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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단편)한계상황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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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외숙 댓글 2건 조회 968회 작성일 21-01-2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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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속삭임이 부럽고 신기했다. 바다는 파도소리와 함께 엄청난 힐링을 선사하고 있었다. 곁을 지나는 여자가 연인에게 말했다.
“바다를 왜 바다라고 하는지 알아?”
“글쎄.”
“바다는 모든 걸 다 받아준대, 그래서 바다라고 하는 거래.”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마음도 받아주고 배려하라는 뜻이라고 여자는 말한다. 바다는 파도물결과 함께 끊임없이 몰려 왔다 쓸려갔다. 곳곳에서 즐거운 함성이 들려왔다. 바다는 힐링을 선물하고 있었다. 마음을 부드럽게 만지며 자연을 즐기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기타 소리와 함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러운 음률애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모래사장 끝나는 곳에 소나무 밭 근처 바위에 앉아 젊은 남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사가 의미심장했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오랜 세월 찾아 난 알았네 주밖에 없네
주 자비 강같이 흐르고 주 손길 날 치유하네
고통 받는 자녀 안으시니 주밖에 없네>
노래하는 남녀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아름다운 한쌍의 음률은 부드럽게 지친 마음을 힐링하고 있었다. 곡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또다른 곡을 연주하고 계속 힐링을 선사했다, 파도소리는 노랫소리와 함께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사람들 입가에 미소가 번져났다.
그런데 아까부터 누군가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뒤에서 옆에서 흘깃거리며 다가올까 말까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들은 젊은 남녀였고 망설이는 걸로 보아 느낌이 썩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그들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대인기피증이 심했고 지금 누리는 평화를 유지하고 싶었다.
바람이 갯내음과 함께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커피 향기가 바람에 함께 실려와 후각을 자극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던 그들이 결심한 듯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먼저 여자가 내 소매를 붙잡고 말했다.
“저기 승희씨 아니에요?”  눈이 번쩍 떠지면서 상대를 바라보는데 기절할 듯이 놀라고 말았다. 오빠와 올케가 수년간의 세월을 뚫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올케는 젊고 몸매도 날씬하고 예뻤다. 나도 받지 못한 부모 사랑을 시부모로부터 받으면서 여유롭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곁에 서 있는 남자는 여동생에게는 냉혈한이면서 아내에게는 그윽한 사랑을 눈빛으로 전하고 있었다. 한순간에 여유롭던 마음이 사라지면서 어색했다.
피붙이로 살가운 정을 느껴본 적이 한번도 없는 터라 어색하고 내재된 상처가 속에서 꿈틀거렸다. 저것들은 내가 고생한 덕으로 여유롭고 한갓지게 살고 있구나. 내가 죽을힘을 다해 모아놓은 돈으로 결혼식을 치른 그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거지같이 피해의식에 시달렸다.
돈을 내놓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중에 후회하고 미칠 것 같았다. 왜 내 전 재산을 내놓고 말았는지 두고 두고 후회했다. 그렇다고 가족들의 태도가 전혀 달라진 건 없었는데. 오빠 내외를 바라보는데 당장 내 눈에서 불이 튀었다. 그냥 지나갈 것이지 아는 체를 할 게 뭐람.
어색한 분위기에 당장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올케가 친절한 척 하면서 자꾸 말을 시키는 바람에 그대로 있었다. 도망치고 싶은데 이상하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가씨 잘 지내고 계시죠? 그래도 부모님께 가끔씩 안부전화도 드리고 그러세요. 어머님 걱정하세요.”
그때 내 입에서 실소가 터지면서 막말이 나왔다.
“누가 내 걱정을 해요? 살다 별 희한한 소릴 다 들어보겠네.”
“네?”
올케가 놀란 토끼눈으로 쳐다보는데 오빠가 안절부절 했다. 망할 자식이 제 여편네 눈치 보는데 속에서 천불이 올랐다. 생각 같아선 니 결혼식 때 들어간 내 돈 내놓으라고 하고 싶은데 사람들도 많고 간신히 참았다. 하나뿐인 여동생은 정신분열 되기 직전인데 저것들은 여유롭게 바다 여행이나 즐긴다 생각하니 피해의식으로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어떤 말을 해야 저것들한테 가장 가슴 때리고 내 속이 시원할까. 올케의 얼굴은 가진 자의 넉넉함으로 여유로운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부모 사랑 받고 자라 성격이 모나지 않고 온화하고 긍정적이었다. 나와는 여러모로 반대적 성격이었다. 그러면 뭘하나 시부모 생활비 한푼 안 보낼 텐데. 그러나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승희야 너 요새 만나는 사람있냐?”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 지가 언제부터 내게 관심 있었다고? 한마디 쏘아부치려는데 올케의 목에 십자가 목걸이가 보였다. 속에서 반감(反感)이 불같이 솟았다. 질투 시기심도 같이 부채질을 했다.
“참 살다 별 소릴 다 들어보겠네, 언제부터 내게 관심 있었다고 천사 같은 멘트를 하고 그러실까, 그럴 여유 있으면 엄마 생활비나 보내 드리시지 그러셔. 아마 굶어 죽지는 않았는지 모르지.”
“생활비는 내가 꼬박 꼬박 보내 드리고 있으니까 걱정 마라.”
“거짓말 아냐? 진짜?”
그러자 올케가 나섰다.
“네 아가씨 집 나가시고 나서 어머님께서 전화 하셔서.”
그럼 그렇지.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허하고 분한 걸까. 나 아니면 꼭 굶어 죽을 줄 알았는데. 뭔가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 말없이 돌아서려는데 전혀 예상 못한 말이 들려왔다. 바로 오빠의 입에서.    
“승희, 너도 결혼해야지. 그동안 가족들 위해 일하느라 고생 많았다.”
속에서 울컥 하면서도 말은 거칠게 나왔다. 내 가족들은 나를 비롯해서 공치사를 하거나 부드러운 말은 아예 할 줄도 모른다. 거칠게 비난하고 욕하고 험담부터 먼저 한다. 어쩌다 부드러운 말을 들으면 온몸이 근질거리며 어색하고 생소해 불편하다.
“언제부터 내 생각을 그렇게 했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너도 이젠 사랑 받고 사랑하며 살아야지.”
“성인군자 같은 말 하고 자빠졌네, 지가 언제 내 생각해 주었다고.”
그러나 마음속에선 눈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살다보니 별 소리를 다 듣겠네, 아직도 나한테 빼앗을 게 있는 모양이지.”
“부모님도 이젠 많이 늙으셨어 이젠 그만 돌아가라,”
“너나 돌아가. 너나 아들 노릇 제대로 해. 나한테 떠넘길 생각 말고.”
모든 게 위선과 가식으로 보였다.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말을 듣고 있자니 어색하고 불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언제 너하고 나하고 이런 대화 나눌 시간 있었냐,”
“공연히 착한 척하고 있네.”
“아가씨 그동안 마음 고생 많이 한 거 다 알아요, 앞으론 좋은 일만 있을 거예요, 고진감래라고 고생 끝에 낙이 있다잖아요.”
어쭈 제법인데. 그러나 그 말이 왠지 싫지 않았다. 고진감래라고. 그럴 수도 있겠지. 앞서 유투브에서 본 그 여자들처럼.
“그런데 어떻게 날 알아볼 생각을 한 거야?”
목소리가 약간 누그러지면서 부드러워졌다.
“그럼 못 알아보냐? 하나밖에 없는 내 핏줄 여동생인데,”
언젠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불쌍하다고 눈물 흘리던 모습이 생각났다.
“미안하다. 오빠 노릇도 못하고 상처만 주어서.”
“나 돈 없다니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소리에 스스로도 깜짝 놀랐다.
“넌 돈이 다냐?”
“그럼 뭐가 단데?”
“이제라도 대학 가서 못 한 공부 마저 해라. 내가 밀어줄게.”
“웃기고 있네, 대학갈 생각도 능력도 없지만 니 도움 받을 생각은 먼지만큼도 없다. 공연히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고 있네, 그렇게 안심시켜 놓고 내 남은 돈 몽땅 빼앗아 가려는 거 누가 모를 줄 알고.”
딸한테는 독사같이 굴면서 며느리한테 잘하라고 훈시를 하던 내 부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딸 팔아 아들 구한 유투브에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지난날 가족으로부터 당했던 상처와 분노로 피해의식이 재생산 되고 있었다. 팔자에도 없는 여행 왔다가 저것들한테 덤태기 씌우는 건 아닌지 자꾸만 의심이 되었다.
평소에 온갖 악담과 착취만 당하고 살다가 살가운 소리를 들으니 어색도 하거니와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고도의 속임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정도 말투도 다 연기 같았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의심하는 나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이 연민으로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거 같았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에 대한 원망과 설움이 통곡으로 터지는데, 바닷가를 산책하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가까이 와 구경하고 있었다.
성난 파도가 내 발끝을 간지럽히며 발목이 모래에 푹푹 빠지고 있었다.
그때 내 손에 무언가가 쥐어지고 있었다. 하얀 봉투였다. 안에 신용카드가 들어 있었다.
누가 이런 거 달라고 그랬니?
던지려고 하는데 오빠 부부가 저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울음이 그치면서 궁금증이 일었다. 신용카드라. 잔금이 얼마나 남았을까. 정말 내가 써도 되는 걸까. 그런데 저 인간들이 혹시 미친 거 아닐까. 어떻게 나를 믿고 이걸 주었을까. 나는 카드를 두 손에 꼭 쥔 채 모래사장을 정신없이 뛰어 갔다.
이건 분명 현실이 아니고 꿈속일 거야. 아니면 내 상상드라마의 한 장면이거나, 제발 꿈이라면 깨어나지나 말라.
돌아오는 경강선 열차는 쾌속으로 질주했다. 열차 안에 앉아 있는 동안 처음으로 안락함을 느꼈다. 마음의 여유가 이런 것이구나 실감했다. 가난과 불운에 응어리졌던 결박이 조금 느슨해진 것 같았다. 이젠 나 자신한테 좀 더 너그러워지도록 하자.
스마트폰에 문자음이 울렸다.  

내게 상담세미나와 교회 출석을 권유했던 직장동료가 보낸 메시지였다. 내일 새신자 초청 대잔치가 있는데 딱 한번만 와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받은 도움도 있고 해서 

딱 한번만 가주겠다고 답신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결심했다.  
나 자신을 누구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내 만족감을 추구하며 살자. 돈보다 더 귀한 가치를 추구하며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서도 좀 더 노력하자. 스마트폰을 여니 소통에 관한 사이트도 여럿 있었다. 그들 역시 가정에서부터 많은 상처와 어둠이 있었다.
그러기에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문화의 편리성은 홍수같은 정보력을 제공하며 상상 외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또 작으나마 악의 행태에 대해 공분하며 의를 나타내고 있다.
인터넷 망으로 소통하며 사회악을 고발하며 공분함으로 선한 영향력도 끼치고 있다. 물론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긍정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안에 쌓였던 부정적인 악감정이 많이 해소된 느낌이 들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 왔다는 생각이 든다.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내게 누군가 다가와 사랑의 언어를 들려준 것도 같다. 기억이 안 나서 그렇지 상담자 역할을 해주며 배려해 준 은인도 있었다.
직장 동료를 따라 교회 본당 안에 들어섰을 때 성구(聖句)가 써진 대형 현수막이 보였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설교 도중 목사가 힘주어 외쳤다.
그리스도께서도 고난과 수치와 가시밭길을 가셨는데 내가 못 갈 이유가 무엇인가. 내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성육신 하셨는데 이보다 더 큰 희생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을 왜 피하려고만 하는가.
나는 설교 도중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가만히 교회 문 밖을 나서는데 회사 동료가 지켜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유투브를 열었다. 희대의 살인마 장하영이 입양한 땅 정인이를 끔찍하게 학대해 죽인 정황이 실시간대 별로 보도되고 있었다.
공분에 찬 시민들이 남부지검으로 몰려가 울부짖으며 사형을 외치고 있었다. 살인마 부부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뒤집어 쓴 채 범행 사실을 계속 부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사형 당한 죄인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각계 전문가가 나서 그들의 죄상을 소상하게 보도하면서 취재 열기도 뜨거웠다.
공분된 분노가 의(義)를 나타내면서 사람들은 계속 사형을 외치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서도 분노가 통곡이 되어 그들과 합류하고 있었다. 겨울 하늘에 미세먼지가 날리며 슬픔이 고조되고 있었다.
끝.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바다는 수많은 강이나 내에서 흘러들어온 물이 하나가 되어 이루는 완성체이지요. 바다는 어디에서 흘러온 어떵 불에게도 시원(고향)이나 강이나 내의 깊이아 길이 물의 성분 따위를 묻거나 따지지 않고 오직 받아 들여 하나의 바다를 이루지요. 사람이 고향을 따지고 출신학교를 다지고, 배움이나 경제 수준을 따지는 법이 없이..... 바다가에서 원수처럼 느꼈던 오빠와 올케를 만나고 대화의 실마리를 풀어가며 마지막 신앙에서 해답을 찾아가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고 공감하며 박수를 쳐 봅니다.

신외숙님의 댓글

신외숙 작성일

감사합니다. 끝까지 읽어 주시고 공감해 주셔서요, 교수님 삶속에 늘 형통의 축복이 이어지기실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