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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소소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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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1건 조회 62회 작성일 21-01-30 18:00

본문

소소한 삶

윤복순

 

중학생으로 보이는 소년이 뭔가를 내민다. 옆집 아들인데 아직 엄마가 문을 열지 않아 내게 이것을 맡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오늘 졸업을 했고 앨범과 졸업장 책 한 권이다. 졸업 축하한다, 책은 내가 좀 봐도 되니? “읽지도 않을 거니까 갖으세요.”한다.

네 졸업선물인데 내가 가지면 안 되지. 읽고 엄마한테 갖다 줄게. 학생은 가고 나는 책을 들고 생각에 빠졌다. 박남준 시인이 쓴 꽃이 진다 꽃이 핀다산방수필집이다. 교장선생님이 졸업생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쓰여 있다.

박남준 시인은 직장생활도 했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돈을 안 쓰는 생활을 택해 모악산으로 들어갔다. 비가 오면 빗소리가 요란한 양철지붕의 집에서 자연인으로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다. 글쓰기를 업으로 하고 사는데 책이 이렇게 푸대접을 받아도 될까. 옛날 어른들은 책 읽다가 잠깐만 엎어놓아도 글 쏟아진다고 똑바로 놓으라고 야단을 쳤는데.

 

가끔 오는 학습지 선생이다. 비타민 트로키 탈모치료제 소화위장약 등을 사간다. 여러 집을 방문하기에 마스크는 필수고 손 소독제를 찾는다. 그녀의 가방은 언제나 준비물로 꽉 차있다. 휴대하기 편한 아주 작은 것을 원하는데 우리 약국에는 없다.

며칠 전 제약회사 직원이 회사에서 나온 것이라며 잘 포장된 상자를 주었다. 열어보니 마스크와 손 소독제 휴대용 스프레이 소독약 등이 들어 있다. 나는 외출할 일이 별로 없어 휴대용은 누구든 소용 닿는 사람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번뜩 이 선생에게 주면 좋을 것 같다. 약값부터 계산하고 잠깐만, 이것은 선물. 스프레이 소독약을 주니 자기가 찾는 것이 이런 거라며 아주 좋아한다. 모든 것은 필요한 사람에게로 가야 한다.

 

어제는 왜 일찍 문 닫았어요?” 할아버지 제사였다며 어제도 약국에 왔었어요? 두 번 걸음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가 A4용지를 한 묶음 내려놓는다. 시공서 세부 업무량 보고서다. 서류에 2020년 이라 쓰여 있어 올해는 사용할 수 없다. 작년에 쓰고 남은 것인데 내가 생각나 사무실에서 챙겨가지고 왔단다.

메모는 물론 수필모임에 갈 때 글도 이 종이에 인쇄해 간다. 성경이나 법화경을 필사할 때도 이면지를 쓴다. 지구별에 살면서 쓰레기를 줄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 2~3년 전에도 불량 인쇄된 이런 종이를 한 박스 받았다. 조금 밖에 남지 않았는데 때 맞춰 챙겨준다.

여섯 개째 끝냈다. 매년 겨울 모자를 짜서 아는 사람들에게 준다. 내 모자가 오래 되어 늘어졌다. 선배가 단감을 보내왔다. 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어느 해 모자를 보냈더니 새벽에 예불 드리러 갈 때 아주 잘 쓴다고 하셨다. 선배의 모자도 시간이 지나 많이 늘어졌을 것이다. 내 몫으로 만든 것을 보내드렸다.

김장해준 아주머니와 앞 동 할머니도 색이 맘에 든다고 해서 드렸다. 강 선생도 배색이 잘 되었다고 욕심을 내 줬다. 남편과 같이 택배 일을 하는 아줌마는 하나 만들어 주고 싶었다. 모자를 뜨고 있는데 K가 자기도 모자 쓰는 것 좋아하는데 왜 주지 않느냐며 호들갑이다. 친해서 진작 준줄 알았다. 미안한 마음에 얼른 짜 주었다. 며칠 뒤 그녀가 친정 갔다가 엄마한테 빼앗겼다며 하나 더하고 간다. 그에게 어울릴 실이 없다. 내년으로 미룬다.

 

아주머니가 쇼핑백을 들고 왔다. “새해인데 그냥 올 수 없어서.” 빵을 살까 과일을 살까하다 색이 예뻐 샀다며 영수증까지 준다. 마음에 드는 색으로 바꿔 입어도 된다며. 아이보리 색으로 맨 검정색만 입으니 산뜻하게 입으라고 산 것 같다. 평상시 같으면 당장 같이 밥을 먹으러 나가겠지만 피로회복제에 앰플 두 개를 섞어 올해도 건강하고 많이 웃자며 짠하고 부딪혔다.

아파트 앞에 또래의 약국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단다. 딸들 이야기만 나눌 수 있어도 힘이 되는데 잘 들어주고 같이 웃고 같이 마음 아파하고 내 일 같이 기뻐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한다. 당신은 나를 동생 같이 생각하면서.

모르는 할머니가 OO한의원을 묻는다. 주변에서 못 보았다. 얼른 인터넷으로 찾아 전화를 걸어 주변의 알만한 건물이나 상호를 물어 보았다. 할머니가 걷기엔 좀 멀다. 메모지에 잘 적어드렸다.

어쩌다 약국 문을 열고 길을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출입문 밖까지 나가 저기 무슨 간판 보이죠? 거기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면 바로 있다고 확실하게 알려준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이다.

 

2020년 제 2차 전북수필가대회를 임실에서 열기로 했는데 코로나19로 모일 수가 없었다. 필봉농악전수관에서 1박을 하며 농악도 배워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아쉬움이 많다.

회원들의 글을 모아 나는 수필가다와 임실에 관련된 그리움이 시작되는 곳 임실책 두 권을 만들었다. 집행부의 열정에 큰 박수를 보낸다. 나는 염치 좋게 책만 받았다. 전북수필 회장의 당신 가족은 안녕 한가요와 행촌수필 회장의 불춤수필집도 받았다. 부자가 되었다. 책 읽는 재미에 빠질 것이다.

 

어제 같은 오늘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시 되지 않는 요즘이다. 살다보면 살아진다고 했던가. 햇빛이 나서 좋다. 얼었던 약국 화장실에서 며칠 만에 물이 나온다. 세상에 아무 걱정이 없는 것처럼 행복하다. 애쓰지 않아도 해결되는 일들도 있다. 소소한 것들이 모여 삶이 완성된다.

 

2021.1.19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아름답고 친근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에 저도 당달아 흐뭇하고 행복한 휴일 입니다. 늘 보람되고 즐거운 시간되시고 좋은 글 많이 쓰시기를 빌겠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