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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봄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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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래여 댓글 5건 조회 99회 작성일 21-03-0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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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느끼며

  박래여(녀)


  빈 텃밭에 주름잎꽃이 피었다. 파란 꽃은 작고 앙증맞다. 꽃 한 송이 피우기 위해 긴 겨울을 견뎌온 것을 생각하면서 꽃을 쓰다듬어본다. 활짝 핀 매화는 향기를 뿜어낸다. 봄은 어김없이 와 있다.

 

  큰언니가 엄마아버지 산소에 가고 싶단다. 세 자매가 같이 가자고 했지만 운전을 못하는 큰언니를 모시고 와야 가능한 일이다. 작은언니가 그 일을 하겠단다. 문제는 언제 갈지 여부다. 큰언니는 마음 냈을 때 갔다 오자 하지만 내가 시간 여유를 내기 어렵다. 엄마 돌아가신지 십 년이 넘었다. 지난해 아버지 제사와 합쳤다.

 

  엄마는 양력 3월 모일 날 돌아가셨는데 큰 형부는 음력 3월 모일 날 돌아가셨다. 같은 날 돌아가셨지만 양력과 음력의 차이다. 지난해는 두 달 간격으로 졸지여 두 형부가 이승을 떠나셨다. 큰 형부는 여든 둘, 작은 형부는 일흔 셋이었다. 아직 더 살아도 될 연세에 떠난 두 형부를 보며 아흔 중반을 사시면서도 자식들 위에 군림하는 시부모님을 생각한다.

 전생에 나는 두 노인과 어떤 관계였을까. 어떤 업을 지었을까. 그 업이 어떤 것이기에 아직도 갚아야 할 빚일까. 언제쯤 마음의 짐을 벗을 수 있을까. 정작 빚을 갚고 나면 내 차례일 것이다. 어쩌면 두 노인보다 먼저 떠날 수도 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명이니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삶이다.

 큰언니에게 양력으로 엄마 돌아가신 날을 잡아 가자고 했다. 큰언니도 일흔 중반을 사는 노인이니 돌아가신 친정 부모님이 사무치는 모양이다. 어릴 적 우리가 뛰어놀았던 산자락, 아버지와 엄마는 밭을 일구고 장작을 패 재던 산밭 풍경, 오두막이 눈에 선하다.

 정월대보름이 다가오면 주전자와 호미를 들고 우리 산의 골짝에 들어가 가재를 잡았다. 한 주전자 잡아온 가재에 무를 삐져 넣어 자작하게 졸여주던 엄마의 가재볶음 맛에 침이 고인다. 뒤꼍 골짝에 들어가면 무심코 돌을 들춘다. 그 속에 고물거리며 나오는 가재를 잡았다가 다시 놓아주곤 한다.

 개구리도 잠을 깼다. 개구리 합창소리를 들으며 버들강아지 눈 뜨는 것을 보러간다. 표고버섯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못 둑이나 둔덕에도 파릇한 새싹이 기운차게 올라와 있다. 파리하던 잎사귀가 싱싱하다. 냉이도 꽃대를 올린다. 이름도 모르는 봄나물이 지천에 솟는다. 예전에 엄마는 저 나물 이름을 무엇이라 했는데. 기억의 갈피를 헤어 봐도 잊어버렸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테가 늘어나면서 잊고 살던 것들을 반추하게 되는 시기가 돌아온다. 자신이 노인의 대열에 섰다는 것을 자각할 때가 아닐까. 언제 이렇게 나잇살이 늘었을까. 반문할 때는 이미 머리카락이 반백이 되고 목에 주름이 질 때다. 얼굴은 마사지니 뭐니 해서 가꿀 수 있지만 목의 주름은 펴기 힘들다고 하던가. 거울 앞에 서서 주름진 목을 쓰다듬어본다. 피둥피둥 살집 좋은 여자가 거울 속에서 마주본다. 살만 빼면 영락없는 엄마다.

 엄마는 저승 어디쯤 자리 잡고 계실까. 한 번 가면 돌아올 수 없는 그 길이지만 너무 늦지 않게 떠나준 것이 고마울 때가 많다. 현실은 벽에 똥칠하도록 살면서 자식들 마음고생 몸 고생 시키다 애틋한 정조차 남기지 못하고 떠나는 노인이 많다는 것이다. 외로운 죽음도 흔하다. 자식은 자식대로 한을 품고 노인은 노인대로 한을 품고 떠나는 일이 비일비재한 세상이다.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노인을 위해 우거지 된장국을 끓인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국 한 냄비라도 정성을 들인다. 삼시세끼 국이 있어야 한다. 똑 같은 국은 이틀만 지나면 내친다. 쇠고기국, 추어탕, 미역국, 들깨찜국 등, 돌아가면서 상에 올린다. 노인은 맛이 있니 없니 까다롭게 굴기에 요양보호사는 그녀대로 스트레스 받고 나는 나대로 스트레스 받는다. 새로운 음식에만 수저질을 하는 것도 노인의 타고난 입맛이리라. 과거로 돌아간 노인의 경직된 사고를 바꿀 수 없다.

 구수한 된장국 냄새가 오감을 자극한다. 시원한 우거지국이 완성 되었다. 매운 고추 두어 개 썰어 넣어 칼칼하면 좋지만 노인은 맵거나 짠 음식은 사절이다.

그는 국 냄비를 들고 시댁을 다녀왔다. 시부모님 점심을 챙겨드리고 와서 꿀벌이 살 터전을 짓기에 여념이 없다. 집중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한다는 것은 하루를 알차게 보낸다는 뜻이 포함된다. 알차지 않으면 어떠랴.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꿀벌도 식구다. 단감농사보다 꿀벌 농사가 수월할까. 나잇살 늘고 몸에 힘 빠져도 소일거리는 있어야 산다.

 봄이 오는 길목이다. 세 자매 나들이 길에도 생각나무는 무성하리라.

 

 


댓글목록

박래여님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오랜 만에 글 하나 놓고 갑니다. 나잇살 이기기 힘들어져요. 컴나들이도 흥미를 잃어가는 것이 나이 탓 같아요.
그래도 여긴 한 번 씩 들려 올라온 수필을 읽고 갑니다.
늘 변함없이 글 올리는 윤복순 선생님과 댓글 빠지지 않고 달아주는 한판암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한판암 선생님, 황혼의 뜨락은 참 유익하게 읽었어요. 가슴 아린 글도 있고 가슴 따뜻한 글도 있었어요.
꾸준하게 책 내시는 것도 대단하시고요.^^
고맙습니다.

한판암님의 댓글

한판암 작성일

글에서 시부모님 음식 습관 얘기에 공감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똑 같은 국은 이틀만 지나면 내친다. 쇠고기국, 추어탕, 미역국, 들깨찜국 등, 돌아가면서 상에 올린다. 노인은 맛이 있니 없니 까다롭게 굴기에 요양보호사는 그녀대로 스트레스 받고 나는 나대로 스트레스 받는다."

아직 그분들에 비하여, 젊고 젊은 청춘으로 이제 겨우 희수(喜壽)인데, 툭하면 입맛이 없어  정성들여 만들어 준 음식을 옆으로 돌려 놓기 일쑤이고,  산해진미도 두 끼 연속해 올라오면 바라다 보지 않게 됩니다.

그럴땐  아내에게 미안해 아무 말도 안하고 밥을 물에 말아 급하게 퍼 먹고 식탁에서 벗어난답니다. 그렇다고 음식에 까다로운 편이 아닌데도 왜 그런지 모르겠답니다. 아! 세월이여~~~~~~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네, 입맛은 나이 들수록 까다로워지는 것 같아요. 음식도 적게 먹고 자주 먹어야 하고요. 단백질 보충은 필수더군요.
샘, 건강 잘 챙기세요. 영양식 골고루 하시고요. ^^

해드림출판사님의 댓글

해드림출판사 작성일

그러고 보니 봄이 왔네요.
래여성도 환갑진갑 지났는데---
생각해 보면 나이가 적으나 많으나 엄마는 늘 그리운 존재이지요.
저는 엄마 돌아가신지 29년 되었는데도 아직도 생생하게 엄마 얼굴이 기억납니다.
우리 엄마 생신이 음력 2월 초하루이니 며칠 남았네요.
예전에 엄마가 늘 송편을 만들었거든요. 음력 2월 초하루가 나이떡 먹는 날이라고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엄마표 새하얀 송편이 먹고 싶네요.

부디 건강하게 잘 지내시어요.

박래여님의 댓글의 댓글

박래여 작성일

그래요. 임샘도 건강 잘 챙기세요.
오래 사는 노인들 보면 음식 잘 드시고 젊어서부터 당신 몸관리 잘 하고 단백질 보충 잘 하신 분들 같더라고요.
울 시부는 아직 정정하세요. 아흔 다섯인데도.ㅋ
전복이 좋다고 해서 완도 수협에 대자 시켰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