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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명절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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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윤복순 댓글 1건 조회 71회 작성일 21-02-2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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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일기

윤복순

 

설 명절은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농한기라서 남편이 집에 있기 때문이다. 추석은 포도 출하로 몸도 마음도 정신이 없다. 손이 많이 가는 전은 맡긴다. 떡도 산다. 청소와 생선, 적은 남편이 한다. 나는 나물 세 가지와 탕만 하면 된다. 장은 남편과 함께 본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아들과 셋이 차례를 지냈다. 남자들은 상을 차리고 나는 떡국을 끊이고 밥과 국을 준비했다. 손만 느린 게 아니라 머리도 느려 차례가 끝나갈 때쯤 한과를 놓지 않았음을 알았다. 늦게라도 생각난 게 어디냐며 갈수록 이럴 테니 조상님께서 이해해 달라고 했다.

산소에서 작은 집 사촌들과 만날 때는 이런저런 음식들을 챙겨갔는데, 이번에는 산소에서 만나는 것도 조심스러워 시차를 두고 성묘하기로 했다. 사과와 배, 술만 가지고 갔다. 간단해서 좋다. 간편한 것에 길들여지면 원래로 돌아가기 어려울 텐데.

1월 할아버지 제사 때다. 팬데믹 3차시기와 겹쳤다. 작은아버지 작은어머니, 시동생네 식구들, 작은 집 사촌들, 아들 모두 참석하지 말라고 했다. 남편이 연락했고 그들도 이런 때는 움직이지 않는 게 좋다고 동의했다. 부담이 100에서 10으로 줄었다.

작은어머니나 동서가 오면 상차리기가 훨씬 수월하다. 제사 때나 명절 때 나는 보조자 역할만 해서 내가 직접 상을 차리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부담이 십분의 일로 줄어든 것에 놀랐다. 작은어머니랑은 친하고 작은아버지 두 분은 돌아가시고 한 분밖에 계시지 않아 오실 수 있을 때까지는 오시라고 내가 미리 전화 드리곤 한다.

사촌들도 나에게 깍듯이 대해준다. 나는 장손며느리라서 나이 차이도 있지만 어른으로 대접해 주기 때문이다. 그들이 온다고 해서 준비를 더 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마음이 가벼웠는지 모르겠다.

처음으로 둘이서 지내니 내가 음식들을 목기에 올려야 했다. 생선은 머리가 동쪽으로 등이 위쪽으로 등을 몰라 나이는 어디로 먹었나, 자책이 들었다. 꼭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마음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진심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얌전함으로 상을 차렸다. 차려놓고 보니 여느 때나 다름없어 보였다.

술 올릴 사람이 혼자라서 제사가 빨리 끝났다. 남편이 휴대폰으로 상차림을 찍어 작은아버지 사촌들에게 보냈다. 내가 살림을 잘 못하니 특히 작은어머니가 어떻게 차릴거나 걱정을 했을 것 같다. 시간에 쫒길 일도 없고 제사 끝나고 둘러 앉아 먹을 상 차릴 일도 없다. 뒷정리도 쉽게 끝나고 돌아가는 편에 이것저것 싸드릴 일도 없다. 식구가 없으니 설거지도 금방 끝났다. 쉽다,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날에 아들만 내려온다고 하니 서운하기보다 제사 때처럼 부담이 확 줄어듦을 느꼈다. 손자 손녀가 오면 한 없이 어지러 놓고 차례지낼 때도 정신없고 뛰지 마라 뛰자 마라 아래층에 신경 써야하고. 아직은 어려서 조마 조마하는 마음이다. 쌍둥이를 데리고 쩔쩔매는 아들 며느리를 옆에서 보는 일도 애가 탄다. 어느새 내가 편한 걸 좋아하고 있는가 보다.

시어머니도 내 나이쯤에 우리 내외가 간다고 하면 부담스러웠을까. 당신이 아들 손자 보는 것 좋아해서 없는 시간 쪼개서 다니곤 했는데. 며느리들만 시댁 가는 게 부담스러운 게 아니라 시어머니도 며느리 오는 게 꼭 좋기만 한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번뜻 들었다.

할머니들이 아들 며느리 온다고 염색약을 진통제를 사신다. 꺼칠한 모습을 보이기 싫고 뭐라도 장만하면서 끙끙 앓게 되니 진통제 먹고 청소랑 한다고 했다. 뭐라도 입맛 다시게 만들 나니 몸은 무겁고 꺽정스럽단다.

신혼시절 시어머니는 아들밖에 몰랐다. 차가 없던 시절이라 김치를 담가주시면 남편이 들었다. 택시 타는 곳까지 따라와서 저런 것은 네가 들면 안 되냐.” 해서 서먹해지곤 했다. 시어머니는 내가 하는 것을 맘에 들어 하지 않을 때가 많아 속이 상하고 서운했다. 지나고 보니 나를 미워한 게 아니라 살아온 시대가 달랐기 때문임을 알았다.

어느 날 내가 왜 시어머니와 경쟁을 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젊고, 돈도 벌고, 당신시대에 비해선 남편한테 사랑도 많이 받고, 어느 모로 보나 내가 시모보다 나은 것 같았다. 시어머니 말씀에 예예 하며 전적으로 호응하고 배우겠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는 속도 좋다.”라며 내 생각을 묻기도 했다. 시어머니도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터득하셨을까.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내 생각을 말하면 아들은 엄마는 누구 편이야, 미현(며느리)이 편이네한다. 누구편이 없다. 내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 할 뿐이다. 며느리는 젊고 아는 것도 많고 예쁘다. 나는 구시대이니 며느리 하는 것을 부지런히 따라하고 지금 세대를 배우려한다.

성묫길에 여느 때처럼 친정 부모님 산소에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했다. 아들도 옆에서 우리 엄마를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한다. 이런 아들을 사이에 놓고 며느리와 불편할 필요가 있을까.

TV에서 싹싹하고 서글서글한 며느리가 나올 때면 남편은 그런 며느리를 부러워한다. 연출이라는 걸 왜 모를까. 나는 며느리가 내 아들 때리지만 않고 이혼하네, 어쩌네 하지 않고 제 아이들 잘 키우면 일등 며느리라고 생각한다. 마음 편하다.

이만큼 내려놨는데 명절에 아들만 온다고 했을 때 왜 부담이 줄었을까. 예전에는 친척들이 집에 오는 것도 청소하는 것도 음식을 장만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지금은 체력이 달리니까 여럿이 모이는 게 미리 겁이 난 것 같다. 칠십 줄을 눈앞에 두고 우리문화에 대해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내 형편에 맞는 지금시대에 맞는 해답을 찾고 있다.

너무 펀한 것만 좋아하지 말아야 할 텐데. 편한 만큼 감성도 이야기도 줄어든다.

 

2021.2.15


댓글목록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어쩌다가 피붙이 천혀 없는 남쪽에 둥지를 틀고 지내다 보니 저희 집엔 명절이면 텅 빈 절간 같습니다. 게다가 지손인 관계로 차례를 모시러 오는 일가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제수를 장만해 제사 상을 진설하고 두 아들과 차례를 모시면 끝이라서 시끌벅쩍한 장손 집안의 명절 풍습이 마냥 부럽기도 하답니다. 그런 때문일겁니다. 근자에 이르러 장손 집안에 태어나는 것도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쓸쓸한 명절을 맞기도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