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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반 백 년 넘게 흥얼대는 '하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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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판암 댓글 1건 조회 39회 작성일 21-02-09 10:04

본문

반 백 년 넘게 흥얼대는 ‘하숙생’


삼치(三痴 : 음치, 박치, 몸치)임에도 인적이 뜸해 호젓한 산길을 걷다가 분위기에 휩쓸려 흥얼거리는 버릇이 있다. 그 경우 거의가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이다. 생을 많이 살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종심(從心)의 중반을 넘긴 황혼에 이르러 돌아보니 한 점 티끌에 불과할 탐욕에 얽매였던 지난날이었다. 그런 때문에 정처 없이 흘러가는 뜬구름이나 자취 없이 사라지기 마련인 허무한 세월과 동행했을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잔뜩 움켜쥐고 아등바등했던 모든 게 집착이 낳은 번뇌에서 기인된 업보라고 여겨져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하숙생’을 노래했던 C님과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며 받았던 공감이 맘속에 아직까지 공명하며 살아 숨 쉬는 걸까.


어느덧 53년 전쯤의 얘기이다. 우리나라 대학축제는 거개가 봄에 열린다. 신입생 환영과 개교기념일을 뭉뚱그린 축제가 각 대학마다 펼쳐진다. 당시 학생회활동을 했던 관계로 그해 내 모교의 봄 축전에 소요되는 모든 예산 수립과 관리를 직접 했다. 그 많은 행사 중에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에 하나가 가수들을 초청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어느 가수를 초청해야 할지 고민을 할 때 누군가의 소개로 서소문에 자리한 T방송국으로 찾아가 최고의 라디오 DJ로 명성을 떨치던 P 선배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분은 S대학 영문과 교수보다는 수필가로 독보적인 경지를 일구셨던 P 선생님의 자제분이기도 했다.


P 선배가 어떻게 교섭했는지 당대 최고의 가객(歌客) 여섯을 섭외해 주었다. ‘하숙생’의 C님, ‘이별의 인천항구’의 P님, ‘동백아가씨’의 L님, ‘밤안개’의 H님, ‘노란셔츠’의 H님, ‘보슬비 오는 거리’의 S님 등이다. 아마도 걸출한 매파가 중간에 다리를 놓아주지 않았다면 한 시대를 풍미하던 기라성 같은 가객들을 한 무대에 세운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을 게다. 게다가 출연료도 무척 저렴한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그 시절은 요즘처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없기 때문에 대학 축제에 전통 가요 가수들을 초청하는 게 관례였다.


약속대로 노래를 부르고 무대를 내려오면 가수 본인이나 동행자(매니저)에게 출연료를 직접 지불했다. 그런데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이는 ‘하숙생’의 C님 이었다. 그 때 두 가지 관점에서 무척 놀랐다. 먼저 그날 출연했던 다른 이들은 바쁜 일정을 핑계로 앙코르(encore)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한 채 부리나케 무대를 내려왔다. 그들에 비해 그 분은 기본으로 약속된 곡에다가 두 곡을 더 부르며 팬들에게 서비스하는 진정한 가왕의 후덕한 모습에 반했다. 출연했던 여섯 중에 인기 절정이던 까닭에 상대적으로 스케줄에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티끌만한 오만의 그림자를 찾을 수 없었던 성품의 신사였다. 또 하나 감동을 받았던 사연이다. 당신의 차례가 끝나고 출연료를 건네려 할 때 갑자기 그 중에 상당액을 학생회에게 되돌려 주려고 했다. 하지만 정당한 절차와 계획에 따라 진행되는 축제의 일환이기 때문에 그 고마운 뜻만 받아들이는 것으로 가닥 짓고 정중히 거절했다. 이런 인품에 반해 단순한 팬을 넘어 각별히 마음이 끌렸다. 단 한 번 스쳐 지나는 연이 전부였을까. 그 이후 한두 번 재회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분이 타계한 여태까지 내 마음속에 ‘하숙생’이나 ‘진고개 신사’가 깊숙하게 자리하고 있다.


나는 애국가도 매번 다르게 부르는 푼수데기로 노래엔 숙맥이고 천치에 가깝다. 단아한 품격에 매료되었던 때문일까. 아니면 지그시 눈을 감고 읊조리는 듯이 ‘하숙생’을 부르던 C님의 생전 모습이 세파에 휘둘리다 심란해진 마음을 안정으로 이끌던 마력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못한 때문일까. 생전의 그런 매력이 음유시인 같은 멋과 맛으로 자리매김 되어 지금도 흠모의 정은 여전하다. 그 노래는 중후한 인품을 넌지시 드러낼 뿐 아니라 구름이나 바람처럼 스쳐 지나게 마련인 허무한 삶을 살며시 일깨워주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노래에 예사롭지 않은 철학과 달관의 희열이 가득 담겨 있다. 여기에 더해 미욱한 내게 연의 굴레에 갇혀 부질없는 미련이나 집착을 비롯해 허투루 정을 남기는 어쭙잖은 업보를 짓지 말라는 조언까지 곁들이는 것 같다. 아직까지 또 하나의 노래 ‘진고개 신사’가 문득문득 떠오른다. 이 노래를 대하면 어린 시절 외쪽사랑에 가슴앓이를 해야 했던 이웃의 순이가 어른거린다. 그런가 하면 철없이 내닫던 시절 덤벙대며 건너던 첫사랑의 열병을 되게 앓던 흐릿한 그림자가 어렴풋이 일렁이지만 아스라한 추억만 오락가락할 뿐이다. 그런데 어느 결에 세월의 강이 흘러 현실은 생의 황혼녘이다. 노랫말에 ‘미련 없이 내뿜는 담배연기 속에’라는 구절이 세월의 흐름을 넌지시 함축하기에 이르는 얘기이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생이 정처 없는 구름처럼 떠돌 뿐인데 시답잖은 정이나 미련을 둘 까닭이 있을까.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생에서 부질없고 탐욕의 찌꺼기 같이 허접한 자국을 남기지 말고 물처럼 바람처럼 사는 게 어지러운 세상에 청정한 보시(布施)를 하는 길이 아닐까. 평생의 삶이 환로(宦路)*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이웃이나 사회에 보탬은 되지 못했다. 그래도 결정적인 신양(身恙)*없이 살아왔음에 감사하며 이따금 나서는 등산길에서 호젓함에 빠져들 때면 ‘인생은 나그네길......’을 흥얼거리며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고픈 충동을 느낀다. 그럴 경우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탐욕이나 쓸데없는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욕심을 억제하기 힘들어도 예나 지금을 막론하고 제자리를 맴돌 뿐이다. 청춘의 그리움 때문일까. 때로는 ‘미련 없이 내뿜는 담배 연기 속에....’를 응얼대면서 아련한 젊은 날의 희미한 초상(肖像)들을 되살려 더듬어보려 안간힘을 쓰며 회상에 잠기곤 하는 나는 누구이고 삶을 올곧게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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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로(宦路) : 벼슬길(같은 말 : 환도(宦途))
* 신양(身恙) : 신병(身病)


2020년 4월 14일 화요일         


댓글목록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교수님! 설 잘 쇠셨죠?

낭만이 절로 느껴지는 그때 그 시절입니다.
저희 때는 송창식, 김세환, 윤형주, 은희 등이었습니다.
그립긴 하지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