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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동양화 그 여백의 미 - 김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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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드림출판사 댓글 0건 조회 990회 작성일 19-11-19 16:16

본문

     동양화(東洋畵)여백(餘白)의 미(美)

                                                  동진(同塵). 김 재 형(金 宰 亨)

동양화(東洋畵)의 미(美)는 여백(餘白)에 있다.

서양화(西洋畵)와는 다른 동양화(東洋畵)만의 독특(獨特)한 기법(技法)으로 선(線)과 여백(餘白)의 미(美)를 중시(重視)하고, 순백(純白)의 화선지(畵宣紙)에 혼신(渾身)의 힘을 쏟아 표현(表現)하려함을 그 특징(特徵)으로 하고 있다.

동양화의 여백은 우리민족의 고유(固有)한 사상의 표현이요, 그 사상은 자연을 배경으로 자연에 순응(順應)하고, 자연의 변화에 적응(適應)하려는 우리 선인들의 심성(心性)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백餘白)”은 비워둠이 아니라, 수묵(水墨)의 농도(濃度)에 따라 의미를 강조하거나, 나타내고자하는 작가의 헤아릴 수없는 사상(思想)과 감정(感情)이 그윽하게 스며있다.

동양화를 감상(感想)할 때는 화폭(畵幅)에 담겨진 형상(形狀)을 음미(吟味)하면서, 여백으로 남겨진 부분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고, 추구(推究)해보는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동양화는 형식(型式)이나 색채(色彩)보다 철학적인 깊은 의미를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어느 부분은 붓 한번 가지 않고 남겨 둔 채 완성(完成)했다고 한다.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라서 남겨 두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 부분을 비워 둠으로서 채우는 것보다 더 심오(深奧)한 미적 감각을 나타내려는 깊은 뜻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여백(餘白)의 묘미(妙味)는, 보는 이들의 수준(水準)에 따라 평가하고 담론(談論)케 하는 공간으로 유도(誘導)하려는 우리 선인들의 고매(高邁)한 인품의 일면이 아니었을까?

비어 둔 공간도 표현하지는 않았으나, 여운(餘韻)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들은 보는 이의 자유로운 상상의 장(場)으로 남겨 두었음이 분명하다.

누가 뭐라 헤도 동양화의 “여백의 미“는 상상과, 폭 넓은 사고(思考)와, 사색(思索)하는 여유로움이다.

여백(餘白)의 미(美)는, 비록 서화(書畵)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법정(法頂)스님은 다음과 같이 피력(披瀝)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이든 넘치도록 가득 채워야 적성(適性)이 풀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여백의 미가 성애 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두루 헤아려 보자.

 좀 모자라고 아쉬운 이런 여백이 있기에 우리의 삶에 숨통이 트일 수 있지 않겠는가. 친구를 만나더라도 종일 치대고 나면 만남의 신선한 기분이 어디론지 사라지고, 서로에게 피곤 함과 시들함만 남게 된다. 전화를 붙들고 시간이 길면 길수록 우정의 빈도(頻度)가 소멸된다는 사실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바쁜 상대방을 붙들고, 미주알고주알 아까운 시간과 기운을 부질없이 탕진(蕩盡)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고, 자신의 삶을 무가치하게 낭비(浪費)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인간관계는 그립고 아쉬움이 받쳐주어야 한다. 덜 채워 진 그 여백으로 인해 보다 산뜻해 질 수 있고, 그 관계는 오랜 세월을 두고 지속 될 수 있다“고 했다.

현대인들은 무엇이든지 완벽(完璧)해야 한다는 선입견(先入見)에서 여백에 대한 마음가짐이  매우 부족하다.

조그마한 배려(配慮_)나 양보(讓步)하는 마음보다 자신에게 하잘것없는 일에도 마음을 스스로 불편해 하는 이들을 가끔 본다.

옛 선인들의 말씀에 가득 채워짐을 경계(警戒)하라는 말씀에 삶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동양화는 그 형식적인 면에서 서양화와 다르다. 동양화는 선(線)의 예술(藝術)이요, 서양화는 면(面)의 예술(藝術)이다. 동양화는 선(線)이 중심이기에 면(面)이 비어 있다.

그건 곧 여백(餘白)이다.

동양화는 폭 넓게 여백으로 처리하는 부분이 많다. 이는 감상자(鑑賞者)들을 위한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비워 있음은 채움을 돕는다. 동양화의 여백은 감상하는 자들의 몫이다.

감상하는 자의 느낌에 따라 각양각색이요, 보는 시각(視覺)에 따라 상상하는 높낮이가 제 각각이다.

 아무런 색감(色感)도 느낄 수 없는 조선의 백자(白磁), 그 우아(優雅)하고, 미려(美麗)한 자태에 유약(釉藥)으로 매끈한 몸통에 흐르는 윤기는 볼수록 정겹다. 점과 선은 있는 듯 없는 듯 단순(單純)하면서도 정교(精巧)함이 눈길을 끈다. 간간히 여백에 내려앉은 연한 점(點)들은 표면을 은은하게 장식(裝飾)하고, 직선(直線)인 듯 곡선(曲線)은 서로가 교차(交叉)하면서 백자(白磁)의 전신을 감고 돌아, 찾는 이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 같이 점과 선이 여백(餘白)의 미(美)로 조화(調和)롭게 빚어낸 빼어난 작품에서 어찌 우리 선인들의 넉넉한 미감(美感)을 헤아리지 않을 수 있으랴.

비워있는 듯 채울 수 있는 여백(餘白)의 미(美), 부족 한 듯 만족(滿足)으로의 여유로움은 각박(刻薄)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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