 초등학교 때 담임교사로부터 성폭행 당할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났는데 그로 인해 엄청난 폭력에 시달렸다고 한다.
집안에서는 친아버지로부터 엄청난 폭력을 당했고 학교에 가져가는 준비물을 어머니가 해주지 않아 학교에서 또 망신을 당했다고 한다. 그 대목에서 나는 폭발했다. 잠재된 의식 속에서 상처가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내 의식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난에 대한 수모감이 머리를 태울 듯이 달려들었다.
어린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난과 수치는 내 의식을 압박하고 비굴하게 만들었다. 비굴함이라니, 그건 낮은 자존감과 함께 심령을 병들게 했다. 공부에 필요한 준비물은 물론 필기도구도 없어 빌려 써야 했다. 야외 수업이나 소풍 때는 갖은 핑계를 대 불참해야 했다.
이유는 교통비가 없어서였다. 이러한 처지를 간파한 친구들이 사방에서 비난과 조롱을 퍼부었다. 툭하면 왕따 시키며 괴롭혔고 거지라고 놀렸다. 한때는 고아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런 속사정을 누구에게도 말 못했다. 말했다간 집안에서 당장 내쫒길 게 뻔했다.
집안에서는 내가 돈 달라고 할 때마다 엄청난 욕설과 매질을 했다. 단돈 몇푼 아니 동전 몇 개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돈 이야기만 하면 중죄인 취급을 받으며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갔다. 누군가 내 귀에 대고 말했다. 부모 복도 지지리도 없지. 어린 나는 하루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돈을 많이 벌어서 이 지옥 같은 집안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가능하면 먼 타지로 날아가 아무도 모르게 숨어 살고 싶었다. 나를 아무도 알아 볼 이가 없는 타관 벽지 외진 산골이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사람이 무서웠고 그중에서도 피붙이가 가장 두려웠다.
영양불량으로 온 몸의 뼈가 휘고 빈혈증세로 제대로 걷기도 힘들었다. 사랑이니 정(情)이니 인정(認定)이니 하는 단어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대신 철천지원수라는 단어를 많이 들었다. 뜻도 모른 체. 몸이 자라자 각종 질병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차라리 죽어버리란 말이 들려왔다.
병원에 데려갈 돈이 아깝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없는 살림에도 내 오빠는 극진한 대우와 사랑을 받았다. 그게 바로 아들과 딸의 차이라고 했다.
늘 삶과 죽음의 경계선 속에서 세월이 흘러 청소년 시기가 다가왔다. 그동안 나는 여러번 자살 위기를 겪었고 집안 형편도 조금 나아졌다. 간신히 고등학교까지 졸업은 했는데 문제는 몸이었다. 어릴 때 못 먹고 산 탓에 병마(病魔)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강박증 우울증에다 정신분열 증세마저 보였다. 그러나 병원에 가 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어릴 때 당한 상처가 고착화 돼 자신을 스스로 방기하고 학대하는 것이었다. 사고체계에 이상기류가 발생한 것이다. 돈 한푼에도 벌벌 떨며 온갖 수모와 비굴함을 자초했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왜 그렇게 자존감이 낮은 거냐고? 내가 물었다. 자존감이 뭔가요? 자존심이란 말은 들어 봤는데 자존감이란 말은 처음 듣는 단어라고. 상대방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경제적인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 해서 집안 분위기가 달라진 건 아니었다.
내가 먹는 반찬은 언제나 김치나 나물 종류였다. 오빠 밥상에는 간혹 고기나 생선이 올랐다. 내 오빠도 여동생에 대한 사랑 같은 건 먼지만큼도 없었다. 오직 제 한몸만 위하며 밖으로만 돌았다. 못 사는 집구석이 지겹다며 가끔 내게 주먹질을 했다. 딱 한번 내게 눈물을 보인 적이 있다.
불쌍하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이후에도 행동은 변하지 않았다. 가난은 거절감이라는 상처와 함께 마음을 옥죄는 족쇄였다. 마음과 발목을 옥죄는 족쇄는 언제나 내 뒤를 따라다녔다. 비굴함과 수치 분노도 함께 따라 다녔다. 족쇄는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더 깊게 내 마음을 할퀴고 통증을 유발했다.
그리고 이러한 약점은 언제나 내 앞길을 가로 막았다. 내 모습에는 항상 궁기(窮氣)가 흘렀고 그건 인간관계에 있어 항상 치명타로 작용했다. 상대방의 입가에서 번지는 야릇한 비웃음은 곧바로 멸시에 찬 말로 돌아왔다. 어느날 나는 생각했다.
부자가 되고 싶다. 마음의 부자.
그리고 어떻게 하면 이 돈이라는 집착과 수모감에서 벗어날까. 고안해 낸 방법이 불우이웃 돕기 성금이었다. 언젠가 뉴스 화면에서 보았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래 바로 그거야. 처음에는 내 안의 옹색함과 위선에 벌벌 떨었다. 타협이라는 단어가 내 양심을 고발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백퍼센트 진실이었다면 거짓말이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는 단돈 한푼도 못 쓰는 처지에 이웃 돕기 성금이라니 돈의 액수와 관계없이 수차례 망설여졌다. 언젠가 보았던 인터넷 기사가 떠올랐다. 국제적인 구호단체가 선량한 시민들이 보낸 성금을 개인적으로 착복했다는.
그래서 많은 회원들이 떨어져 나갔다고 한다. 그렇지만 계획을 미룰 수는 없었다. 당시 나로선 거금을 해당 구좌로 송금했다. 이깟 거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사는데. 그런 식으로 몇 번 보내고 나자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해졌다. 따라서 내 마음속의 위선이나 가식도 점차 사라져 가는 느낌이었다.
이젠 나도 사람답게 살아보자.
현재 내 수입은 결코 적은 수준은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먹는 음식은 고작 떡볶이나 라면이다. 십년도 넘은 이야기다. 최고의 영화배우 대중의 스타로 불렸던 최진실은 거대한 저택에 관리인까지 두고 살면서도 먹는 음식은 늘 떡볶이나 라면이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돈이 없어 학교 앨범도 못 샀다고 한다, 춥고 배고픈 시절을 지나 최고의 스타덤에 올랐지만 생각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나는 구제품 가게에서 옷을 고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기겁할 듯이 놀란 적이 있었다.
말이 구제품이지 남이 입다 버린 물건이 대부분이었다. 사이즈도 큰 옷을 억지로 꿰어 입으며 거울 앞에 선 내 모습이 얼마나 비참해 보였는지 모른다. 그 길로 가게를 나와 백화점으로 향한 나는 마음에 드는 옷을 골랐지만 여러번 망설인 끝에 포기하고 돌아서고 말았다.
내 주제에 이런 비싼 옷이 가당키나 할까. 어릴 때 내 귓가에 들렸던 말이 또다시 마음속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가족을 철천지 원수처럼 대하는 아버지와 딸에게만큼은 물 한모금도 아까워하는 엄마가 내 의식 속에서 가난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아들한테는 고기 반찬 집어주면서 하나뿐인 딸에게는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면서 온갖 악담을 다했다. 딸년 키워 봤자 다 소용없다. 결국 남의 집 사람 될 것을. 영양불량으로 쓰러져 누워도 병원 한번 데려가지 않았다. 대신 엄청난 욕설을 퍼부었다.
끔찍하게 아끼던 아들이 온갖 사고를 치고 돌아다녀도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내가 버는 돈은 오빠에게 한정없이 들어갔다. 그 아들이 결혼할 때는 집안 기둥뿌리 뽑아 해주더니 내 결혼에는 아예 무관심으로 대체했다. 친척들이 쟤 승희 시집 안 보내냐고 물으면 지가 알아서 가겠지 했다.
그 아들이 장가가자 며느리 공대는 얼마나 깍듯하게 하던지 옆에서 보는 나는 심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핏줄보다 더 진한 사랑을 며느리에게 쏟아 붓는 모습이라니 이런 엄마를 사람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다. 며느리한테는 밥 한번 못 얻어먹으면서 나만 보면 며느리년한테 잘하라고 훈시를 했다.
집안의 생활비는 내가 몽땅 충당하는데 그 잘난 아들 며느리한테는 용돈 한푼 못 타 썼다. 보다 못한 나는 독립을 선언했다. 돈줄이 끊어진 부모는 팔팔 뛰고 난리가 났다. 아들 내외한테는 죽어도 생활비 내놓으라고 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짐을 싸고 있는 내게 부모 은공 모른다고 장탄식을 했다.
이젠 잘난 아들 며느리한테 생활비 타 쓰시지, 나한테 뭘 해주었다고 돈 달라고 큰소리야. 그러자 여태껏 먹여주고 키워주었다고 징징대며 말했다. 나는 못 들은 체 돌아섰다. 나오면서 부모의 면전에 대고 말했다.
다신 이 집구석 들어오나 봐라. 며느리년한테 밥 한번 못 얻어먹는 주제에. 더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참았다. 다신 얼굴 안 보고 그만일 테니까. 그렇게 해서 독립을 했는데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웬만하면 현재에 집착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도 세우면서 살고 싶었다.
하지만 가슴 속에 가득 찬 분노가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인터넷을 열면 각종 심리상담 코너가 있었고 그와 연관된 책 소개도 많았다. 하지만 너무 광범위 했고 그때뿐이었다. 전문적인 상담사를 찾아가 볼 수도 있겠지만 돈이 아까워 그만두었다. 언젠가 지인이 내게 한 말이 생각난다.
“아니 어째 매사에 돈! 돈 그러세요?”
나는 다시 유투브에 난 여목사의 간증에 귀 기울였다. 그녀의 설교는 힘이 넘쳤고 공감대가 흐르고 있었다. 내게 들리는 메시지는 과거를 이기는 힘은 영적인 능력이었다. 그녀에게 과거라는 상처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고난이 유익이 되어 지혜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뛰어난 두뇌와 학력, 남편의 적극적인 외조와 헌신적인 사랑이었다. 그녀의 멘트 하나 하나에 실린 메시지는 엄청난 파장과 능력이 되어 나의 심금을 울렸다. 그러나 바쁜 일정에 쫒기다 보니 그보다 돈에 집착하다 보니 더 이상 설교는 듣지 않게 되었다.
그보다 더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는 유투브에 차고 넘쳤다. 유명한 강사진의 생활 철학 심리치유 성공담 옛날 드라마 무료 영화 소통에 관한 강의 등 나는 남는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 쏟아 부었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인터넷 검색 한번이면 각종 정보가 눈에 쏟아져 들어오고 공짜로 이용하는 코너도 많았다.
그렇지만 재테크나 고소득을 미끼로 한 사이트는 절대 접속하지 않았다. 언젠가 지인이 소개한 펀드에 투자했다가 엄청난 손실을 본 것이다. 그때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멘붕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 이후부터 돈에 대한 집착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건 전혀 예측하지 못한 현상이었다. 이후부터는 의심병이 생겨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럴 돈이 있으면 차라리 이웃돕기 성금 보내는 게 낫다 싶었다. 흔한 말로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 마음먹으니 차라리 마음이 홀가분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다 보니 그때 손실된 액수는 여러 모양으로 채워졌다. 돈에 대한 한(恨)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돈 되는 일이라면 불을 켜고 달려들어서그런지 돈은 언제나 넉넉하게 채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한번 들어온 돈은 빠져 나가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소통하는 세상이 되다 보니 돈 씀씀이는 더욱 줄어들었고 여가 시간을 유투브로 보내다 보니 별별 희한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거기에는 평범하고 진솔한 이야기도 많았고 가슴 저미는 상처와 기가 막힌 역전 드라마 같은 이야기도 많았다.
그때 알았다. 세상에는 나처럼 상처 깊은 사람들이 많구나. 아니 내가 당한 상처보다 더 기막히고 슬픈 사연을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 억울하고 슬픈 사연 중에는 나중에 통쾌하게 원수로 되갚아 준 경우도 많았고 서로 화해하고 용서한 경우도 가끔 있었다.
대부분이 가정사에 관한 이야기인데 세상에 가장 큰 원수가 가족이었다. 피붙이를 이용한 범죄와 착취 그리고 결혼을 빙자한 사기 사건이 많았다. 그중 어떤 여자들은 나처럼 딸이라는 이유로 학대와 가정 폭력을 당한 사례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울면서 수없이 많은 댓글을 달았다.
동병상련보다 더한 공감대는 없었다. 그중 어떤 여자는 나보다도 한참이나 어렸는데 자신을 미아리 텍사스촌 출신이라 소개했다. 사연이 얼마나 충격적인지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녀 역시 나처럼 딸이라는 이유로 방치된 채 거의 굶다시피 살고 수없이 폭력에 노출되었는데 그 과정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었다.
아들에 집착한 엄마가 딸에게는 방치와 학대를 일삼았는데 한번은 아들이 엄청난 폭력사건에 휘말려 구치소에 입감된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합의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도저히 방법이 없자 이제 13살 된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의 손을 잡고 미아리 텍사스촌으로 찾아 갔다고 한다.
예전에 미아리는 술집 사창가가 밀집된 곳으로 환락가였다. 어린 딸의 손을 잡고 술집을 찾아다니며 값을 흥정하는데 딸이 아무리 울며 불며 애원해도 소용없었다. 여러 포주를 만나 값을 흥정하는데 돈에 환장한 포주들도 고개를 흔들며 거절했다고 한다.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주인공인 나!    승희가 어런지런 가정 폭력과 가난에 찌들어 살면서 겪어야 했던 컴프렉스 때문에 자존감을 잃고 적응을 못해 병적인 증상을 보이며 처연한 상황.....  그런 영향 때문에 생겼을 법한 돈에 대한 집착... 게다가 어린시절 여자라는 이유 때문에 차별을 당하는 아픔과 13살 소녀가 지기 오빠 사건으로가장 비참한 세상으로 팔려 가야하는 절박한 상황에 목이 멥니다.

신외숙님의 댓글

신외숙 작성일

세상에는 믿어지지 않은 진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끌어 안아 주면 좋은데 오히려 상처를 줍니다. 기막힌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